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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영적인 교사
“어떤 사람이 야훼의 산에 오르랴? 어떤 사람이 그의 성소에 들어서랴(시편 24:3)? 야훼께 복을 받고 하느님께 구원받을 사람이다(5). 이런 사람이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며 야곱의 하느님께 나아갈 사람이다(6). 행실과 마음이 깨끗한 사람, 허망한 데 뜻을 두지 않고 거짓 맹세 아니하는 사람(시편24:4). Those who are pure in act and in thought, who do not worship idols or make false promise.”
교회 주일학교에서 한 교사가 ‘하느님께 복을 받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주일학교 학생 전부가 여기 있다는 뜻으로 ‘네, 여기요.’하면서 손을 들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주일학교 교사가 주일학교 학생들의 좋은 영적인 안내자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좋은 영적인 안내자로 인하여 하느님께 복을 받고, 하느님께 구원받고,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 앞에 나아갈 사람이 된다는 것은 너무 좋은 일입니다. 하느님과 연결하고 산다는 것처럼 인간에게 더 좋은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주일학교 학생과 연결시켜 주는 주일학교 교사처럼 어른이 되어서 늘 영적인 교사를 찾게 됩니다. 더구나 “진실이 신발을 신을 동안 거짓은 지구 반 바퀴를 돈다(마크 트윈 Mark Twain. 1835-1910, “톰소여의 모험,” “허클베리핀의 모험”의 저자)”는 것처럼 진실의 속도보다 거짓이 빠른 시대에 우리가 삽니다. 이때 하느님의 말씀인 진리의 신발을 제대로 신게 하는 어머니 같은 영적인 교사를 수없이 찾는 현대인에게 성교회의 신앙은 너무 아릅답게 보입니다.
영적인 교사는 하느님의 말씀인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이기에 사람들을 느린 속도로 살게 이끕니다. 과학기술로 인하여 탐욕을 채우는 세상의 빠른 속도와는 다르게 영혼의 무게 전부를 안은 채 하느님에게 이끌리는 속도는 매우 느립니다. 진실의 영혼의 속도보다도 물질의 거짓의 속도는 훨씬 빠릅니다. 거짓의 빠른 속도에 흔들리지 않은 영적인 교사의 신심이 성공회 신앙인의 흐름입니다. “신뢰할만한 사람과의 만남이 없으면 우리 입맛에 맞는 선동과 이야기에 매몰되어 폐쇄적 자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성공회 로완 웰리암스 대주교).” 신뢰할만한 사람을 영적인 교사를 만난다는 것은 영적인 목마름을 해결할 생명수를 얻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영적인 교사를 만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인 것입니다. 일본의 나가사키에 성공회 성당 옆에 아름다운 활수여자대학교가 있습니다. 활수活水는 ‘살아있는 물’이라는 성경에서 가져온 대학교 이름입니다. “수정같이 빛나는 생명수의 강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옥좌로부터 나와 도성(우리의 어머니 예루살렘, 갈라 4:26)의 한가운데를 흐르고 강 양쪽에는 12가지 열매가 달마다 열리고 그 잎은 만백성의 치료약이 됩니다(묵시 22:1-2).”“목마른 사람도 오십시오. 생명의 물을 원하는 사람은 거져 마시십시오(묵시 22:17).” “나를 믿는 사람은 내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 나올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당신을 믿는 사람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요한 7:38-39).” 살아있는 물이 더 성경말씀에 가깝다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살아있는 물이 성령이고 하느님이고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기 때문에 강가 양쪽 언덕에는 온갖 과일 나무가 자라며 잎이 시드는 일이 없고, 다달이 새 과일이 나와서 열매가 끊어지는 일이 없다. 그 열매는 양식이 되고 그 잎은 약이 된다(에제 47;12).” 살아있는 물인 활수인 성령으로 인해 활력을 얻고 삶의 목적을 찾고 상처가 치유됩니다. 영적인 교사로 인해 주일학교 학생처럼 어른들도 활수를 마셔서 기운을 차리는 삶이 될 것입니다.
