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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9. 25. 오늘의 양식 : 예루살렘 : Jerusalem ( 2 )
표어 : 오직 예수. 재림 신앙. 땅끝 선교
삶의 터전에서 드리는 예배
1. 예배의 부름 ---------- 마음을 정돈하고 예배를 드리는 데 방해가 없도록 합시다. ------------
2. 찬양과 경배 ---------- 246 나 가나안 땅 귀한 성에
372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380 나의 생명 되신 주 --------------------------------------------
3. 신 앙 고 백 ---------- 사 도 신 경--------------------------------------------------------
4. 찬 송 ---------- 393 오 신실하신 주 -----------------------------------------------
5. 기 도 ---------- 주의 나라를 위하여
주의 동력자를 위하여
예배자를 위하여 ---------------------------------------------------
6. 하나님 말씀 ---------- 습 3: 14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7. 설 교 ---------- 예루살렘 : Jerusalem ( 2 )
예루살렘 멸망 이후
바벨론 포로 귀환 후, 곧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의해 재건축되기 전까지 예루살렘은 폐허로 남아 있었다.
고레스의 정책과 칙령에 의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이 유다 총독으로 임명된 세스바살과 제사장 여호수아, 스룹바벨 등과 함께 1차 귀환을 하였다(스 2장).
이들은 즉시 번제단을 수축하고 그 이듬해에 성전을 세우기 위해 기초를 놓았으나 사마리아인들의 방해와 거짓 상소로 결국 성전 건축은 중단되고 말았다(스 4:11-16).
그러나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격려(학 1:4-6, 8. 2:4. 슥 4:6-10)와 다리오 왕의 후원과 도움으로 BC 516년에 성전이 완공되었다.
그 후 BC 458년에 에스라가 백성을 이끌고 2차로 귀환했으며, 얼마 후에는 바사 왕 아닥사스다의 술 맡은 관원으로 있었던 느헤미야가 귀환하였다.
많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그는 예루살렘 성벽을 52일만에 세웠으며, 성문을 중건하였다.
느헤미야가 귀환한 후 중건된 문들로는 양문(느 3:1), 어문(느 3:3), 옛문(느 3:5), 골짜기문(느 3:13), 분문(느 3:29), 샘문(느 3:15), 수문(느 3:26), 마문(느 3:28), 동문(느 3:29) 등이었다.
느헤미야의 기록을 그대로 이해하는 데에 몇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그런데도 성벽의 건축 순서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며, 예루살렘 성의 북쪽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BC 198년에는 팔레스타인이 수리아의 셀류쿠스 왕 안티오쿠스 2세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예루살렘이 최대의 수난과 수치를 당했던 때는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Antiochus IV Epiphanes)에 의해서였다.
그는 성전을 약탈하고 제우스 단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BC 165년 마카비 반란으로 성전이 회복되었으며, 그 후 하스모니안 왕조는 로마가 개입하는 BC 1세기 중엽까지 자유롭게 예루살렘을 통치했다.
BC 63년에는 로마의 폼페이(Pompey) 장군에 의해 점령당했으며, 파르티아의 도움을 얻은 안티고누스(Antigonus)에 의해 40년 동안 통치를 받기도 했으나 헤롯 대왕에 의해 BC 37년에 다시 회복되었다.
헤롯 대왕 시대
예루살렘을 되찾은 헤롯 대왕은 로마의 비호 아래 예루살렘을 확장하고 요새화하는 일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사업은 성전 경내 북서쪽 모퉁이에 있던 요새를 재건하고 그곳을 자기의 보호자였던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이름을 따서 안토니아라고 불렀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대략 4만 명에서 7만 명가량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의 가장 야심찬 계획은 성전을 증축하고 그 경내를 확장하는 것이었다.
한편 그는 극장, 시장과 광장, 수도, 저수지, 주랑의 통로, 성전 지역과 윗성을 서로 연결하는 다리를 만드는 등 특별히 건축에 있어서 뛰어난 역량을 보였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주요 활동지 가운데 하나였으며, 무엇보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성령 강림과 초대교회의 탄생도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로마 시대
로마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유대인들의 반란(AD 66)으로 인해 AD 70년 로마의 티투스(Titus)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과 망대들이 철저히 파괴되었다.
