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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만난 名문장, ‘악마’를 보았다.
“여기서 나는 당분간 아직 인간이었다.”
―바를람 샬라모프(Varlam Shalamov's)
‘<콜리마 이야기(Kolymskie Rasskazy)>’ 중
예전에 ‘정의란 무엇인가’를 놓고 토론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난파당한 배에서 살아남은 네 명의 선원이 망망대해를 표류하다가, 그중 가장 약한 사람을 잡아먹은 사건이었다. 남은 세 사람은 그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며 9일을 더 버틴 끝에 구조됐다. 물론 그들은 본국으로 송환돼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두고 열띤 토론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린 그런 질문을 그리도 가볍게 던질 수 있을까.
바를람 샬라모프(Varlam Shalamov's, 1907–1982)는 모스크바대 법대생이던 시절 시베리아의 악명 높은 수용소 ‘콜리마’에 수감됐다. 거기서 17년을 지내며 추위와 굶주림, 하루 16시간이 넘는 중노동에 시달렸고 “인간이 봐서는 안 될 것, 만약 보았다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만한 끔찍함을 겪었다. 허기를 못 견뎌 다른 수감자의 시체를 뜯어먹은 청년, 자신이 아끼던 강아지를 잡아먹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래도 맛있었어”라고 중얼대는 사제, 다른 수감자가 죽으면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의 몫으로 배급될 빵을 차지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샬라모프는 자신이 겪은 일을 ‘콜리마 이야기’라는 기록으로 남겼다.
“여기서 나는 당분간 아직 인간이었다.” 이 문장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과 겸허함이 담겨 있다. 샬라모프는 자신이 인간이긴 하되 ‘당분간, 아직’이라고 했다. 극한의 바닥에서 가장 무서운 심연을 마주할 때 끝까지 ‘인간’으로 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았던 것이다.
“나라면 어땠을까?” 온갖 상황에서, 나 혹은 우리는 너무 쉽게 질문을 던지고, 정의로 충만한 답을 내놓는다. 그런 세상을 향해 샬라모프는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묻는다. “우리는 당분간 아직 인간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 콜리마 이야기(Kolymskie Rasskazy, 을유세계문학전집 76)(양장본 HardCover)[을유문화사]
✵ 책소개
20세기의 도스토옙스키(Dostoevsky, Fyodor Mikhailovich)로 불리는 바를람 샬라모프의 대표작 『콜리마 이야기』. 국내 초역으로 선보이는 이 작품은 17년 동안 콜리마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중노동을 했던 저자가 석방된 뒤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1954년부터 쓰기 시작한 소설이다. 비교적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수용소를 배경으로 다룬 수용소 문학이면서도 내용과 형식면에서는 다른 수용소 문학과 비교되는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저자는 서두르지 않고 안정감 있게 교도소와 통과수용소의 세계를 생생하게 묘사하며 수용소가 마든 지옥을 기록한 단순한 회상이나 회고록을 넘어서 새로운 산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디에서도 격정적인 폭발에 이르지 않고 운명이나 정권에 대해 저주를 퍼붓거나 다분히 철학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해설을 덧붙이지도 않는다. 이를 통해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저자의 허구적 산물이 아닌 예술의 형상으로 포장된 준엄한 진실임을 일깨워준다.
✵ 저자 : 바를람 샬라모프 Varlam Tikhonovich Shalamov는 1907년 6월 18일 볼로그다 시에서 사제인 아버지 티혼 니콜라예비치 샬라모프와 교사인 어머니 나데즈다 알렉산드로브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볼로그다 시 성(聖)알렉산드르 중학교에 입학하고 1923년에는 옛 중학교 건물에 있던 2급 6번 통일노동학교를 졸업했다.
이듬해 볼로그다를 떠나 모스크바 주 쿤체보 시 피혁공장에 무두장이로 들어갔다. 1926년 공장 파견으로 모스크바 섬유대학 입학과 동시에 공개시험을 통해 모스크바대학 법률학부에 입학했다.
1927년 ‘스탈린 타도!’, ‘레닌의 유언을 수행하자!’라는 슬로건 아래 10월혁명 10주년 기념일에 데모에 가담했다. 1928년 『신(新)레프』 잡지에서 만든 문학 서클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1929년 2월 19일 이른바 「레닌의 유언」을 인쇄하려고 나간 지하 인쇄소에서 잠복 중인 경찰에 체포되어 사회 위험분자로 3년 형을 받고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이후 모스크바 부티르카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호송수인단과 함께 북 우랄에 있는 비셰라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곳 수용소에서 첫 아내 갈리나 이그나티예브나 굿지와 만났다. 1931년 10월 교정노동수용소에서 석방, 복권되었다.
