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년 동안 역학동에 와 보질 않아서 만세력, 간지의 기원에 대해 논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년전에 우리가 사용하는 만세력, 간지력의 기원에 대해 쓴 글이 있어서 역학동에 올려 봅니다. 관심 있는 분은 추가 연구해주시면 더 좋을 듯 합니다. 저는 이제 열정이 식어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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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사주를 통해서 과거, 현재, 미래를 예측하는데 이 예측의 근거가 되는 60갑자, 즉 60간지 간지력, 갑자, 을축, 병인... 하는 이런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뭐 근거가 있어야 믿을 텐데, 다들 우주의 기운을 보고 만들었다, 오행성의 순환원리에 따라 만들었다, 특히 오행성의 정렬현상을 근거로 만들었다 등등 근거 없는 이야기만 횡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논문을 찾아봤더니 ... 명리학과가 개설된 대학의 교수님들이 쓴 논문이 1~2편 있으나 다들 모른다는 것이었고, 중국쪽 사이트를 검색해봤더니 BC 2697년이 시작이라는데, 그 근거는 소강절(자미두수, 매화역수 등 점학, 명학 등에서는 신화적인 인물임)이 쓴 "황극경세"라는 책에 나온 역대 제왕의 연표를 보고 추정했다는 것인데, 다른 역사서에는 없는 내용이고 고고학적으로 증명할 길이 없는 내용이라서 우리네 한단고기처럼 그냥 그런 게 전해져 오고 있다는 수준입니다.
1부. 실마리를 찾아서
그래서, 한번 추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간지력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기록으로 확실히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사마천의 '사기'의 기록으로 한나라 시기 BC 104년 음력 11월 1일을 갑자일로 하는 태초력을 최초로 선포하였다고 나옵니다. 즉 그 때를 간지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태초력) 시 일 월 년
甲 甲 甲 甲
子 子 子 寅
이 태초력이 중요한 이유가 태초력을 만든 이가 바로 태사령이었던 사마천이라는 것입니다. 태사령은 천문, 달력 그리고 역사를 주관하는 직책이었습니다. 사마천은 사기를 집필하기 전에 시간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이전의 은력, 주력, 노력 등의 달력과 달리 태초력이라는 통일된 달력을 만들어 역사 집필의 기준을 정립하였던 것입니다.
이후 저 태초력은 후한 시기 AD 85년 년과 월을 바꾸어 사분력이라는 이름으로 선포되고,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분력으로 저 태초력 시작시점을 표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사분력) 시 일 월 년
甲 甲 庚 丙
子 子 子 子
자, 여기서 질문 2개. (1) 사마천은 무엇을 근거로 태초력의 시작시점을 결정하였는가? (2) 사분력은 무엇을 근거로 BC 104년 음력 11월을 병자년, 경자월로 지정하였을까?
(1)번 질문의 답은 사기에 나와 있습니다. 바로 "삭단동지"라는 현상입니다. 삭단동지 현상은 해의 고도가 가장 낮아 낮이 가장 짧은 날, 달이 완전히 지구 그림자에 가리어 보이지 않는 그믐달이 일치하는 날을 말합니다. 즉, 가장 춥고 어두운 날을 갑자일로 정한 것입니다. 이런 날은 서양에서는 메톤주기, 중국에서는 장법이라는 이름으로 19년에 한번씩 일어납니다. 즉, 사마천은 이런 가장 어둡고 추운 날을 간지력의 시작으로 정한 것입니다. 실제로 기원전 간지가 표시되는 2개의 달력, 우리나라의 별빛만세력과 중국의 황도길일 만세력 및 유럽의 STELLARIUM으로 확인해 보면 하루 차이로, 정확히는 약 12시간 간격으로 동지와 그믐이 일치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정확한 삭단동지는 아닙니다. 유사 삭단동지였지요. 이는 측정이 잘못됐다기 보다는 당시 태초력을 선포하기 위해 억지로 갖다 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때 오행성 정렬현상은 없습니다.
