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30일(월)
대한민국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의 지리산 아침은 맑고 청명했다.
비록 비좁고 불편하기는 했지만, 창문을 살짝 열어둔 상태에서 히터를 켜놓은 따뜻한 차 안에서 숙면을 취한 후 아침 일찍 눈을 뜬 우리는 화장실에서 물을 길어다 아침을 지어먹고 등산채비를 한 후 본격적인 천왕봉 등정에 나섰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험한 고산인 지리산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아는지라 나는 발목보호대를 더욱 꼼꼼히 착용하고서 스틱을 짚으며 산행에 나선다. 이번 장기산행에서 기대이상으로 발목보호대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에 흡족한 마음이 든다.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중산리~ 칼바위~ 법계사(로타리대피소)~ 천왕봉(1,915m)에 이르는 약 4시간이 소요되는 지리산 최단 등산로.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지리산은 등산길이 험하다는 걸 잘 아는지라, 지금의 몸 상태로는 -내사랑 올림푸스 펜(EP-5) 카메라-가 아무리 축약된 최신 미러리스라도 대부분 튼튼한 금속으로 제작되어 있기에 중량감이 느껴지는 물건인지라 겁이나서 뺀 탓에 베낭무게는 많이 줄었지만 물, 식량, 방한복, 기본장비 등이 든 베낭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지리산 산신제는 천왕봉이 아닌 성삼재휴게소 위 노고단에서 하기로 했다.
북쪽의 설악산과 더불어 산악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민족의 영산인 남쪽의 지리산!
지리산 남쪽 화개면 대성리와 인접한 이곳 중산골은 지리산빨치산토벌전시관도 있어 이웃하는 거림골과 함께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과 6.25 후반 지리산으로 잠입한 남부군(파르티잔)으로 인하여 죄없는 민간인들이 대책없는 엄청난 약탈과 고통과 수난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피아골, 뱀사골, 삼정골, 대성골, 대원사골....
대하소설 지리산과 태백산맥 그리고 남부군에서도 잘 표현되었듯, 이곳 지리산에는 우리 현대사에 가장 비극적이고 참혹한 민족상잔의 상흔이 골마다 봉우리마다 새겨져 있다.
남부군 이현상병단의 본격적인 유격전은 뱀사골에서 토벌대에 의해 지도부가 궤멸되기까지 7년동안 군경과 빨치산 도합 2만여명이 이곳 지리산의 능선과 계곡에서 피를 뿌리며 목숨을 잃었다.
형제와 다름없는 군경토벌대와 빨치산 사이에 죽고 죽여 시산혈해를 이룬 처참한 살육전... 이데올로기의 광신에 따른 어처구니없는 희생으로 궤멸한 남부군의 원혼들이 울면서 잠든 곳이 바로 이곳이며,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죄없는 수많은 양민들 또한 참혹한 피해를 당해야 했다.
-한반도가 혼란스러우면 지리산이 울부짖고, 지리산이 소란하면 한반도가 흔들린다-는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지금 지리산의 비극적인 민족사를 연상하는 세대는 많지 않다. 수많은 산악인들이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찾아 계곡과 능선을 종주하고 있지만, 60여년전 산중을 방황하면서 죽어간 청춘들의 이야기는 까마득한 전설이 되어 버렸다.
이런 참혹한 역사를 되돌아 볼 때마다 내 마음과 눈에서는 피눈물이 난다.
아, 지리산!
무상하고 무심한 자연과 세상사... 내가 세상에 태어나 60년만에 오르는 지리산은 무성한 산림들로 들어차 쓰리고 아픈 역사의 흔적들을 덮거나 묻히게 하여 지금은 새하얀 백설에 말없이 묻혀 있으니 이 또한 지리산이 선사하는 허허롭고 색다른 감회다.
남녀노소 가족끼리 색색의 등산복을 입고 즐거운 마음으로 산에 오르는 등산객들에게 60여년전의 비극을 일깨우는 것은 어쩌면 할 짓이 못되는 가슴아픈 일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도 있고, -역사는 강물이 되어 흐르고, 강물은 흘러간 자취를 남긴다-고 하지만, 이미 바다로 흘러간 옛 강물을 퍼올 수 없듯, 흥겨운 잔치집에다 고인을 기억하자고 슬픈 장송곡을 굳이 틀 이유는 없지 않은가!
허나 역사는 결코 잊어선 안된다.
