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slavery) 한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소유되어 있는 상태.
노예는 법적으로 재산 또는 소지품으로 여겨지며 자유인이 가지는 정상적인 권리 대부분을 인정받지 못한다.
노예제는 거의 모든 시대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왔다.
대체로 전쟁포로, 납치(노예 포획), 범죄행위에 대한 벌, 빚에 대한 보상, 직접 매매, 원래 주인에서 다른 주인으로 소유권을 이전 등을 통해 본인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노예가 되었으며 그 자식들 또한 거의 다 노예가 되었다.
19세기에 서구 국가들이 대대적인 노예해방을 여러 차례 선언하기는 했지만 노예들은 주인이 해방을 승인해야만 노예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노예는 가사노예와 생산노예의 2가지 유형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어왔다.
첫번째 유형에 속하는 노예는 집안에서 하인 역할을 주로 하면서 주인을 모셨고, 생산노예는 대부분 탄광이나 농장 같은 곳에서 시장성 있는 상품을 생산하는 일을 했다.
노예제는 문명이 수렵 및 채집단계를 지나 목축생활에 이르고 난 후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목축시기에 노예들은 주인을 도와 양떼를 지키는 일을 했고 집안 식구의 일원으로 취급되었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처럼 좀더 발달한 문명권에서는 이와는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즉 도시의 노예들은 집안일을 했고 반면에 시골의 노예들은 주인의 밭과 탄광에서 무리지어 일했다.
생존에 필요한 정도의 농업생산에서 잉여분을 생산할 수 있는 시장형태의 농업생산으로 경제체제가 변하면서 노예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대폭 낮아졌다.
노예들은 더이상 하인이 아니라 이익을 위해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리스 로마 문명은 대부분 노예제를 받아들였으며, 노예들은 일상적인 가사와 농사일은 물론 관리직이나 비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로마 제국 말기에 노예집단은 그들이 속해 있는 영지 바깥으로는 팔려가지 않았다.
이슬람 세력이 등장한 아라비아 반도에서 아랍인·투르크인·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 전쟁이 여러 차례 벌어졌을 때도 노예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러나 코란은 노예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 믿음이 깊은 행위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자유민이 된 노예들은 곧 이슬람 공동체 안으로 흡수되었다.
남 아메리카 인디언들도 노예상태를 경험했다. 15세기말 스페인인들은 신대륙 대부분을 정복한 뒤 인디언들을 탄광이나 밭에서 일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인디언들은 유럽인들이 옮긴 질병과 거칠고 힘든 작업조건 때문에 오래 견디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페인인들은 1517년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 노예를 처음에는 서인도제도로, 그 다음에는 설탕산업이 번성하고 있던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보냈다. 흑인 농장노예라는 가혹한 관행은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북아메리카에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1619년 네덜란드 배에 실려 영국 식민지였던 버지니아에 처음으로 도착했다.
영국 사람들은 이때 담배·설탕, 그리고 후에는 목화를 재배하게 되는 수익성이 아주 높은 농장을 개발하고 있었다. 밭일에 필요한 노예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노예거래가 작물수출보다 더욱 수지가 맞는 사업이 되었으며 이런 흐름에 따라 북아메리카·서인도제도·아프리카 서부를 잇는 정교한 무역망이 만들어졌다. 1681년 버지니아에 있었던 노예는 2,000명 가량이었지만 19세기 중엽 아메리카에 있던 노예의 수는 400만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18세기에 유럽에서 계몽사상이 발전하면서 노예제에 대한 도덕적 혐오감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노예무역을 없애기 위한 사회단체들이 영국과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1823년 영국에서 결성된 반(反)노예제 단체는 1833년 무렵 서반구에 있는 영국 식민지에서 노예들을 해방시키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는 1848년 서인도제도에서 노예제를 폐지했고 미국에서는 1865년 13차 헌법개정안을 통해 노예제도를 영원히 종식시켰다. 노예제는 이제 세계 어느 나라 정부로부터도 합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관행이 마지막까지 유지되던 아라비아 반도의 국가들도 1970년 노예제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노예제에 대한 사회학적 탐구는 아주 중요한 연구분야이다.
보통 노예는 그 주인과 종족·인종·국적 면에서 다른 외부인이다.
대부분의 경우 노예들은 본인의 의지와 달리 원래 살던 사회에서 다른 사회에 끌려가 노예로 살게 된다. 노예는 그들의 이전 신분과는 관계없이 끌려간 사회에서 주변인이 되며, 경멸·무시·폭언을 당하거나 야만적 존재로 취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예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여러 가지 요인을 통해 형성된다.
