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외출
지난 한 해 동안 나들이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아 엄두를 내지 않았다. 그저 동네 강둑을 거닐며 물을 보고 풀꽃을 보듬는 것으로 위안 삼았다. 다행스럽게도 그사이에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어갔다.
봄이 오고 있었다. 나에게도 봄이 좀 오려는가. 내 몸이 한창일 때 내가 운영해 오다시피 하던 문화 모임에서 아무 날 남도 문화 답사 예정이라는 기별이 왔다. 추진하고 있는 이가 참여 여부를 물어 왔다. 참여하겠다고 했다.
답사지는 저 남쪽 구례, 하동 쪽으로 가서 창연한 운조루 고택을 보고, 유명한 화개장터며 십 리 벚꽃길을 달려 박경리문학관도 탐방하고 올 것이라 했다. 십여 년 전에 가 본 곳도 있지만, 기꺼이 가겠다 했다. 봤다 한들 느낌이야 어찌 같을 수 있으랴.
지팡이를 짚고 이른 아침을 서둘러 집을 나섰다. 마지막 집결지에서 이십여 명이 모였다. 오랜만에 나온 나를 보고 반가워했다. 남으로 남으로 길을 돋우었다. 회장님이 인사에 이어 답사 안내서에 준비한 시가 있다며 모두 펴 보란다. 이 길에 웬 시인가.
박목월의 ‘나그네’와 김춘수의 ‘꽃’이 새겨져 있다. 시 낭송을 좋아하는 어느 분이 낭송하고, 회장님은 준비된 원고를 보며 해설을 곁들인다. 우리도 술 익는 길 나그네 되어, 보고 듣는 모든 것에 뜻깊은 의미를 새겨 보자 했다. 모두 박수를 모은다.
운전기사가 감화를 받은 걸까. 구성지고도 흥에 겨운 트로트를 거두고 ‘봉경미의 시낭송 카페’라는 영상을 보여주는데, 문병란의 ‘희망가’며 사무엘 울만의 ‘청춘’, 김형경의 ‘세월’ 들이 흘러나온다. 창밖으로 흐드러진 벚꽃이 스쳐 갔다. 시가 꽃을 불렀는가.
구례라 했다. 내 사는 곳은 이제 꽃눈이 틀까 말까 한데, 남도는 이리 다르구나.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드디어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서 사는 집’ 운조루雲鳥樓에 닿았다. 영조 때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柳爾胄라는 분이 지은 전형적인 양반 가옥이라 한다.
금환락지金環落地 명당자리를 골라 안채, 사랑채, 행랑채, 사당을 다 갖추어 수십 칸 와옥으로 지었으니 기세가 등등할 것 같았지만, 대문간에 세워둔 원통형 뒤주 하나가 보는 마음을 유정하게 한다. ‘타인능해他人能解’, 배고픈 사람 누구라도 열어 쌀을 가져가라는 뒤주다.
굴뚝을 토방 아래에 두었다. 밥 짓는 연기가 높게 솟아오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란다. 그 연기를 보고 배고픈 사람 더욱 배를 고프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라 했다. 그런 것들을 보는 순간, 성치 않은 내 몸이 무언가 위안을 받는 듯도 했다.
차를 달리다가 어느 밥집 앞에 멈추었다. 섬진강 재첩국에 지리산 천연 암반수로 빚은 산수유 막걸리 한 잔, 오늘 길 나서기를 잘했다 싶었다. 이 담백한 국물이며 청량한 한 잔 술이 내 몸에 봄기운을 유연히 돋구어주는 것 같았다.
하동 십 리 벚꽃길을 달린다. 꽃이 차를 달리게 하는지, 차가 꽃을 달리게 하는지, 온통 꽃 굴속을 내닫는다. 이런 꽃길이라면 어디까지라도 달려가고 싶기도 했다. 화개장터에 닿았다. 소문난 장터라 그런지, 사람도 북적, 불빛도 북적, 물건도 북적한다.
