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하의 「9201」 감상 / 임종명 9201 이민하
얘들아, 집에 가자 이제 곧 폭설이 올 텐데 많은 것들이 쏟아지고 더 많은 것들이 묻힐 텐데 희끗희끗 철근이 드러나는 나무들과 층층이 휘어지는 나뭇가지들 잠들 수 없는 창문들이 와르르 쏟아지듯 가을이 무너졌는데 집에는 불볕처럼 끓고 있는 미역국이 있고 냉장고에는 화내서 미안하다는 쪽지가 있고 옷걸이에는 세탁소에서 막 돌아온 슈트 한 벌 귀가를 서두르는 종종걸음으로 거리의 눈은 우리의 눈을 지우고 어떤 날은 날씨 이야기만으로 하얗게 지새우겠지 몇 페이지의 밤이 찢어지고 끼워 맞출 수 없는 기억들 거리에 두고 온 건 우리였을까 내일의 약속을 취소하고 슬픔을 꾹꾹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는 우리는 영원히 숨기고 싶은 비밀번호를 가졌구나 ................................................................................................................................................
사람마다 각각의 현관 비밀번호가 있다. 제목 <9201>은 화자의 비밀번호일 터다.- 물론 시인의 비밀번호일 리는 만무하겠지만. 그 숫자의 실마리를 풀자고 인터넷 검색창에 '9201'을 넣어 보았다. 광역버스 노선번호, 청소기 복합기 등 각종 가전제품 모델번호, 문서번호 등 많았지만 화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했다. 그런데 "얘들아, 집에 가자/ 이제 곧 폭설이 올 텐데" 첫 연을 보는데 자꾸 작년 가을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가 떠올려지는 것이었다. 그날이 언제였더라. 찾아보니 10월 29일, 거꾸로 쓰면 9201이다. 그래서 "내일의 약속을 취소하고/ 슬픔을 꾹꾹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는" 걸까. 내가 너무 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임종명(전 한국일보 기자, 네이버 블로거 ‘숲속의종’) |
첫댓글 임종명님이 이 시의 제목을 잘 풀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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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각각의 현관 비밀번호가 있다. 제목 <9201>은 화자의 비밀번호일 터다.- 물론 시인의 비밀번호일 리는 만무하겠지만. 그 숫자의 실마리를 풀자고 인터넷 검색창에 '9201'을 넣어 보았다. 광역버스 노선번호, 청소기 복합기 등 각종 가전제품 모델번호, 문서번호 등 많았지만 화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했다. 그런데 "얘들아, 집에 가자/ 이제 곧 폭설이 올 텐데" 첫 연을 보는데 자꾸 작년 가을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가 떠올려지는 것이었다. 그날이 언제였더라. 찾아보니 10월 29일, 거꾸로 쓰면 9201이다. 그래서 "내일의 약속을 취소하고/ 슬픔을 꾹꾹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는" 걸까. 내가 너무 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임종명(전 한국일보 기자, 네이버 블로거 ‘숲속의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