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훌륭한 학자는 미묘하고 아득하게 통달하여서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오직 깊이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를 다음처럼 형용한다. 망설이는 것이 겨울에 개울을 건너려는 것처럼 하고, (겨울에 개울을 건널 때 망설이는 것이 건널 듯 말 듯하여 그 실정을 알 수 없는 모습이다.) 주저하는 것이 사방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하며, (사방의 인접국이 연합하여 공격하니 망설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 최상의 덕을 지닌 사람은 누구도 그의 낌새를 알아챌 수 없고, 품성이 추구하는 것을 꿰뚫어볼 수 없는 것이 마치 이와 같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것처럼 공손하고, 눈 녹는 것처럼 풀어지고, 통나무처럼 투박하고, 골짜기처럼 덩그렇고, 흐린 물처럼 혼탁하다. (본문의 ~처럼은 모두 그 모습을 무엇이라구 드러낼 수도 없고 무엇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는 말이다.) 누가 혼탁함 그것으로 안정시켜서 서서히 맑아지게 할 수 있겠는가? 누가 편안함 그것으로 오랬동안 움직이면서 서서히 새로운 무엇을 낳게 할 수 있겠는가?(어두움으로 사물을 다스리면 밝게 될 것이고, 혼탁함으로 사물을 안정시키면 맑게 될 것이고, 편안함으로 사물을 움직이면 삶을 얻을 것이니, 이것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방법이다. 본문에서 ‘누가 ~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은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고, 서서히 라는 말은 꼼꼼하고 신중하게 한다는 말이다. 이 도를 보전하는 자는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 (채우면 반드시 넘친다.) 단지 채우지 않기 때문에 감쌀 수 있고 아무것도 새롭게 만들지 않는다.(’감싸다‘는 말은 덮어 준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