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그 일은 참 당황스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린 학생이 죽었습니다.
이제 갓 고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의 어린 학생이 죽었습니다.
그 무엇으로 이 안타까움을 대신하겠습니까.
시비와 갈등, 왜곡과 오해를 떠나서
죽어서도 편하지 못한 어린 학생에게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합니다.
- 古 최두석군의 명복을 빕니다.
누구나 한 번은 기합을 받아보셨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학교에서 처음 받아보셨을 것입니다. 고등학교에서의 기합을 기억하십니까? 뺑뺑이라고 하는, 선착순 달리기를 비롯해서 어깨동무를 한 상태로 앉았다 일어서기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그런 기합을 받으면서도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반항하지 않았고, 가끔은 역겹도록 숨이 차올라도 달렸습니다. 선생님의 그런 강압적인 말씀들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단지, 선생님의 호통이 무서워서 잘못도 모른 채 달렸습니다.
여러분은 그 때를 떠올리면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그래도 좋았던? 기합이 끝나고 나면 수돗물이 왜 그리도 꿀맛이었는지 모르던 시절? 아무래도 좋습니다. 어떤 추억이든 소중합니다. 여러분의 그런 추억은 참으로 소중한 추억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합 때문에 어린 학생이 죽었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선생님의 호통이 무서워서 달리던 학생 하나가 갑자기 쓰러져서 그대로 숨이 멎었습니다. 쓰러진 채 선생님에게도 ‘나약한 학생’으로 오인 받아 방치된 채, 수 십분. 친구들에게 업혀 양호실에 눕혀졌을 때 어린 학생의 맥은 벌써 뛰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추억만큼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학생이 그렇습니다. 이 학생은 여러분처럼 그런 예쁜 추억을 만들어가던 중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얌전하게 학교로 떠난 자식이 죽어서 돌아온 이 사실만으로도 부모 입장에서 기가 막혀도 단단히 막힐 지경인데, 슬픔과는 다른 분노까지 품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학교의 무책임한 태도가 그것입니다.
이 학생은 몸이 약했습니다. 평소부터 심장이 약한 탓에 체육을 싫어하다 못해 두려워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신 없는 과목이기 때문이지요. 여러분 중에도 계실 겁니다, 혹은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체육시간이면 늘 주변에 머무는 친구, 그런 친구가 바로 최두석군이었습니다. 가끔은 친구들과 어울려 신나게 공을 차고 싶어도 망설여야 하는 친구가 최군이었습니다.
그 친구를 위해 긴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심장이 약해서, 최군의 어머니는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담임선생님과 체육선생님들을 찾아뵈어 인사드리고 최군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드렸습니다. 그런 정성으로 최군은 지금까지 순탄한 학창시절을 보내왔습니다. 2002년 2월 21일까지는 순탄했습니다.
그 날은 새로 배정받은 고등학교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마무리 짓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여느 날처럼 걱정 없이 최군을 학교에 보냈습니다. 오리엔테이션 전에 제출한 생활기록부에 분명, 심장이 약하다는 사실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학교에서 잘 알아서 해주리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여느 날과 같은 하루를 보낼 따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오후에 믿을 수 없는 연락이 왔습니다.
..
교육청의 인허도 나지 않은 오리엔테이션을 명목으로 학교에서는 학생마다 14.000원의 납부통지서를 발행했습니다. 그 어느 부모가 자식을 참석시키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 수업은 객관적으로도 대단히 성의 없는 것이었습니다. 비가 오는 2월의 오전에 체육복도 갖추지 못한, 교복도 입지 않은 학생들을 불러 세워서 오리엔테이션의 마무리를 명분삼아 계획에도 없던 체육시간을 억지로 끼워 넣어 아이들에게 기합을 줄 만큼 무성의하고 무계획한 수업이었습니다. 만일 학교 측에서 그 수업들이 계획된 것이라 주장한다면 제가 묻겠습니다.
- 기합을 준 이유가 무엇인가?
그건 교육의 실천도, 학생들의 체벌도 아닌 단지 기합. 학교의 기강과 군기를 확립한다는 의도의, 어이없으나 고질적으로 정착한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실체이기도 합니다.