조영남 가수가 노래로 더 유명하게 만든 곳, ‘화개장터’ 표지석과 함께 노래비를 세워놓고, 장터 한가운데 가수의 금박 형상도 앉혀 눈길을 잡는다. 노래가 곧장 흘러나오고 있는 듯하다. 오일장이 아니라 늘 장날인 것 같다.
평사리 박경리문학관, 최참판댁으로 간다. 주차장에서 내려 오르막길을 한참 걸어 올라야 한다. 내 지팡이 걸음으로 쉽사리 오를 수가 있을까. 운조루에서, 십 리 벚꽃길에서, 북적거리던 화개장터에서 얻은 기운으로 올라 보자.
마침 문학이며 음악, 시 낭송을 좋아하는 분과 말벗이 되어 오르게 되었다. 힘겨울 겨를이 없다. 말벗과의 대화도 힘을 주었지만, 문학의 향기에 또 하나의 기운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힘을 더해 준다.
박경리문학관으로 먼저 드는데, 마당 바닥에 “살아있다는 것은 아름답다.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 이상의 진실은 없다.”라는 글귀가 보인다. 물론 박경리 선생의 말씀이다. ‘그렇지, 살아있다는 것은 아름다워야 해.’ 입속 혼잣말을 굴리며 문학관으로 든다.
선생의 연보며 ‘토지’를 비롯한 유작들, ‘토지’의 배경이 된 평사리 들판이며, 등장인물들이 모여 단체 사진이라 박은 듯 형상화한 그림도 보여주었다. 이 작품이 얼마나 거룩하면 이곳 지명조차도 ‘토지면’이라 했을까. 문학 작품 하나가 이렇게 세상을 바꾼다.
‘최참판댁’은 또, 한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아득히 너른 땅 위에 작품 속 세상을 현실 세상으로 살려 놓았다. 등장인물이 거처했던 공간을 하나하나 재현해 놓고, 거기마다 얽힌 스토리를 알뜰히 보여주고 있다. 새 세상을 이루고 있다.
박경리 세상을 보러 오르내리는 길가에는 수많은 가게가 객의 발길을 끈다. 많은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건 차치하고라도, 문학 작품 하나가 이리 많은 사람을 살리고 있다. 나도 살리는 것 같다. 그 위대한 힘에 끌려서인지 이 비탈길을 거뜬히 오르내리는 걸 보면.
귀로를 달린다. 기사는 올 때 보여주던 시 낭송 영상을 디스코 트로트로 바꾸었다. 차 안이 요동하기 시작한다. 한가득 봄바람 품고 있던 사람들 어깨가 들썩인다. 영상 반주와 함께 노래를 외치며 손뼉을 친다. 어떤 이의 소주잔 기울이는 소리가 흔쾌하다.
여느 때 같으면 피곤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장면들이 오히려 정겹다. 마치 내 모처럼의 외출에 축가를 불러주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박달재의 금봉이야~’ 목청을 돋우기도 했다. 세상이 살 만한 것 같기도 했다.
사는 날까지는 살아 봐야겠다고 여기는 사이에 내릴 곳에 이르렀다. 지팡이를 서양 신사의 스틱으로 삼아 집으로 왔다. 내 몸에도 봄이 오고 있는가.♣(2026.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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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 안녕하시지요?
아침 주옥같은 글 잘 새겼습니다. 그날 저희도 벚꽃 터널을 지나 섬진강을 나란히 달려 하동향교, 청학동과 삼성궁 다녀왔습니다.
무엇보다 선생님 옥체도 마음도 봄이 온 듯하여 참 기쁩니다. 글을 새기며 지난날 그곳 갔던 날들을 소환해 봅니다. 꽃을 시샘하는 비로 그렇게도 화사한 꽃이 아프게 지지만, 꽃 진자리 새싹이 돋네요. 시간 다르게 나무는 푸르름이 짙어집니다. 선생님 기력이 새싹처럼 짙어지기를 합장합니다. 선생님 강녕하게 지내십시오.
언제나 저를 걱정하시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우리 동네 강둑에는 벚꽃이 한장입니다.
꽃들을 보면서 기운을 돋구어 봅니다.
염려해주는 덕분에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늘 건승하시기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