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절치부심하며 전국대회 우승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때가 왔습니다.
박찬호 선수의 키는 183cm, 신재웅 선수는 187cm 근데 저는 167cm(ㅜㅜ)
지나가면서 말을 하는 때가 있긴 했지만 이상하게 두 선수를 볼 때는 내가 후배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인상에서 밀리고 이래 저래 밀리고... 두 선수 앞에서는 약간 어깨가 처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런데 그 때마다... 박찬호 선수는 저를 보며 "야 남자답게 걸어"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사실 당시 상황으로 보자면 박찬호 선수가 어깨가 쳐졌어야 하는데 말이죠.
신재웅 선수는 당시 단국대와 경성대를 저울질하다 경성대로 진학을 확정하고 주장이자 포수 강준기 선수는 동국대로 진로를 확정합니다. 이보형 선수는 동국대로 강준기 선수와 같이 진학이 확정되어 3학년 선수 3명의 진로는 모두 확정된 상태였습니다.
여기서 또 한번 운명의 장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당시 공주고 내에서의 네임 밸류로 보자면 강준기는 주장에 4번타자에, 도루능력까지 있는 전천후 포수로 준우승한 청룡기 대회에서 타격상, 감투상, 도루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보형 선수는 2학년 동계훈련 중 다치는 바람에 타격이 신통치는 않았지만 185cm의 큰 키게 빠른 발을 자랑했죠,어깨도 상당히 괜찮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 선수 나중에 두산 입단했다 눈치 없이 홈런 한방 쳐서 바로 방출되는 불운(?)을 겪습니다.
신재웅 선수는 사실상 박찬호와 쌍두마차 에이스였지만,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대타로 한번 나오는 정도의 선수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당시 이름값으로는 강준기 >이보형>신재웅이었네요.
그런데 나중에 세 선수가 프로에 입단할 때는 신재웅 2억에 한화 1차 지명, 이보형 3천5백에 두산 2차 지명, 강준기 2천 3백에 LG 지명....신재웅 선수 입단이야 다 아실테고 나머지 선수들은 그런 선수가 입단했었는지도 모를 대우로 입단을 했더랬죠. 이유인즉슨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할 정도로 타격에 일가견이 있던 강준기 선수는 포수였지만 우익수와 1루수를 폭넓게 소화할 수 있었으며 워낙 타격이 좋았는데, 공교롭게도 대학에 입학해보니, 청소년 대표를 같이 했던 수비형 포수 김영진(이 선수도 훗날 한화에서 잠시 선수생활 했습니다) 같은 팀에 있었던 것입니다. 대학 1학년때는 역시 한화에 2차 지명됐던 4학년 정진식이 포수였기에 두 선수 중 타격이 좋은 강준기는 꾸준히 지명타자로 출장했고, 정진식이 졸업하면서는 김영진 포수, 강준기 지명이 유지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강준기의 포수로서의 가치는 날로 떨어졌고, 결국 프로에 올 때 포수로서의 가능성은 제로로 보고 지명타자로서의 타격능력만 인정받아 헐값에 입단하는 불운을 겪습니다.
하지만 강준기 선수는 입단 첫해 식지 않는 방망이로 2군을 평정하며 2군에서 타점상을 수상합니다. 1군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던 그에게 2군리그 수상자 인터뷰가 끝나고 날아온 것은 청천벽력 같은 방출 소식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저도 사실 잘 모르겠네요. 그 후 강준기 선수는 공주고에서 코치생활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합니다.
이보형 선수는 유명한 진갑용 사건(?)루되어 불운하게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한 때 두산이 포수왕국으로 불렸죠. 잠실 최다홈런의 고졸포수 이도형, 국가대표 주전포수 최기문이 차례로 입단했으나 다음 해에는 고려대의 특급포수 진갑룡이 시장에 나오게 되어 어느 팀이 진갑룡을 획득할까 관심이 많았죠. 사실 진갑룡 획득이라기보다는, 롯데가 1명을 1차 지명을 할 수 있는데, 손민한과 진갑룡이 부산고 동기였기에 문제가 좀 생겼죠. 둘 중 하나가 롯데에 지명되면 나머지 선수는 당연히 2차 지명으로 나오는 거니깐요.
두산은 당시 리빌딩을 목표로 꼴지를 목표로 걸고 열심히 걸어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4강이 확정되었거나 4강에 상활을 거는 팀이 아닌 경우는 시즌을 포기하고 모두 진갑용이나 손민한 중 하나를 잡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 꼴지 후보로 경쟁하던 두 팀이 경기를 했습니다. 모두 지는 것을 목표로 2군 선수를 대거 기용하던 그 때, 두산은 앞서다가 천신만고 끝에 역전에 성공(?). 이대로 경기가 끝나기를 바라던 그 때, 이보형 선수는 절대 쳐서는 안 될 홈런을 쳐서 다시 역전을 시키고 맙니다... 열심히 그라운드를 돌고 돌아온 이보형 선수에게는 하이파이브 대신 코칭스태프의 차가운 눈초리만 기다리고 있었죠... 결국 그 경기를 끝으로 이보형 방출... ㅜㅜ 그런데 웃기는게... 그런 진갑용 선수가 두산에서는 별 활약을 못 보이고 홍성흔에 치이다가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어 버리고 말았으니... 이보형 선수는...
얘기가 많이 샜네요. 여튼 신재웅 선수가 화랑기에 출전하던 때 제게 신재웅 선수는 널 위해 홈런 한방 치겠다며 경기에 출전했습니다. 1회전을 무난히 통과하고 8강전에서 다시 한번 동산고를 만났습니다. 한번의 승리가 있어서 무난한 승리를 예상했으나 이번에는 동산고에게 패하며 8강 탈락... 결국 동산고는 위재영을 앞세워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당시 고교야구의 빅3는 대전고의 안희봉, 동산고의 위재영, 부산 동래고의 문동환이었습니다. 140 이상을 던지는 투수가 한 해에 동시 3명이 탄생한 것은 선동렬, 김시진, 김용남 이후 처음이라며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나 문제는 다음 학번은 더 대단한 투수가 많았다는 거죠. 다음으로 이어갑니다.
첫댓글 참.. 기대되고 재밌습니다. 어찌 이렇게 자세히 잘 쓰시는지.. 너무 기대되는데요~
정말 중독성 있는 이야기 입니다~ 님의 활약(?) 기대 할게요^^ 감사요~
안희봉,문동환선수 그 전설(?)의 아마추어팀 현대 피닉스로 갔었죠?
선배님 ~ 글 잘읽고 갑니다. -공주고 81회-
92학번에 빅3는 신일고 조성민.경기고 손경수.휘문고 임선동입니다...조성민은 고려대.임선동은 연세대.손경수는 홍익대로 진학했구요 손경수는 2학년인가 마치고(가물가물)OB에 입단했으나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제가 굳이 순위를 주자면 조성민.임선동.손경수 이렇게 주고 싶네요...제가 92학번이라 애착이 갔는데..다들 은퇴했죠..
갈수록 흥미진진...잘 읽고 있습니다.
와우~재밌어요.
재밌네요~ 강준기선수는 안타깝기도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