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계사년 3월 (15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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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3월 초1일 (병진) 잠간 맑다가 저녁에 비왔다. [양력 4월 2일]
141
방답첨사(이순신)가 왔다. 순천부사(권준)는 병으로 오지 못했다.
142
3월 초2일 (정사) 온 종일 비왔다. [양력 4월 3일]
143
배의 봉창 아래에 웅크리고 앉았으니, 온갖 회포가 가슴에 치밀어 올라 마음이 어지럽다.
144
이응화(李應華)를 불러다가 한참 동안 이야기하다가 그대로 순천의 배로 보내어 병세를 살펴 보게 했다고 한다.
145
이영남(李英男) ∙ 이여염이 와서 원균 영감의 비리를 들으니, 더욱더 한탄스러울 따름이다. 이영남이 왜놈의 작은 칼을 두고 갔다. 그 때 이영남에게서 들었는데, 강진의 두 사람이 살아 왔는데, 고성으로 붙들려가 문초를 받고 왔다고 했다.
146
3월 초3일 (무오) 아침에 비왔다. [양력 4월 4일]
147
오늘은 답청(삼짇날 돋아나는 싹을 밟음)하는 날인데, 흉악한 적들이 물러가지 않아,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에 떠 있으며, 또 명나라 군사들이 서울에 들어 왔는지 아닌지 조차 듣지 못하니, 민망하기 이를 데 없다.
148
종일 비가 내렸다.
149
3월 4일 (기미) 맑아졌다. [양력 4월 5일]
150
우수사 이억기(李億祺) 영감이 와서 종일 이야기했다.
151
원균(元均) 영감도 왔다. 순천부사가 병이 몹시 아프다고 한다.
152
소문에 들으니,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汝松)이 북로(함경도) 쪽으로 간 왜적들이 설한령을 넘었다는 말을 듣고는 송도까지 왔다가 서관(평안도)으로 되돌아갔다는 기별이 왔다.
153
통분함을 이길 길 없다.
154
3월 5일 (경신) 맑다. [양력 4월 6일]
155
바람기가 매우 사납다.
156
순천부사(권준)가 병으로 도로 돌아간다기에 아침에 몸소 배웅하여 보냈다.
157
탐후선이 왔다. 내일로 적을 치자고 약속하였다.
158
3월 6일 (신유) 맑다. [양력 4월 7일]
159
새벽에 출항하여 웅천에 이르니, 적도들은 바쁘게 뭍으로 도망쳐 산중턱에 진을 쳤으므로, 관군(官軍)이 철환과 편전을 비 오듯 마구 쏘니, 죽는 자가 무척 많았다.
160
포로되었던 사천에 사는 여인 한 명을 빼앗아 왔다.
161
칠천량에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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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7일 (임술) 맑다. [양력 4월 8일]
163
우수사(이억기)와 이야기했다.
164
초저녁에 출항하여 걸망포(통영시 산양면 신전리 신전포)에 이르니, 날은 이미 새었다.
165
3월 8일 (계해) 맑다. [양력 4월 9일]
166
한산도로 돌아와 아침밥을 먹고 나니, 광양현감(어영담) ∙ 낙안군수 ∙ 방답첨사(이순신)가 왔다.
167
방답첨사와 광양현감은 술과 안주를 많이 준비해 오고, 우수사(이억기)도 오고, 어란만호(정담수)도 소고기로 만든 음식 몇 가지를 보내 왔다.
168
저녁에 비가 왔다.
169
3월 9일 (갑자) 궂은 비가 종일 내렸다. [양력 4월 10일]
170
원식(元埴)이 와서 봤다.
171
3월 10일 (을축) 맑다. [양력 4월 11일]
172
사량으로 가는 낙안 사람이 행재소(임금이 피란가 계신 곳)에서 와서 전하는 말하기를,
173
"명나라 군사들이 진작 송도까지 왔지만, 연일 비가 와서 길이 질므로, 행군하기가 어려워 날이 개기를 기다려서 서울로 들어 가기로 약속했다"
174
고 한다. 이 말을 듣고는 그 기쁨을 이길 길 없다.
175
첨사 이홍명(李弘明)이 와서 봤다.
176
3월 11일 (병인) 맑다. [양력 4월 12일]
177
아침밥을 먹은 뒤에 원균(元均) 수사와 이억기(李億祺) 수사도 왔다. 같이 이야기 하고 술도 마셨다.
178
원균 수사는 몹시 취하여 동헌으로 돌아갔다.
179
본영의 탐후선이 왔다. 돼지 세 마리를 잡아 왔다.
180
3월 12일 (정묘) 맑다. [양력 4월 13일]
181
아침에 각 고을에 공문을 써 보냈다. 본영의 병방 이응춘(李應春)이 공문을 마감하고 갔다.
182
아들 염(苒)과 나대용(羅大用) ∙ 덕민(德敏) ∙ 김인문(金仁問) 등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183
식사한 뒤에 우수사(이억기)의 사첫방에서 바둑을 두었다.
184
광양현감이 술을 가져왔다.
185
한밤에 비가 왔다.
186
3월 13일 (무진) 비가 많이 오다가 늦은 아침에야 개었다. [양력 4월 14일]
187
우수사 이억기(李億祺)와 첨사 이홍명(李弘明)이 바둑을 두었다.
188
3월 14일 (기사) 맑다. [양력 4월 15일]
189
각 배를 출항시켜 배 만들 재목을 싣고 나서 왔다.
190
3월 15일 (경오) 맑다. [양력 4월 16일]
191
우수사가 이곳에 왔다.
192
여러 장수들이 관덕정에서 활을 쏘는데, 우리 편의 장수들이 이긴 것이 66푼이다. 그래서 우수사가 떡과 술을 장만하여 왔다.
193
저물 무렵부터 비가 많이 쏟아지더니 밤새도록 퍼부었다.
194
3월 16일 (신미) 저녁나절에야 맑다. [양력 4월 17일]
195
여러 장수들이 또 활을 쏘았다. 우리 편 여러 장수들이 서른 푼 남짓이 이겼다.
196
원균(元均) 영감도 왔다. 많이 취하여서 돌아갔다.
197
낙안은 아침에 왔기에 고부로 가는 편지를 주어 보냈다.
198
3월 17일 (임신) 맑으며 종일 센 바람이 불엇다. [양력 4월 18일]
199
우수사와 함께 활을 쏘았다. 모양이 형편 없으니 우습다.
200
신경황(申景潢)이 와서 전하기를 임금의 분부를 받들고 선전관(채진 ∙ 안세걸)이 본영에 왔다고 했다. 곧 도로 돌려 보냈다.
201
3월 18일 (계유) 맑다. [양력 4월 19일]
202
바람이 세게 불어 사람이 출입조차 하지 못했다.
203
소비포권관과 아침밥을 먹었다.
204
우수사와 같이 장기를 두었는데 이겼다.
205
남해현령 기효근(奇孝謹)도 왔다.
206
저녁에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왔다.
207
밤 열시에 비가 왔다.
208
3월 19일 (갑술) 비가 내렸다. [양력 4월 20일]
209
우수사와 함께 이야기했다.
210
3월 20일 (을해) 맑다. [양력 4월 21일]
211
우수사와 같이 이야기했다.
212
오후에 소문을 들으니, 선전관이 임금의 분부(有旨)를 가지고 온다고 한다.
213
3월 21일 (병자) 맑다. [양력 4월 22일]
214
3월 22일 (정축) 맑다. [양력 4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