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년 전 일본의 바이오 벤처
미국의 장년세대는 어릴 적 속이 더부룩하거나 체했을 때 복용하던‘디카디아스타아제’라는 소화제를 기억한다. 미국의 가정 상비약으로 통하던 이 약의 개발자는 다카미내 조키치라는 일본인이다 디아스타아제라는 소화효소 이름 앞에 붙은 ‘다카’는 그이 성에서 따온 것이다
의사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서양 학문을 공부한 다카미네는 1880년 영국 글래스고 대학에 유학하여 서양 과학문명과 자본주의를 체험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다. 귀국 후에는 관료로 일하면서 일본 특허제도를 정비하여 과학기술입국의 초석을 다지는 한편 본업인 연구에도 매진하여 1887년 영국에서 고지를 활용한 주정제조법 특허를 획득하는 등 그가 일본 과학기술사에 남긴 족적은 작지 않다
다카미네의 진가는 빛을 발한 것은 과학기술을 사업화하는 그의 신학융합 능력이다 유학 시절 화학비료제자 기술을 습득하여 1866년 시부사와 에이이치 등 유력자본가와 손잡고 도쿄인조비료회사를 설립한 것이 인생 전기가 되었다 양족사의 외손자로 고지를 활용한 기능성 신물질 개발에 천착한 그는 1890년 미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사업에 도전 한다.
도전이 결실을 본 것은 1894년 최초 의소화효소제 제로 알려진 다카 디아스차제 개발이다 그는 1901년 아드레날린 호르몬을 추출하여 결정화하는 기술을 개발 하여 특허를 받기도 하였다. 현대로 치면 특허를 활용한‘바이오벤처기업가’였다. 던 샘이다 그가 미국에서 벌어들인 재산이 3000만 달러에 달한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큰돈을 거두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이 근대화는 메이지 유신과 같은 정치 변동 이벤트가 아니라 과학 기술인이 주도한 지식 시반 산업화 과정에 주목했을 때 그 본질과 실체를 더 잘 이해 할 수 있다.
첫댓글 과학과 의학에 대한 창의와 열정이 개인의 성공과 나라의 부을 이루는 좋은 사례이군요...감사
이런 사람을 적극 지원하고 해야 하는데 죄인들은 야바꾼들을 지원하고 있으니 언제 일본따라가 50년 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