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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위지맥
부뜰이와 천왕봉이 걸어온 두위지맥
지맥길 52.6(접속1.2/이탈)km/32시간51분
산행일=2021년10월23일
산행지=두위지맥 2구간(정선군/영월군)
산행경로=수라리재=>영광산(935.0m)=>망경대산(望京山:1085.4m)=>진동재=>996.6봉=>917.5봉=>자영재=>964.2봉=>응봉산(鷹峰山:1013.3m)=>
882.4봉=>816.9봉=>845.4봉=>계족산(鷄足山:889.6m)=>486.1봉=>473.6봉=>409.2봉=>290.5봉=>여우고개=>봉래초등학교=>223.4봉=>영월동부교회=>큰팔괴나루터(영월드론전용비행시험장)
거리 및 소요시간=20.5km/11시간45분
올해는 여름방학을 안하는대신 조금이라도 덜 더운 강윈도 오지로 높은 산이 많은 지맥을해보고자 첫번째로 시작한게 두위지맥 이었다.
두위지맥을 시작으로 죽렴.금대.노목.만덕.황병. 만월까지하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겨울산행을 할 예정이었는데.
두위지맥 한구간을하고 계획을 변경하여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이렇게해서 7월초에 시작한 두위지맥을 거의 4개월만에 마무리하게 된다.
이번 주말에는 쾌청한 가을날씨가 될거라는 예보이고 여름내내 우중산행으로 애을 먹이더니 마지막으로 쾌청한 날씨에 산행을해 본다.
여느 주말과 같이 금욜저녁 9시쯤에 인천을 출발하여 두위지맥 2구간 들머리인 수라리재에 도착하니 아직 12전이다.
새벽 5시 전후로 산행을시작할 계획으로 4시에 알람을 마추고 천왕봉이는 뒷좌석에서 침냥속으로 들어가고 나는 조수석에서 쉬는 시간을 갖는다.
알람소리에 잠이 깨고 물을 끌여서 스프와 함께 떡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산행을시작 한다.
수라지재는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에서 영월군 중동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31번 국도가 넘어간다
지금은 아래로 수라리재 터널이 뚫려서 차량통행이 거의 없는 한적한 옛 길이 되었다.
수라리재라 불리게된 유래를보면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恭讓王)이 삼척 궁촌으로 유배 가는 길에 이 고갯마루에서 수라(왕이 먹는 음식)를 들었다 하여 수라리재라 불리어 졌다고 한다.
공양왕은 태조 이성계에 의해서 원주군 부론면 손위실에 유배되었으나 한양과 너무 가까운 곳이라 하여 1392년에 고성군 간성읍 탑동리(塔洞里)의 수타사(壽陀寺)로 옮겨졌다.
공양왕은 삼척군 궁촌으로 세 번째로 유배되었다가 결국은 1394년(태조 3)에 죽임을 당했다.
수라리재는 화라리(禾羅里)의 진산(鎭山)에 해당된다.
화라리는 벌마을 · 잿마을 · 점골을 통칭하는 지명인데, 수라리재의 지세가 너무 강하므로 마을의 기를 살리기 위하여 돌단배기에다 조산(造山)인 돌탑을 쌓고
마을 이름도 수라리재의 '수'와 대립되는 '화'를 넣어 '화라리'라고 하여 마을의 기를 강하게 했다고 한다.
화원리는 예로부터 원집이 있었다.
원(院)에는 여러 개의 목로방이 있었고 부엌에는 쌀과 반찬이 준비되어 있어서 잠을 자고 난 길손들은
새벽밥을 해 먹고 나무로 만든 엽전꽂이에 돈을 꽂아놓고 길을 떠났다고 한다.
수라리재라 불리게된 유래가 적힌 표지석이 있다.
수라리재 표지석에서 첫 인증을 남기고 산행을 시작한다.
초입에는 잡목은 좀 있지만 그런데로 올라가니 묵은 임도를만난다.
임도을 만나고 5분이 안되서 우측 숲으로 치고 올라가는데
된 비알길이 이여지고 잡목도 한목 거들고 바위도 듬성듬성 까칠한 길이 계속된다.
