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오늘 참 좋은 계절입니다. 진달래꽃이나 또는 철쭉, 배꽃, 또는 복사꽃 정말로 만화방창萬化方暢 아주 참 화창한 좋은 계절입니다. 거기다가 부처님 오신 날도 지금 곧 당도하게 됐으니 얼마나 좋은 때입니까.
우리가 사바세계에 사는데 있어서 이른바 인생고해人生苦海라. 그래저래 여러가지로 고생이 많은데 따라서 그런 고생 가운데서 자기 살림을 꾸리고 살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이 남한테 보시를 많이 하고 또는 사회사업도 하고, 또 그런가 하면은 신앙심이 사무쳐서 이와 같이 절을 지어서 삼보三寶에 바치기도 하는 그러한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참 희귀한 일입니다.
여기 이 고원사高願寺. 이름도 참 좋습니다.(경북 군위군 청화산 고원사) 높을 고高자, 원할 원願자.높은 서원을 세운 그러한 절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좋은 승지勝地에다가 이러한 훌륭한 가람을 세운다는 것은 다만 금생에 작심삼일作心三日로 잠시간 마음먹은 것이 아니라 과거 전생에 몇생을 두고서 공덕을 쌓은 그런 분들만이 할 수 있는 그러한 거룩한 공덕주功德主이십니다. 우리 사부대중과 더불어 창건주 내외분에 대해서 심심한 감사의 합장과 치하의 합장을 드립니다.
우리 부처님 가르침은 한도 끝도없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해 있습니다. 인류문화의 여러가지, 여러가지 형태의 그런 문화 형태의 그런 근본은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다 포함돼 있습니다. 과학이든 또는 철학이든 또는 종교이든 모든 것의 핵심이 다,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는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이 자기 생명같이 소중해서 이렇게 절도 짓고 하는데 그러한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것은 한 말씀으로 하면은 우리 중생들이 보는 허망한 그런 상相을 떠나서, 우리 인생과 우주의 근본성품으로 돌아가는, 근본본체根本本體로 돌아가는 그러한 말씀이 가장 소중한 핵심입니다.
우리 중생들이 아 마음이 답답하다. 또는 무엇이 잘 안된다. 평생 우리 중생들은 그 눈에 보이는 것만 얽매이기 때문에 항시 불만이 많습니다. 또는 다소 그때그때 일이 좀 잘되서 기분이 좋은 때도 있지만 이런 것은 잠시뿐인 것이고 결국은 다 생로병사生老病死라 하는 그러한 한계상황에 부딪혀서 누구나가 다 늙고 병들고 죽지 않습니까. 따라서 우리 인생은 따지고 보면은 고생뿐이란 말입니다. 고생뿐인데 그 고생을 극복하는 그 길이 무엇인가. 이런 것도 부처님 가르침을 떠나서는 있을수가 없습니다.
헌데 이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도 여러분들이 대체로 아시는 바와 같이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이 있습니다. 소승적인 가르침은 이것은 우리 중생 차원에서, 중생의 보는 눈도 긍정하면서 우선 잠시로 베푸신 그런 가르침이고 대승 가르침이 돼야 참다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核心이 들어 있습니다. 대승 가르침은 아까도 얼핏 제가 언급한 바와 같이 모든 우리 중생이 보는 현상적인 상相, 이 모양을 떠나서 모양이 있으면은 이름도 있겠지요. 모양이나 이름을 떠나서 근본 그 본체로 돌아가는 근본성품으로 돌아가는, 이러한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고 대승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지금 대승의 가르침을 터득을 하고 계십니까?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모양과 이름이 있는 것은 이것은 우리 중생이 잘못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반야심경이나 또는 금강경이나 또는 화엄경에서나 또는 법화경에서나 그 익히 우리가 보고 또는 듣고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고 하면은 모든 것은 다 허망무상虛妄無常하다. 허망무상虛妄無常하다는 그 말은 사실은 실제로 있지가 않다는 뜻입니다. 아, 나도 있고 너도 있고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이렇게 많은데 왜 허망할 것인가. 몽환포영夢幻泡影이라. 그런 것은 꿈이요, 허깨비요. 또는 물속에 비친 달그림자요. 이런 것 밖에 아닌데 이것은 허망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부처님 가르침은 말씀을 합니다. 그래도 우리 중생들은 납득을 잘 못합니다. 아, 분명히 있는 것인데 왜 허망할 것인가.
