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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데오 그라치아! Deo Gratias!
“다윗은 야훼의 궤(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와 장막 안의 방에 모셔두고 번제와 친교제를 하느님께 바친 다음 야훼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1역대 16:2).” 다윗은 아삽가문에게 하느님께 감사의 노래를 바치게 하였다. “몸소 하신 일들을 만방에 알리어라(1역대16:8). Tell the nations what the Lord has done.”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는 질문에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노래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과학자이고 싶어요.” “수도원의 수도사이고 싶어요.” 다수가 직업으로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사는 사람이고 싶어요.” 이 대답을 저는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직업을 가지더라도 막힘없이 살고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최고의 대답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막힘없이 살기를 가장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막힘없이 살게 하시려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에덴동산에서 살았던 것처럼 우리보고 살라고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저를 막힘없이 자유롭게 살도록 안내해 주신 분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감사를 바칩니다. 악마의 유혹은 온 천지에 있어서 호시탐탐 노리지만 하느님과 함께 살도록 이끌어 준 하느님이 제게 보내주신 사람으로 인하여 악마의 덫에 걸리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세상의 평가로 얻는 영광과 명성의 덧없음을 일깨워준 하느님이 보내주신 분들입니다. 악마가 장애물을 놓으면 악마 스스로 그 장애물을 치우도록 해주신 믿음의 장사들이 제 곁에 늘 있었기에 막힘없이 산 것입니다. 믿음의 장사들이 안 계셨다면 저는 악마에 벌써 치였을 것입니다. 이를 이미 아신 하느님께서 제게 천사들을 늘 보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 감사를 바칩니다.
다윗은 어리석은 행위로 실패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실패와 바세바에 대한 음욕과 그의 남편을 죽게 한 장본인으로 어둠과 상실과 어리석음으로 점철된 최악의 삶이었지만 하느님은 이 실패자를 최고의 지도자로 세워 하느님의 구원의 날을 매일 전하도록 하였습니다. “야훼께서 승리하신 그 기쁜 소식 날마다 전하여라(1역대16:23).” 하느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좋은 소식을 매일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구원을 노래하는 것이 다윗의 삶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신도로, 사제로 실패할 수 있고 큰 실수를 저지를 수도있지만 그 속에서 하느님의 구원의 소식을 날마다 전한 다윗처럼 우리가 살고자 합니다.
성공회 대전교구는 비록 교세는 약하지만 우리의 힘을 넘어서는 어떤 힘이 우리를 도와서 재난이 와도 우리를 버티게 해줍니다. 참으로 신비한 일이 늘 일어나는 성교회입니다. 예수가 직접 필립보를 제자로 삼고 나서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찾아가서 예수를 전하자 나타나엘이 이런 말을 필립보에게 합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하고 물었다. 그래서 필립보는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라고 권하였다(요한 1:46). 어떤 좋은 일이 작은 시골동네에서 나올 수 있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나타나엘이 필립보에게 하는 말입니다. 시골성당이 많은 대전교구에서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필립보처럼 믿음의 눈으로 보면 예수가 그리스도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단이 한국사회에서는 작지만 신심은 어디에 내놔도 보물신심이라는 것입니다. 큰 교단이라고 하여 작은 교단이라고 무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필립보처럼 보석보다 귀한 신심을 작은 교단인 성공회의 성교회가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단단하지 않고 부족한 사람은 눈에 보이는 큰 교단에 빠져 성공회가 지닌 신심의 귀함을 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예수에 대한 신심을 와서 보라.”고 필립보처럼 외치게 됩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작아서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모였을 것이라고 짐작을 하겠지만 이는 겉만 보았지 믿음의 속을 보지 못하는 믿음이 결여된 사람들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많이 큰 교단이라 하면 그동안 주눅 든 것으로 마치고 이제부터는 큰 교단이라는 말에서 기가 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큰 교단일수록 중한 병에 많이 걸린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히려 작은 교단인 성공회가 믿음이 단단하고 조만도라는 보물을 가지고 있는 알부자인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를 그리스도(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지 큰 교단이니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큰길은 천국가는 길이 아닌 것을 이미 많이 보았다는 것입니다. 좁은 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적다(마태 7:13-14).”
