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不義)”라는 말(아디키아)은 “불(不)”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에, “불의(不義)”라는 말은 “의(義)”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의(義)”가 “올바름”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올바름”이 아닌 것이 “불의(不義)”입니다. “불의”에는 “죄악”이 포함되므로, “죄악”은 “불의” 가운데 하나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악들을 발견하는 분이십니다.
창세기 44장 16절에 “우리가 무엇을 말씀드리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올바르게(clear) 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 종들의 죄악(iniquity)을 발견하셨으며(found out), 우리 또한 그 잔이 그의 손안에 발견된 자가 나의 주께 종들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죄악의 도시 안에 있으면 그 도시의 죄악 안에 휩쓸어 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악(iniquity)을 발견하십니다(창 19:15, 44:16).
사람들이 죄악을 범한 다음 ‘이것 아무도 모르겠지’ 하고 몰래 죄악을 범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죄악을 다 발견하신다는 것입니다. 가장 큰 죄악은 십계명 중에 1계명과 2계명이 가장 큰 죄악입니다.
우상들에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serve) 말 것이니, 그 이유는 야훼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질투심이 많으신 신(God)이심이니 조상들의 죄악을 셋째 넷째 그를 미워하는 자에 방문하십니다(출 20:5).
어떤 사람이 죄악을 범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3대, 4대 자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가 죄악을 범하면 그 아들까지 죄악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손자까지도 죄악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술주정뱅이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자기도 ‘나는 절대로 아버지처럼 안 돼야지’라고 하지만, 자기가 보고 자란 것이 있는데요. 자기도 아버지를 닮아서 죄악을 범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4장 6~7절에 “자비롭고(merciful) 은혜로우며, 노염에 길고(slow), 자비(mercy)와 진리가 많은 신(God)이라. 자비를 천(千)에게 지키며 죄악과 위반과 속죄제를 용서하시고 그는 결단코 무죄로 하지 아니하겠으며 아들들 위와 아들들의 아들들 위에 세 번째 자들 위와 네 번째 자들 위에 조상들의 죄악(iniquity)을 방문하는(visiting) 자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을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고 죄 없다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기 위해 속죄제 제물이 꼭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속죄제 제물이 꼭 있어야만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속죄제는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죽을 것임을 미리 표현하신 말씀입니다.
이사야 1장 4절 가운데에 “죄악의 무거운 백성”이라고 하였는데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은 너무나 많아서 무게가 무거워졌습니다(사 1:4).
“죄악”(아온)은 “비틀다”라는 동사(아와)에서부터 나왔습니다. 이 비틀리고 뒤틀림은 그릇된 생활과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암시합니다.1)
하나님께서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를 거부하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중요성을 부인하고 그의 신적 속성을 부정한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용어가 간혹 다른 신(神)을 섬기는 것과 관련됩니다.2)
무거운 죄악의 무게 아래 전 국가는 짓눌려지고 엎드러지게 되었는데, 이 구절에서 “무거운”이라는 용어는 “죄악”의 무게에 사용되었습니다. 이사야는 “죄악”을 그 백성이 짊어져야 할 짐으로 간주한 것입니다.3)
이스라엘의 죄악의 무게감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더하여 갔습니다. 그들은 경건으로 가득 차야만 하였음에도 죄악으로 가득 찼습니다.4) 궁극적인 죄는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태도입니다.5)
이사야 5장 18절에 “그 허무의 끈들에 죄악을 끌어당기고 수레의 줄처럼(as if with) 죄를 그러는 자들에 화가 있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허무(vain)”라는 단어(샤우)는 “덧없음”, “거짓말”, “속임”을 뜻합니다.
“수레”는 “차(車)”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오늘 차를 타고 왔잖습니까? “차(車)”를 “자동차(自動車)”라고 합니다. 차에다가 기름 넣고 엔진 틀면 “스스로 자동(自動)으로 움직이는 차”라서 “자동차”라고 합니다.
그러나 옛날의 차는 어떻습니까? 옛날의 차는 자기 혼자 갈 수 없어서 차에다가 줄을 가지고서 차에다가 묶어서 말이나 소에게 묶는 것입니다. 그 말이 달릴 때 말에 묶인 차가 움직이는데 이 차를 “마차”라고 합니다.
그들은 마치 짐차에다 짐을 싣고 가듯이 죄악을 끌어당긴 자들입니다. 그들은 죄악에 끌린 것이 아니라 죄악을 능동적으로 끌어당긴 것입니다. 그들에 화가 있을 것입니다.
“화”(호이)는 “재앙”을 의미하며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이 “재앙”입니다. “화(禍)”는 “재앙”과 “재화”를 뜻하여, 새 번역은 “재앙”으로 번역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재앙이 있습니다. “문재앙”이라고 합니다. 재앙입니다. 그 5년 동안에 우리나라가 망했는데 우리는 망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망했다고 금방 그 결과가 보이지는 않습니다.
