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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
돌봄 소설집
강석희 김다노 백온유 위해준 전앤 최영희 황보나 지음
꿈꾸는돌 41|236면|무선(반양장)|140×210mm|값 14,000원|출간 2024년 12월 13일
ISBN 979-11-92836-97-3 44810 | ISBN 978-89-7199-432-0 (세트)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돼. 이대로도 좋아.
우리 같이 있으면 좀 더 안전해지지 않을까.”
강석희ㆍ김다노ㆍ백온유ㆍ위해준ㆍ전앤ㆍ최영희ㆍ황보나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들이 들려주는 ‘돌봄’ 이야기
지금 청소년 문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소설집 『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가 꿈꾸는돌 41권으로 출간되었다. 『유원』 『페퍼민트』 등의 작품으로 ‘영케어러’ 문제를 조명한 백온유를 비롯해 『꼬리와 파도』 『내일의 피크닉』 등 청소년의 노동과 폭력을 핍진하게 그려 낸 바 있는 강석희의 신작을 담았다. 『네임 스티커』로 제14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황보나, 『우리는 마이너스 2야』로 제21회 사계절문학상을 수상한 전앤, 『최악의 최애』 등의 작품으로 아동문학에서 남다른 주제 의식을 보여 온 김다노, 『모두가 원하는 아이』로 제12회 웅진주니어문학상을 수상한 위해준, 독보적인 세계관으로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섬세하게 그리는 최영희의 신작까지 만날 수 있는 소설집이다.
반짝이는 우정, 따뜻한 위로 속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
표제작인 전앤의 「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에는 고등학교에서 여자 축구부를 만들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으나 반별 대항전에서 단짝 남주에게 패스하지 않고 결국 자책골을 넣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날 이후 작아진 ‘오른발’로 인해 절뚝이며 걷는 것도, 서먹해진 남주와의 관계도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 한때 자랑이었지만 지금은 골칫덩어리가 된 유진의 ‘오른발’을 통해 사춘기 10대에게 “나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이 곧 자기 돌봄”이라고 이야기하는 성장 소설이다.
한국 리얼리즘 청소년문학의 차세대 작가로 손꼽히는 강석희의「녹색 광선」은 휠체어를 타는 이모와 섭식 장애가 있는 여성 청소년의 비 오는 날 산책을 그렸다. 이모가 땅의 기울기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약속 장소를 고르지만, 한편 화장실에 가는 이모를 버거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청소년이 감당할 수 있는 돌봄의 범위와 크기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다. 이어지는 김다노의 「낙원」은 작가가 선보이는 첫 번째 청소년소설로, ‘악어’와 함께 사는 주인공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모이는 ‘쉼표’에서 두 친구를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몽환적인 소설이다.
일찍이 ‘영케어러’ 문제를 청소년문학으로 가져온 백온유의 「샤인 머스캣의 시절」은 기후 위기 등의 환경 변화로 원인 모를 알레르기를 앓고 있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렸다. 피해야 할 음식과 향을 세심하게 고르는 것뿐, 소년을 향한 여자 친구 희지의 감정은 보통의 사춘기 첫사랑과 별반 다르지 않다. 초여름이 떠오르는 산뜻한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첫사랑의 실패로 가슴앓이하는 청소년들에게 다정한 위로를 건네는「바코드 데이」와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족의 의미를 고민하던 청소년과 은퇴한 전투 로봇의 우정기 「귀여워지기로 했다」도 선물 같은 작품이다.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와의 어느 여름 방학을 담은 황보나의 「가방처럼」은 자신을 향한 할머니의 온정을 뒤늦게 깨달은 주인공의 가칫한 감정을 통해 상호 돌봄을 이야기한다.
