조선의 화원제도
(*조정에 소속된 국가기관입니다. 하는 일은 아래에 잘 설명하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 화가는 거의가 화원입니다. 직업화가들입니다. 화원이 아닌 화가는 사대부들의 문인화가입니다.)
조선 왕조 때 도화서라는 국가기관에 소속된 화가는 직업화가였다. 그들의 명칭은 도화서 관원, 도화서원, 도화서 화생이었다. 관직이 있는 화가였다. 화공(畫工)은 천하게 부르는 명칭으로, 실제로 천한 신분이었다. 화원은 도화서 화원이란 뜻으로 신분을 높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현실에서는 화원이라지 않고 거의가 화공이라고 불렀다.(工이 들어가면 우리 말로 ‘쟁이’라고 불렀습니다. 畫工은 환쟁이입니다.)
태종 4년(1404)의 실록에 도화원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세조 12년(1466)에 도화원을 도화서로 바꾸었다. 소속은 예조이다.
숙종 때 올라온 상소문에 의하면 마땅한 건물도 없고, 운영비도, 관리인원도 부족하다고 했다. 이에 건물을 짓고, 운영비로 인상하고, 전문 관리도 두었다.
화원이 하는 가장 큰 일은 왕의 어진을 그리는 일이다. 하는 일은 많고, 급여도 적어서 화원의 기능이 떨어진다는 기사도 보인다. 이로 전국을 대상으로 시험을 처서(취재) 재주있는 화가를 구했다. 기슬도 높여야 하고, 예술적 재능도 뛰어나야 했다. 그 외에도 왕실에서 사용하는 물품이나 용기에 장식하는 그림이나 도안도 그렸다.
년 말에 세화를 그리는 일도 중요한 업무였다. 왕은 신년을 맞아 관료들에게 세화를 선물로 나누어 졌다. 재능이 뛰어난 화원이 그려서, 화원의 세화가 시중으로 흘러나와 거래되기도 하였디
중국이나 일본에 사신이 가면 화원이 반드시 따라갔다. 중국에 가서 새로운 회화 기법을 배워오기도 했다. 일본으로 간 화원은 그림을 선물하면서, 문화를 전달하는 역할도 했다. 앞에서 이상좌의 그림을 긴가민가하는 이유도 직접 그린 것이 아니고, 중국서 들어온 것이 아닌지를 의심하기 때문이다.
이외에 계화도 그렸고, 도식, 도감 등의 그림, 삽도(책에 삼화로 그린 그림)를 그렸다. 산수화도 그렸고, 중국에서 새로운 양식을 배워와서 퍼트리기도 했다.
화원은 이처럼 조선 왕조의 도화업무를 맡아서 하는 조정 기관의 화가이다. 화원은 사대부가 아닌, 중인 신분이다. 서자 출신이 많이 진출하였다고 한다. 조선 초의 이상좌는 노비 출신이다. 예조에 소속되어 있으나 아주 하위 기관이었다.
화원 선발은 시험(取才)으로 뽑았다. 늙은 김홍도도 화원 취재에 응하곤 했다.
철종 2년에(1851) 기술직 관료들이 집단적으로 신분 상승을 요구하였다. 양반들처럼 청요직을 달라고 요구하였다.
화원이 언제 폐지되었는지는, 기록이 불분명하지만, 고종 때 폐지하였다. 시진이 들어오면서 사진을 배워 온 사람들이 도화서 폐지를 주청하는 상소를 올린 기록이 있다.
첫댓글 박사님
요약을 하겠습니다.
화원:
1)조정에 소속된 국가기관으로써 조선왕조의 도화업무를 맡았음
(업무 내용- 어진이나 왕실의 장식 그림)
2) 중인신분, 기술적 관료인 셈
3)화원을 고종 때 폐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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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제 머리가 점점 나빠져서 머리에 담아두는 기억이 오래가지 않을 듯해서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