좀 힘들다 싶을 때 선생님의 응원을 받는다.
수라리재에서 1시간 10분이 걸려서 영광산에 올라선다.
영광산은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석항리와 영월군 중동면 화원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영광산이라 불리게된 유래나 이야기같은 것은 찿을 수 없었다.
영광산에는 백두사랑에서 설치한 노란산패가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어떻게 된일인지 아무리 찿아도 보이질 않는다.
영광산에서 인증을 남기고 우측으로 꺽어 내려가는데 가파르게 내려 간다.
거의 내려설 때쯤 벌목지가 나오면서 망경대산이 올려다 보이고 날도 밝아졌다.
우측으로는 골짜기마다 운해가 가득찬 모습이 장관이다.
무명봉 하나넘고 내려서니 임도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으로는 민가도 한채 있다.
무심코 임도를 따르는 천왕봉이 지형도에서 확인해보니 임도로가도 마루금을 넘어가는데 엄청 멀게 돌아간다.
좌측으로는 민가도 하채 보인다.
숲으로 들어서니 잣나무 숲이고
초입과는 달리 위로 올라 갈수록 어찌나 가파른지 곧장 올라갈 수가 없어서 좌로우로 지그제그로 올라간다.
그렇다고 뚜렸한 길이 있는것도 아니다.
그렇게 올랏다 내려서니 임도 삼거리를 만나고 좀전에 헤여졌던 임도가 좌측에서 올라온다.
마루금은 숲으로 올라가야 하나 얼마안가서 다시 내려서게 됨으로 그냥 임도로 진행한다.
망경대산 방향은 땅바닥에 떨어져 있고 정상 방향으로 올라간다.
이정목은 MTB 위주로 만들어져 있다.
좌측으로 살짝이 조망이 열리고 이미 높이 올라온 일출을 잡아본다.
7분여 올라가니 임도는 마루금을 넘어서 사면으로 돌아가고 숲으로 들어서며 망경대산 오름이 시작된다.
임도에서 15분만에 망경대산에 올라선다.
정상에는 무인 산불감시 카메라 탑이 있고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선답자님들의 흔적들 모두들 방갑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는 곳인지 넓은 공터에 길다란 의자도 몇개 보인다.
망경대산(望京臺山)은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과 하동면의 경계에 위치하는 산으로 망경대라 불리게된 유래를 보면
어린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찬탈당했다는 소식을들은 충신 추익환이 산위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인증을 남기고 주위를 둘러본다.
북쪽으로 석항 골짜기엔 운해가 한가득이고 지난주에 걸은 죽렴지맥 산줄기가 건너다 보인다.
남쪽으로 조망
망경대산을 내려서며 한번더 바라보고
내림길은 두갈래이고 지맥길은 휴양림 쪽으로 내려선다.
워매 뒤엉킨 미역줄나무 그래도 잎이 다 떨어져서 나갈 구멍이 보인다.
망경대산에서 10분이 안되서 임도 삼거리에 내려서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자령치 방향으로
2분쯤 가다가 우측으로 올라간다.
좌측으로 살짜기 조망이 열리고
가다보니 경고음에 확인을해 보니 좌측으로 멀어저서 마루금으로 방향을 잡고보니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안보인다.
능선도 분명치가 않고 펑퍼짐하여 트랙따라 내려가다 보니 우회해서 돌아오는 길을 만난다.
그냥 좋은 길 따라 내려가면 우회해서 가는 길이었다.
우회해서 돌아온 길을 만나고 아차싶어 확인을 해보니 봉우리하나를 빼먹고 내려섯네.
다행히 멀리가지 않아서 배냥내려두고 다시 올라와서 산패를설치 하고보니 300m정도 내려갔다 온거 같다.
인증을 남고고 다시 내려간다.
곧이여 917.5봉에 닿고
917.5봉에서 8분여 내려가면 임도 사거리에 내려서고 여기가 자영재인가?