2부. 가설 그리고 추정
자 그럼 (2)번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봅시다. (2) 질문이 사실상 제가 쓴 글의 논지입니다. 사분력에서는 언제의 갑자년을 기준으로 BC 104년 음력 11월을 병자년 경자월로 하였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가설을 세웁니다. 기준이 되는 최초의 갑자년도 태초력처럼 삭단동지 현상을 기준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사기에서 간지력은 황제 헌원 시절에 만들어졌다고 기록하고 있고, 소강절 등이 그 시기는 BC 2697년 이라고 하고 있으니, BC 2697년에 삭단동지 현상이 발생하는지 확인해 보았습니다. 원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BC 2697년 음력 11월 1일날에 4시간 차이로 동지와 그믐이 일치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 때를 간지력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BC 2698년 음력 11월 1일 시 일 월 년
○ 戊 甲 癸
○ 子 子 亥
여기서 황제력은 일년의 시작이 음력 11월(중국 Baidu 백과 참조)이므로, 이를 다시 표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BC 2698년 음력 11월 1일 시 일 월 년
○ 戊 甲 甲
○ 子 子 子
이 날도, 오행성 정렬현상은 없습니다.
즉, 정리하면 현재의 60간지 간지력은 BC 2698년 음력 11월 1일을 기준으로 하는 연, 월의 간지와 BC 104년 음력 11월 1일을 기준으로 하는 일, 시의 간지가 결합한 형태라고 가설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3부. 검증
그런데, 갑자년은 60년에 한번씩 있고, 그 중에 삭단동지가 발생하는 갑자년은 대략 600년 간격으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기원전 4,000년 ~ 100년 사이 갑자년 삭단동지현상을 추적해보면 BC 3897년, BC 3297년, BC 2697년, BC 2037년, BC 1437년, BC 837년, BC 237년으로 총 7개이고, 이들의 오차를 다음 표와 같습니다.
| 별빛실험실 | 황도길일 | STELLARIUM | Sum |
BC 3897 | 1.1 | 1.1 | 0.8 | 3.0 |
BC 3297 | 0.6 | 0.6 | 0.5 | 1.7 |
BC 2697 | 0.2 | 0.2 | 0.2 | 0.6 |
BC 2037 | 1.2 | 1.3 | 0.7 | 3.2 |
BC 1437 | 0.8 | 0.7 | 0.5 | 2.0 |
BC 837 | 0.4 | 0.4 | 0.6 | 1.4 |
BC 237 | 0.1 | 0 | 0 | 0.1 |
이 표에서 BC 237년은 춘추전국시대로 기록이 확실한 시대이어서 이때가 황제 헌원 시대라고 보기는 어렵고 이를 제외하면, BC 2697년이 삭단동지 오차가 다른 때보다 현저히 작은 해이어서 이 때를 기준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역원 추정을 검증할 수 있는 단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사기에는 황제 헌원 시절 "己酉삭단동지"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는 己酉일날 삭단동지가 발생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위 표 7개의 역원후보를 중심으로 전후 40년간 삭단동지가 발생하는 날을 추적해봤더니,
己酉일날 삭단동지가 발생하는 날이 딱 하나 존재합니다. 감격. 흑 BC 2717년 정미일 밤 23:08분에 동지가, 그 다음날 무신일 아침 09:43분에 10시간 간격의 삭단동지가 발생하였습니다. (여기서, 己酉일과 戊申일로 하루 차이가 나는데, 이는 사기의 태초력 선포시점인 BC 104년 음력 11월 1일, BC 112년 辛巳삭단동지에서도 하루의 차이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서 오히려 정확한 측정으로 보입니다.)
결국, 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사분력이 연, 월의 기준으로 삼은 최초의 갑자년은 BC 2697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4부. 결론
결국,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60간지 간지력은 오행성의 정렬이라거나 우주의 신비와는 관련이 없고, 태양과 달의 일치시점인 삭단동지를 근거로 만들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사용하는 사주 해석은 우주의 신비라기 보다는 경험의 축적인 통계적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 사이트 : 황도길일 만년력 (黃道吉日, http://www.huangdaojiri.org/wnl/)
- 다른 만세력이나 프로그램은 올려 놓을 수 없네요.
원문 : https://blog.naver.com/engycv92/220849929277
첫댓글 삭단동지는 음력 11.1일이 동지가 되는 해를 말하는데 태음력은 1년 354.36일로 실제 지구 공전일 365.24일보다 약 11일 부족 합니다.
즉 3년이면 33일 약 한달이 부족하게 됩니다.
그래서 19년에 7번 윤달을 두어 보정하게 됩니다.
