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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비유 (마 13:1-9)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아 들으라”(신 6: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디서나,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3: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는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우리에게 아픔을 주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달픈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고달픔들을 이겨내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들을 때, 잘 들어야 합니다. 집중하여, 잘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은혜가 됩니다. 음식을 잘 먹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영적으로,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한 후에,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자, 사람들이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라고, 수군거리더니, 하나 둘, 예수님 곁을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대답했던 베드로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로 고기 잡으려 갔습니다.
베드로는 말로는 참 아름다운 고백들을 많이 했지만, 행동으로는 그의 믿음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흔들림없는, 거짓이 없는, 완전하고, 완벽한 믿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나가서 씨를 뿌리는데, 하나는 길가에 떨어지고, 하나는 돌밭에 떨어지고, 하나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고, 하나는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오늘은 “씨 뿌리는 비유”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씨를 뿌리는 자는 누구고, 씨는 무엇이며, 땅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씨를 뿌리는 자는 예수님이고,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땅은 사람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의 마음 상태와 그 결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길가와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3-4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씨를 뿌리는 자가 밭에 나가서 씨를 뿌렸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져, 새들의 와서 먹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씨를 뿌리다 보면, 바람에 날리거나 해서, 길가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길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길가의 특징은 사람이나 짐승이 계속 밟고 다니기 때문에, 단단하게 굳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파트에는 예쁘게 조성된 화단이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화단 가운데, 길이 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화단을 돌아서 가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화단을 가로질러 가기 때문에, 길이 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지나가고, 또다른 사람들이 계속 지나가다 보면, 그곳에 있었던 잔디는 죽고, 땅이 단단하게 굳어버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한 곳에 씨가 떨어진다고 해도, 땅 속에 파묻히지 못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에 밟히거나 할 것입니다. 씨가 단단한 길가에 떨어져, 땅속에 파묻히지 못할 때, 새들이 와서 주워 먹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은 19절에 나와 있습니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여기서 “길가”는 깨닫지 못하는 마음을 가진 자를 말하고, “씨”는 천국 말씀을 말하고, “새”는 악한 자를 말합니다. 악한 자는 마귀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왜 천국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합니까? 길가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마음속에 들어가지 못하니까, 마귀가 와서 빼앗아 가버리는 것입니다.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자기 나름대로 형성된 가치관으로 인해서, 길가처럼 마음이 단단하게 굳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달음이 없습니다.
“소 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귀에 대고 아무리 경을 읽어주어도, 듣지 않습니다. 듣는다 할지라도, 깨달음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을 지경이 되어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죽은 다음에야, 복음을 깨닫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살았을 때는 절대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죽어서, 지옥 불에 떨어진 뒤에야, 나사로를 자기 형제들에게 보내서, 지옥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절규했습니다.
여러분! 길가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는 마음이 아니라, 좋은 땅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마음에 품고, 자라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돌밭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5-6절 말씀입니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이스라엘 나라 땅의 특징은 우리나라의 제주도처럼, 돌이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을 골라내고 밭을 만드는데, 돌이 흙 속에 묻혀 있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밭은 흙이 깊지가 않습니다. 그 위에 씨가 떨어지면, 싹은 나오지만, 해가 돋으면, 흙이 깊지 않아서, 뿌리까지 타버리게 됩니다.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은 20-21절에 나와 있습니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돌밭과 같은 마음은 말씀을 들을 때에는 즉시 기쁨으로 받는데, 그 속에 뿌리가 없기 때문에,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해서, 환난이나 박해가 오면, 오래 견디지 못하고, 금방 넘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냄비는 쉽게 뜨거워집니다. 그런데, 쉽게 식어 버립니다. 가마솥은 더디게 뜨거워집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뜨겁습니다. 그래서, 라면은 냄비에 끊이고, 사골은 가마솥에 우려냅니다. 사람의 마음은 냄비 같은 마음이 있고, 가마솥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설렁탕 집에서, 냄비로 사골 국물을 우려냈다고 광고하면, 가지 않을 것입니다.
가마솥에서, 한 30년 동안,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사골 국물을 우려냈다고 광고 하면, 아마도, 그 집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마솥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사골국물 우려내듯이, 보약을 달이듯이, 말씀의 진액을 우려내야 합니다.