그러나 여러분들이 대체로 알으시는 바와 같이 다행히도 현대 물리학이 모두는 다 허망하다는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존재 이것은 사실은 있지가 않은 것이다. 이런 것을 증명을 했습니다.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현대물리학이 없었던들 우리는 부처님 가르침, 모두가 다 꿈같고 그림자같고 이렇게 한다는 소식을 알기 어렵단 말입니다. 우리가 공부를 많이 해서 참선도 많이 하고 염불도 많이 해서 우리 마음의 근본 성품을 깨달은 뒤에는 모르겠지마는 그 체험을 못할때는 모두가 다 비었다는 허망한 소식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현대 물리학이 아 모두는 에너지 뿐이다. 모두는 우주의 하나의 기氣뿐이다. 이 존재하는 것은 그 에너지가 상호작용으로 모양을 잠시간 나툰 것이다. 이렇게 증명을 했단 말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은 모든 것을 다 하나의 도리道理, 하나의 도리로 통일을 딱 시켰습니다. 현대 물리학이. 우리가 공부하는데 있어서 여러가지로 갈래가 많은 것인데 이른바 이원적二元的으로 물질은 물질대로 있고 마음은 마음대로 있고 무엇은 무엇대로 있고. 이렇게 갈라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 물리학이 사실은 모두 에너지뿐이다. 이렇게 정리를 해줬단 말입니다.
그러면 에너지는 그건 무엇인가. 그런 것은 현대 물리학은 모릅니다. 어째서 모르는고 하면은 물리학이라 하는 것은 실험이나 실측이나 이렇게 하는 범위 밖에는 모릅니다. 다시 바꿔서 말하면은 시간이나 공간이나 그런 범주내의 것만 현대 물리학은 아는 것이지 시간이나 공간이나 떠나서 있는 소식 그런 것은 현대 물리학은 모릅니다.
허나, 다행히도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중생들이 겉에 뜬거만 보고 겉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우리는 굳게 믿고 있고, 그 외에는 잘 모르기 때문에 모양으로 좋으면 좋은것이고 모양이 나쁘면 나쁜 것이다. 모양이 화려하면 그것은 가치가 있는 것이고 모양이 보잘 것이 없으면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좋든 궂든 모두가 다 허망무상하단 말입니다. 아까 말씀마따나 에너지가 어떻게 진동하고 어떻게 움직이고 에너지의 그 상호작용으로 해서 잠시간 모양을 나툰것이지 실지로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항시 외이고 있는 반야심경般若心經 있지 않습니까. 반야심경에서 그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이라.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이라 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면은 우리 중생이 인생고人生苦를, 우리 부처님 가르침은 모두가 다 인생고를 떠나는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현실과 떠난 문제는 조금도 없습니다. 그 현실적인 모든 인생고人生苦를 여의는데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 있다는 말입니다.
헌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 그 핵심. 즉 인생고를 떠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이 보고 있는 이 현실, 존재한다는 이런 것이 원래는 비어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입니다. 반야심경을 우리가 외이면서 반야심경의 뜻을 알아야 되겠지요.
오온五蘊이라 하는 것은 모든 존재가 오온법五蘊法에 해당합니다. 즉, 이른바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다 오온법五蘊法이란 말입니다. 헌데 그런것이 그 오온법五蘊法이 본래로 되어 있단 말입니다. 우리가 공부해서 억지로 비게시리(비게끔)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로 진리 자체가 오온법이라 하는 것은 다 비어있단 말입니다. 그 오온법이 비어있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비추어 봐야 인생고를 떠납니다.
아무리 허우적거리고 애쓴다 하더라도 우리 중생이 좋다 궂다 또는 나다 너다 하는 그러한 관념을 못떠날 때는 인생고는 못떠납니다. 우리가 현대 실존철학을 보나 또는 무엇을 보든지간에 인생고를 떠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 인생이 잘못보는, 잘못보는 허상虛像을 없애야 한단 말입니다.