좌측으로 방향을 잡고
바로 숲으로 올라간다.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
모든 이정표는 임도위주로 만들어진 것이라 산꾼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것이다.
임도 삼거리에서 20여분 올라서니 4(예미 483)등 삼각점이 있는 964.2봉.
그런데 백두사랑에서 설치한 노란 산패는 아무리 찿아보아도 발견할 수 없었다.
선답자들 사진에는 커다란 소나무에 걸려 있던데 커다란 소나므는 없었고 어린 소나무가 빼곡하다.
아마도 벌목을 한거 같다.
빼곡한 소나무숲을 헤치다보니 묘지가 몇기 나오면서 으측으로 조망이 열린다.
바로 앞에 보이는산이 죽렴지맥 고고산에서 좌측으로 뻗어나간 완택산으로 확인이 된다.
오랜만에 보는 멋진 풍경이다.
우측을 바라보니 두위봉이 선명하고 두위봉에서 갈라져 나온 죽렴지맥 참으로 멋진 산줄기다.
가운데 섬같이 보이는 산이 영월에 별마로 천문대가 있는 봉래산.
진행방향으로 곧 만나게 될 987.5봉.
뒷쪽으로는 응봉산이 보이고
가을이 되니 벌초를하면서 길을 내놓은거 같다.
안부에 내려서고 재의 흔적이 보이는데.
아닌가?
여기서 번뜩 생각나는 것이 있으니 좀전에 987.5봉에 산패를설치 하고 막걸리 한잔씩 마시며 쉬다가 인증을안하고 그냥 와 버렸다
거리를 대충 측정해보니 600m나 돼네.
에고. 후답자님 산행기에서 확인을 하기로 한다.
응봉산에 올라서고
인증을 남기고 직진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우측으로 내려가다가 경고음에 돌아선다.
응봉산의 삼각점은 예미 312
응봉산에서 43분여 진행하여 882.4봉에 올라선다.
882.4봉을 지나면서 길은 점점 더 좋아지고
금새 816.9봉에 닿고
인증을 남기고 좌측으로 내려선다.
816.9봉에서 17분 진행하여 4등 삼각점이 있는 845.4봉에 올라서면 백두사랑에서 설치한 노란 산패가 걸려있다.
845.4봉의 삼각점은 예미 440임을 확인한다.
845.4봉에서 30분을 넘게 가파르게 한참을 내려서고 계족산 오름이 시작된다.
올라가면 갈수록 그야말로 코가 땅에 닿고 허리를펼 수 없을 정도의 급경사가 끝없이 이여진다.
약 500m 정도를 30여분동안 사투를벌이고 올라서니 짧게나마 급 내리막
잠시잠깐 완만하다가 또 다시 급 오르막
또 내려가고 그런데 여기는 안전시설이 되여있다.
참으로 온몸에 진을 다 빼내고 올라선 계족산
계족산(鷄足山:889.6m)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 연하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의 모양이 닭의 발처럼 생겼다고 해서 계족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정양산(正陽山)이라고도 하며 영월읍의 동쪽에 위치하며 영월 정양산성과 정조대왕태실비 등이 있다.
게족산의 땅 기운이 모여서 하나의 혈을 이룬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명당터가 발전소 뒤에 있는 태봉(胎峰:임금의 태를 묻은 곳)이다
명당은 반듯이 물이 있어야 하는데 합수거리에서 합쳐진 동.서강이 태봉 앞을 곡류하여 흐르므로 이곳은 영월에서 손꼽히는 명당이라고 한다.
계족산의 삼각점은 예미 11로 보기드문 1등 삼각점 이었다.
우선 인증을 남기고 본다.
아까 산패를설치 하고 그냥 온적이 있어서...
나도한장 남겨보고
빵과 막걸리로 힘을 보충하고 내려선다.
나무에는 백두사랑 산패도 걸려있다
계족산에서 일반 등로는 직진으로 내려가고 지맥길은 10여미터 빽해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진행방향으로 볼땐 우측이 되겠다.