생각이 순수한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아서 좋습니다. 순수한 생각을 가진 사람과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맑음이 제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됩니다. 반대로 순수하지 않은 생각을 가진 사람과는 한시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아 금방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활수는 순수하지 않은 생각을 씻어 주고 순수한 생각을 가지게 해 줍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는데 순수한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순수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자기 곁에 잇는 사람은 대개 순수하지 않은 사람일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순수한 성령이 내주하신다면 자신 곁에 있는 사람이 대개 성령의 사람일 것입니다. 끼리끼리 만나며 살게 됩니다. 순수한 사람은 순수한 성령의 사람끼리 만나게 됩니다. 순수하지 못한 사람은 결국 악마의 모임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하느님을 아는 사람끼리 만나야 편합니다. 하느님을 모르거나 거부하는 사람을 만나면 불편해집니다. 영적인 교사의 가르침은 우리를 성령이 내주하는 삶을 살게 안내해 줍니다. 성령에 젖은 사람만 만나게 해 줍니다.
화려한 만남일지라도 마음이 불편해지면 일단 그 자리를 피하고 그런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평안함을 주는 믿음을 가진 사람과 순수하고 맑은 마음을 소유한 영적인 교사를 만나면 그런 만남이 얼마나 귀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탐욕을 채우려는 영악한 사람을 만나면 일단 그러한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도 그런 탐욕에 물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물질로부터 출발한 탐욕을 확대하고 강화한 것이 우상입니다. 필요한 물질 정도에서 멈출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무 과도하면, 너무 지나치면 화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성교회의 균형감각은 인류에게 큰 빛을 제시했다고 봅니다. 균형잡힌 신앙생활을 하면 거짓 약속이나 거짓 맹세는 나타날 수 없게 됩니다. 세상의 유혹에 너무 쉽게 넘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성공회는 참교회로써 세상풍파에 흔들거릴 수는 있지만 무너지지는 않게 하는 신앙의 교회이며 부패한 세상을 이겨나갈 메시아 구세주가 계신 교회입니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을 모르다가 인류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해 주신 분이 바로 영적 교사입니다. 조부모와 백모와 부모와 누나와 동생들입니다. 그리고 배우자와 자녀들입니다. 집안식구들을 통해서 사랑하는 법과 미워하는 법을 익히고 신뢰하는 법을 익히게 됩니다. 집안 식구들로부터 사랑을 익혔으며 헤어지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먼저 하늘로 가신 조상과 남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예를 갖추는 관계임을 배우고, 변치 않는 사랑으로 살게 하신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으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신앙의 삶을 유산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서로 연결되어 더 큰 가족으로 사는 것이 신앙생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저를 기도하는 사람으로 살게 하고 기쁨으로 하느님께 찬미를 바치는 사람으로 살게 하며 서로를 믿고 살게 해 주신 분들이 가족입니다. 힘들더라도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사람에 대한 신뢰를 갖는 법을 내주하신 성령께서 인도해 주셨습니다.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 큰 스승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들립니다. 그래서 수많은 실수를 하는 부족한 저는 하느님을 찾았고 하느님은 큰 스승들을 제게 보내 주셨습니다. 할머니 권사가 주신 신앙으로 하느님께 예배를 바치고 기도를 올리게 된 삶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빈들에 마른 풀 같이(성가 308장)”와 “내 주를 가까이하려 함은(성가 470장)”의 성가는 할머니가 즐겨 부르시던 찬송가로 우리 가족의 성가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집사의 입에서도 이 성가가 나와서 식구들이 함께 이 노래를 불러 단단한 신앙의 공동체인 성가족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새벽별이 예수이심을 고백한 큰어머니 권사의 새벽종 치는 소리가 우리 집안에 늘 들리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데오 그라치아! Deo Gratias!
하느님에 의해 우리는 복 있는 삶이 됩니다. 이를 보여 주신 분이 김장호요나단신부이십니다. 이념이 준동하는 한국전쟁 이후의 격변기에도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공학공부 덕분에 대기업의 고위직을 포기하고 신학공부를 하시며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셔서 예수를 만나게 하시는 사제이십니다. 또한 타임달러운동을 펼치시어 서로 연결되어 사는 대안 사회의 길을 보여주시고 그리스도의 영성인 성령을 가슴에 머무는 현실에서의 영적인 생활을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젊은 주교들과 사제들의 사목의 과제를 풀며 사는 영적인 길을 살도록 도와 주시는 참 사제이십니다. 성공회에 이렇게 귀한 사제를 보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바치게 됩니다. 데오 그라치아! Deo Gratias! 성공회가 지닌 오랜 전통인 영성을 찾기 위해 대전 나눔의집에서 요나단신부님을 중심으로 1997년 첫 모임을 시작한 성공회 영성센터가 갈급한 성령의 생명수를 성공회 신앙인에게 공급하게 된 것입니다. '성공회 사제로 사는 삶을 어디를 가면 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한다면 구미로 가셔서 김장호신부를 만나면 됩니다. 제게는 성공회 사제의 삶의 모범을 보여 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고결하면서 이성적이고, 애정을 가지셨고 순수하시며, 진지하게 예수님을 찾아가시는 사제의 삶을 배웠습니다.