누군가를 돌보고, 또 돌봄받으며 성장하는
이 세상 모든 존재들을 향한 일곱 빛깔 이야기
『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에 실린 일곱 편의 소설은 여러 가지 형태의 ‘돌봄’의 모습을 보여 준다. 청소년이 마주하는 ‘돌봄’을 통해 ‘관계’와 ‘성장’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소설집으로, 여러 형태의 돌봄을 행하는 10대 주인공의 일곱 가지 이야기를 담았다. 청소년은 언뜻 ‘돌봄’을 자신과 동떨어진 문제로 느낄 수 있으나 동생을 돌본 경험, 조부모 혹은 부모를 돌본 경험, 자기 감정을 돌아보는 일까지 돌봄은 생각보다 청소년의 가까이에 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인간은 누구나 돌봄받고,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가는 상호의존적인 존재임을 환기하고, 자신이 돌봄받은 경험을 떠올리게 되기를 기대한다.
추천사
이 책의 주제인 ‘돌봄’과 관련해 생각나는 두 현상이 있다. 하나는 사회 복무 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청년들이 가장 꺼리는 기관이 요양원이라는 사실. 다른 하나는 외국인 가사 관리사 시범 사업에서 발생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조건 이슈. ‘시장 체제’에서 ‘돌봄 체제’로의 변환을 모색해 오고 있지만 여전히 돌봄 노동의 가치는 시장의 교환 가치처럼 평가되지 못하고, 자신을 돌봄 노동의 주체로 규정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돌봄 노동은, 저임금으로 남에게 떠넘길 수 있다면 굳이 도맡고 싶지 않은 허드렛일이나 국가가 나서서 완벽히 책임지면 해결될 일쯤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이제 다음 세대에게 돌봄의 가치를 나누어야 할 때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타인의 돌봄 없이 살아가는 존재는 없기에 전 생애에 걸쳐 서로 돌보고 돌봄을 받는 연습이 지금부터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기 주변의 위대한 돌봄들을 찾아보고 수행하며 돌봄의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일에 이 책이 작은 시작점으로 청소년 곁에 있어 주면 좋겠다.
* 김유진(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구체적인 어린이』 저자)
좋은 소설은 단어에 얹힌 낡은 먼지들을 떨어낸다. 『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 속 작품들은 돌봄의 새로운 정의를 제안한다. 소설에 그려진 모든 돌봄 행위는 시혜자-수혜자로 분리되지 않는다. 돌봄을 중심으로 연결된 이들은 서로의 삶에 스며 각자의 흔적을 남긴다. 세상 여느 관계가 그렇듯 다채로운 빛깔과 질감으로. 책을 읽는 내 물을 흠뻑 머금은 붓으로 그린 수채화를 떠올렸다. 왜 나는 세상의 모든 돌봄 서사를 무채색이라 단정 지었을까.
소설에 등장하는 존재들은 함부로 대상화되지 않는다. 이들은 안타까운 사연을 내보이며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하지도, 반대로 당당하고 다부진 모습을 보이며 “이것 봐. 우리는 이렇게 주체적이야.”라고 증언하는 도구로도 기능하지 않는다. 이들은 비참한 모습을 전시하지도, 힘과 용기를 애써 그러모으지도 않은 채 그이 자체로 지면을 밟고 존재한다. 소설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일 힘을 갖는다면, 그 근원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은 타자를 매번 재발견하려는 노력’이라 말하는 이 장르의 윤리성에 기반할 것임을 다시 확인한다.
* 김영희(전국국어교사모임 독서교육분과 물꼬방 교사)
차례
강석희 | 녹색 광선
김다노 | 낙원
백온유 | 샤인 머스캣의 시절
위해준 | 바코드 데이
전 앤 | 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
최영희 | 귀여워지기로 했다
황보나 | 가방처럼
본문 중에서
발음이 또렷하진 않지만 목소리만큼은 단단한. 너무나 이모의 것인 말. 화가 나면서도 반가워서 나는 별안간 울어 버렸다. 한결같다. 정말 한결같다.
―강석희 「녹색 광선」, 12면
나는 이모가 왜 우리 집에 올 수 없었는지 생각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는 길을 이모가 잘 갔을지, 애초에 어떻게 왔을지 곱씹었다.