계족산에서 살짝 내려섯다가 바윗길을 올라서면 올라올 때 이상으로 가파른 급경사길이 올라올 때 보다 더 길게 내려간다.
여기는 아무런 안전시설도 없고 그냥 나무를부여 잡고 통 사정을 하면서 내려간다.
그래도 돌이 많이 박혀 있어서 돌을 계단삼아 디딜 곳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래도 한번쯤은 시원한 조망이 열리고 영월읍내가 내려다 보인다.
거의 내려설때 쯤 봉래산이 마주보이고
다 내려와서 486.1봉 오름길에 뒷쪽으로 조망이 열리고 곤두박질 치듯 힘들게 내려온 계족산이 올려다 보인다.
정상에서 일반 등로는 우측능선으로 나있고 지맥길은 좌측능선이엇다.
여기서 보니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정말 디게 벌벌거리며 힘들게 내려온 급경사 길이었다.
486.1봉에 닿고 이후로는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영월 주민들 산책로가 이여진다.
송전탑이 나오면서 봉래산과 주왕지맥의 마지막산인 발산이 건너다 보인다.
굿이 없어도 될 곳에 로프가 메어져 있고
살짜기 올라서니 쉼터로 조성되여 있는 473.6봉에 올라선다.
바닥은 온통 멧돼지가 까뒤집어 놓았고.
여기서 배냥떨이를 하고 한참을 쉬여간다.
산패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좀 높게 설치 하었다.
몇군데 쉼터를 지나는데 갈림을를 여러번 만난다.
409.2봉에 올라서니 여기는 군인들 훈련장인지 예비군 훈련장인지 군 시설물이 보이고
선답자들 흔적이 걸려있는 소나무에 산패를설치 한다.
인증을 남기고
덕포숲길 방향으로 내려선다.
15분여 내려가면 묘지가 나오고 지맥길은 우측으로 틀어서 내려가는데.
길은 보이질 않고 길 같은 곳으로 내려간다.
묘지가 나오고 아까 헤여졌던 길을 다시 만나고 영월읍내가 내려다 보이고 우측으로 삼각점봉인 290.5봉이 보인다.
몇발짝 더 내려가니 주왕지맥에 발산이란 정상석이 있는 676.1봉이 보이고
몇발짝 더 내려가면 우측으로 별마로 천문대가 있는 봉래산이보인다.
봉래산(蓬來山:802.6m)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와 삼옥리에 위치한 산으로 영월읍의 북동쪽에 우뚝 솟아 있다.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成三問)이 단종 복위운동에 실패하고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지은 시조에 나오는 산으로 유명하며,
영월 8경의 하나이다.
산 밑으로는 어라연계곡을 거쳐온 동강의 물줄기가 흐른다.
강변에는 금강정과 낙화암이 있다.
낙화암은 단종이 승하한 후 그를 모시던 궁녀. 관비. 궁비. 무녀 6명과 시종 1명이 통곡을 하며 치마를 뒤집어 쓰고 동강으로 떨어져 순절한 곳으로 '낙화암(落化巖)'이란 비석이 남아있다.
(1872년지방지도)에 봉래산이 표시되어 있다.
(영월군읍지)에는 "군으로부터 5리에 있다."고 쓰여 있다.
(영월부읍지)와 『여지도서』는 "부의 동쪽 3리에 있다.
평창 두만산에서 와서 읍치(邑治)의 청룡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영월의 신사(神社)를 관리하던 일본인 후쿠다는 봉래산에다 쇠못을 박아 혈을 끊기도 하였다.
봉래산 기슭에는 큰 산 밑에 있다 하여 묏둔지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는데
일설에는 옛날 사냥꾼들이 이곳에서 매를 날려 꿩사냥을 했기 때문에 '매둔지'라고 한다는 얘기도 있다.
산의 기슭인 속골에는 송산사(松山寺)라는 절이 있다.
소나무가 울창하여 '송산사'라고 한다.
산 기슭의 동굴 속에는 성인암(聖人庵)이라는 암자가 있다.