또한 제게는 영적지도를 받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주신 분은 영국 동남부 텐터든의 피터벨신부(전 켄터베리대성당 주임사제)이십니다. 피터벨신부는 황량한 제 마음을 고요하고 차분하게 하고 하느님을 향하는 길을 안내해 주신 영적인 지도를 해 주신 분이십니다. 욜딩에 살 때 세 달에 한번 정도 만나 제 영적인 삶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분노를 삭이게 하는 영적인 삶을 이끌어 주신 큰 스승이십니다. 절대적인 하느님을 의지하는 삶을 소박한 일상생활에서의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배웠습니다. 큰 체구에 겸손한 삶이 잘 어울린 모습이었습니다. 켄터베리대성당에 가면 피터벨신부가 떠오릅니다. 지금은 마크캐논사제의 친구사제가 주임사제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 바우로 2세 교종과도 친분이 두터우신 사제이셨습니다. 그렇게 텐터든에 가는 길은 천국에 가는 길로 여겼습니다. 피터벨 신부님의 아들은 런던에서 치과의사인데 주일마다 켄터베리대성당에 와서 미사에 참여하며 미사 전에 대성당의 종을 치는 그룹의 종치기 멤버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직무를 잘 수행하는 신도로 삽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몸소 보여주신 분은 고드프리 회장(영국의 켄워드 트러스트 재단)이십니다. 고드프리 회장은 외국에서 온 가난하고 부족한 저희 식구들을 예수의 환대로 맞이해 주신 분입니다. 주일을 맞이하기 위해 동네의 작은 교회를 세워 제도교회에 잘 맞지 않는 사람들과 장애인들이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사는 살아있는 교회를 지키는 이가 바로 고드프리입니다. 오랜 동료인 진이 그린 성당 벽에 천사상과 교우들의 일상사를 그린 고드프리의 그림이 지금 살아있는 삶을 표현하는 성화로 보입니다. 중세기의 화려한 성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지금 움직이시는 하느님을 마주하게 하는 성화를 욜딩의 작은 교회를 방문하면 볼 수 있습니다. 진의 딸이 11살 때 소파에 편히 누운 그림을 좋아했는데 진이 이 그림을 제게 주어서 마음이 산란할 때 그 그림을 보곤합니다. 이 그림을 고드후리가 그린 것입니다. 고드후리도 큰 체구에 겸손한 삶으로 삽니다. 참으로 맑으신 고드후리의 부인 캐럴은 버밍험에서 공부할 때 학생들끼리 연구하면서 만든 것이 장애인을 위한 보도블럭입니다. 길바닥에 블록 위에 조그맣게 나오게 해서 그 감각으로 길을 걷게 하는 블록을 창안한 분이십니다. 보리와 동욱이를 큰 품으로 할아버지처럼 돌봐주신 분이십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 부부를 하느님께서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중독자들을 위한 시설들을 정부의 지원 없이 기도하는 사람들의 후원으로 기도 속에서 운영하다가 최근에서야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다고 합니다. 찰스왕이 주는 메달을 받는 사진을 세상적인 것이라 하며 그 사진을 치우시는 캐럴부인이었습니다. 고드프리는 제 영적인 길을 길게 보게 하고 천천히 걷게 하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고드후리가 소개해준 제프가 제 동생인 조지에게 영어를 가르쳤는데 제프에게서 영어를 이어서 제가 배우게 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인연입니다. 조지의 딸 동은의 세례명을 폴린이라고 한 것은 제프의 부인이 폴린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드후리의 딸이 런던동부에서 노숙인의 집을 운영하는데 축복식을 커리대주교가 해주셨고 이 집의 운영임원에 서덕교구장 크리스 채순 주교가 있고 채순의 교회에 다녔다고 하니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럭비에 사시는 리츠카울리 사제는 데이비드와 사시면서 대한성공회를 무척이나 사랑하셔서 늘 하느님께 대한성공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아내 허성우 막달라마리아가 코벤츄리에서 영어공부를 할 때 데이비드가 차로 태워주셨고 사제관에 머물게 해 주셨습니다. 그때에는 삼성과 관련한 일을 하신 리츠카울리 사제이셨는데 아내의 좋은 영적 안내자이십니다. 애다사제와 시몬사제의 좋은 영적인 안내자이시기도 합니다. 대한성공회 전체를 보시며 대한성공회의 교회성장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한 바램을 지니고 기도하시는 은퇴사제입십니다. 사제관에서 15분 걸어가야 성당이 나오는데 차로 가지 않고 늘 걸어가면서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동네사제의 사목을 훌륭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피터버러허교구가 대한성공회와 친교를 맺으면서 진정한 친교로 가는 길을 리츠사제는 보고 계셨습니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 지점입니다.