학생들은 돈을 내고서도 벌을 받았습니다. 사립재단 학교의 인허도 받지 않은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여 얼토당토않은 기합을 받아야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선생님들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최두석군도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습니다, 참석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요? 아마 전원이 참석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 추측합니다. 그런 분위기라면, 빠질 수 있는 사람이 없었겠지요. 물론 그런 기합들이 오리엔테이션의 전부였을 거라는 말은 아닙니다. 좋은 수업도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기합을 두고 수업이라 할 수는 없겠습니다. 최소한 학생을 죽인 기합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더욱이 불법이라면.
현재 교육청에서 그 수업료의 사용처와 횡령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발표한 상태입니다.
아까 말했듯이, 최군은 심장이 약한 학생이었습니다.
오리엔테이션 전에, 학교 측에서는 학생의 건강 상태를 기록한 생활기록부의 제출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최군을 비롯한 모든 학생은 당연하게 그것을 제출하였습니다. 최군의 부모님이 안심하고 아들을 보낸 것도 생활기록부를 제출해서였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학교 측은 몸이 약한 학생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습니다. 기합을 주기 전, 단 한번도 건강 상태가 나쁜 학생을 호명하거나 물어보지 않았다 합니다. 생활기록부를 왜 걷어갔는지요, 그것은 읽어보지도 않을 형식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까? 아니면, 교육청에 제출할 자료가 필요했던 것인지요. 어쨌든 학교는 최군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습니다.
후에 교장이라는 사람이 영안실을 찾아와 이런 말을 하고는 도망갔습니다.
“ 기합을 준 것은 그저 몸 좀 풀어보려 했을 뿐이다. ”
최군이 몸이 약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말하길 무리하지 않으면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이제 17살이 된 학생이 달리기를 좀 했다고 쓰러진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입니다. 비록 몸은 유약하나 중학교 시절, 학교 측의 작은 배려에 3년 개근상을 받았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런 학생이 별 다른 이유도 없이 쓰러졌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주장입니다.
그 날은 비가 내렸습니다, 찬 공기가 남은 2월 겨울비 속의 무리한 기합이었습니다.
제가 그 상황에 있지는 않았지만, 최군을 비롯한 학생들이 받았을 기합이란 뻔한 것입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괴롭고 괴로워도 계속 달려야 했던 그 때를 기억하십니까? 교장의 말처럼 그저 몸을 풀기 위해 준 기합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습니다. 아마 본인이었다고 해도 쓰러질 ‘훈련’은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여러분은 기합을 받을 때 열외를 자처할 수 있었습니까? 나는 몸이 아프니까, 저 공동체에서 제외시켜 달라 자처할 수 있었습니까? 선생님이 계속 뛰라 엄하게 말씀하시는데 “ 저는 몸이 안 좋은데요.” 라고 말씀드릴 수 있었습니까? 학생들을 엄하게 단속한다는 학교에 배정받은 사실에 겁먹어 원망스러운 교복을 끌어안고 몰래 몰래 눈물을 훔칠 만큼 여린 학생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에 대항하거나 거스른다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할 그런 학생이었습니다.
확실한 것 하나는,
최두석군은 선생님의 말씀대로 쓰러질 때까지 착실하게 기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최군이 쓰러졌습니다. 역시 학생들의 증언에 따라 운동장에 쓰러진 한 학생을 감독하던 선생님이 외면했습니다. 수 십분 간 쓰러진 채 방치된 최군은, 후에야 친구들에게 업혀 양호실에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최군의 맥박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까? 쓰러진 학생을 수 십분 간 방치해두는 선생님.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학생들의 증언에 따라 말씀드리건대, 최군이 쓰러진 후에야 선생들은 학생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 몸 아픈 사람은 나와라.
역시 학생들의 증언을 토대로 말씀드리건대, 최군이 쓰러진 후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선생님들의 증언으로는 인공호흡, 심폐소생술 등의 방법을 조치했다고 하지만 학생들의 말은 다릅니다. 그건‘방치’였을 따름입니다. 쓰러진 최군을 그대로 방치하다가, 양호실로 옮겨 또 방치하다가, 한교시가 다 끝나고 나서야 응급실로 출발했다는 증언입니다.
누구의 말이 옳다고 보십니까.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을 학생들일까요, 책임이 물어질 선생들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하겠습니다. 누구의 책임입니까, 최군은 성당에 다니는 친구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책임입니까? 하나님이 최두석군을 지독하게 사랑해서 미리 데려간 것이라 생각하고 우리는 최군을 축복해줘야 하는 것입니까?
..
장례를 치루고 있습니다.
어린 친구가, 장례를 치루고 있습니다.