여러분! 환난이나 박해가 왔을 때, 오래 견디지 못하고 넘어지는 돌밭과 같은 마음이 아니라, 좋은 땅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뿌리를 깊게 내려, 강한 비바람이 몰아친다 해도, 넘어지지 않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7절 말씀입니다.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가로수 길에는 가운데 화단이 있습니다. 그 화단에 있는 풀들을 어떻게 관리할까요? 오늘 아침 오는 길에, 풀들을 제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꽃들 사이의 풀 하나하나를, 일일이 손으로,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로, 풀들의 윗부분만을 제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풀들이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골프장의 풀들은 어떻게 제거할까요? 무더운 퇴약볕에, 사람들이 일일이 하나하나, 뿌리까지 제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해야, 잡초가 다시 자라지 않게 될 것입니다.
뿌리를 뽑지 않은 가시떨기 위에 씨가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씨가 가시떨기와 함께 자라기 때문에, 가시떨기의 기운에 막혀서, 제대로 결실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 비유의 해석은 22절에 나와 있습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은 마음이 복잡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여러 가지 염려와 재물의 유혹으로 마음이 복잡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도, 그 기운에 막혀서 결실할 수가 없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믿음이 자라고 있는 것 같은데, 내면적으로는, 마음이 복잡하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성장하지를 못합니다.
호세아 7:8절을 보면,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에브라임,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러 민족과 혼합되어서, 뒤집지 않은 전병과 같다는 것입니다. 전병은 후라이팬에서 잘 익혀야 하는데, 뒤집지 않으면, 한쪽은 너무 타고, 또 한쪽은 너무 익지 않아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고기집에 가서 고기 구워 먹을 때도 그렇잖습니까? 겉은 까맣게 탔는데, 속은 덜 익을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입은 바짝 타서, 은혜롭지 않은 말을 하고, 속은 덜 익어서, 믿음이 부실합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나고 자라지만, 부실하기가 그지없습니다. 결실하지 못합니다. 철근을 넣지 않고, 아파트를 짓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겉은 멋질 수 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어느 글에 보니, “전우익”이라는 사람이 쓴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고집쟁이 농사꾼의 세상 사는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이 있는데, 그 안에 “도라지와 잡초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합니다.
도라지를 재배할 때, 도라지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면, 주변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라지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잡초들이 주변에 많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도라지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서, 땅의 에너지를 잡초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밭에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가시떨기와 같은 복잡한 생각들을 물리치고, 믿음이 잘 자라서, 결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잡하게 살지 마시고, 단순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염려, 거정하며 살지 마시고,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기자가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시 118:6)라고 말했던 것처럼, 염려와 걱정거리는 내다버리고, 아주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세상의 여러 가지 염려와 재물의 유혹으로, 마음이 복잡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말씀마다, 마음속에 자리를 잘 잡아서, 자라고, 성장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넷째,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8절 말씀입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좋은 땅”은 깊고 부드럽고 기름진 옥토를 말합니다. 그래서, 좋은 땅은 씨를 잘 받아들여서, 품고, 자라게 하고, 결실하게 합니다.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은 23절에 나와 있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잘 깨달아서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바클레이”라는 신학자는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을, 첫째, 열려 있는 마음, 둘째, 준비되어 있는 마음, 셋째, 이해력 있는 마음, 넷째, 행동으로 옮기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루디아가 그랬습니다. 루디아는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바울 일행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면서, 잘 섬겼습니다.
잠언 4:23절을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마음 속에 욕심이 가득 차 있고, 미움이 있고, 시기가 가득 차 있으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사랑이 넘쳐나고, 믿음이 있고, 소망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때, 우리 마음속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을 가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이 되어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호세아 10:12절 말씀입니다.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묵은 땅을 기경해야 합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을, 파고 갈아엎어서, 좋은 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을, 돌을 캐내고, 흙을 두껍게 해서, 좋은 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을, 잡초들을 과감하게 뿌리째 뽑아버리고, 좋은 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은, 다시 굳어지거나, 잡초가 생기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냥 내려두면 안됩니다. 아무리 좋은 집이라 할지라도, 관리하지 않으면, 다 쓰러져가는 폐허가 되는 것처럼, 아무리 좋은 땅이라고 할지라도, 관리하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한 쓸모없는 땅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여러분! 어떤 마음이든지,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도, 돌밭과 같은 마음도,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도,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묵은 땅을 기경하면 됩니다. 말씀으로 기경하면 됩니다.
여러분!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들음으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변함없은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주님,
우리의 눈이 오직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고,
우리의 귀가 오직 주님의 말씀만을 들을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고,
우리의 마음이 오직 주님만을 모시고 살아갈 수 있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하나님을 따라감으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기 원하오니,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그 말씀 그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