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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유럽과 극동 아시아를 연결하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입니다.
제국주의 시대 제정 러시아의 극동 진출 야망이 이 장대한 철도를 탄생시켰습니다.
이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한반도 종단 철도와 연결되면 한반도와 유럽이 육로로 연결될 수 있어서
통일 시대를 열어가야 할 우리에게도 관심의 대상입니다.
이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최근 러시아가 다시 주목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일대일로 전략, 즉 신 실크로드를 통해 서방 진출을 꾀하는 반면, 러시아는 시베리아 철도로 극동 진출의 꿈을 되살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남북한을 잇는 경원선 남측 구간 복원 공사가 지난 5일에 시작됐는데요.
한반도 종단 철도의 성사에도 남북한보다는 러시아가 더 적극적이라고 합니다.
이정민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달 1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유라시아 특급이 출발 기적을 울립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일 베를린까지 18박 19일,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대장정의 시작 입니다.
할아버지가 남긴 책을 고이 가방에 넣어온 이준승 씨.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챔피언 손기정 선수의 손잡니다.
79년 전 할아버지의 길을 따르지만, 서울에서 열차를 탔던 할아버지와 달리 손자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비행기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뷰> 이준승(손기정 선수 외손자) : "손기정 선수가 출전할 때는 일제 강점기이긴 했지만 분단된 나라는 아니었다는 거죠. 그래서 서울역에서 출발해서 신의주를 거쳐, 안동 다음 만주를 거쳐서 시베리아, 베를린까지 갔습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조선인들이 유럽으로 가는 통로가 됐던 시베리아 횡단철도,
1891년 공사를 시작해 25년의 대 역사 끝에 1916년 완공한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입니다.
극동에 대한 영향력 확대와 시베리아 개발, 산업 국가 도약 등 제정 러시아의 원대한 꿈이 담겨 있습니다.
100년 전 동방 진출의 꿈을 다시 살려낸 건 현 푸틴 대통령입니다.
푸틴의 대외 정책의 핵심 '신동방정책', 극동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고 경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겁니다.
<인터뷰> 아베이예브(블라디보스토크 시민) : "모스크바에서 지원이 계속 들어오기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는 앞으로도 계속 개발이 될 것입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중간 쯤, 러시아 한 복판에 위치한 노보시비르스크.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이은 러시아 제3의 도시입니다.
접근조차 쉽지 않은 시베리아 땅에 인구 150만, 러시아 제 3의 도시가 형성된 데는, 막대한 자원, 그리고 철도라는 배경이 있었습니다.
철도 교통의 요충지인 이곳 역엔 꼬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화물 열차 수백 대가 매일 거쳐갑니다.
대부분 지하 자원이 실려 있습니다.
그동안 가장 큰 시장은 유럽이었지만, 최근엔 아시아 시장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인터뷰> 쭈뜨린(이르쿠츠크 역장) : "주로 중국, 몽골, 극동지역으로 열차가 다니고, 화물은 나무, 석유, 석탄, 광물, 알루미늄이 오갑니다. 앞으로는 한국과의 교류가 늘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르쿠츠크에서 목재 가공 사업을 하는 샤르바제 씨도 한국 진출을 꿈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추진했던 한국 수출은 결국 무산됐습니다.
비싼 운송비 때문이었습니다.
물건을 한국까지 열차로 운반할 수 있다면 사업이 훨씬 쉬워질 거라고 말합니다.
<인터뷰> 샤르바제(목재가공업) : "지금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간 뒤 컨테이너에 실어서 다시 배를 기다려야 하니 당연히 시간이 오래 걸리죠."
한국과 단절된 것 말고도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또 다른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철도와 연결이 쉽지 않다는 점 입니다.
러시아를 떠나 유럽으로 가는 열차.
20톤이 넘는 객차를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바퀴를 통째로 바꾸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궤도 폭은 1520mm. 반면 유럽이나 한국의 궤도 폭은 더 좁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인터뷰> 트루너브(시베리아 횡단열차 차장) :
"구소련과 몽골 지역은 궤가 넓은 광궤를 쓰지만, 중국, 한국, 유럽 등은 표준궤를 사용해 철길의 폭이 다릅니다."
극동 개발을 위해 북한과의 교류가 꼭 필요했던 러시아는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북한과 맞닿은 러시아의 하산.
하루에 한 번 씩은 북한과 열차가 오가는 곳입니다.
이 곳에서 1.5km만 더 가면 북한.
철길을 따라 두만강 철교와 북한 땅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북한과의 교류를 위해 러시아는 바퀴 교환이 필요 없도록 북한 쪽 철로를 러시아 돈으로 개보수 했습니다.
2,700톤의 석탄을 실은 화물 열차입니다.
이 열차는 이 곳 하산 역을 출발해 54km를 달려 북한의 나진 항으로 이동한 뒤 수출 길에 오릅니다.
한글 표기가 일상적인 하산역.
김정일이 직접 이 역을 통해 러시아를 방문할 정도로 과거부터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김정은 시대 들어 교역은 뜸해졌지만, 철길 개보수 이후 다시 눈에 띄게 느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인터뷰> 콤코프(하산역장) : "석 달에 한 번 북한 측과 회의를 엽니다. 한 번은 러시아, 한 번은 북한 두만강 역에서 회의를 하죠."
불과 40km 떨어진 곳에 자루비노 항구 등 러시아 항구가 있지만, 러시아는 나진까지 철로 연결과 나진항 이용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인터뷰> 카나바로프(하산역장) : "전에는 북한으로 나무 묘목만 주로 보냈었습니다. 앞으로는 나진 쪽으로 석탄 뿐 아니라 컨테이너도 보낼 계획입니다."
두 번에 걸쳐 시베리아산 석탄을 나진항을 통해 남한으로 운송하는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시범 사업도 마쳤습니다.
목표는 한국의 투자를 끌어내는 것,
나아가서는 한반도 철도와 러시아 철도를 연결해 정치 경제적 시너지를 내는 것입니다.
한반도 종단 철도의 건설을 러시아가 지지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인터뷰> 야쿠닌(러시아 철도공사 사장) : "향후 북한 철도를 개보수하는 것도 한반도 종단철도가 개통돼야 경제적 적합성과 타당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극동 진출은 중국과의 주도권 다툼의 성격이 있습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고립을 타개하기 위한 우회 전략이기도 합니다.
<인터뷰> 시도렌코(극동개발기금 극동대표) : "강하고 융성한 러시아는 강한 극동지역 없이는 만들 수 없습니다."
한반도와 대륙을 연결하는 한반도 종단철도 복구를 남북한과 러시아가 처음 논의한 것은 2006년,
벌써 9년 전입니다.
그동안 경의선이 복원됐고 지난 5일에는 경원선 복원공사가 시작됐지만 한반도 종단철도의 개통은 기약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남북이 대립 구조를 타개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극동의 맹주를 노리는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이어질 한반도 종단 철도 시대를 우리보다 더 발 빠르게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