허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방금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중생이 존재한다, 존재한다 이런 것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입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증명한 것이 현대물리학입니다. 사람같은 모양이나 또는 산같은 모양이나 또는 다이아몬드나 금이나 이런 것도 역시 에너지가 어떻게 진동하는가 에너지의 그런 진동 상황 여하에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보인단 말입니다. 그런것이지 사실은 실지로 있지가 않단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해보면 알게 됩니다. 우리 몸도 지금 아까 1초 전의 몸과 지금 현재의 몸과 같지가 않습니다. 지금 변하고 있단 말입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어떠한 존재나 모두가 다 순간 찰나도 머무름이 없이 지금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은 순간 찰나도 머무르지 않고 변화한다는 것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도, 어는 순간도 같은 것이 없으니까 사실은 존재하지 않겠지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모든 것은 다 순간도, 순간도 집착이 없이 순간도 존재하는 것이 없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 제행무상입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기 때문에, '나'라고 고집할 것도 사실은 없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나'라는 관념을 떠나고 또는 내 소유라는 관념을 떠나야 된다. 이른바 무아무소유無我無所有라. 무아무소유無我無所有 이것이 우리 불교수행자의 굉장히 중요한 덕목의 하나입니다.
헌데 우리 중생들은 좀체로 '나'라는 관념을 잘 못떠납니다. 그것은 무엇인고 하면은 우리가 보는 것이 바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른 것이 아닌 것을 우리가 옳다고 고집한단 말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본래로 없거니 내 소유라는 것도 사실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나'라고 고집하는, '나'라고 고집하는 그러한 미망심 때문에 어리석음 때문에 아, 내 소유다 내 집이다 또는 내 감투다 내 재산이다 그러는 것이지
부처님 진리에서 바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이것은 방금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나'라는 존재를 이것도 우리가 잘못보고 '나'라고 고집하는 것이지 그것이 없는 것이고 따라서 그때는 필연적으로 내 소유라는 것도 없단 말입니다. 가령 내 아내요 내 남편이요 내 친구요 내 집이요 하지마는 그런것도 불교의 진리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하나의 그거도 허망한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을 믿는데 그냥 소승적으로 상식적으로 아, 복을 빌기 위해서 뭘 잘되기 위해서 인제 믿는다 이래 버리면 참 우선은 쉽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가 아니니까 우리 인생고를 여읠 수가 없습니다. 인생고人生苦를 여의기 위해서는 근원적으로 꼭 반드시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단 말입니다.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에 대해서 경탄하고 감사해마지 않는 것은 무엇인고 하면은 그 현대의 그런 정밀 과학. 어디에 비추어 봐도 조금도 모순도 없고 모든 것을 다 포함했단 말입니다. 과학도 철학도 어느 것도 우리 불교, 부처님 가르침은 다 포함했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씀했단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에누리한 그런 말씀은 조금도 없습니다. 있으면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시고 없으면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단 말입니다.
그런데 있는 것은 무엇인가. 참말로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불자님들, 참말로 있는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습니다. 그것은 이른바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 진여불성이라. 오늘 이 고원사에 오신분들은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꼭 잘 외어두시기 바랍니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 진여는 참 진眞자, 같을 여如자. 이 우주의 도리를 말합니다. 인생과 우주의 참다운 도리가 진여眞如입니다. 다른 것은 우주에는 없습니다. 참다운 도리에 따라서 우주가 지금 형성되고 움직이고 있단 말입니다. 그 불성佛性은 무엇인가.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우주의 근본 성품이란 말입니다.
우주란 것은 태양계가 없어지든 또는 어떠한 것이 소멸되든 말든간에 우주라는 것은 하나의 원리 밑에서 진리 밑에서 진여 밑에서 우주는 형성되고 움직이고 있고 또 파괴가 된다 하더라도 다시 에너지 불멸不滅이라. 에너지는 그때는 멸滅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또 형체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 우주를 구성하는 성품이나 또는 우리 마음을 구성하는 성품이나 모두가 다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불성佛性입니다. 불성이라.