―강석희 「녹색 광선」, 15면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이 도시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 어디인지 내다봤다. 빽빽한 아파트들에 막혀 하늘조차 조각나 있었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데 이렇게나 서로의 안녕을 모른다.
―김다노 「낙원」, 56면
등에 멘 가방을 한 번 추켰다. 집에서 멀어질수록 가방이 조금씩 무거워졌다. 언젠가 나도 라마처럼 지금보다 훨씬 큰 가방을 몸의 일부처럼 업고 다닐지도 모른다. 여전히 사랑을 바라고 청하면서. 그렇게 어른이 될 것이다.
―김다노 「낙원」, 64면
급식도 꼭 챙겨 먹어. 친구들이랑 좋아하는 떡볶이도 먹고, 빵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어 줘. 사소한 일로도 큰 소리로 웃어 줘. 난 그 웃음소리를 들을게. 분명 나도 행복해질 거야.
―백온유 「샤인 머스캣의 시절」, 70면
우리는 함께 웃었다. 입으로는 내뱉지 않았지만 아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백온유 「샤인 머스캣의 시절」, 83면
살아오면서 체득한 많은 경험들이 지우를 더 조심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자신이 입에 넣는 음식만큼이나 신중하게 말을 골라 내뱉는 지우를 좋아했다. 나는 일상에 스며 있는 지우의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경박한 농담에 웃지 않는 것도, 다른 아이들의 말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 것도 모두 좋은 점이라고 생각했다.
―백온유 「샤인 머스캣의 시절」, 89면
“나도 조심성을 키울게. 건강해질게. 우리 같이 있으면 좀 더 안전해지지 않을까. 뭣보다 난 너랑 같이 먹는 도시락이 좋아졌단 말이야.”
수업 시작 종이 쳤다. 원래라면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벌떡 일어나 서둘러 교실로 향했을 지우가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장난스럽게 샤인 머스캣 세 알을 연달아 지우 입에 넣었고, 지우는 다람쥐처럼 입안 가득 과일을 물고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백온유 「샤인 머스캣의 시절」, 102면
그날 이후, 본구는 자주 그 순간을 떠올렸다. 려은과 함께 하교하려 기다리던 낮에도, 려은에게 연락이 닿지 않던 밤에도, 려은이 일방적으로 커플을 해지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그 일’ 이후 경찰 조사를 받던 순간에도, 본구는 나란히 바코드를 찍었던 때를 떠올렸다.
―위해준 「바코드 데이」, 111면
“챙겨야 할 사람이 있구나?”
홍의 말에 원과 수가 흙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숨 막히는 흙먼지 너머로 “찾았다!” “무사해!”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작은 불빛들을 바라보며 본구는 손등으로 거칠게 눈물을 닦아 냈다.
바코드 인증 같은 게 없어도 본구는 혼자가 아니었다.
―위해준 「바코드 데이」, 134면
이럴 수가. 내 발 치수는 245인데 지금 오른발은 225쯤 되어 보였다. 이제는 확연히 눈에 띄게 작아졌다. 계속 이렇게 줄어들면 어쩌지?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보았다. 아무런 통증도 없었다. 모두 잘 움직였지만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한참을 내려다보다 정신을 차리고는 얼른 운동화 속에 발을 감추었다.
―전앤 「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 152면
“있잖아, 이런 말 하면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 나 오른발이 작아졌어.”
“정말?”
“아프진 않아. 그래도 걱정돼.”
설이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물었다.
“너 발이 작아진 게 처음이야?”
“너도 작아진 적 있어?”
“당연하지. 내가 애니메이션을 끊지 못하는 이유잖아. 이걸 보면 발이 조금씩 커지거든.”
―전앤 「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 158면
“익숙해지면 괜찮아져.”
“이게 익숙해진다고?”
나는 이런 변화가 왜 찾아온 건지 당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울상을 짓는 나를 보며 설이가 미스터리 영화를 보면 도움이 될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세상에는 비현실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데 그런 변화를 겪는다고 해서 절대 삶이 불행해지는 건 아니라면서.
