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 아침부터 단두대 그림을 올려 죄송하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런 상상을 하곤 한다.
만약 세상이 미쳐 돌아가 옛날 네로 황제가 기독교를 핍박하던
그런 세대로 돌아가서
예수 믿는 사람은 아이건 어른이건 노인이건 죄다 끌고 와
위 그림에서 보듯 단두대에서 목을 친다고 할 때..
바로 그렇게 할 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목을
내 놓을 수 있을까..
뭐 교인들 물어 볼 필요 없다.
일단 목사 자신들부터 줄 세워놓고
예수를 주로 인정하면 오른쪽 단두대
예수 모른다 부인하면 왼쪽으로
..
물론 순교도 하나님이 순교할 힘을 주셔야 순교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 냉정하게 나 자신에게 물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내가 믿는 예수를 위해 내 목을 내어 놓을 수 있나?
우리가 순교하지 않는다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거나
우리 영혼을 지옥에 떨어뜨리진 않으실 것이다만
그러나
이건 나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다.
사실 나는 학창시절에 이런 질문을 강박적으로 묻곤 했다.
일종의 자학이다.
그러나
자학만은 아니었다.
그 덕에 나는 신앙이 아닌 많은 쓰레기 요소들을 버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요즘엔 세상이 좋아져서 목사라는 호칭뒤에
교수, 박사, 총장, 감독, 총재, 회장, 사장..
별 호칭이 다 붙는다.
다시 말해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는 말이다.
교인 200명만 넘어도 목사의 차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차 이상의 수준이다.
얼마 전 성스캔들로 몰락한 한 젊은 목사는
렉서스를 타고 다녔다.
그만큼 번다는 얘기다.
이 세대는 자기애적 세대다.
모두 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 자라서 상상력과 자기과시가 하늘을 찌른다.
그런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물어야 한다.
진심으로 말이다.
"난 내 목을 예수를 위해 내어 드릴 수 있나?"
예스
예스가 아니라..마음이 흔들린다면 이 질문으로
나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 신앙인지 정말 예리하게 자기 직면을 해야한다.
목을 내 놓는다는 의미가 결코 용기가 있다로 오인되지 않길 바란다.
용기도 중요하겠지만 순교에 용기는 그다지 낄 이유가 없다.
순교에 중요한 건 하나님의 사랑을 목을 내 놓을만큼
체험하였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다면 아무도 죽을 수 없다.
죽을만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이 신앙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변상규 교수의 열린연구실에서(www.iar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