이후 1934년 굿지와 결혼했다. 1936년 첫 단편 「아우스티노 의사의 세 죽음」을 『10월』 잡지 첫 호에 발표하며 집필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1937년 1월 13일 ‘반혁명 트로츠키스트 활동’으로 체포되어 부티르카 감옥에 재수감되고 특별심의에서 교정노동수용소 5년의 중노동형을 받았다. 이후 기나긴 수용소 생활을 지내야 했다. 훗날 ‘콜리마 노트’ 시리즈에 수록된 시를 쓰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이다. 이후 1951년에야 형기를 다 끝마치고 그 후 2년간 달스트로이의 파견으로 바라곤, 큐뷰마, 리류코반 마을 보조 의사로 일했다.
그동안 시를 계속 써서 아는 의사 E. A. 마무차시빌리를 통해 모스크바에 있는 파스테르나크에게 보냈으며 이후 두 시인 사이에 편지 왕래가 시작되었다. 1953년 11월 12일 모스크바로 귀환하여 드디어 가족들을 만났으며 같은 해 파스테르나크를 만나고 그의 도움으로 문인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1954년 첫 작품집 『콜리마 이야기』 집필에 착수했으며 이해 굿지와 이혼하게 된다. 1956년 모스크바로 이주했으며 네크류도바와 재혼했다. 1961년에 첫 시집 『부싯돌』을, 1964년에 시집 『나뭇잎 소리』를 출간했다. 1966년 둘째 부인 네크류도바와 이혼했다. 1967년 시집 『길과 운명』을 출간했고 이후 소련 작가동맹에 가입했다. 1977년 시집 『비등점』이 출간되었으며 출생 70주년에 명예훈장에 추서됐으나 수령을 거부했다.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으며 시력과 청력을 잃기 시작하고, 운동 조정 상실을 동반한 마니에르 질병 발작이 잦아졌다. 1981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1982년에는 정신병 환자 요양소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크루프성 폐렴으로 사망했다.
✵ 역자 : 이종진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학술원)에서 명예 문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슬라브학회, 한국노어노문학학회장을 지냈고, 지금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러시아 문학사』(공저)가 있고, 역서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바보 이반의 이야기』, 『레스코프 단편선』, 『러시아 시집』, 『푸시킨 시집』, 『제1권』, 『창조의 7일』, 『검역』,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네토치카 네즈바노바』, 『작가의 일기』, 『대심문관』, 『도스토옙스키의 세계관』, 『물고기 대왕』, 『러시아 민담 연구』 등이 있다.
✵ 목차
설원을 걸으며 | 외상으로 | 밤에 | 두 목수 | 단독 작업 | 소포 | 비 | 쉬운 일 | 휴대 식량 | 인젝토르 | 사도 바울 | 베리 | 암캐 타마라 | 셰리 브랜디 | 어린이 그림 | 연유 | 빵 | 뱀 부리는 사람 | 타타르 이슬람교 성직자와 깨끗한 공기 | 첫 죽음 | 폴랴 아주머니 | 넥타이 | 황금 타이가 | 돼지 약탈자 바시카 데니소프 | 세라핌 | 휴일 | 도미노 | 헤르쿨레스 | 충격 요법 | 누운잣나무 | 적십자 | 법률가들의 음모 | 티푸스 검역
주
해설 - 20세기의 도스토옙스키 샬라모프
판본 소개
바를람 샬라모프 연보
✵ 출판사서평
20세기의 도스토옙스키로 불리는 샬라모프의 대표작
삶을 재현하는 거대한 모자이크, 한 줌의 다이아몬드 같은 이야기들
국내 초역으로 선보이는 『콜리마 이야기』는 을유세계문학전집 76번째 작품으로 일찍이 많은 평론가들로부터 “20세기의 도스토옙스키다”라는 찬사를 받은 바를람 샬라모프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17년 동안 콜리마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중노동을 하고 석방된 뒤에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1954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비교적 짧은 단편들로 이뤄져 있으며 흥미로우면서 동시에 주제가 신랄하고, 밝고 생생한 언어로 쓰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콜리마 이야기』는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이나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수용소 군도』처럼 수용소를 배경으로 다룬 수용소 문학이면서도 내용과 형식면에서 이들 작품과는 다른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콜리마라는 수용소가 만든 지옥을 기록한 단순한 회상이나 회고록을 넘어서서 새로운 산문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 바를람 샬라모프는 서두르지 않고 안정감과 폭발적인 내용의 콘트라스트를 통해 교도소와 통과수용소의 세계를 생생히 묘사한다. 이를 통해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나 역사서 같은 느낌마저 준다. 샬라모프는 독자에게 스토리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지 말하지 않는다. 단지 객관적으로 이야기할 뿐이다. 스토리를 이야기하고 거기서 어떤 문제를 도출해 내려는 톨스토이나 솔제니친과 달리 샬라모프는 단순히 이야기만 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이야기는 안톤 체호프와 이삭 바벨과 비견될 수 있다.
