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의 총선 승리로 토니 블레어는 1997년 5월에 수상에 취임하였다. 그런데 촬스 황태자와 이혼한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그해 8월 31일에 교통사고로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난다. 영국국민에게 인기가 있었던 다이애나가 죽었는데 버킹검 궁전에서는 공식적인 애도의 뜻을 표하지 않자 국민들이 격노하게 되고, 언론이 영국왕실을 비난하게 되었다.
새로 취임한 토니블레어 총리는 국민과 여왕 사이를 화해시키는데 앞장선다.
이 영화는 헬렌 미렌(엘리자베스 2세 여왕 역)의 연기만 보고 있어도 한마디로 본전을 뽑는다. 우아하고 품위 있어 보이는 여왕처럼 지적인 연기를 한다. 영국 여왕이 진짜 이런 분이라면 굉장히 매력적일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여왕 편이었다. 여왕의 행동에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웃기게도 내가 여왕처럼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여왕이었다면 나도 왕실의 공식적인 애도의 뜻을 발표하지 않았을 것이다. 왕세자의 어머니였다지만 이혼하였고, 다른 남자와 함께 있다가 사고로 죽은 여자다. 어떻게 공식적으로 애도의 뜻을 표하는가. 그러나 그래도 한때 황태자비이고 왕세자의 어머니였으니까 초기에 간단하게 애도를 뜻을 표했으면 되었을 것 같다. 여왕이 말씀을 하면 그게 바로 공식적인 것이 되어버리겠지만.
여왕은 냉혹한 마음의 사람이 아니다. 사슴 사건에서 알 수 있다. (왕의 남편은 개념이 없는 사람이다. 엄마가 죽었는데 그 아들들을 데리고 사슴을 살상하러 사냥을 간다.)
여왕은 좌우간 혼자 차를 타고 강을 건너다 차가 고장이 나서 기다리고 있을 때 나타난 사슴의 모습이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총소리가 나니 도망가라고 손짓하며 안타까워한다.
그런데 나중에 사슴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죽은 사슴이 있는 곳에 간다. 이것은 사슴 조문을 가도 다이애나가 죽었는데 애도의 말도 없다고 비난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것은 여왕도 다이애나의 죽음에 어떻게 슬퍼하지 않겠느냐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여왕이라는 자리가 마지막에 총리에게 말하였듯이 슬픔도 눈물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없는 위치에 있고, 또 그렇게 냉정하게 행동하도록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처럼 일희일비할 수 없는 자리에 앉은 사람의 고통일 것이다. 감정을 참고 권위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국민과 블레어 총리의 뜻을 받아들여 애도의 성명을 발표하고,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꽃다발이 가득한 궁전 앞에 가는 것이 치욕이라 하겟지만 그것은 왕실을 보호하고 하기 위한 것이고 총리의 간절한 뜻을 받아들여주는 것이기도 하니까 굴욕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치욕이라 하더라도 여왕의 우아함과 고고한 품위가 그것을 만회하고도 남는다.
블레어 총리도 취임 초와는 달리 점점 여왕의 마음을 이해한다. 여왕을 존경하게 되고 좋아하는 기색이 얼굴에 가득하다.
실제로는 두 사람의 사이가 좋은지 영화로만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보기에 좋았다.
감독은 교묘하고 솜씨 있는 연출로 여왕과 총리 두 사람 모두 관객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게 한다. 여왕의 남편과 총리 공보담당비서가 보기 싫은 악역을 맡아 총리와 여왕을 살리고 있다.
영화 마지막에 두 사람이 산책 나가는 장면도 멋지다. 총리에게 앞서지 말라고 하면서 여왕은 가고, 총리는 웃으면 뒤로 물러난 듯 나란히 가는 듯 따라가는 총리. 도전하지 말라는 여왕과 여왕의 그런 말을 귀엽게 생각하며 따라가는 총리.
여성들이여, 젊었을 때만 죽어라 멋을 내지 말고 늙어가면서도 이 영화의 여왕처럼 우아하고 품위 있게 늙어가자. 나도 여왕의 남편처럼 개념없이 매력 없이 늙어가지 말 것.
영화는 다이애나가 죽은 것 이외에는 별 사건이 없고, 죽었는데 ‘왕실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만 가지고도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게 만든 대단한 연출력을 본다.
그리고 이 영화는 여왕과 총리의 이미지 제고에 크게 한 몫을 하고 있다.
내가 영국국민도 아닌데 영화를 보면서 괜스레 기분이 좋았지만, 거기에 하미시네마 오늘 왠일인지 엔딩크래딧을 자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