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21일 나로도우주센터에서 발사된 한국형 우주발사체 시도성공은 대한민국의 우주강국 진입의 본격 시작이다. 감격이다. 고흥나로도의 자랑은 우주센터와 삼치파시~^^
*나로도 羅老島 전라남도(全羅南道) 고흥(高興) 반도(半島) 동남(東南) 해상(海上)에 위치(位置)하는 섬. 내(內)나로도와 외(外)나로도의 두 섬으로 이루어진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두 섬이 모두 산이 솟아 있어 경작지(耕作者)가 적으므로 주민(住民)은 수산업(水産業)에 전업. 주요(主要) 농산물(農産物)은 조ㆍ콩ㆍ쌀ㆍ면화(棉花)ㆍ모시풀 등(等)이고 소도 많이 키움. 여수(麗水)ㆍ제주도(濟州道) 항로(航路)의 기항지(寄港地)임.
*나로우주센터 미국에 우주센터 NASA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나로 우주센터가 있다. 우주 개발 진흥 기본 계획에 따라 한국 항공 우주 연구원(KARI)은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장인 나로 우주센터를 전남 고흥군에 있는 나로도에 건설했다. 나로 우주센터가 완공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13번째로 우주 발사에 필요한 첨단 장비와 시설을 갖춘 나라가 되었다.
2010년부터 지난 10여 년간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해온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가 2021년10월21일 우후5시 발사돼, 지구 상공 700㎞ 우주궤도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세계 10번째로 스페이스 클럽에 드는 국가가 됐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우주발사체 자력발사능력을 갖춘 나라는 미국ㆍ러시아ㆍ중국ㆍ프랑스 ㆍ인도ㆍ일본ㆍ이스라엘ㆍ이란ㆍ북한 등 9개국 뿐이다. 이 중에서도 무게 1t 이상의 실용 인공위성 발사를 할 수 있는 나라는 6개국 뿐이다. 이스라엘과 이란ㆍ북한은 300㎏ 이하 위성 자력 발사 능력만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7번째 인공위성 발사국이 되는 것이다. 우주선진국의 시작이다. 출처:사진/내용 네이버지식백과 인용
*삼치 이야기 완도청산도항과 함께 고흥나로도항은 예부터 삼치 잡이로 유명한 항구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삼치의 어업전진기지여서 파시(波市)가 열렸고 나로도 삼치회는 그 싱싱한 회맛이 전국에서도 최고로 치던 곳이다. 장흥의 삼합(한우/조개살/표고버섯)이 유명하듯 청산도는 완도돌김에 삼치회와 묵은김치를 싸서 먹는 삼치삼합이 있다. 그야말로 가을보약이다,
청산도 가을삼치
3월 7일은 술꾼들이 좋아하는 '삼치데이'라 한다. 해양수산부와 한국원양산업협회가 공동으로 어류 소비 촉진을 위하여 2006년부터 삼치와 참치의 각자 첫 자가 'ㅅ'과 'ㅊ'과 음이 비슷한 3월 7일을 '삼치, 참치 데이(Day)'로 정하였다. 그런데 삼치 이름은 왜 삼치라 하였을까?
다음은 삼치 대한 민간 어원설(民間語源說)이다. - 조선시대 한 지방관이 갓 잡은 삼치 맛이 하두 좋아 중앙의 고관에게 선물로 보냈다. 그러나 삼치는 잡자마자 죽어버리는 생선으로 보관이 어려운 생선이라서 상한 삼치를 먹은 고관으로부터 크게 꾸지람을 듣고 오히려 좌천되는 바람에 '망할 놈의 물고기'라 하여 '망어(亡魚)'라 했다 한다. 그 후 '망어'가 음운 회피를 위한 동음 생략(同音省略) 현상에 따라 앞의 'ㅇ' 이 생략되어 '마(麻)어(魚)'로 바뀌었다. 그 '麻(마)' 자의 훈(訓, 뜻) 이 '삼' 이어서 '삼 + 치(물고기 접미사)'가 되어 '삼치'라 부르게 되었다. 그래선가 삼치는 사대부들이 먹기를 꺼려하는 음식이라 하였고, 1930년대 들어서는 관혼상제에 삼치를 제상에 올리지 않는 풍습이 생겼다 한다. 출처: 'ilman의 국내외 여행기' 블로그
*나로도 지명유래
□ 나라에 바치는 말을 키우는 목장이 있는 "나라섬(국도)"
첫 번째는 나로도는 조선시대 '나라에 바칠 말을 키우는 목장이 여러 군데 있어 나라섬'이라고 불렸다는 설입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나라 섬' 즉 국도(國島)로 불려왔는데, 조선 영조때부터 나라에 바칠 말을 키우는 국영 목장이 있어 '나라도'로 불렸다가 오다 일제시대 우리 지명이 한자로 바뀌면서 뜻 보다는 음을 따 나로도가 되었다는 설입니다. □ 아름다운 기암백색 화강암이 비단같아 나로도(羅老島)
두 번째는 나로도 남동쪽 바닷가에는 아름다운 기암괴석이 펼쳐지는데, 바다에서 나로도를 바라보면 이 바위들이 마치 오래된 비단이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보여 비단 '라(羅)'자와 늙을 '로(老)'자를 써서 나로도라고 불렀다는 설입니다. 때는 중국 송나라와 해양국교를 넓혔던 신라국 유일한 인물 장보고(張保庫) 전성기를 시절, 중국상인들이 동진래주(東進來住)이 활발했을 당시 반드시 나로도 해역을 거처 가야 했습니다.
이때 많은 중국 상선이 이곳 신금리(일명:시구미-柴仇味),동광마을(일명:뻘금이), 외초마을(일명:좀새), 염포(일명:송개) 앞 바다를 지날 때마다 섬의 암벽이 병풍처럼 깔려져 있고, 비단같이 아름다운 기암백색 화강암의 경관이 마치 빨래나 부채를 널어 놓은 듯 하여 섬주민은 서답바위(서답은 빨래를 뜻하는 옛말), 부채바위 라고 부르고 있었고, 중국 상인들은 이 아름다운 경관에 감탄하여 낡은 비단에 비유 비단라(羅)자와 늙을로(老)자를 붙혀 나로도(羅老島)라는 섬으로 명명하여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 석양이 지는 바다 물결이 바람에 나부끼는 금빛 비단같아하여 나로도(羅老島)
그리고 마지막 야사(野史)로 전해지는 설은 조선왕조의 경종시대, 당시 소론과 노론의 당파싸움이 한창이었고, 소론에 밀려난 노론의 거두였던 좌의정 이건명이 나로도로 유배를 오게 됩니다. 본래는 고흥의사도라는 곳으로 유배가 되었으나, 사도가 고흥반도의 일부로 섬이 아닌 것이 전해져, 다시 황포돛단배를 타고 나로도로 이배(유배를 옮김)가 됩니다. 이때 석양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 모습이 마치 반짝이는 오랜 비단이 바람에 날리는 것과 같다하여 나로도(羅老島)라고 칭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 실제 나로(羅老)라는 명칭은 영의정 한포제 이건명(李建命)의 유허비(遺墟碑) 후면에 내용이 명기되어 있어 아주 예날부터 나로도라는 섬 명칭이 쓰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출처: 고흥나로도유람선 네이버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