샬라모프가 바라보는 수용소는 전체주의적인 스탈린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작가는 일찍이 “수용소는 지옥과 천국의 대립이 아니라 우리 삶의 재현이다. 수용소는 세계와 유사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콜리마 이야기』를 읽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항구적인 수용소의 이미지는 악 자체이다. 이러한 이미지가 생겨나는 이유는 수인의 비인간적인 고통 때문이라기보다 수용소 자체가 죽은 자의 왕국처럼 묘사되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 작품에서 거의 언제나 죽음을 만나게 된다. 하나 놀라운 점은 작가가 그러한 서술을 다분히 담담하게 진행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어디에서도 격정적인 폭발에 이르지 않는다. 운명이나 정권에 대해 저주를 퍼붓거나 다분히 철학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해설을 덧붙이지도 않는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을 이야기를 읽으면서 전율을 느끼게 되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둔다. 이를 통해 『콜리마 이야기』에 담긴 이야기들이 작가의 허구적 산물이 아니라 예술의 형상으로 포장된 준엄한 진실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먼저 뺨을 한 대 때린 다음 자비를 베풀어라
작품 속 돌멩이 하나하나에도 완벽함이 깃든 수용소 문학의 걸작
기나긴 수용소 생활을 거친 샬라모프는 자신을 “19세기, 20세기의 모든 러시아 휴머니스트와는 다르다”고 잘라 말한다. 그가 수용소에서 배운 시대의 원칙, 개인의 생존 원칙은 먼저 뺨을 한 대 때려 주고 나서 다음에 자비를 베풀어야 하다는 것, 즉 선에 앞서 악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의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타락을 경계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러준다. 실제로 샬라모프는 스탈린의 독재를 극명하게 반영하는 강제 노동 수용소의 삶을 생생히 묘사함으로써 폭력적인 시대를 규탄했다. 1962년에 그가 솔제니친에게 보낸 편지는 그의 이러한 생각을 여실히 보여 준다. “요컨대 기억하십시오. 수용소란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누구에게나 부정적인 학교입니다. 사람은 그가 관리든 수인이든 수용소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보았다 하면 아무리 무섭더라도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 나는 남은 모든 삶을 바로 이 진실에 바치겠다고 오래전에 결심했습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비극적 현실을 아주 냉정하면서도 태연하게 이야기해 나간다. 카드놀이를 하던 중에 다른 수인의 옷을 노름 담보로 삼기 위해 태연히 저지르는 살인, 죽은 동료의 속옷을 훔치려고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는 장면, 꾀병 환자를 적발하기 위한 병원 당국의 야만적인 방법 동원 등등이 펼쳐진다.
이 정도는 아닐지언정 오늘날에도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는 수용소들은 많이 있다. 또한 공공연하게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수용소 생활이라 할 수 있는 억압적 상황에 놓여 있는 국가와 사회도 의외로 많다. 현재에도 계속 새로운 콜리마가 설계되고 만들어지고 있다. 저자가 전하는 『콜리마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억압적 사회를 경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내가 만난 名문장, ‘악마’를 보았다(김희선 소설가·약사), 동아일보 2022년 3월 14(월)〉, Daum 책 인터넷 교보문고/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신지식인 사진자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봄비가 밤새 흠뻑 내렸네요. 계절의 복으로 직행하네요. 감사합니다 ^^
한올 이춘화 스승님
너무 잔인하고 끔찍한 이야기? 정말 인간으로써 이렇게도 잔인할 수 있을까? 함께 살고 함께 살자는 말들은 거짓 구호인가? 마음이 아프네요.
한올 장정원 스승님
누구나 마음 속 깊은곳에 존재하겠죠. 이성의 잣대로 이를 억누르며 밖으로 표출하는 상황적 환경을 만들지 않아야한다고 봅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되세요~^^
고봉산 정현욱 님
발르람 사라모프가 지옥과 다름없는 수용소에서 17년의 긴 세월을 버티고 살아남아 세상에 그 체험담을 남긴 사실만으로도 존경을 받아야 할 인물이네요 책속의 ''여기서 나는 당분간 인간이었다'' 는 짧은 구절 하나만 읽어도 수용소 생할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