우리 중생이 고생스럽고 여러가지로 망상하고 다 그러는 것은 그러한 진여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자기의 근본성품이 아, 부처의 성품.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바로 불성佛性인데, 불성인지를 모르고서 이 우선 눈에 보이는 이 몸뚱이가 '나'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인생은 고생을 하고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방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의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의 근본, 근본 생명 자체, 성품 자체, 이것이 바로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불성佛性이란 말입니다. 부처의 성품이기 때문에 조금더 인격화 시키면 그때는 부처님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이란 말씀이나 불성佛性이란 말씀이나 뜻이 똑같습니다.
불교를 믿는 분들이 아 부처님 그러면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부처님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서는 이것도 역시 아직은 소승에 불과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참다운 대승법에 있어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시고 안오시고 상관이 없이 나오시고 안나오시고 상관이 없이 언제나 우주에 존재하는 생명 자체 그 자리가 바로 방금 말씀드린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바로 불성佛性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 나의 성품은 바로 불성인 것이고, 따라서 우리 마음도 역시, 우리 마음도 역시 지금 눈에는 안보이지마는 마음의 본성은 바로 불성인 것입니다.
우리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는 우주의 참다운 도리, 참다운 도리는 이것은 바로 그것이 생명이기 때문에 불성 그러는 것이지 진여眞如가 따로 있고 진리가 따로 있고 불성佛性이 따로 있고 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주의 도리가 이것이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바로 진여眞如 곧 바로 불성佛性이란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 마음 자체가 바로 이것은 모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은 그 모양이 없는 그 자리에, 그 자리에 바로 우주의 도리가 다 들어있고 동시에 바로 그 자리가 하나의 생명이니까 진여불성 그런다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꼭 외워두셔야 됩니다. 그래서 우주의 도리가 바로 진여眞如고, 우주의 생명이 바로 불성佛性이고 또는 그것이 바로 우리 마음의 근본자리란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인간존재는 우리가 불성을 성취하는 그러한 공부가 가장 중요한 공부입니다. 우리는 우리 생명이 바로 불성인 줄을 모르고 진여인 줄을 모르기 때문에 헛것을 많이 구해왔지마는 이런 걸(헛것을 구하는 걸)로 해서는 우리 인간이 참다운 행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흔히 우리 인간은 본래로 부처라 이런 말씀을 우리가 하지 않습니까? 이런 말씀(본래시불本來是佛)도 간단한 말씀이지만은 굉장히 심심미묘甚深微妙한 말씀입니다. 본래로 부처라. 우리가 닦아서 나중에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 타고 나온대로 원래 생긴대로 바로 부처란 말입니다.
부처라고 생각할 때는 아, 그냥 부처니까 부처가 아니겠는가 이렇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부처님한테 들어있는 공덕功德이라는 것은 한도 끝도 없이 많지 않습니까. 이른바 헤아릴 수 없이 몇 겁劫을 두고서 몇 겁을 두고서 그런 수리數理에 밝은 사람들이 몇천만이 모여서 부처님 공덕功德을 헤아린다 하더라도 부처님한테 갖추고 있는 공덕은 다 헤아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비도 원만하고 또는 지혜도 원만하고 능력도 원만하고 어떠한 면으로 보나 부처님한테 갖추어 있는 공덕은 원만무결圓滿無缺합니다.
또는 그것이 우리하고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마음이라 하는 것은 이것은 모양은 안보이지만 모양이 안보이는 가운데, 안보이는 가운데 모든 공덕을 다 가지고 있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모양이 안보이는 것은 없다고 하고 모양이 있는 것만 집착을 합니다. 그러나 생명의 본체本體는 사실은 모양이 없는 것이 이것이 본체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오시고 안나오시고 상관이 없이 우주에 언제나 존재하는 우주의 도리道理 이것이 진여眞如고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처 불佛자 성품 성佛자 불성인데 진여불성인데 진여불성 이것은 우리 인간의 눈에는 안 보입니다. 다만 깨달아서 우리가 참다운 성품性品을 알아야 비로소 진여불성眞如佛性을 체험한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진여불성은 우리가 본래로 갖추고 있는 것인데 우리 중생이 모양에만 집착해서 형상에만 집착해서 우리 마음을 그냥 엄한데다가 필요없는데다 낭비를 많이 했다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차근차근 가면은 갈수록 마음은 더 갈등해지고 또는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과는 더욱더 거리가 멀어지고 맙니다.