그 후 AD 135년에 바르 코흐바(Bar Kokhba)의 지도로 유대인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하드리안(Hadrian) 로마 황제는 다시 한번 철저히 예루살렘을 파괴시켰다.
그는 예루살렘을 갈아엎고 서쪽 언덕에 철저한 로마식 도시를 건설한 뒤 아엘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라고 불렀다.
그 도시에 있던 모든 유대인들이 추방되었다.
이곳이 다시 회복된 것은 콘스탄틴이 통치하기 시작한 4세기 초였다.
그의 어머니 헬레나(Helena)는 많은 전통적인 장소에 교회를 세웠다.
그 후 이곳에는 많은 교회와 성당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 이후의 예루살렘
예루살렘은 그 이후에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페르시아, 아랍, 터키, 십자군, 영국과 이스라엘 군대들과 정부들에 의해 점령당해 왔다.
AD 636년에 모슬렘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카리프 오마르(Khalif Omar)가 성전이 있던 자리에 모스크를 세웠으며, AD 691년에는 아베드 마릭(Abed El Malik)과 벤 마완(Ben Marwan)과 오마야드 카리프(Omayad Khalif)가 오마르의 작은 모스크를 현재의 모스크로 대치시켰다.
7세기부터 11세기까지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던 예루살렘은 유럽의 십자군에 의해 다시 회복되었다.
1099년에 십자군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이 모스크는 ‘하나님의 성전’(Templum Domini)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1187년에 살라딘(Saladin)에 의해 또 점령되었으며, 그 후 88년 동안 십자가는 내려지고 초승달 모양의 모슬렘 상징이 지붕에 달리게 되었다.
현재의 예루살렘은 16세기 중엽의 오스만 터키 제국의 황제 술탄 술레이만(Sultan Suleiman) 1세가 세운 예루살렘 성을 기준으로 해서 성안의 도시가 구도시(the Old City)로 되어 있고, 그 외에 199년 전부터 새롭게 현대식으로 세운 신도시(the New City)로 나뉘어져 있다.
예루살렘 성벽
예루살렘의 구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큰 성벽은 여러 시대에 걸쳐 쌓인 것이다.
오늘날의 형태와 크기는 터키의 술레이만 대제의 통치하에서 1542년에 마지막 쌓은 것이 지금까지 보존된 것이다.
둘레 4km, 평균 높이 12m, 34개의 탑과 8개의 문으로 되어 있다.
8개의 문은 북쪽에 새 문(New Gate), 다메섹 문(Damascus Gate), 헤롯 문(Herod’s Gate)이, 동쪽에는 스데반 문(St. Stephen’s Gate) 또는 사자문(Lions Gate), 황금문(Golden Gate)이, 남쪽에는 분문(Dung Gate), 시온 문(Zion Gate)이, 그리고 서쪽에 욥바 문(Joppa Gate)이 있다.
통곡의 벽
AD 70년에 예루살렘은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다.
그는 성전과 궁전과 건물들과 망대들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벽까지도 허물어버렸다.
다만 성전의 서쪽 벽 끝자락만 조금 남겨 두었는데, 이는 예루살렘이 얼마나 철저히 파괴되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다시는 반란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그 후 한동안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없었고, 다만 성전이 파괴된 날에만 1년에 한 번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었다.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들은 이곳에 모여 허물어진 성전을 두들기며 슬피 울곤 했는데, 그때부터 이곳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현재 이 성벽은 밑부분부터 위로 올라갈수록 서로 다른 크기의 바위로 쌓여 있다.
아래 바닥에서부터 7단까지는 제2성전 시대의 것이고, 그 위의 4단까지는 로마 시대에 덧붙인 것이며, 또 그 위에 있는 것은 터키 시대에 쌓은 것이다.
예루살렘 멸망을 선포한 선지자들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을 때 유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멸망이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끊임없는 우상숭배와 여러 죄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선지자들의 경고에 그들이 귀 기울이지 않은 결과였을 뿐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하나님께서 옛 조상들과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애 2:17).
BC 1500년경 / 모세
-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불순종하면 심판을 받을 것이라 하심(레 26장. 신 28장).
- 특히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반역할 경우 타국의 침입을 받으며 성들이 파괴되고 포로로 붙잡혀갈 것에 대해 말씀하심(신 28:25, 36).
