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마이 그레이스 홈 2023년 4월 소식
주님의 은혜가 섬기시는 가정과 교회 위에 늘 함께 풍성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유난히도 더운 2023년의 여름입니다. 이곳은 몇 달째 오지않은 비를 기다리다 못해 나무며 풀들은 말라가고 있고 게다가 생존을 위한 불지르기로 인하여 대기오염은 심각할 정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과 목의 질병을 염려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가까이에 있는 산이 보이질 않아 아침에 일어나면 산이 보이는지 산을 바라보며 확인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어제 저녁에 갑자기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렸습니다. 아이들은 2개월반의 긴 방학을 보내고 있습니다. 무더위와 함께한 그레이스 홈의 4월 소식을 보내드립니다.
<건기의 절정인 4월, 밤이 깊으면 새벽이 멀지 않음과 같습니다.>
작년 10월부터는 거의 비가 오질 않았는데 4월까지도 거의 비가 오질 않습니다. 건기의 절정인 셈입니다. 나무나 풀들은 견디지 못하고 많이 고사했고 산은 화전을 일구기 위한 불놀이로 공기는 쾌케한 냄새로 목이 아플 정도입니다. 밤사이에 화전을 하고자 불을 질러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게다가 수은주는 40도를 오르내리지만 정작 느끼는 체감 온도는 5도 이상 높습니다. 습도도 60%를 넘는다고 하여 우리가 느끼는 더위는 더욱 심합니다. 화전은 저들의 생존을 위한 수단이기에 누구도 그들 탓을 하지못합니다. 그래도 새벽이 가까웠음을 알기에 더위를 참습니다. 5월 어느 날인가부터는 비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밤이 깊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고향을 방문하여 넉시의 “빈곤의 악순환”을 다시 한번 경험하다.>
아이들은 4월을 맞아 고향을 방문할 생각에 아이들은 두마음인 것 같습니다. 고향을 방문한다는 생각이 가슴이 설레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가서 지낼 일들에 가고싶지 않은 마음… 40도의 더위에도 밖에서 일을 해야 하기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땡볓에서 이웃 친척들의 일을 돕거나 돈을 벌기 위해 일당으로 들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합니다. 하루 일당은 만원 정도인데 그것도 일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같이 그레이스 홈을 섬기는 사라 전도사와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자 아이들이 사는 마을을 방문하기로 하였습니다. 두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마을에 아이들은 이미 시커멓게 얼굴이 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더워 일도 없어서 며칠 일하고 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레이스 홈에 오고자 하는 아이가 있다고 하여 집을 방문하였는데 넉시가 말한 빈곤의 악순환이 재연되고 있는 것을 목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준비도 없이 결혼을 하고 헤어지고 아이들은 버려지고 그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에 맡겨지고 아이들은 돌봄을 받지 못하고, 경제적 빈곤은 물론이고 그것이 죄인 줄도 모르고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가정사의 대물림이 계속되는 현장을 목도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레이스 홈에서 성장한 아이들중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지만 한명은 마약에 손을 대는 아이도 있었는데 최근에는 정신을 차리고 치앙마이로 내려와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이어서 감사했습니다. 유전처럼 내려오며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도록 돕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쏭크란 새해에 찾아온 위치안과 식사를 하다>
무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시기인 4월 중순에 이곳은 쏭크란이라는 새해 물축제를 합니다. 시내마다 중요한 지점에서 마을마다 가족들마다 같은 옷을 입고 물을 큰 통에 담고 트럭 뒤에 싣고 그 물에 커다란 얼음덩이를 띄우고 3일동안 물싸움을 하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물을 뿌리며 축복하고 축하합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예년보다는 많이 규모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3일동안 모든 태국인들은 물축제를 즐깁니다. 생각해보면 축제는 무더위를 즐기는 또다른 방법입니다. 더운 나라에서 더위를 잘 지나는 방법중의 하나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인데 이들은 무더운 건기에 시마다 때마다 축제라는 이름으로 같이 참여하고 즐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쏭그란이 절정인 날에 위치안이 전화가 왔습니다. 새해 인사를 하러 집으로 고겠다고 하여 아예 식당에서 만나자고 하였고 같이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래도 매년 잊지않고 찾아와주는 아이를 보며 감사했습니다. 아이들의 소식도 듣고 자신의 미래 계획도 듣고 충고를 하지만 성인이 다된 아이를 주님께 의탁하고 기도하는 수 밖에 없음을 앏니다. 우리는 라오스에 2년간 단기선교사로 헌신했던 그의 생애를 주님이 순적하게 인도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선교사 수련회와 불교 관련 세미나에 참여하다.>
코로나로부터 회복되자 많은 회의가 열리기 시작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선교사들의 모임입니다. 코로나 이후 처음 열린 선교사 수련회는 새벽 6시부터 밤 열시까지 3일간의 기도에 대한 9시간의 강의와 멘토에 대한 3시간의 강의로 채워져 있었고 어느 덧 선배가 된 우리는 우리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앞자리를 묵묵히 지켜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세미나는 주제에 대한 강의를 듣고 이해한 것을 나누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전통적인 방법으로만 진행하는 모습에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혼자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아하 그렇구나를 깨닫고 말할 수 있도록 하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이곳에 온지 처음으로 침례교 선교사 모임을 갖다.>
4월 하순에는 2박3일간 침례교 선교사들의 연례회의를 2박 3일간 진행된 태국에 거주하는 침례교 선교사 모임을 가졌다. 지금까지 20여년을 태국에 있었지만 침례교 선교사 모임을 제대로 가진 것은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는 인천의 지방회에서 오신 세분의 목사님들의 헌신으로 모임이 이루어졌다.