분명 시시비비를 떠나서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최군의 빈소에는 그의 시신이 없습니다. 이유는, 학교 측에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아 부검을 하기 위해 떠나보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갑작스러운 사인인지, 지병에 의한 것인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부검을 한다고 합니다. 학교 측에서는, 최군의 사인이 기합 때문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기합이 과하지 않았다는 말이 되겠지요.
최군이 쓰러진 것은 사고일 수도 있습니다. 그건 지병이었든, 격렬한 기합 때문이었든 간에 누구도 원하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네, 최군이 쓰러진 것은 사고입니다. 하지만 최군을 방치한 것은 살인입니다. 학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소명이 있는 학교에서 살인이 묵인되었습니다. 무관심과 권위 때문입니다.
유가족은 사고인지 아닌지를 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왜 방치했는지를 따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의 입장은 강경합니다, 사고사로 몰아 사건을 은폐하려는 생각이겠지요.
그 때문에 최군은 돌연히 죽은 것도 모자라 시체가 부검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영안실을 찾은 선생님들의 말씀에서는 그것이 격렬한 기합이었고, 기합 탓에 최군이 쓰러졌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건과 관련이 없는, 참관 혹은 구경하신 선생님들의 말씀입니다. 교장께서는, 그리고 그 기합을 주관한 선생님들께서는 영안실에서 제대로 된 조의도 표하지 않은 채 유가족과의 시비가 두려워 나타나지도 않고 있습니다. 교장은 잘못을 시인하다가 사라져 아직까지 잠적중이고, 기합을 총괄한 두 선생은 택시비가 없다는 둥, 만취 상태라는 둥 궁색한 변명만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특히 기합을 총괄했던 한 선생은 모든 것이 기합 때문이라 실토하고 나서도 경찰서에서는 허위진술로 -질병사-라는 어이없을 사건 결론을 혼자 내고 말았습니다. 신문 등의 매체에서도 왜곡된 오보를 하고 나섰습니다. ‘기합 중 사망’아닌 ‘달리기 중 돌연사’로 배경이 변하는가 하면, 불법 오리엔테이션을 정규 수업으로 표현하고, 팔이 불편해서 6급 장애인 판정을 받은 사실을 마치 심장이 약해서 6급 판정을 받은 양 보도하며 갑자기 돌연사 했다는 듯 기사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다릅니다.
큰 기사거리가 아니지만, 1분도 못 채우는, 너무나 사소하고 가벼운 기사거리 한 줄이겠지만 그 기사들은 모두 진실이 아닙니다.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빼앗긴 마음도 이보다 애절하진 않을 것입니다.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기사들에 유가족들은 더욱 상처입고 있습니다. 하지만 M TV에서 조만간 이 일을 취재한다고 하여 위안이 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심각하고 어이없는 사건이라는 의미겠지요.
학교 측의 순순한 인정이 있었다면 아무 일 없이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경찰 진술에서 경찰관께서 유가족 한 명만 불러다가 사건을 처리했어도 이렇게 불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기사 한 줄 정직하게 나갔다면 유가족들은 억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너지는 교권에 대한 보상책은 아니었을까요. 기합이라는 수단은, 선생들의 그런 어이없을 권위의식만 아니었어도 최군은 살아있을 것입니다. 쓰러진 학생을 단 한 번이라도 배려했다면 최군은 살아났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일개 국민은 참 약합니다. 그런 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놓고 기다려야합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시신 없는 최군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이 사건에 대해서 학교는 승산이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여러분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 글을 읽고 난 후엔 여러 곳에 올려주십시오. 우리에겐 여론이 필요합니다, 학교의 그러한 부조리를 파헤치고 밝혀내기 위해서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최군과 같은 사건은 지금까지 많았습니다. 그 때마다 때로는, 집단에게 눌려 우리 일개 국민들은 침묵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약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네티즌이십니다. 목소리를 모아서 외칠 수 있는 네티즌이십니다. 우리에게는 여러분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힘을 모아주십시오. 이 이야기를 읽으셨다면, 학교 측의 어이없는 과실들과 무책임함, 그리고 아둔하기 짝이 없을 변명들을 느끼실 것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죽어서도 억울한 당신의 동생 같은, 친구 같은, 아들 같은 학생이
지금 시신도 없이 장례를 치루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셨다면
알고 있는 모든 게시판에,
속해 있는 모든 동호회에 올려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도움으로 최두석군이 하루 빨리 제대로 된 장례를 치루고
하나님의 곁으로 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