BC 742-687년경 / 미가
- 불의와 우상숭배의 죄로 인해 시온이 갈아엎은 밭처럼 되고 성전이 파괴될 것을 말씀하심(미 3:12).
BC 740-670년경 / 이사야
-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 우상숭배, 위선적 예배, 교만의 죄를 책망하심(사 1-5장).
- 예루살렘 저주를 선언(사 29:1-10),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될 것을 말씀하심(사 39:5-7).
BC 640-609년경 / 스바냐
- 우상숭배의 죄를 없애기 위해 유다 땅을 멸절하신다고 말씀하심(습 1:18).
BC 640-609년경 / 훌다
- 유다의 죄로 인해 말씀에 기록된 대로 재앙을 내리겠다고 하심(왕하 22:16-17).
BC 626-580년경 / 예레미야
- 예루살렘과 유다 지도자들에게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심(렘 1-39장).
BC 600년경 / 하박국
- 바벨론 사람들에 의해 황폐해진 예루살렘을 보며 하나님께 울부짖는 하박국에게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심(합 1-4장).
새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이라는 단어는 갈라디아서와 히브리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나오고 있다.
갈라디아서(갈 4:21-25)와 히브리서(히 11:9. 12:22)의 ‘새 예루살렘’ 또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유대교와의 논쟁 속에서 언급되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은 큰 도시 바벨론과의 논쟁 속에서 다루어지고 있다(계 17:1 이하).
‘새 예루살렘’이란 지상에 있는 예루살렘과 대조되는 말이다.
그러나 두 예루살렘은 서로 연속성을 가진다. 인류의 구속이 예루살렘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새 예루살렘은 죄와 분리되고 철저하게 하나님께 바쳐졌으므로 ‘거룩’하다고 불린다.
예루살렘은 신부, 즉 어린 양의 신부로 불려지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사 54:5. 엡 5:32. 계 21:2)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가리킨다.
심지어 구약에서도 교회는 상징적으로 ‘성’(城)이라 불렸다(사 26:1. 시 48편).
성은 영원한 거처, 수많은 거주민, 보호와 안전의 개념으로 이해된다.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후 더 이상 하늘과 땅의 구분이 없게 된다.
이는 이미 지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국을 경험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맛봄은 훗날 천국에서 완전하게 실현될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새 예루살렘의 아름다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역사를 그의 장중에 주관하시고 자기를 경외하는 백성을 위하여 새로운 세계 곧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을 예비하고 계신다.
그 도성의 크기는 144 규빗이며, 그 기초를 이루는 성곽의 기초석은 대제사장의 흉패에 붙이는 열두 보석들과 유사한 보석들이다(계 21:19-20. 출 28:17-20 참고).
성곽에는 각각 하나의 보석으로 이루어진 열두 문들이 있다.(계 21:12, 21),
이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보혈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나타내 준다.
문들은 각각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미칠 것을 나타낸다. 그 문들은 결코 닫히지 않을 것이다(계 21:12-13, 25).
도성 구조물 위에 지파들과 사도들의 이름들이 새겨지게 하였다.(계 21:12, 14)
하나님은 다시금 역사를 통한 자신의 사역의 통일성을 보여주고 있다.
12라는 숫자의 배수와 관계된 도성의 크기(사방이 1만 2천 스다디온, 즉 약 2,200km의 정방입체형)는 신부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완전함을 상징한다.
놀라운 것은 그 성에는 성전이 없다는 사실이다(겔 40:1. 46:24 참고).
하나님 거주의 물체적 상징은 영적인 실체 자체로 대체된 것이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에 계심이라”(계 21:22). 또한 그곳은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시기’(계 21:23) 때문에 해나 달의 비췸이 필요 없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분의 얼굴빛 속에서 ‘세세토록 왕 노릇 할’ 것이다(계 22:5).
8. 기 도 ---------- 받은 은혜와 귀한 사명을 통하여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자가 되기 위하여 ------------------------------
9. 찬 송 ---------- 423 먹보다도 더 검은 ----------------------------------------------
10. 폐 회 ---------- 주기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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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작은 것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하고 기쁘게 하기도 합니다.
힘든 세상 온갓 사람들 속에서 힘든 세상 온갓 사람들 속에서 어쩌면 작은
꽃 한 송이가 소중할 때가 있습니다.오늘도 소중한 하루 행복한 하루 되시길 기원 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잠 25:28).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