우리는 우리가 소원을 세울적에 정말로 많은 중생을 다 제도하고 또는 한도끝도 없는 그런 번뇌煩惱를 다 없애고 말입니다. 또는 그 많은 법문을 다 배우고 또는 무량의 그런 중생을 제도함과 동시에 위없는 또 불도佛道를 성취하고. 위없는 불도佛道가 무엇인가. 그 불도佛道를 부처님한테 가는 부처님이 되는 그런 길을 성취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부처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생각할때는 아 부처란 것은 출가해가지고서 스님네가 참선을 많이 하고 그래야 되는 것이지 일반 사람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이렇게 어렵게 생각을 절대로 말으십시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가 본래로 바로 부처란 말입니다. 본래로 부처니까 그 부처한테 들어있는 공덕이 우리 마음에도 온전히 다 들어 있습니다. 부사의不思議한 공덕이 다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자기를 믿고 부처님 공부를 한다고 할 적에 자기심을 과소평가하고 또는 자기비하 해서는 절대로 공부가 안됩니다.
정말로 우리가 지금 개발을 못했을 뿐이지 우리가 잘못 살아서 증명을 못할 뿐이지 우리한테는 한도 끝도 없는 무량무변無量無邊의 모두가 다 들어있단 말입니다. 행복도 원만히 다 들어있는 것이고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런것을 불교에서 간추리면은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 이렇게 말한다 말입니다.
짧은 시간에 여러 말씀을 다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여튼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비록 지금 자기가 이꼴 밖에는 안돼있다 하더라도 나한테 갖추고 있는 그 마음. 나한테 갖추고 있는 그 마음이나 또는 석가모니한테 갖추고 있는 그 마음이나 또는 공자의 마음이나 예수님 마음이나 마음이란 것은 모양이 없어놔서 죽지도 않고 또는 새삼스럽게 낳지도 않고 말입니다. 또는 더 하지도 덜 하지도 않은 것이 우리 마음인데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마음이란 것은 한도끝도 없는 그런 공덕이 다 들어있단 말입니다. 공덕功德이 들어있다는 것을 우리가 확실히 느껴야 됩니다. 공덕功德이 들어있다는 것을 우리가 느끼기 위해서, 참선도 하고 염불도 하고 그런단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 생활이 잘못돼서 우리의 생명을 낭비를 많이 했기 때문에 바른 길로 가지 않고서 자꾸만 모양있는 그런 쪽으로만 우리 생명을 낭비했단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부처님하고 지금 거리가 멀어 있는 것이지 우리 마음의 본체하고 거리가 멀어 있는 것이지 우리한테 갖추고 있는 본래의 기운은 그대로 있단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화두를 타서 화두를 타서 참선 공부를 한다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셔야 됩니다. 생각 생각에 다른 생각이 없이(염념상속念念相續) 지속적으로 공부를 해야 그래야 마음이 여물어지고 마음이 오로지 한결로 뭉쳐져서 어려운 말로 하면은 그렇게 해서 비로소 삼매三昧에 든단 말입니다. 삼매三昧라는 것은 무엇인고 하면은 우리 마음이 그 부처님 쪽으로, 부처님 쪽으로 오로지 한 갈래로 가는 그러한 공부가 삼매입니다. 삼매三昧에 꼭 들어야 됩니다. 삼매에 안들으면은 우리의 그런 공덕을, 우리 마음에 들어 있는 부처님 성품을 우리가 깨닫지를 못해요. 깨닫지 못하면은 그때는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나 그런 공덕을 얻을 수가 없겠지요.