작아서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모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 속에서 하느님을 향한 열정과 믿음의 단단하게 만들어 주셔서 주야로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펼치고 계십니다. 소속감이 단단한 사제의 교회는 코로나19로 지난 3년 동안 오히려 교회가 아름답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가 성장하기를 원합니다.”는 뉴욕교구의 신알랜주교의 표어가 우리 성교회의 표어로 작동된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해 소속감이 적거나 확신이 부족한 사제의 교회는 반쪽이 났습니다. 더 한발 깊게 들어가 보면, 하느님에 대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매일 하느님의 구원소식을 전하는 사제가 있는 교회는 하느님이 살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비록 성공회가 작지만 어려운 가운데 하느님의 구원의 소식을 날마다 전하는 힘을 하느님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큰 교단과 큰 교회가 역병으로 인해 더 망가졌다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겉만 중시여기는 신도들은 재난이 오면 세상으로 도망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속의 믿음을 귀하게 여기는 우리 성교회는 작고 내세울 것이 없는 성공회 사제이지만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말씀과 성령의 힘이 우리의 심장을 강하게 펌프질 해주신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이 코로나19 시기에 우리를 홀로 남겨두시지 않으시고 사람들을 보내시어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하게 해주셨습니다. 마치 IMF시대에 나눔의집이 하느님이 주신 위기대처능력으로 가난한 이들의 큰집이 된 것처럼요. 하느님께 감사를 바칩니다. 데오 그라치아! Deo Gratias!
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잘해주려다가 망친 적이 많습니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과도하게 사랑을 쏟았던 적이 많아 결과적으로 제대로 사랑을 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잘못된 선택으로 사랑을 했기에 늘 사랑에는 고생이 따랐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과도한 언어와 과도한 행동으로 인하여 제대로 사랑하며 사는 방법을 모른 채 어른이 되었습니다. 어리석은 면이 많으면 몸도 고생이고 마음도 고생합니다. 지금도 고생하며 사는 것을 보면 어리석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 어리석게 살고 싶은데도요. 그리고 하느님이 보내 주신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떠나가게 했다는 것입니다. 떠나간 사람에게 주어야 할 사랑이 아직도 제게 남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사람을 속으로 아프게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픈 상태로 주님의 사목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목자로는 참으로 부적합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늘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없이 제단 아래서 기도를 바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하느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제 초점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입니다. 속 마음이 아프니까 제단아래를 자주 찾게 되었고 하느님은 제 기도를 들어주셔서 응답받는 사제생활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기쁘고 즐겁게, 힘차게 하느님을 향해서만 달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데오 그라치아! Deo Gratias!
자유롭고 상상력이 풍부한 제 성정이 주님이 주신 성령과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분이 널뛰고 버럭 화를 잘 내는 성격이라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가장 많이 주게 되어 정말로 미안한 삶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처럼 하느님의 구원의 좋은 소식을 날마다 전하고자 했습니다. 성령은 저를 그렇게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늘 도와주셨습니다. 물질이 부족하면 물질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지혜가 부족하면 지혜를 주셨고 지혜로운 사람을 보내주셨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제 주위 사람들을 모두 하느님은 하느님의 선한 도구로 사용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선한 도구로 사용하시면 꼭 세배, 삼십 배 이상의 보상을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서 하느님은 하느님의 뜻을 성교회에서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감사찬미를 뜨겁게 올려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늘 간절하게 기도를 바쳤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시여, 제가 어디에서 일을 해야 합니까?” 바로 이 기도에 응답을 받는 삶이었습니다. “이 도시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곳을 찾아 들어가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대전에서 가장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어딘지 찾아다녔습니다. 가난한 동네는 좁은 골목들이 많습니다. 성경말씀이 저절로 떠오르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달동네에 먼저 들어가 빈자사목을 하는 두 선배사제의 안내를 받아 달동네에서의 하느님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성남동나눔의집이 된 것입니다.
대전역 동쪽의 개천 부근과 그 위 언덕빼기를 성남동이라 불렀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지은 오두막 집들이 개천 가에 줄지어 있었고 금방 찍어낸 벽돌로 지은 집들이 언덕빼기에 있었습니다. 여름에 조금만 비가 와도 좁은 길목에 물이 차고 집안으로 물이 쳐들어오기 일쑤였습니다. 삼 일에 한 번꼴로 차가 들어와 까놓은 마늘을 상인이 수거해 갔습니다. 남성들은 일 나가고 집안에 있는 나이든 할머니들과 아이들이 주로 하는 일이 마늘까기였습니다. 성공회 성남동나눔의집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세우고 여성들을 위한 솜씨공동체를 열어 어려운 살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자라 돈을 벌어올 동안만이라도 여성들이 일할 거리를 만들면 살림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좁은 골목을 따라가면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가난한 얼굴에서 천진난만한 웃음과 웃는 소리를 들으면 그날은 천국에 들어간 날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동네 골목들을 누비고 다니며 골목길에서 아이들과 놀면서 지냈습니다. 아이스크림도 아이들이 사면 더 싸게 사오는 비법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흥정도 저보다 훨씬 잘들 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밥을 먹기 위해 일할 줄도 이미 안 아이들과의 놀이로 제가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른 아침에 인력시장에서 일을 얻지 못하는 공치는 날이면 하루종일 소주를 마시는 아저씨들도 있었기에 마음이 많이 아픈 날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의 자립을 위하여 정부가 지원할 수 있게 국민기초생활법을 만들게 되었고 그 법을 만드는데 한 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어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훈장과 메달은 가난한 사람들이 저를 도와서 얻은 것이고 하느님이 주신 상은 은총으로 늘 받고 있었기에 제가 받을 수 없는 것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모든 신문 인터뷰를 사양했지만 함께 자립공동체에 참여한 가난한 엄마들과 아저씨들이 기뻐해 주셨습니다. 하느님도 좋아하셨으리라 봅니다.