『영월군읍지』와 『영월부읍지』에 "부로부터 동쪽으로 5리에 있으며 봉래산 자락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군내면 영흥리에 소재한다고 쓰고 있다.
살짝 올라서면 운동기구가 있는 싐터를 지나고
삼각점이 있는 봉에 닿는다.
인증을 남기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삼각점에서는 알아볼 수가 없고 안내판에서 영월 425임을 확인한다.
그물망으로 덥어논 이건 뭐지 묘지인가?
여우고개에 내려서기 직전 두위지맥의 마지막봉인 223.4봉이 보이고
여우고개에 내려선다.
마루금은 표지석뒤로 이여지나 밭을 만들면서 절개지가 생겼는데 올라갈 수가 없다.
봉래초등학교 방향으로 들어간다.
정문이 보이는 위치에서 우측으로 올라간다.
정문이 보이면 우측 골목으로 올라간다.
밭이 나오고 돌아보면 봉래초등학교와 우리家 아파트가 내려다 보인다.
잡목숲을 헤치고 올라서면 여기가 두위지맥의 마지막봉인 223.4봉.
산패를설치 하고 보니 마루금은 500m정도 남은거 같은데 빼곡한 가시잡목이 장난이 아니다.
아마도 여기까지온 지맥꾼은 우리가 최초이지 싶다.
지도를보니 바로밑에 천왕봉이 차가 있는 위치이다.
그냥 왔던길로 내려가고 지난주에 합수점을 미리 둘러보았기에 두위지맥은 여기서 마친다.
아래 사진은 지난주에 찍은 것으로 대신한다.
지형도에 큰팔괴나루터로 표기되여 있는 곳에는 영월드론전용비행시험장 건물이 있다.
동강과 서강이 합수되는 주왕지맥을 건너다 보고
약간 우측으로 영월읍내를 바라보고.
두위지맥 졸입사진 지난주에 미리 찍어둔 것이다.
우측으로 주왕지맥의 마지막 산인 발산도 바라보고
봉래산이 마주보이는 곳에 주차해둔 천왕봉이 차
회수해서 동강 건너쪽으로 간본다.
동강 건너편에서 힘들게 올라가고 힘들게 내려온 계족산을 건너다 본다.
동강대교도 바라보고
별마로 천문대가 있는 봉래산도 바라보고 봉래산에 페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나보다.
이후로 새벽에 산행을 시작한 수라리재로 올라가고 닭복음탕을 안주삼아 쏘맥으로 저녁을 먹고 차박을하고 여기 수라리재가 일출 명소라고 한다.
내일 날씨도 좋다고 하니 아침에 일출을보고 가기로한다.
다음날 아침 6시에 일어나고 일출시간은 6시 44분이라니 아직 해가 올라 올려먼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저앞에보이는 뾰족한산은 대체 무슨산인지 아무리 지도를 살펴바도 알수가 없다.
마침 저쪽에 우리가 일어나기 전부터 카메라를설치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가서 물어보니 보도듣도 못한 단풍산이라고 한다.
좌측이 함백산이고 태백산은 단풍산 뒷쪽에 있다고 한다.
그럼 우측에 보이는산이 소백산이겠구나.
동아지도에서 단풍산을 검색해보니 위치는 나오는데 산이름은 표기가 안되어 있다.
일출은 7시가 넘은 시간에야 볼수 있었는데
구름도 많거니와 거리가 너무 가까워 상상하며 기대했던 그런장면은 못 본다.
여기는 다음주에 진행할 등곡지맥에 착골재 처음에는 배재에서 끈을 계획으로 배재를갔더니 딱 한대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에
누가 선점을 하고 있서서 3km더 진행지점인 여기 착골재에다 천왕봉이차를 주차해두고 올란간다.
착골재 명보주유소 건너편에 넓은 공터에 천왕봉이차를 주차해두고 오라간다.
소요경비
이동거리=501km(왕복)
유류비=51.440원(연비15km/디젤1.540원)
톨비=갈때7.350원/올때 없음)
등=30.000원
스포티지 유류비=58.000원
합계=146.7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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