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행 7:17-36절이고, 제목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집사 ‘스데반’이 ‘모세’에대하여 말합니다. 애굽의 통치자가 이스라엘을 핍박하여 남자 아이들을 죽일 때, ‘모세’가 건짐을 받아 바로의 딸의 아들로 입양되어 애굽의 지혜를 배워 말과 행하는 일에 능한 자가 됩니다. 그러나 나이 40세에 살인자가 되어 미디안 광야로 도피합니다. 광야 생활 40년만에 시내 산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바로에게 보냄을 받습니다. 그 결과 백성을 출애굽 시키고,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서 40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합니다.
묵상
오늘은 ‘이름’에 관련한 신비로운 부분을 묵상해 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 대로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10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켜서 광야에서 40년간 인도 헸던 위대한 지도자요, 큰 선지자입니다. 이 ‘모세’라는 이름은 “당기다, 물에서 건져내다, 구원, 구출”이라는 뜻을 가진 이집트인의 이름입니다. 애굽의 공주에 의해 구출되어 그녀가 지어 준 이름(출 2:10)이었습니다. 특히, 애굽의 최고 통치자들에게 자주 사용된 대표적 이집트식 이름입니다. 예를 들면, 애굽의 ‘파라오’들의 이름들인 투트모세(Thutmose)나 람세스(Ramesses)라는 이름들이 모두 ‘모세’라는 이름을 포함하고 있는 이름들입니다. 헬라어로는 ‘모세우스’(Μωσεύς-Mōseús)이고, 히브리어로는 ‘모쉐’(מֹשֶׁה-Môsheh)라고 합니다.

유대인의 남자들은 모두 태어난 지, 8일만에 ‘할례’를 받음과 동시에 이름도 함께 지어지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보편적인 불문율입니다. 그렇다면 ‘모세’ 역시 분명히 ‘할례’를 받으면서 히브리식 이름도 지어졌을 것입니다. 그는 이후로도 약 3개월 동안 부모님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모세’의 본래 히브리식 이름을 아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더구나 성경에도 그의 히브리식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이나,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도 ‘모세’라는 이름만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다만, 많은 유대 학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몇몇 가능한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얄쿠트 쉬모니’(Yalkut Shimoni)라는 랍비에 의하면, 약 10개의 가능성 있는 이름을 다음과 같이 제시해 주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것 하나 완벽한 지지를 받는 이름은 없습니다.
1. 예레드(ירד-Yered): 하강(descent), 내려감
2. 아비 그도르(אבי גדור-Avi gdor); 울타리의 주인
3. 헤베르(חבר-Chever): 동반자, 연결자,
4. 아비 소코(אבי סוכו-Avi Socho): 보는 이의 아버지, 또는 예언자
5. 예쿠티엘(יקותיא‑ל-Yekutiel): 소망, 희망
6. 아비 자노아(אבי זנוח-Avi Zanoach): 거절의 달인
7. 토비아흐(טובי‑ה-Toviah):좋은
8. 쉐마야(שמעי‑ה-Shemayah) 하나님께서 토라를 준 아들
9. 벤 에브야타르(בן אביתר-Ben Evyatar): 용서의 아들
10. 레비(לוי-Levi): 연합, 하나됨.
이보다 더 아이러니하고도 놀라운 사실은 이 ‘모세’만 유일하게 하나님께로부터 ‘요드’(י), ‘헤’(ה), ‘바브’(ו) ‘헤’(ה) 라는 네 개의 자음으로 구성되어 있는 하나님 자신의 ‘이름’(יהוה-Yahweh)을 직접 귀로 들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전과 이후로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정확한 이름을 들은 사람도 없으며, 정확하게 발음하는 사람조차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이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들만 그 이름을 전해 들었을 뿐입니다. 그 마저도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과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의 완전한 파괴 이후에는 ‘속죄일’ 제사 마저도 중단됨으로 더 이상 하나님의 이름을 발음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아이러니 속에서 제 나름대로 깨닫게 되는 한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바로 ‘은혜’라는 것입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고, 그의 히브리식 이름을 하나님만 아시고(출 33:17), 드러내지 않으셨기에 그가 끝까지 온유함이 승한 자(민 12:3)로 남아 있을 수 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모세’의 히브리식 이름을 알지 못하게 하신 것도 은혜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다윗’과 더불어 유대인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지만, 원수 된 나라 이방인의 이름으로만 알려졌다는 사실은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거나, 교만할 수 없게 하시려는 차원 높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담겨 있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십자가의 은혜를 통하여 당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여 주셨다(요 1:12)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손바닥에 새겨 놓으시고, 늘 잊지 않고 기억해 주시고(사 49:16), 각자의 이름을 하늘에 기록해 놓으시고(눅 10:20), 사랑하는 자녀로 불러 주고 계신다는 사실이 은혜중의 은혜인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저에게 들려주시는 각별한 ‘레마’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모세의 유대식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것도, 나 외에 아버지의 이름을 온전히 아는 자가 이 땅에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이세상에 골고루 베풀어 주시는 은혜 중의 은혜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온전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임을 깨닫고, 무엇보다 너의 이름을 내가 알고, 기억하고, 불러주고 있다는 사실이 은혜중의 은혜임을 잊지 말아라.
기도
아바 아버지 하나님! 창세 전에 저를 아시고, 저의 이름을 지으시고, 제 이름을 불러 주시는 그 자체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인지를 새삼 깨달아 알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감사 드립니다. 비록, 세상에서 무명한 자로 여김을 받는다 할지라도, 위축되거나, 상처받지 않게 하시고,
당신께서 알아주시고, 존귀한 이름으로 불러 주신다는 믿음 안에서 겸손함과 당당함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성령이여 도우사, 오늘도 존귀한 당신의 자녀다운
품위를 가지고, 주의 사랑으로 넉넉하게 세상을 감싸 안는 은혜의 하루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