모임을 가져보지 못한 미숙함으로 부족함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들의 소박하고 솔직한 마음들이 나눠지니 첫시간부터 은혜가 쏟아졌고 참석하신 선교사님들도 모임이 즐겁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이런 모임을 갖지 못한 것을 내내 아쉬워했다.
나는 모임 중간에 태국 치앙마이의 역사 탐방과 초기 교회와 선교사 묘지를 방문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모두들 이런 귀한 역사가 치앙마이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감동하였다.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이곳까지 방문해주시고 함께 해주신 3분의 목사님들과 참여하신 7가정의 선교사님들은 모임 후에도 공동 카톡을 통해서 많이 많이 아쉬움을 감사함을 표현하였다.
<다시 찾아온 바오로와 함께 식사를 하다.>
바오로는 그레이스 홈에서 자란 청소년이었다. 아버지는 유치원때 죽었고 엄마는 재혼하여 멀리 가서 초등학교 1학년때 그레이스 홈에 왔다. 아이가 중3을 마칠 무렵, 어느 날 작은 아버지가 자신이 바오로를 입양하겠다며 바오로를 데리고 가겠다고 하였다. 우리는 어려워도 가족들이 돌보는 것이 최선이라 여기기에 여기에 있는 것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좋지만 가족들이 돌본다면 기꺼이 가는 것을 허락한다. 그렇게 해서 바오로를 축복하며 보냈다.
가끔씩 라인이나 페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사정을 잘 알지 못했다. 우리에게 지난 3월 3년만에 팀이 와서 바오로의 고향을 방문하여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작은 아버지는 바오로를 입양하겠다고 하고는 실상은 자기 아버지를 바오로가 돌보도록 하려고 한 것이었는데 그 할아버지가 코로나 기간에 소천하였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바오로를 돌보지도 않아 아이는 어렵다며 우리에게 도움을 호소하였다. 바오로를 불러 같이 식사를 하고 상황을 들어보았다. 아이가 그레이스 홈에 다시 들어오지는 못하지만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홀로 설때까지는 우리가 그를 돌봐야 했다. 아이는 기술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드럼을 치며 음악인의 길을 가고 싶어하는 바오로가 꿈을 펼 수 있도록 우리가 버팀목이 되어야겠다.
그레이스 홈을 위해 4월에는 이렇게 기도해 주십시오.
1) 그레이스 홈의 온가족이 영육간에 건강하며 5월 15일에개학하게되는새학기에새로온 6명의아이들이잘적응하고오가는길에안전하게다닐수있도록
2) 그레이스 홈에서 성장하여 30대가 된 찰랏이 신장에 문제가 있어 신장 이식을 해야하는데
신장 기증자를 통하여 신장 이식을 속히 할 수 있도록
3) 치앙마이 YM 스텝으로 섬기는 까이와 방콕에서 인턴을 하며 공부하는 남완이가 믿음으로 과정을 잘 감당하도록, 위치안이 적절한 직업을 찾도록
4) 하영이와 기준이가 믿음 안에서 비젼을 갖고 신실하게 주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5) 한국인에 의한 태국 선교 70년을 총정리하는 책무를 맡았는데 3년 동안 잘 감당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