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한국사회를 설명해온 사자성어, 13년 회고 교수들도 뜻 모르는 <교수신문>의 '올해의 사자성어'
‘도행역시(倒行逆施)’. <교수신문>은 ‘일상 도리에서 벗어난 일을 하거나 억지로 행한다’는 의미의 이 사자성어를 ‘2013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았다. 사자성어 선정 설문조사에 참여한 622명의 교수 중 204명(32.7%)이 선택한 결과였다. <교수신문>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국민의 기대와 달리 인사와 정책 등 분야에서 퇴행적으로 후퇴하고 있는 점을 비판한 것”이라며 “민주주의보다는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더 많이 보인 한 해”라고 선정 이유를 덧붙였다.
<교수신문>은 2001년부터 매해 세밑마다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해 발표했다. 각종 매체들은 매년 발표되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경쟁적으로 소개·분석해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바로미터’로 활용해왔다. ‘사자성어’ 한 마디로 다사다난(多事多難)한 한국 사회의 한 해를 모두 담아낼 수 없지만 13개의 사자성어로 지난 13년 동안의 우리 사회를 개괄(槪括)해 볼 수는 있다.
2001년 <교수신문>이 처음 발표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이는 교수 계약제·연봉제 추진으로 신분에 대한 불안정성이 커졌던 당시 교수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였다.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크게 요동쳤던 2002년의 사자성어는 ‘이합집산(離合集散)’이었다. 3김 시대가 저물고 권력과 실리를 좇아 당적을 바꾸는 ‘철새’ 정치인들의 난립이 그 어느때보다 두드러졌다는 점이 가장 큰 선정 이유였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참여정부 5년 간 선정된 사자성어의 가장 큰 특징은 ‘분열(分裂)’이었다. 참여정부 출범 첫 해 인 2003년은 정치·경제·외교·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나라 전체가 중심을 잡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정치권은 정치대결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평가를 받아 ‘우와좌왕(右往左往)’의 해로 꼽혔다.
2004년과 2005년에는 각각 당동벌이(黨同伐異-옳고 그름의 관계없이 한 무리의 속한 사람들이 다른 무리의 사람을 무조건 배격하는 것)와 상화하택(上火下澤-불이 위에 놓이고 못이 아래 놓여 서로 이반하고 분열하는 모습)이 선정돼 정점에 달한 분열의 정치를 그대로 나타냈다. 대통령 탄핵과 수도 이전, 사립학교법 논쟁 등 거의 모든 사안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이 극도로 높아진 시기였다. 2006년에는 상생정치의 실종과 더불어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으면서 답답함과 불안감이 팽배한 상황을 표현한 ‘밀운불우(密雲不雨-구름만 빽빽할 뿐 비가 되어 내리지 못하는 상태)’가 ‘올해의 사자성어’에 선정됐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부터는 ‘불신(不信)’과 ‘불통(不通)’의 의미를 담은 사자성어들이 주로 선정됐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대운하 논란 등으로 정부가 국민적 비판을 받았던 2008년은 ‘호질기의(護疾忌醫)’의 해로 꼽혔다. 병을 숨기면서 의사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문제가 있는 것을 뻔히 알고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는 불통(不通)의 태도를 비판한 것이었다.
이어 2009년에는 세종시법 수정과 미디어법 처리 등을 두고 그릇된 수단으로 억지로 일을 처리했다는 뜻으로 ‘방기곡경(旁岐曲逕)’이 선정됐고, 민간인 불법사찰 등 국민에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사건들이 많았던 2010년은 ‘장두노미(藏頭露尾-머리는 숨겼으나 꼬리는 드러나 있다)’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혔다. 대통령 측근 비리와 선관위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사건 등이 불거졌지만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설명도 소통의지도 없었다는 점에서 2011년은 ‘엄이도종(掩耳盜鐘-잘못을 하고는 남의 비난을 듣기 싫어 귀를 막는다)’의 해로 선정됐다.
그렇다면 ‘상아탑’의 지성인들이 선택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어떤 방식으로 결정되는 것일까? <교수신문>의 ‘올해의 사자성어’ 선정 방법은 매해 조금씩 달라졌다. 2006년까지는 <교수신문> 필진과 주요 일간지에 칼럼을 기고하는 교수 등 200명 안팎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해 사자성어를 선정했다. 이후 2007년부터는 3단계의 선정 절차를 거치는 등 좀 더 정교한 형식으로 다듬어왔다.
올해도 3단계에 걸쳐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했는데 먼저 <교수신문> 필진과 전국 교수들로 구성된 ‘사자성어 후보 추천위원단’이 43개의 사자성어 후보군을 확정했다. 이어 33명의 파일럿테스트단(團) 교수들이 43개의 후보 중 1~3위를 선정했고 이렇게 추린 최종 후보 5개를 각 대학 교수회장단·학회장·보직교수 등 622명들이 투표해 최종 낙점했다.
한편 선정된 ‘올해의 사자성어’를 두고 그 난해한 의미와 설문조사 방식에 의아해하는 교수들의 목소리도 있다. 서울대 농생대 A교수는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를 보면 교수인 내가 봐도 한 눈에 뜻을 이해할 수 있는 말이 거의 없다”며 “다양한 사자성어를 찾아 내기 위해 고서(古書) 등을 참고하는 것은 좋지만 일반인은 물론 교수들에게도 다소 괴리감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서울대 공대 B교수는 “내 주변에서 ‘사자성어 선정’ 설문조사에 참여했다는 교수들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며 “정확히 어떤 기준으로 설문에 참여하는 교수들을 선정하는 건지 궁금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