-나라와 민족을 두 동강 낸 공산주의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극우적이고 옹졸한 못난 주장이 아니라, 작은 한반도가 반으로 쪼개질 수 밖에 없는 비극적인 역사를 잊지 말아야 더 이상 민족적, 국가적인 비극은 초래되지 않는다는 거국적 역사의식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
소설 지리산(이병주)이나 태백산맥(조정래)에 보면 자주 산죽(山竹)에 대한 말이 나온다. 공비토벌대에 쫒긴 파르티잔들이 몸을 숨긴 은폐물 중의 하나인데, 이 산죽이 지리산에는 대량으로 사방에 자생하고 있어 글을 쓸 때마다 가끔씩 현지답사 차 지리산에 올랐을 작가의 심정이 그 산죽과 함께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 내 기억에 남은 소설 속 장면 중의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방한에 턱도 없는 다 헤진 누더기 옷에다 발가락이 삐쳐나오는 신발을 신은 파르티잔들이 한밤중에 공비토벌대에 쫒겨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살을 에이는 추위 속에서 대장의 지시하에 같은 빙판눈길을 올랐다 내려갔다를 여러번 반복하여 모두 지칠대로 지친 나머지 거의 인사불성이 되었다는 대목에서는 인간의 판단력과 조직에 대한 믿음에 대한 회의와 더불어 거부할 수 없는 군사조직과 그 작전에 대한 전율마져 느꼈었다.
공부수준이 빈한한 내가 만약 이병주나 조정래 선생과 비슷한 주제로 지리산을 그렸다면 몇십년이 걸릴 것인가? 아마도 평생 써도 그런 대작은 이루지 못할 언감생심.
방한복을 껴입은 세찬 바람이 부는 7부능선에 있는 로타리대피소와 법계사(1,400m)를 지나 오르는 구간은 온통 하얀 눈세상 천지다.
가끔씩 스마트폰으로 위안삼아 눈세상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으며 지나치는 등산객들의 즐거운 비명을 함께 담아본다.
힘들게 오르는 등산길에 큰 바위 아래서 나오는 샘물이 있었다. 소줏잔으로 애용하는 작은 시에라컵으로 몇잔 들이키니 속이 뻥 뚫리듯 한다. 지나치는 가족분들에게 몸에 좋은 약수나 다름없는 석간수라며 한잔씩 권하니 다들 맛있다며 고마워들 한다. 난생 처음으로 부모들과 천왕봉엘 오른다는 초등학교 2학년쯤 되는 이쁘장한 소녀는 두잔을 마신다.
문득 50대의 프로카메라맨이 무겁고 거대한 DSRL 카메라로 열심히 촬영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자 갑자기 나의 못난 결정에 크게 실망하며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메라가 아무리 무거워도 고작 2~3kg 이상은 나가지 않을텐데, 몸이 부실하다는 이유를 붙여 잔꾀를 부리다가 그만 100년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이 아름답고 멋진 지리산의 설경을 놓치고야 말았다는 자괴감에 나는 통탄할 수 밖에 없었다.
아, 미련한 모질이... 대자유인 내지 무위자연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너는 어찌 순수한 마음으로 나라를 걱정하며 태극기를 들고 설치는 못난 박사모들에게 감히 나잇값 운운할 자격이라도 있단 말이더냐!
하늘은 더욱 푸르고, 푸른 소나무는 은빛 나무가 되어 겨울추위를 뚫고 쏟아지는 햇빛 아래 찬란하게 빛난다.
암갈색인 산하의 숱한 산들과는 다르게 온통 찬란한 순백으로 단장하고 있는 성스러운 지리산의 위엄!
강원도 설악산의 설경이야 워낙 유명하지만, 남쪽지방에 있는 지리산의 설경과 푸른 하늘은 정말이지 쉽게 접하지 못한 단 몇시간 혹은 찰라에 선사하는 지리산의 절경 중에서도 최상의 선경이라 한 곳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느라 열심히 카메라를 조작하는 그의 집착에 가까운 열정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
"지리산에서 이런 날씨와 설경은 몇년동안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
차에 두고 온 카메라로 인하여 안타까움에 자책하는 나를 보고 카메라맨이 한 말이 더욱 가슴 아프다.
이래서 일반인들과 다른 시각을 지닌 예술가들은 아름답다. 같은 예술가라도 고차원의 세계를 담거나 그릴 줄 아는 프로예술가는 더욱 아름다운 존재다. 그가 찍은 사진들이 만인의 찬사를 받는 명작으로 탄생되어 전시되길 기원해 본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매주 산에 오르는 등산광 부산친구에게 천왕봉 오른다며 카톡을 해 보았다.
"정말이고? 방콕하매 날 놀리는기 아이가? 진짜로 지리산이면 인증샷 부탁하네~"
"이 친구, 사람 말을 무시하기는.. 아놔~"
"지금 어디쯤인가?"
"중산리 법계사 위."
"겨울 지리산은 강풍때문에 피하는 게 상책이네. 그래서 다들 소백산이나 덕유산을 선택하지."
"그동안 오대산, 태백산의 눈 위에서 텐트치고 밥짓고... 나중에 히말라야에서도 이런 문자 보내주께~ 엉?"
"뭐? 히말라야에 혼자 간다고? 제발 나는 자네 얼굴 오래 오래 보면서 살고 싶네."
다른 친구들에게도 카톡자랑질로 왕부럼을 사다가 너무 지체된다 싶어 서둘러 정상을 향했다.
