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불긴 하지만
사람들이 분주하게 걸어 오고 가며
부산스러운 11월의 밤 거리가
시들어버린 나뭇잎처럼 활기를 잃고
모두가 저마다의 가야 할 곳으로
가버린 텅 빈 시간
만난지 달포가 지났어도 나는 아직
만져보지 못한 그녀의 작은 손을
잡아볼 기회를 엿보며 그녀의 눈치를
살피고 있고, 그녀는 내심을 보여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인내가 미덕이라는 말이
대체로 옳다고 생각하지만 확신을
하지는 않는다)
반쯤 고장난 가로등이 희미한 불빛을
수시로 깜빡이고 있다. 10 센티미터
옆에서 함께 걸어가는 그녀가 가로등
밑 벤치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내가 가까스로 들을 수
있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 집에 가서 커피 한 잔 할래요?
내 마음 속에서 거대한 파도가 밀려와
검은 바위를 내리친다. 하얀 물보라가
안개처럼 높이 솟아 포말로 부셔져
내린다. 가로등 밑의 낙엽 쌓인 벤치는
앉기를 거부하고, 달빛은 구름 속에서
나와 발걸음을 재촉한다. 우리는 지금
에덴의 동쪽에 있고 그녀의 집은 저쪽
서쪽에 있다.
몇 시간 전 - 높은 건물들 사이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하늘이, 수줍어하는
처녀의 얼굴처럼 불그스름한 저녁
무렵 -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입꼬리에 잔주름이 힐끗힐끗 엿보이는
빨간 입술의 그녀가 염색으로 흰
머리칼을 감추고 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아 우리 집엔
커피가 없어요.
카페 게시글
삶의 이야기
초대와 유혹 사이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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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61
24.11.07 14:24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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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주짧은 스쳐가는 인연. ㅎㅎ
급하게 만들어진 인연도 길게 가는 경우가 있더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저는 집에서 딱 한잔 마십니다. 진한게 따서~
저는 아메리카노를 하루에 보통 두 잔 마십니다. 감사합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했고 집에 커피가 없다면서 왜 집에가자고 커피 마시자고 무슨 속셈~^^ 일까요
그게 속셈이라면 아무래도 초대 보다는 유혹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커피도 안 마시고 또한 커피도 없는 집이라는 걸 미리 상대에게 인지시키곤
커피를 마시자는 그 뿌리치기 힘든 유혹...
남자들이 상투적으로 하는 멘트 "좀 쉬었다 갈래요?"
그것보다 오히려 더 수위가 높아 보입니다.
왠지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약간의 논픽션에 각색을 많이 했습니다. 읽으신 느낌을 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는 얘깁니다.
몇시간만에 상황을 반전시키다니...
대단 하십니다.
남자들의 심리를 좀 묘사하려고 했는데 필력이 부족해서 잘 안되는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단함은 다방면의 인문학적 지식을 갖고계신 비온뒤님에게 적절한 말입니다.
커피가 없으면 다른 걸로
주셔요!
타이밍 이 맞아야 하고
삘이 꼽혀야 하게 되지요
커피는 없어도 되고요, 물 한 잔이라도 초대만 해주신다면 좋습니다. 타이밍과 필도 중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감사합니다.
저는 집에서 하루 한잔이 보통입니다.
가끔 한잔 더 마실 때도 있습니다만 부득이 커피샵에 갔을 때입니다.
네. 그러시군요. 커피는 하루 한 두 잔 정도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