즉 음력은 인위적인 보정이 필수이기 때문에 삭단 동지를 기준으로 60간지력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동의 할수 없습니다.
달이 백도와 황도가 만나는 주기 약 18.6년 주기를 가지는데 점성술에서는 승교점 龍頭. 강교점 龍尾로 운명의 영향을 끼지지만 60주기와는 일치점을 알수가 없습니다.
60주기 60간지력은 목성과 토성이 회합하는 주기와 일치하고 거의 정설입니다.
목성과 토성의 회합주기가 60년인줄 알고 태초력을 만들었는데, 태초력 만들고 200년쯤 지나고 보니 회합주기가 틀어져서 목성 & 토성의 회합주기를 버리고 그냥 순차적으로 60갑자를 돌리는 방식으로 만든 것이 사분력입니다. ^^;;
@답설무흔 점성술 차트를 직접 돌려보면 목성 토성 60년 회합주기가 동일 합니다.
갑년에 회합하는것이 아니라 경년 신자진에 회합합니다. 현재도 그렇습니다.
목성 토성 회합주기를 수기 계산으로 하는것은 거의 ..
태양의 공전 속도 시속 80만키 고려한 토성 목성의 회합 주기 계산은 ..컴퓨터라야 가능할걸로 ..
현재 점성술 차트는 프로그램화 된것이라 믿을만 하겠죠.
@명곡(明谷) 마치 달의 항성주기 27.3일 과 삭망월주기 29.5일이 다르듯이,
태양의 공전 속도 뿐만 아니라 지구의 공전속도 역시 고려한 목성 토성의 회합주기 계산은 쉽지 않죠.
60진법의 기원은 중동의 바빌론에서 유래했고 바빌론은 6000년 슈메르 문명의 영향을 받은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슈메르문명에서 나온것이 60진법입니다.
@명곡(明谷) 동양의 오행설 목 화 토 금 수는
木이 목성 십간상 甲木이고
土는 토성 십간상 己土 라 볼수있습니다.
갑기 합은 서로 회합으로 유추할수 있습니다.
오행이 태양의 행성들과 연관성이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점성술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두 행성은 태양과 달이 아니라 목성과 토성입니다.
고래로 목성을 歲星이라고 칭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60진법이 목성과 토성의 회합주기와 연관된 것이라 ..
근래 점성술 학자들이 상기를 근거로
( 6000년전 60진법)오행이 점성술에서 유래 되었다는 주장들은 일리 있어 보이지만 티벳 승려들에게 전해진 五원소설은 무려 1만8천년이라고 합니다.
즉 전해진 신령계 또는 차원계 신선들이 같은 진리를 다른 언어로 전해준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타당함니다.
문명을 전하는 神들의 신화들은 신화가 아니라는 것..하루살이 인생들의 교만함은.. 蝸牛角上 ..
간지의 기원 약 9000년전 부터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자료를 본적이 있는데..
그때 만든것이 아니라 다시 꺼내어 사용했다는 ..것이므로 현 인류는 간지의 기원을 절대 알수가 없습니다.
단지 그 원리를 역으로 탐구할 뿐이고..
고차원의 존재 구천현무등 신들이 내려준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간지력’의 정확한 기원은 잘 모르겠고, ‘간지’의 기원에 대해서는 적어도 남아있는 근거 자료로 가장 오래 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이 갑골문입니다. 십간 십이지지를 이용해 점을 친 날짜를 기록했고 殷商代 왕들의 이름에 십간이 쓰인 것이 그 이유입니다. 즉, 현존하는 기록물로 보자면 殷商代의 卜辭로 기록된 것을 간지의 기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간지는 허신의 [설문해자]에 풀이된 것과는 다르게 상형, 가차 문자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아래 갑골문을 보면 육십갑자가 갑자-갑술-갑신… 순으로 표기되어 있음)
음력은 윤달 보정이 필수이나,
헌원 황제 시기의 삭단동지를 기준점으로 정했다라 는 기존 기록이 있다 합니다.
목성이 세성이긴 하나, 공전 주기가 대략 11.86년으로 대략 80년마다 1년 정도의 오차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4분력이후로는 목성이 세성으로 역할을 하지 않는다 합니다.
사마천의 역사관은 오늘날 중국의 동북공정의 기본 근거를 제공하는 국수주의적 관점이며, 중국 본토의 역사가 동이족의 역사임을 애써 부정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