노샘턴의 티머시사제와 에스터 사모는 저희 부부에게 아빠 같고 엄마같으신 영적 부모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한국에서 영국에 오신 주교와 사제와 신도들을 자신의 사는 사제관에 머물게 하신 환대의 집의 역할을 한 티머시-에스터 사제 부부이십니다. 허성우막달라마리아가 서섹스대학의 박사과정에 들어갈 때 밥을 해 먹을 그릇들과 수저들을 상자에 챙겨주시며 먼 거리를 차로 태워주신 에스터는 분명히 영국의 어머니이셨습니다. 교구의 어머니연합회장직을 수행하실 때 한 교회를 방문했는데 북한선교를 위해서 뜨개질로 만든 이불을 바자회에 내놓아 기금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고 제가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들은 남한만을 위해서 기도를 하신 것이 아니라 남북한 모두의 선교를 위해서 기도를 하신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에스터의 아버지가 서덕에서 서품을 받고 노샘턴의 캐터링교회에서 사목을 하시면서 한국의 주교로 간 존데일리 김요한주교의 한국선교기금을 모아 보낸 휴로버트 사제였습니다. 지금 케터링교회의 데이비드사제의 위로 5번째 사제가 에스터 아버지 휴사제이신 것입니다. 에스터의 아버지가 사목하시는 케터링교회에서 티머시패트리지와 혼인성사를 하고 사제로 노샘턴에서 사목을 하게 된 에스터남편사제입니다. 에스터의 큰 아들이 지금 솔즈베리교구의 사제로 사목활동을 하는 스티븐 패트리지입니다.
이번 람베스주교회의에서 제가 솔즈베리교구의 안드류 럼지 주교와 친하게 지냈던 연유는 조선성공회를 설립하신 찰스 존코프주교와 2대 단아덕주교가 솔즈배리 출신이어서 감사의 마음을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터의 아들 스티븐 패트리지가 솔즈배리교구의 사제로 사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에스터의 남동생이 피터버러허교구의 사제로 기차로 가는 것을 좋아하신 사제로 교회사역을 하다가 지금은 은퇴하셨습니다. 티머시-에스터를 한국에 모셔서 나눔의집 사역을 보셨습니다. 작년에 노샘턴의 가족노인요양원을 방문하여 담소를 나누고 치유의 안수기도를 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던 기억이 납니다. 온 식구들이 하느님을 향한 집안으로 영적교사집안인 셈입니다. 우리집이 영적교사집안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욜딩에서 브라이톤에 가다보면 중간지점에 억필드가 있습니다. 억필드에 말타하우스에 종종 들려서 로이와 마가렛부부를 만나서 차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곤 했었습니다. 말타하우스에 조지가 방문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물고기 모양을 정원에 만드는 작업을 도왔던 일이 있었습니다. 후에 로이드의 딸 수지가 포천에서 영어교사로 일했을 때 로이가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었습니다. 로이는 영국성공회의 “교회군대 Church Army” 소속으로 오랫동안 평신도로 선교사의 직무를 수행하신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마침 처치아미의 이사장이 요크대관구의 스티븐 퀘트렐대주교이시라 연결이 이렇게도 되나 싶어 놀랍습니다. 수지가 한국의 친구들과 연결을 하고 있기에 올해 오월에 로이와 마가렛과 수지가 방문을 한다고 합니다. 그 때 조프란시스 사제가 환대해 주실 것입니다. 영국의 평신도 신앙운동을 조직적으로 펼친 로이의 선교열정이 우리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오셔서 샌앤드류대학에서의 제레미 아들의 장례성찬례에 참석해 주셔서 우리에게 위로의 기도를 해 주신 로이의 하느님의 마음이 제 안에 영적인 교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막힐 수도 있는데 그때 찾아가는 영적인 가르침을 주는 교사가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교로써 어떤 문제를 풀지 못할 때 길을 안내해 주시는 박경조 프란시스주교는 지금도 저의 고민에 말씀을 해주시고 함께 기도해 주십니다. 