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인의 본 53 선지식 19차. 5. 고려 신돈의 출현이다,
고려 신돈의 출현이다.
고려 공민왕은 석가탄일에
연등회를 열고 승려들에게 반 승하였다,
고려의 승려들은 연등 회가 날 적에는
참으로 행복한 날이었다
공민왕 원년에 이색은 진사 이색이
지방에는 향교 중앙에는 학당이 있어
성균관에서 관직을 관리하게 하고
과거에 응시하게 하는 상소를 올렸다.
공민왕이 승려 보호를 불러 불법에 대하여
군주의 도는 스스로 밟도록 수양하고
백성을 교화시키는데, 있을 뿐이요
반드시 부처를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법하였던 보우였다
승려들이여 학문을 숭상하라
학문을 숭상하지 않는다면
만약 국가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함을
그날에 고려의 승려들에게 교육을
교육을 바르게 실천하려고 해야 했다
공민왕 2년에 이색에서 급제시켰는데
이색은 공민왕 시대에 학문을 숭상했다,
이색은 원에서 실시한 원 과거에 합격했다.
원에서 실시하는 과거에 합격했다는 것은
원을 숭상하고 있었던 이 새끼다,
공민왕 5년에 보호를 왕사로 삼았다,
부를 설치하여 원융이라고 하였는데
이 시기에 고려의 승려들에게 교육을
철저히 시행하도록 해야 했다.
고려 공민왕 시대에도 사찰에 주지직에
오르려고 하는 승려들이 보우에서
청탁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공민왕 시대에 보우에서 건장하여
주지 자리를 차지하려는 주지들이 전국적으로
보우에서 매달리는 몸이 되었다,
선종 승려들 교종 승려들이 앞을 다투어
보우 앞으오 앞으로 몰려들어 마치
보우는 고려 승통이 된 듯이 날뛰어
고려는 그야말로 주지 쟁탈전이 전개되었다.
수행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직 주지직 애 오르는 것이었다
공민왕이 보우에서 황금 50만을
백성들에게는 아무런 혜택도 없는데
왕사에게 은전을 베풀고 있으니
고려의 승려들은 모두 보우 왕사
보우 왕사 외치고 있음이다
이색은 우승 부 한림학사로 있어
공민왕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있어
고려는 이색을 중심으로 정치를
수행했다고 보아야 한다.
공민왕 8년에 승려가 궁궐에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라고 건의
고려의 승려들에게 경고하였는데도
고려의 승려들은 아무런 대응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공민왕 9년에 정몽주가 급제하니
정몽주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한편 승려 보인을 불러 전등록을
공민왕이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보인이라는 승려에 대하여 전해지는
것이 없는 것은 무엇인가 말이다,
공민왕 14년에 노국공주가 죽었으니
공민왕에게는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동안 홍건적을 몰아내는 일을 하였던
노국 공주의 역할이 사라진 이후에
공민왕은 신돈을 왕사로 임명했다
공인왕은 신돈을 진평후로 책봉
신돈을 공민왕은 정치 위상을 높이고
공민왕 14년에 공신호를 내리고 관직을
신돈은 왕민왕 시대 최고의 악승이라고
매진 매직하는 승려라고 칭하는 상소
그들을 모두 유배하여 죽임에 임하는
고려의 최소의 악승으로 변하는 모습이다,
공민왕의 권력의 힘을 이용하여
고려 승려들은 신돈 악승에게
굴복하는 몸이 되었다.
신돈은 원에서 집현전에 태학사로 ,
한편 공민왕은 이색에게 성균관 대사성으로
공민왕 시대에 이색과 신돈은 같은 정치를
공민왕의 수하에 정책을 실행하고 있던 정치인이다,
이색은 성균관에 대사성으로 부임하여 무엇을 교육했나
고려의 유학을 승상 하였던 이색이다
공민왕 시대에 이색과 신돈과 함께 하였던 정치인
고려 공민왕 시대 신돈에 의하여 고려는
불교를 개혁하려고 하던 신돈이었다
신돈은 원나라에 대응하려고 했다
신돈의 권력에 충실했던 이색 이다
신돈과 이색은 고려 공민왕 시대에
고려를 이끌러가려는 정치인이었다
공민왕 19년에 승려들에게 공부선
시험을 보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시험에 책임승려는 혜근이었다
이색은 성균관에서 유생들을 교육했을 것인데
이색의 제자들은 정몽주 정도전 권근이라고 하는데
이색은 성균관에서 고려의 정치인들을 양성했다,
이색은 신돈에게 고려의 개혁안도 발표하지 못하고
신돈에 의하여 고려는 관리되고 있었다
권력의 위기를 맞이한 신돈이었다
신돈이 유배를 당한 것은 바로
공민왕 20년 7월이다
신돈의 죽음에 대한 비판적인 면은
고려불교를 바르게 실행하려고 했으나
홍건적의 난으로 인하여 공민왕은
나라를 바르게 지키지 못하고 노국공주의 죽음으로
고려불교는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아 슬픈 시대에 승려들이여
공민왕은 혜근을 왕사로 삼았다
혜근을 추대하여 고려불교를 지키려고
그러나 고려는 혜근에게 힘을 주지 못하고
공민왕 23년에 공민왕은 시해 당했다
참으로 슬픈 역사를 바라보고 있음이다
아 고려 공민왕 시대 불교는 무엇을 남겼나
고려의 승려들에게 승과 시험은
유생들과의 학문적 대응을 하는데
승과 시험이었는데 아쉽다,
승과 시험을 통해서 승려의
학문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데
아 어이하여 눈을 가리고 있는지
아무리 보아도 보이지 않는 사물이여
승과 시험이 없는 불교는 불타의 가르침을
바르게 성찰하지 못하는 눈먼 거북이불교
승려들이 문자를 모른다면 돌비늘이렸다
2023년 1월 7일
출처: 불교평화연대 원문보기 글쓴이: 진관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