우리는 절대로 밖에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밖에서 아무리 찾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얻지를 못헙니다.밖에 것은 모두가 허망무상虛妄無常하니까요. 그때그때 변화하고 또는 그런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한테 참다운 만족을 못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있는 공덕은 이것은 끝도 갓도 없을 뿐만 아니라 찾아가면은 찾아갈 수록 마음은 더욱 더 맑아지고 또 굳세지고 또는 자기 스스로 만족감은 더욱 더 증장이 되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진여불성眞如佛性, 진여불성은 꼭 깊이 외어두시기 바랍니다. 우주의 참다운 도리道理 이것이 바로 진여眞如입니다. 세상말로는 바로 진리가 되겠지요. 우주란 것은 어느 것 하나도 하나의 풀포기나 어느 것이나 모두가 다 진여眞如로 해서 우주의 진리로 해서 다 이루어집니다. 또는 불성佛性이라.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그 불성이란 말하고 부처님이란 말은 똑같습니다. 인생과 우주의 참다운 성품이 불성이란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말로 말하면은 이 천지우주라는 것은 모두가 다 진여眞如뿐이고 불성佛性뿐이란 말입니다. 다시 바꿔서 말하면은 우주라는 것은 모두가 다 부처님뿐입니다. 부처님뿐이란 말입니다.
나요 너요. 나요 너요. 또는 밉다 안밉다 사랑하다 뭐다 그런것은 모두가 다 우리 중생들이 모양을 보고서 모양을 보고서 집착하는 그것은 허망한 것입니다. 물속에 비친 달그림자나 또는 꿈속에 우리가 꿈꾸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몽환포영夢幻泡影이라. 일체 있는 것은 모두가 다 꿈이요 거품이요 그림자요 그런 말씀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말씀(몽환포영夢幻泡影)은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사실을 사실대로 말씀했단 말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다행히도 현대 물리학이, 현대 물리학이 모두는 다 에너지뿐이다. 일체 존재는 에너지가 적당히 운동해서 잠시간 모양을 나툰것이다 이렇게 우리한테 증명해주었단 말입니다. 그 허망한 것을 우리는 그러기(모르기) 때문에 현대 물리학적으로 보더라도 그냥 느낄 수가 있단 말입니다. 아 그전에야 있는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닌가 헌데 현대 물리학에 다행히도 모양은 이것은 그 우주의 기氣,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우주의 기, 우주의 장場에너지 이런 것이 적당히 상호작용을 해서 잠시간 모양을 나투어 있단 말입니다.
제법諸法이 공空이라. 제법이. 제법이란 것은 존재하는 모두를 말합니다. 제법공諸法空이라.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실은 공空인 것입니다. 꼭 이것은 그대로 꿈이고 풀잎의 이슬이고 또는 구름이고 말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물속에 비친 달그림자. 달이 분명히 있어 보이지만은 사실 있지가 않지 않습니까? 우리 중생들은 그러한 물속에 비친 달그림자를 사실로 알고서 달을 아무리 애쓰고 건질라고 하면 건질 수가 있습니까? 그런 것이 우리 중생의 허망한 어림이란(믿음이란) 말입니다. 우리는 불교를 다만 듣기 좋다고 해서 그냥 믿을 것이 아니라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실을 사실대로 믿어야 그래야 이것이 참다운 생활 불교입니다. 우리 생활을 영생永生으로 이끌어야 됩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 우주란 것은 진리로 가득차 있고 진리에 따라서 우주가 생성이 되고 파멸이 되고 합니다. 생성이 되고 파멸된다 하더라도 우리 인간의 마음은 절대로 이것은 파멸이 안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바로 불성佛性이기 때문에 세상이 어떻게 변한다 하더라도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낳지 않고 죽지 않고 더하지 않고 덜하지 않고 이것이 우리 마음이고 바로 불성이란 말입니다. 우리 마음이 불성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너무나 헛된 생활을 많이 했기 때문에 다시 찾기가 어렵지 않은가. 어렵다고 생각을 말으십시오. 나한테 원래 갖추고 있는 것이고 또는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불성한테 가면은 갈수록 한 걸음 가면은 더욱 더 쉬워지고 두 걸음 가면은 더욱 더 접근되어 갑니다.