―전앤 「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 159면
어제와 다른 내가 되고 싶었다.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러자 발바닥이 부풀어 올랐다가 납작하게 작아지면서 함께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전앤 「너의 오른발은 어디로 가니」, 162면
가끔씩 별채 소파에서 잠을 잘 때가 있었다. 엄마와 나 사이에 해독되지 않은 암호들이 들어찬 것 같아 먹먹해질 때, 반대로 그 암호들이 갑자기 풀리면서 그간 몰랐던 이야기들이 벅차게 들이닥칠 때…….
―최영희 「귀여워지기로 했다」, 198면
“누군가가 좋아하는 로봇으로 뽑혔던 날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최영희 「귀여워지기로 했다」, 201면
“그때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다는 걸 인정해야 할 때가 왔군요. 다유 님, 나 이제 귀엽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나는 제프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프래베니 1기 로봇이 귀여워서 좋다는 사람도 있을 거야.”
“정말인가요?”
“확실해.”
―최영희 「귀여워지기로 했다」, 202~203면
친구라는 단어에 또 수현이가 떠올랐고 갑자기 수현이의 목소리가 몹시 그리웠다.
―황보나 「가방처럼」, 223면
“내가 너무 갖고 싶은 게 있었거든. 뭐라 그럴까, 그러니까 예를 들면 가방 같은 거 말이야. 근데 나로서는 도저히 가질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그거를 아예 없는 것처럼 취급하며 지내야겠다고 생각했어.”
―황보나 「가방처럼」, 228면
“암튼 나도 가방이라는 거지?”
내가 물었다. 수현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한수현 너도 가방 해. 내가 진짜 가방이고 너도 진짜 가방이라면 너 나중에 힘들 때 가방 안에 숨어.”
“가방?”
“응. 내가 숨겨 준다는 말이야.”
―황보나 「가방처럼」, 229~230면
나는 할머니가 내 신발을 숨겨 두었던 곳을 더듬듯 찾아보았다. 그곳의 온기가 유난히 따스했다. 할머니는 내 발이 시리지 않도록 신발을 데워 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할머니를 돌본 덕이라고, 고맙다고들 했지만 사실은 할머니가 내내 나를 돌보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 버렸다. 자꾸만 부아가 치밀었고 아무래도 이 가칫한 감정 덩어리는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의 질감이었다.
―황보나 「가방처럼」, 231면
작가 소개
강석희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쓴 책으로 소설집 『우리는 우리의 최선을』, 장편소설 『꼬리와 파도』, 『내일의 피크닉』 등이 있다.
김다노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쓴다. 끝을 만들어 가는 건 각자의 자신이라 믿고 있다. 201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며 등단했고, 제1회 나다움어린이책 창작 공모전에서 『비밀 소원』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비밀 숙제』, 『최악의 최애』 등이 있다.
백온유
2017년 장편동화 『정교』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유원』, 『페퍼민트』, 『경우 없는 세계』, 『냠냠』 등을 출간했다.
위해준
2019년 웅진주니어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22년 서울문화재단 창작 지원금을 받았다. 장편동화 『모두가 원하는 아이』, 그림책 『한 사람』을 썼다.
전앤
2023년 『우리는 마이너스 2야』로 사계절문학상을, 같은 해 『러브 피프틴』으로 교보문고-롯데컬쳐윅스 스포츠 테마 소설상을 수상했다. 소설을 읽다 멈추는 순간을 좋아한다. 그 순간을 붙잡아 긴 이야기를 쓴다.
최영희
모든 이의 인생에 귀여운 로봇 하나쯤은 마땅히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SF 소설가다. 제1회 한낙원 과학소설상과 제5회 황금드래곤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장편 『써드 1,2』, 단편 「시민R」, 「휘어지는 직진」 등의 로봇 SF를 썼다.
황보나
『네임 스티커』로 제14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