대체로 주인과 인종이나 민족, 또는 문화적 특성의 차이가 클수록 노예의 조건은 악화되고 권리도 줄어든다. 예를 들어 주인과 노예가 모두 백인인 로마에서는 노예해방이 흔하게 이루어졌다. 마찬가지로 주인과 노예가 모두 흑인인 아프리카 대부분 사회에서도 노예는 사회의 많은 분야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인이 유럽 혈통 백인이고 노예가 아프리카 혈통 흑인이던 아메리카 남부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노예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경멸당했다.
노예무역(slave trade) 노예제의 존속을 위해 고대의 그리스·로마, 중세의 이슬람 국가, 근대의 아메리카 대륙 등지에서 행한 노예의 매매 행위.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흑해 북안에서 지중해 세계에 노예가 수출되었다. 흑해 북안의 그리스 식민지와 남러시아 여러 지역의 경제활동은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고전시대의 지중해 세계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교역을 통해 남러시아와 그리스는 문화적·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경로를 통해 수입되어온 노예들은 노동력으로도 활용되었고 전투를 위한 용병으로도 활용되었다.
로마 시대에 들어와서도 대토지소유제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노예를 수입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슬라브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 로마의 노예 공급지였다. 이슬람 사회는 이슬람교도를 노예로 삼지 못했기 때문에 10~11세기에 걸쳐 볼가강 중류 연안, 그리고 시베리아 지방까지 가서 노예를 모집했다. 주로 이란 북서부의 니샤부르가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근대의 노예무역은 신세계가 발견되면서 시작되었다. 이 신세계에서 플랜테이션 농업이 대규모로 경영되면서 아프리카 서해안을 중심으로 흑인노예들을 대량 수입하게 되었다. 15세기 이후 아프리카 서해안에 거점을 마련한 포르투갈은 이곳 원주민인 흑인을 노예로 썼다. 이어 16세기에 들어와 포르투갈령의 브라질과 서인도제도에서 사탕 플랜테이션이 개설되면서 흑인노예의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16세기의 노예무역은 포르투갈인이 주도했으나 17세기 후반에는 과달루프와 마르테니크의 두 섬이 사탕생산의 중심이 되면서 영국과 프랑스의 상인도 노예무역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특히 영국의 상인들은 런던, 브리스틀, 리버풀 등지를 중심으로 노예무역을 행하여 연간 10% 이상의 이익을 올렸다.
첫댓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전염병으로 소멸되지 않았다면, 아프리카인들이 덜 끌려갔겠네요. 그리고 이슬람권이 노예 문제에서는 상당히 관대했다는 사실을 첨 알았네요. (덧붙여 조지 워싱톤이나 토마스 제퍼슨도 노예를 가지고 있었다는군요)
잘 봤습니다.
임진왜란때 일본의 포로가 된 조선인들이 유럽에서 헐값에 팔려나갔었다는 말을 들은적이...
이슬람권이 노예들에게 관대했다는 의견은 좀 동의하기가 힘든 거 같은데 ㅡㅡ;;
서기 9세기 중엽 바그다드 남부에서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이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그걸 '잔지의 반란'이라고 한다던가요?
실제로 광산, 이라크 남부의 농장에서 일하던 흑인 노예들의 처우는 굉장히 혹독했고, 또 지중해 연안 마그립 지역의 국가들에서 잡혀온 백인 노예(유럽의 항구마을에서 잡혀온)들의 처우 역시 혹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슬람권의 노예에는 로마시대의 노예처럼 '급'이 있던지라, 위와 같이 부려먹기 위한 노예는 어딜 가나 힘든건 매한가지였지만 가사노예의 경우는 주인이 사망하면서 또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풀어주는게 관례였고, 맘루크와 같은 군사노예는 왠만한 자유민이나 호족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권세와 재력을 지니고는 했죠. 왕조까지 세울 정도였으니까.
세계 어디가나 마찬가지로 이슬람 노예에도 급이 존재했던 것이죠. 청나라에서도 왕공들의 노비 같은 경우 잘만하면 엄청난 출세를 하여 부와 권세를 누리는 것이 가능했습니다(가장 대표적인 예가 옹정제의 노비였던 연갱요). 하지만 그 밖의 노비들의 생활은 매우 비참하였죠. 시오노 婆처럼 단순히 어느 한 노예계층만을 주목하여 "로마 사회 우왕 궅!!1" 같은 결론을 내리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이슬람권에서는 지금도 노예사냥이 일어나고 있다던데요
이슬람권을 기준을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실제로 사하라 이남의 블랙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등 이슬람 국가에서는 공공연히, 사우디나 걸프 등에서는 알음알음 존재합니다만 그것을 '이슬람권' 이라고 몽땅 묶는다면 좀 벙...해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