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MNmjEZbYidM?si=KynZBQLTaNya50W6
Poulenc: Improvisation n°15 « Hommage à Édith Piaf » | Florian Billot, piano
에디뜨 피아프(Edith Piaf 1915~1963)
1915년 프랑스 파리 출생의 "에디뜨 피아프"는 프랑스 샹송계의 "빌리 할러데이"로 불리우며 추앙받는 인물이고 "이브 몽땅"의 부인으로도 유명하다. 서커스 단원이던 아버지와 카페의 무명 여가수 사이에서 출생한 그녀는 곧바로 거리에 버려져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거리의 거지로 불행한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너무 심한 고생을 해서 6살때는 잠시 시력을 잃기도 했고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동냥으로 연명했으나, 불우한 환경속에서 꿋꿋한 삶을 살아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샹송 여가수 중 한명으로 존경받는 자리에까지 올라섰다.
10살때부터 노래를 직업으로 삼았고 16살때는 한 군인과의 사이에서 딸 "Marcelle"을 낳았다. 하지만 딸은 2년후 수막염으로 사망하는 불행이 이어졌다. 거리에서 노래를 하며 동냥하던 그녀를 눈여겨본 프랑스의 작은 술집 주인"르이 로프레"는 그녀를 자신의 술집에서 노래하도록 했는데, 이 무렵 그녀의 나이는 20살이었다.
이 곳에서부터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그녀는, 작곡가 "레이몽 아소(Ramond Asso)"와 "모리스 슈바리에(Maurice Cheval!ier)"의 도움으로 서서히 샹송계의 스타가 되기 시작했다. 1936년 성이었던 "Gassion"을 없애고 "참새"라는 의미를 지닌 "피아프(Piaf)"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Edith Piaf"는 프랑스를 넘어 유럽 일대까지 유명해졌다.
미국에서 만난 권투선수 "마셀 셀당(Marcel Cerdan)"과 1948년 결혼했으나 1년만에 비행기 사고로 남편을 잃었는데, 1950년에 그녀는 진실로 사랑했던 남편을 위해 "사랑의 찬가(L'Hymne A L'amour)"를 만들어 바쳤다. (이 곡은 우리 나라의 음악 교과서에 실릴만큼 유명한 곡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그녀는 술과 마약에 중독되어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후, 작곡가 "자끄 필스(Jacques Pills)". "테오 사라포(Theo Sarapo)", "이브 몽땅"등과 결혼을 했으며, 1963년 병으로 사망했다.
글출처: 웹사이트
https://youtu.be/me8i-ZY58Uk?si=xnkDOVMmRQX51eGh
F. Poulenc: "Hommage a Edith Piaf" Improvisation n. 15 - Sara Costa, pi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