그리고 신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사제로의 길로 안내해 주신 우덕기 마가신부는 하느님이 제게 보내 주신 큰 스승으로 지금도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는 사제이십니다. 사제가 되겠다는 저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를 해 주신 마가신부이십니다. 하느님을 안으로 안으로만 모시고 사시는 사제라 조심스럽지만 자신 스스로 가슴을 펼치고 싶으신 사제이심을 알면서도 그리 안내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인 안내를 해 주시는 교사를 만나는 것은 저의 신앙생활을 위하여 기도하는 시간을 내는 것입니다. 큰 문제를 만나면 하느님은 큰 문제를 푸실 영적 안내자를 제게 보내 주셨고 사소한 문제에 제 영혼이 넘어지면 그 문제를 풀 영적 지도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일 년에 서너 번을 만나 기도하며 속 문제를 나누다 보면 평안한 마음이 되고 길이 보이게 됩니다. 영적교사는 주일학생을 가르치듯이 우리의 영적인 길을 보여주십니다. 뉴욕이 대전과 가까운 곳이라는 인상을 주신 분이 미국 뉴욕교구의 신알랜주교와 문클라라사모이십니다.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 주신 분으로 영적인 사제의 길이 어떤지를 손수 제게 보여주신 참으로 인간적이면서 영적인 주교부부이십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따르고 하느님의 마음이면 거리가 문제가 되지 않고 하나가 되는 길을 제게 가르쳐 주신 부부입니다. 하느님께는 먼 곳이 없기에 성령의 배가 그려진 찰스존코프의 선교의 그림이 신알랜주교에게서 보입니다.
한국인은 한국역사에 대해 공부를 해야만 합니다. 이스라엘인이 성경을 자신의 역사서로 공부하는 것처럼 자신의 역사를 배우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놓치면 인생의 방향을 놓치게 됩니다. 한민족이 나아갈 방향을 잡으려면 우리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이런 뜻으로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움직이시다가 삶을 빼앗긴 교수신도의 교수남편이 계십니다. 고결하게 사시는 부부교수라 가까이할수록 힘을 얻게 됩니다. 하느님은 역사를 지키려다가 세상이 빼앗아간 것보다 훨씬 많이 우리 부부교수신도 안에 복으로 채워주시고 계십니다. 김한종교수의 배우자이신 황프란시스교수신는 늘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십니다. 하느님이 눈물의 축복을 주셔서 많은 신도들에게 감동을 주십니다. 시련과 고난이 준 눈물이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알리게 됩니다. 한 사람을 통해서 하느님을 알게 되는 길은 숭고한 길입니다. 그렇게 영적인 교사의 만남을 고난 중에 하느님이 보내 주십니다. 거대집단인 국가가 한 사람의 인권을 너무 쉽게 짓밟을 수 있다는 것을 이 교수 부부를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부부가 서로를 의지하며 예수님을 향한 모습이 신도들을 더 깊은 성덕이 깊은 곳으로 영적인 안내를 해 주십니다. 정체성은 공동체를 강화하는 요소이기에 성경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됩니다. 과거의 하느님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움직이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하시는 분이 우리의 영적인 교사이십니다. 대학교의 연구실을 청소하시는 여성이 연구실의 주인인 교수신부의 영적인 지도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세섹스대학교의 철학교수인 가빈신부가 기억납니다. 또한 준비를 철저히 하고 오래도록 연락하며 만나는 런던 히드로 근처의 성당에서 시무하시는 진지하고 재미있으신 로버트 가톨릭신부가 계십니다. 참으로 영국적인 로버트 가톨릭 사제를 보면 자신을 정확히 알 때 커다란 진보의 사회를 형성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제게 영적인 교사로 하느님이 보내 주신 분들입니다.