부자는 망해도 3년 먹을 것이 있는데 망했는데 먹을 것이 남았습니다. 먹을 것이 남아 있기에 괜찮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아니하다는 것입니다. 정치가들이 망하는 정책들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허무의 끈들에 죄악을 끌어당기는 자들에 화가 있습니다(사 5:18). 즉 무거운 짐을 끈에 연결하여 끌어당기듯 죄악을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그들은 죄악에 끌어당기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짐승이 수레 줄로 수레를 끌어당기듯이 그들은 죄를 끌어당긴 것인데, 그들은 죄악과 죄에 끌려다니지 않았고 죄악과 죄를 끌어당긴 것입니다. 그들은 고의로 죄악을 행하고 죄를 범하고 진리를 비웃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거짓에 기초해 정책 안건을 세워 추진하는 정치가들입니다. 그들은 운반하는 사람들로서 지도자적인 인물들이었을 것이 분명한데 그들은 거짓에 기초하여 죄악의 행동으로 판명될 행동을 집행합니다.6) 지금도 정치가들은 거짓에 기초해 정책 안건을 세워 추진하고 있습니다.
2. 메시아께서는 우리의 죄악들을 위해 부서지셨습니다.
이사야 53장 5~6절에 “그는 우리의 위반에서 찌름을 받으며 우리의 죄악들에서 부숨을 받으며, 우리의 평화의 징계가 그 위에 있고 그 상처에 고침을 받노라. 우리의 모두는 양처럼 헤매었으며 사람(each)이 그의 길에 돌렸고 야훼께서 그 안에 우리 모두의 죄악을 도달시키셨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우리의 위반에서 찌름을 받으며 우리의 죄악들에서 부숨을 받고, 우리의 평화의 징계가 그 위에, 그 상처에 고침을 받게 됩니다(사 53:5).
이사야는 메시아의 탄생 700년 전에 그가 찌름을 받음을 말하였는데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예수님께서는 700년 뒤에 찌름을 받으셨습니다.
“상하다(crush)”는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부서짐을 뜻하는 말로,7) 그는 우리의 죄악(iniquity)들 대신으로(for) 부숨을 받으셨습니다.
그의 이미지는 이제 질병에서 상해로 바뀌었고 더 심각해졌습니다.8)
우리는 모두 양처럼 헤매었으며 사람(each)이 그의 길에 돌렸고 하나님께서 그 안에 우리 모두의 죄악을 도달시키신 것입니다(사 53:6).
“헤매다(wander)”(타아)는 “잘못하다”, “방황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에서는 도덕 윤리적으로 잘못하는 탈선의 뜻으로 쓰였는데 우리는 모두 양처럼 헤매었으며 우리는 모두 잘못하여 탈선한 것입니다.
기독교에 절대 없으면 안 될 단어가 바로 이 “속(贖)”이라는 말입니다. ‘당신은 10년 감옥 안에 있어야 하며, 100대 맞아야 합니다’라고 하는데, 그는 ’감옥 싫어요, 맞기 싫어요, 대신 1억을 바칠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1억 주고 감옥에 가지 아니하고 맞지 아니하는 것을 속바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대”신 “속”바치면 “대속”이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 메시아는 “대속”의 고난, “대속”의 죽음을 죽게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 위에(on) 도달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로 인해 받아야 할 벌을 그가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9)
우리의 죄악은 그 위에 도달하였고 그는 그 죄악을 위해 멸망하셨기에 죄악의 빚이 청산되었고 우리를 향한 지급 요구가 이루어졌습니다.10)
그런데 이러한 속죄는 하나님의 선택된 자들에게만 주어졌습니다.11) 오직 예수님의 양들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속죄의 효과를 누립니다. 속죄의 효력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만 제한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죄악의 형벌을 스스로 담당하여야만 합니다.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머무르는 자들만이 영원한 형벌을 피하게 됩니다.
오늘날, 영원한 형벌의 교리에 대해 매우 노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사항은 이러한 교리와 어떻게 다툴까를 고심함에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사항은 영원한 형벌을 어떻게 피할까를 고찰함에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머무르는 자들만이 영원한 형벌을 피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영원한 형벌을 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직 믿지 않는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메시아를 전함으로 그들이 속죄함을 받고서 구원영생을 얻도록 하는 복된 성도들이 됩시다!
1) John D. W. Watts, 『이사야 1-33』, WBC 성경주석 24, 강철성 옮김 (서울: 솔로몬, 2006), 96.
2) Gary V, Smith, 『NAC 이사야 1』, NAC 성경주석, 권대영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9), 126.
3) Edward J. Young, 『이사야서 주석 Ⅰ』, 장도선․정일오 공역 (서울: CLC, 2007), 69.
4)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이사야 Ⅰ』 (서울: 이엠, 2017), 127.
5) D. M. Lloyd-Jones, 『이사야 1장 강해』, 이운연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1), 33.
6) 김회권, 『이사야 Ⅰ』,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6), 162.
7) Gary V, Smith, 『NAC 이사야 2』, NAC 성경주석, 권대영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 565.
8) John Oswalt, 『이사야 Ⅱ』, NICOT 성경주석, 이용중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6), 466.
9) Edward J. Young, 『이사야서 주석 Ⅲ』, 장도선․정일오 공역 (서울: CLC, 2008), 387.
10) C. H. Spurgeon, 『이사야Ⅲ』, 스펄전 설교전집 14, 이광식 역 (고양: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21), 37.
11) Spurgeon, 『이사야Ⅲ』, 스펄전 설교전집, 38.
12) Spurgeon, 『이사야Ⅲ』, 스펄전 설교전집, 40.
첫댓글 안녕하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읽어도 복이고 들어도 복이며 행해도 복이 되는 말씀으로 댓글을 올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샬롬.
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 바르게 행하는 자는 악인에게 미움을 받느니라(잠 29:27).
감사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밤 되세요,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