내부의 정신 활동을 외부에 알리도록 강제당하지 아니할 자유가 사상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자신의 생각과 같지 않으면 배제하거나 홀대하기 일쑤입니다. ‘다르기 때문에 더 존중받아야 한다.’는 유럽식의 인간 존종까지는 바라진 않아도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인 ‘다르기에 평등하다.’는 것까지는 지녀야 할 우리 사회입니다. 차별에서 평등으로, 평등에서 존중으로 나아가는 한국사회가 될 때 세계의 사람들이 사람대접을 하는 한국에 몰려와 사람대 접 받는 삶을 살고자 할 것입니다. 사람대접을 받으면 사람들이 몰려오지 부자라고 사람들이 몰려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차별이 심한 사회가 차별을 교회 안까지 몰고 들어와 교호조차도 차별하는데 동조하는 상황입니다. 차별을 사업화하는 교회사람까지 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한국교회가 어디까지 무너져야 하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별이 덜해졌음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역병으로 각자 역할을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사소한 일을 하는 사람은 귀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사소한 일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큰 재앙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또한 역병으로 인하여 부자나 빈자나 존중을 다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햇다는 것입니다. 또한 직업으로 차별을 하지 않게 되었고요. 큰 교단과 작은 교단이라는 차별의 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큰 집에서만 산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회가 알게 된 것입니다. 학력차별도 없어지고요. 자신의 일을 분명하게 하는 삶이 중요하게 떠오른 듯합니다. 우리 성공회의 성교회에게 좋은 기회가 온 것입니다. 큰 것은 새로운 역사를 쓰지 못합니다. 항상 새로운 역사는 작은 것에서 시작을 합니다. 새로운 인류의 역사를 성공회 성교회가 쓸 차례가 온 것입니다. 하느님께 감사를 바칩니다. 데오 그라치아! Deo Gratias!
최인정 할아버지가 암에 걸려 충남대학교 병원에 입원하고 계신 것을 채계순과 함께 방문하여 정황을 파악하고 1991년 5월부터 간병하기 시작했습니다. 1991년 11월 21일에 통일애국장으로 대평리 공원묘원에 묻혔습니다. 최인정 선생은 김책공과대학을 졸업하고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남한에 파견된 사람으로 바로 체포되어 20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악성종양인 암으로 출소하여 병원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신 분입니다. 제가 최선생을 돌보기 전에는 대성학교를 세우신 김신옥목사가 보증을 서서 돌보셨었습니다. 최선생을 제가 간병하다가 충남대학교 간호대학생들이 도와주고 우문숙가정에서 돌보고 박정현부부가 돕고 임일선배가 도와 7개월간 여러 사람들이 간병을 해 주셨습니다. 이를 계기로 북에서 남으로 파견되어 체포되고 감옥에 수십년간 사시다 출소하신 어렵게 사는 장기수선생님들을 돕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늘 들리는 성남동에 “성공회 형제의 집”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이 집에 채수일(최태묵)과 최선묵 두 분이 사셨습니다. 형제의 집과 대전에 사랑의 집이 있고 이어서 낙성대에 만남의 집이 서게 되어 오랜 감옥생활을 하신 분들이 머무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가 이들 63명을 북으로 보낼 때 이분들도 북으로 가셨습니다. 통일을 바라는 남북의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분열된 한반도입니다. 형제의집이 지금은 성공회 성남동교회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통일을 위한 기도를 바치는 사제와 신도들이 있습니다. 통일을 바라면서 전쟁을 반대하는 의미로 성심당에서 준 빵으로 한반도를 그려 통일과 사랑의 빵으로 하루 잔치를 8년간 벌였던 은행동 거리가 생각납니다. 우창봉감독이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구호로 자동차경주대회를 세 번이나 개최하여 남북교류를 활발히 전개하였고 그 활동에 참여하여 금강산과 백두산을 다녀왔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한민족을 살려주실 줄 믿고 조만도에 통일을 위한 대도를 바칩니다. 1945년부터 2023년까지 78년간을 분단된 채로 있으니 후손들을 뵐 면목이 서질 않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한반도의 분단을 통일로 만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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