하느님에 심취하여 이 세상과는 부적응하면서도 즐겁게 사시는 이상주의자 김홍식아타나시우스신부가 하느님의 사람으로서의 사제상을 보여 줍니다. 길을 사이에 두고 두 눈으로 엄마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사랑을 나눴던 어린 시절의 소록도 이야기는 참사제로 그분을 살게 하신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손과 촉각으로 사랑을 나누는 삶인데 눈으로만 시각으로 사랑을 나눈다는 것이 어마나 처절한 사랑인가를 경험한 아타나시우스사제의 삶에서 수난당하시는 예수상을 봅니다. “형 신부님, 술 좀 주셔요.”라고 부탁하는 제 속을 오가는 아타나시우스 사제의 따스한 환대는 저를 예수의 품으로 안기게 해 줍니다. 또한 강수근 고난의집 아빠스수사는 제 고등학교 동기로 푸근한 수사사제의 삶으로 대금을 잘 불던 친구입니다. 아내인 허성우 막달라마리아의 마음을 참된 위로로 기도해 주신 사제이십니다. 또한 제 선배인 전재식사무엘신부가 교회의 일반사목의 선수이신 사제로 제 눈에 들어옵니다. 주교 뒤에는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분들이 계신데 최고의 주교 뒤의 임무를 수행해 주신 주교 위의 사제이십니다. “밥 한번 하셔요.”라고 하면 모든 것을 제쳐놓고 깊은 대화의 시간을 나눠주신 주교의 사제이십니다. 세상 속에서 예수로 사시는 사제의 삶의 전형을 주교에게 보여주신 분들이십니다. 제게 때로는 형처럼, 때로는 선배처럼 속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부족한 제게 보내 주신 분들을 만나면서 많이 배우고 깨달아 하느님을 향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만나는 사람들을 더 정성을 들여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를 살려주시려고 많은 사람들을 제게 보내 주셨기에 감사를 바칩니다.”
앤드류 럼지주교는 작가이면서 대중음악가로 왕성한 열정을 지니신 주교로 레베카배우자와 함께 하느님의 종으로 대단한 삶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십니다. 솔즈배리교구장 주교로 2022년 4월 25일 대성당에서의 성품식 설교에서 스티븐 레이크는 탈란트 비유를 들면서 천명의 신도들에게 10파운드씩 주면서 제자로의 삶을 살면 하느님이 기뻐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주신 것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대한성공회가 세분의 주교라면 두 주교는 전통적인 성공회를 수호하는 사목활동을 하시고 다른 한 주교는 대중성을 확보하는 작가 내지 예술성을 지닌 주교로 대중적으로 선교하는 앤드류 럼지주교 같은 분이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제가 나눔의집 출신으로 주교사목을 다양하게 제대로 펼치지 못한 점이 떠오릅니다. 모두 획일화하려는 전체주의적인 인식이 우리를 작게 만든다 생각이 듭니다. 다양한 길을 가게 하면 전통도 살고 성교회가 성장하는 교회가 되는데도 말입니다. 다음은 솔즈배리교구장 스티븐 레이크주교의 성품식의 설교문의 후반부입니다. 우리 성교회가 나아갈 길과 우리 그리스도인인 신도가 나아갈 길이 떠오르실 것입니다. 하느님이 오늘 우리에게 보내 주신 영적인 교사의 말씀을 들읍시다.
“당신은 이제 이 선물 10파운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당신에게 맡겨진 당신의 달란트 재능입니다.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대주교이신 예수가 부를 경우를 대비하여 그 선물을 묻어 두시겠습니까? 아니면 이 선물에서 좋은 것이 나올 수 있도록 성장시킬 것입니까? 이 선물은 돈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이 선물은 예수와 공유하는 달란트 재능으로 당신이 할 일에 관한 것입니다. 아마도 더위와 식사 사이에서 선택하는 사람을 위해 식사를 사십시오. 아마도 지역 푸드 뱅크를 지원하거나 본당의 최신 기금 모금 프로젝트에 기부하십시오. 교회 지붕 타일을 구입하고, 외로운 사람을 데리고 술을 마시며 그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왜 예수가 그들을 사랑하는지 말하십시오. 적어도 그것을 선물하고 아마도 수단 의료 링크에 기부하십시오. 오늘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려운 이들을 지원하는 새로운 기도모임을 만드는 교회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과 자신감 있는 교회는 달란트의 재능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당신은 세상을 바꿀 수있는 힘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솔즈베리는 재능이 있습니다. 당신은 그것이 우리에 관한 모든 것, 당신의 모든 그리스도와 같은 달란트 재능으로 구성된 솔즈베리 교구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직 우리만이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고, 오직 우리만이 우리가 위대하다고 알고 있는 것을 구할 수 있으며, 오직 우리 모두가 함께 일하면서 한 몸으로 함께 일하는 것, 즉 거룩하고, 비전이 있고, 변화시키고, 용감하고, 통합하고, 가시적이고, 돌보는 것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의 직업이며 이것은 우리의 직업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시대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달란트 재능입니다. 이 선물은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의 왕국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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