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024.10.18.금요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2티모4,10-17ㄴ 루카10,1-9
믿는 우리의 신원
“관상의 제자, 선교의 사도”
“당신께 비옵는 누구에게나,
진정으로 비는 누구에게나,
주님은 가까이 계시나이다.”(시편145,17)
오늘 교황청 홈페이지에서 어느 예수회 사제의 이색적인 기사를 읽었습니다. 어제는 보름이요 유난히 크고 밝은 보름달(supermoon)이었고 다음과 같은 기사였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하며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고 거의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다. 밤하늘, 특히 달의 아름다움은 한결같은 아름다움이요, 우리에게 우리보다 더 큰 무엇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 인간은 너무 빛을 밝게 만들어 하느님의 빛에 눈멀게 되었다. 별을 바라보는 단순한 수행이 기도처럼 되어야 한다. 한번 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할 수 있다면 매일 실천할수록 좋다.”
하루중 얼마나 하늘을, 하늘의 태양을, 하늘의 별들을, 하늘의 노을을 바라보는 지요? 땅에서의 활동에 앞서 하늘의 관상이, 선교에 앞서 주님과의 친교가 우선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신원은 안으로는 관상의 제자이자 밖으로는 선교의 사도입니다. 안으로는 관상의 마리아로, 밖으로는 활동의 마르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은 사랑, 똑같습니다. 안팎은 분리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관계입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과의 친교 관계가 우선입니다.
“하늘 있어 산이 좋고
산 있어 하늘이 좋다
하늘은 산에 신비를 더하고
산은 하늘에 깊이를 더한다
이런 사이가 되고 싶다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늘 읽어도 늘 새로운 제 자작애송시입니다. 주님과의 날로 깊어지는 관계를 상징하는 하늘과 산의 시입니다. 오늘 주님은 일흔 두 제자를 파견합니다. 오늘은 루카 사도 축일입니다. 혹자는 루카가 일흔 두 제자들 안에 포함되지 않았겠나 추측하지만 확실치는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바오로 사도가 “루카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라는 고백에서 보다시피 바오로 사도의 의리있는 제자였음이 분명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때가 되자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일흔 두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새삼 이들 제자들의 배경에는 늘 주님이 함께 하심을 깨닫습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우리 삶의 복음 선포의 현장은 바로 우리 삶의 자리입니다. 저는 이를 일컬어 존재론적 복음 선포라 합니다. 말그대로 무소유라기 보다는 무소유의 정신으로 민폐를 최소화하면서 주님과의 관계로 무장하고 이리떼 세상 한복판에서 형제들의 환대에 의존하면서 선교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말그대로 주님의 평화의 사도로서 주님의 평화를 나누는 삶의 선교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느님 나라의 현존이 되어 산다면 치유는 저절로 일어나고 복음 선포는 저절로 이뤄질 것이니 이보다 더 좋은 선교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과의 깊어지는 관계가 우리를 하느님 나라의 현존이 되게 할 것입니다. 제자들이 선교활동에 전념한다 할지라도 이들의 돌아갈 중심은 주님뿐입니다. 이어지는 복음에서 이들 일흔두 제자들은 주님께 돌아가 그 활동 사항을 보고합니다. 언제든 돌아갈 주님이 계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요!
제자들 역시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임이 확실히 드러납니다. 우리의 선교활동도 선교에 앞서 공동체의 중심인 주님과의 관상적 친교 관계가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오늘 우리는 제1독서에서 바오로가 로마에서 순교의 죽음을 앞둔 수인 상태에서 저리도 평온할 수 있음은 어제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오처럼 주님과의 깊은 믿음 관계에 있음을 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완전히 죽음에 초연한 바오로입니다. 바로 다음 고백이 사도의 믿음을 반영합니다..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바로 주님과의 깊은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바오로 사도의 모든 선교활동의 원천이었음을 봅니다. 바로 우리의 정주서원이 의도하는바도 우리 삶의 중심인 주님께 깊이 믿음의 뿌리를 내리는 데 있음을 봅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주님과의 관계를 깊이하며. 충실히 복음 선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끝으로 늘 해도 늘 새롭고 좋은 고백기도시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당신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