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번잡할 때면 공원을 걷습니다. 조용히 산책로를 거닐다 보면 지난 계절의 흔적을 품은 마른 풀 사이로 여린 쑥과 초록 잎들이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다 타버린 듯 메마른 땅에서 어떻게 이토록 눈부신 생명이 다시 피어나는지,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지는 위로를 받습니다. 모두가 끝났다고 여길 때에도 보이지 않는 땅속 깊은 곳에서 생명은 숨죽여 살아 있었습니다. 매서운 바람에 겉잎은 바스러졌을지언정, 뿌리만큼은 차가운 겨울을 묵묵히 견뎌낸 것입니다. 모진 계절을 견뎌낸 낡은 잎들은
따스한 봄볕 아래 새싹이 온전히 자리 잡은 뒤에야 비로소 흙으로 돌아갑니다.
1박 2일동안 해남땅끝 마을을 둘러보며 느낀 바는 '끝이 준비한 시작'이었습니다
올망졸망한 섬들 사이 바다는 파도를 다독여 미역과 김, 전복을 키우게 했습니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은 황토밭에 고구마를 심었고 좁은 논에 벼를 가꾸었습니다
모진 시련의 겨울 앞에 마음이 닳은 유배 정치인들의 학문과 예술 혼을 품어주었습니다
바다 혼을 국난극복에 쓴 충무공과 어부사시시사와 오우가를 남기신 고산 윤선도를 품에 안고
오랫동안 유입되는 현대문명의 온갖 오염을 걸러가며 곳곳에 기념관과 전망대와 탑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메마른 겉모습만으로 미래의 삶의 가능성을 단정지을 순 없지요 우리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여전히 희망의 뿌리와 단단한 회복의 힘이 숨 쉬고 있듯이 영호남의 보이지않는 갈등과 교류의 망설임이 부질없다는 것을 방문객 숫자가 증명해줍디다 자신을 믿고 묵묵히 버텨낸 자리에는 반드시 파릇한 새순이 돋아나듯, 한반도 땅끝마을에도 지금보다 더 눈부신 미래가 기필코 찾아올 것이라 믿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