우리가 본래로 부처이기 때문에 우리 고향으로 지금 가는 것입니다. 아무때 가도 가는 것입니다. 안 가고 마는 것이 아니라, 못가면은 못가는 데로 그때는 우리 지은 업대로 업식대로, 개같이 살면 아 개의 보(업보業報)를 받는 것이고 돼지같이 욕심내면 또 내생가서 돼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업식業識대로 꼭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는 불교를 믿었으니까 '아 이대로 죽더라도 절대로 나는 개나 돼지로는 안 떨어지겠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진여불성眞如佛性, 진여불성 이것은 그냥 어디가 저만치 밖에 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이 바로 진여불성이고 우주가 바로 진여불성이기 때문에 사실은 이 모든 존재가 다 부처님입니다. 나무요, 풀이요, 더구나 사람은 다시 말할 것도 없지요. 자기 이웃 사람을 자기 가족 사람들을 부처님 같이 보는 것보다도 더 소중한 일은 없습니다. 그보다도 더 가족 화합되는 일도 없습니다.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을 이렇게 말하면은 부처님 가르침은 말은 쉬워도 행동은 어렵지 않는가 또는 현실과는 멀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할란가 모르겠지마는 부처님 가르침은 가장 현실적이고도 현실을 가장 좋은 쪽으로 다스리는 가르침입니다. 자기 아내를 부처님같이 보고 자기 남편을 부처님같이 섬기고 자기 애들을 그렇게 보고 이웃 사람들을 부처님같이 섬기고 이렇게 한다고 생각할 때 무엇이 잘못되겠습니까.
진여불성 자리를 다시금 되새기면서 아까 제가 말씀드린 대로 이것은 다른 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본성인 동시에 이 우주 자체가 모두가 다 사실은 부처님 뿐이란 말입니다. 부처님 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불자님들께서는 어느 때 언제든지 간에 자기 소원이 제 아무리 높은 소원이 있든 또는 작은 소원이든지 간에 모두를 다 부처님같이 생각하는 그 마음 가지고 한다고 생각할 때는 자기가 하는 일에 있어서 최선으로 잘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또는 우리의 마음이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가 모든 존재를 부처님같이 생각하면은 따라서 그 마음 자체가 우리를 부처님한테로 차근차근 접근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은 빨리 우리가 윤회의 길을 떠나서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가 지은 업식業識 따라서 업식이 다 할 때까지는 그때는 윤회를 합니다. 우리가 금생에 인간존재로 해서 업業을 짓고 과거 전생도 짓고 했는데 그런 업業이 다 없어질 때 까지는 우리가 개로 갔다가 소로 갔다가 다시 사람으로 왔다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목적은 무엇인가. 본래로 부처기 때문에 누구나가 다 부처가 돼야 된다는 말입니다. 부처가 안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본래 부처기 때문에 몇만 생 뒤에라도 부처가 돼야 됩니다. 부처가 못되면은 그 업業 따라서 이렇게 이리저리 갔다왔다 갔다왔다 이른바 육도윤회六途輪廻 한단 말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를 않고서 빨리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천지우주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두를 다 부처님같이 보고 자기가 인연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화두話頭를 참구하면서 부처님 될라고 애쓸 것이고 또는 염불念佛을 하는 분들은 그 순간순간에 우리 마음을 흩트러지게 말고서 부처님 쪽으로 마음을 모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도 원래는 다 그런 뜻입니다.
우리가 본래로 부처기 때문에 부처가 되기 위해서, 그 부처자리를 우리가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인단 말입니다. 그렇게 하셔서 꼭 행복스러운 인생을 보내시기를 간절히 빌어마지 않습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 녹취 2023.9. 무주선원 카페 황금님
첫댓글 기존 텍스트가 없는 법문입니다만 유튜브 법문 자막작업으로 황금님께서 오랜시간 동안 법공양 녹취 작업을 하시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무상 무아 무소유는 불교 수행자의 중요한 덕목의 하나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씀하신(실지로 있지 않는 잠시간 모양을 나툰 것인 제법이 공임을)
부처님 가르침을 믿어야 참다운 생활불교이다.
인생고를 여의기 위해서는 잘못 보는 이 허상을 떠나, 참말로 있는 것인
우리 인생과 우주의 근본본체 근본성품인 진여불성, 부처님으로 돌아가는 가르침을 따라야 하고,
모두를 다 부처님 같이 보고 천지우주는 부처님뿐이라는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고, 대승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육도윤회 않고 부처가 되어야 한다는 것.
우리는 우리 생활을 영생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근념하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