세찬 겨울바람이 전깃줄을 스치듯한 날카로운 칼바람소리가 윙윙거리는 천왕봉 아래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해 보니 한무리의 산꾼들이 바람 잔 양지바른 절벽 아래서 라면을 끓이며 점심을 먹고 있었다.
현재 시각은 2시경.
이 시간에 정상을 밟고 장터목 산장으로 가서 점심을 해먹자는 친구.
배고프고 피곤한데다 장터목산장까지 가려면 시간상 도저히 맞지 않아 점심을 먹고있는 사람들과 합세하자고 하니 막무가내로 꼭대기로 향한다. 정상은 지척이라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 강풍이 엄청나게 불어오는 천왕봉에 올라 정상석에서 함께 인증사진을 찍었다.
눈이 내릴 때 바람이 어찌나 불어대었던지 돌무더기로 된 정상에는 눈이 쌓여있지 않았다.
남면에는 -智異山 天王峰 1915m-, 북면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고 새겨진 아담하고 둥그스럼한 정상석이 새삼 정겹다.
天王의 장풍같은 위력을 지닌 천왕봉의 강풍에 날리듯 정상에서 물러난 우리들은 나무계단을 타고 점심을 해먹던 절벽 아래로 내려가 점심을 준비했다.
따뜻한 햇볕은 이제 절벽에 가려져 더 이상 양지가 아니다. 삼겹살만 먹는 친구는 삼겹살을 굽고, 햇반이 필요한 나는 햇반을 덥히고...
"삼겹살 빨리 먹어. 나 혼자 다 먹기 전에."
태백산에서 한 말을 또 하는 친구. 서둘러 죽밥을 만들어서 삼겹살을 맛있는 김장김치로 싸서 한잔 술을 겸하여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있는데,
"공원관리공단에서 온 직원입니다. 과태료는 물리지 않는 대신 사진을 찍겠습니다."
하며 민간복을 입은 중년여성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식사를 하다 주춤한 우리 두사람. 옆에서 식사를 마치고 베낭을 챙기고 있던 산꾼들도 어쩔줄 몰라한다.
오늘은 명절 연휴일인데다, 공원에서 버너를 피운 위법자들이 우리까지 합쳐 10명 이상이니 전부 만만찮은 과태료를 끊을 수 없어 사정을 봐 준 것인가? 아니면 정복이 아닌 사복을 입은 입장에서 관리공단의 권리행사를 할 수 없어 사진만 찍는다는 말인가?
아뭏든 정초에 기분 상하게 된 일이 다행히도 무마가 되어 서둘러 점심을 먹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이 또한 대자대비하고 사랑이 많으신 태백산 산신령과 천지신명이 우리를 보호해 준 덕분 아닐까...? ^*^
첫댓글 정말 한 숨에 홀린 듯 긴 산행기를.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태산님의 자상한 기록과 함께. 인증사진들을 감상하니 더욱 매력적입니다
단언컨대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추위를 피해. 베트남으로 왔지만. 중부지역은 호이안은. 비가 잦고 어제부터는 종일 비가
계속되어 보름달감상도 못해보고..약간 시들 꿀"하던차에. 이런 멋진 산행이야기를 읽게되어
분위기가 엎된듯. 감사합니다
아, 정체성이 확실한 위대한 나라에 사시군요.
아지매님이 부럽습니다.
제가 만약 님이 사시는 자긍심있는 베트남의 아가씨(이건 몬 소리?)와 살았더라면 방콕하며 행복에 젖느라 이런 글도 쓸 수 없었겠지요. ^^
제가 사랑하는 이 카페를 장식하기 위해 재미있고 색다른 베트남 이야기 들려주실 수 없는지요?
이곳은 불교카페지만, 위대한 불교를 밝히는 근원은 전기불의 원천인 바다로 흐르는 강물이거든요.
저를 감동시킨 댓글을 달아 주셔서 제 기분 또한 엎되었습니다. _()_
젊은 나이라고 다 등산을 하는 건 아니지만, 젊음이 없고서는
높은 산에도 못 오르겠지요...
파이팅!
태산 님!
아직도 마음은 청춘이신 스님께 합장... _()_
멋진남자
그리고 뒤에 보이는 설경과 상고대 딱 어울립니다.
뚱땡이는 아마 산행 하라 했으면 태산님 절반정도의 거리만큼밖에
가지 못하였겠지요... ㅎㅎㅎ
눈속에 빠져서 허우적 허우적 함께 간 사람만 피곤하게..ㅎㅎㅎ
멋진 산행기 돋보입니다..
파이팅~~~!!!
올해는 장개 갈수 있겠구먼? ㅎㅎㅎㅎ
으흐흐흐~~ ^♡^
부럽습니당~~ 마음은 가고 싶은디 몸이 따러주지 못할 것 같아요..태산님보다 한참 젊은데도^^
저는 10대, 님은 5대...? ^^;;
멋집니다
_()_
고맙습니다... _()_
좌우지간
멋진분으로 인증되셨습니다^^
감솨 감솨~
헌데, 자명님과 더불어 이 카페 회원님 모든 분들 전부 멋진 분들 아닌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