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오십 평의 대지 위에 본채 16평 창고 4평을 짓고 나머진 마당과 정원을 꾸몄다,
집이야 한 번 지으면 문제가 없다면 특별히 관리할 부분이 없다.
그러나 정원은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관리를 해줘야 한다.
귀찮다고 내버려 두면 정원인지 잡동산인지 구별이 안 간다.
내가 정원관리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산책 코스를 만드는 것이었다.
대지가 크다면 산책할 만한 공간이 나오겠지만 백오십 평 남짓한 공간에서 산책코스까지 마련한 다는 건 지나친 생각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건 일반적인 산책코스와 비교해서 생긴 오해다.
내가 말하는 산책코스란 장시간 걸어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아니다.
나태주 시인이 꽃은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고 말한 것처럼 정원은 그냥 획하고 돌아보는 것이 아니다.
철마다 때마다 피고 지는 꽃모양을 찬찬히 바라보고 거기에다 혹여 해충 피해는 없는지 적당한 수분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잘 살펴야 한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다음 정원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이런 이동 경로를 하나의 산책코스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고민 과정에서 지금은 집을 한 바퀴 돌며 정원을 살피고 감상할 수 있는
하나의 산책코스가 완성되었다.
자 저와 함께 모모헌의 아침 산책을 나가 볼까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자리에 앉아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다. 밤새 어긋난 관절과 허리와 목 등에 집중적인 스트레칭을 한다.
그리고 내가 믿는 신께 감사기도를 짧게 드린다.
현관문을 열고 툇마루로 나가 우선 멀리 보이는 안산을 바라본다.
간단한 슬리퍼를 신고 댓돌을 내려와 마당으로 내려간다.
아침 산책의 출발점은 마당 한 귀퉁이에 위치한 달못으로부터 시작한다.
물고기에게 먹이를 준다. 밤새 잘 잤느냐고 짧은 인사를 건넨다.
달못으로 가는 길목은 수키와를 두 줄로 엎어놓아 길을 만들어 놓았다.
달못을 지나 벚나무 곁을 지나면 저 아래쪽에 또 하나의 베데스다 연못이 있다.
거기에 사는 금붕어와 비단잉어들에게도 인사를 건네고 먹이를 뿌려준다.
먹이를 받아먹는 물고기들을 들여다보는 동안 서로 교감하려고 손을 물속에 집어넣고 가만히 있는다.
어떤 물고기는 다가와 손등에 입을 맞추고 어떤 물고기는 놀라서 달아난다.
가끔은 지렁이를 잡아 물속에 손을 넣은 채 붙들고 있으면 서로 먹겠다고 달려든다.
그럴 때 물고기들의 입이 내 손에 와서 부딪히곤 한다.
이제 걸음은 베데스다 연못과 담장 밖 석축 위로 올라가도록 한 계단을 올라간다.
석축 위는 모모헌 후문과 연결되고 그 앞에 내외 담을 사이에 두고 안쪽은 봉선화 화단이고 밖은 오이 상추 고추를 심어놓은
채마밭이다. 채마밭은 잡초를 뽑거나 심은 채소를 수확할 때만 들어가고 바로 후문으로 다시 들어간다.
후문에서 대지까지는 약 1.5m가량 차이가 나서 자연석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왼쪽을 바라보면 좀 전에 지나왔던 벚나무와 주변에 심긴 화초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쪽 화초들 중에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건 붉은색 모란이다. 해마다 사월이 되면 벚나무와 함께 쌍벽을 이룬다.
사이사이에 진달래 영산홍 비비추 원추리가 산다. 화초들 가운데로 달못으로 이어지는 좁은 도랑이 흐른다.
계단 오른쪽은 연못으로 들어가는 물을 대기 위한 수도시설이 작은 돌돔 안에 설치되어 있다. 돌돔 위는 흙을 깔아 놓았는데
여기에도 여러 화초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여기서 출발한 물이 계단 밑을 통과해 작은 옹달샘에서 한 번 멈추었다가 도랑으로 흘러간다. 도랑의 중간에서 베데스다 연못으로 한 가지의 호스를 매설해 물이 갈라지도록 했다.
계단을 내려가 집 뒤로 돌아간다.
얼마 전에 후원에도 석축열 아래로 길게 도랑 연못을 만들었다.
원래 도랑이 없이 긴 화단이 있었던 곳인데 햇볕이 잘 들질 않아 무얼 심어도 제대로 자라질 못하였다.
날이 점점 더워진다는 기상조건을 생각하면서 후원에도 연못을 만들면 대청으로 더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지 않을까 싶어
기존 화단을 파내어 도랑 연못을 길게 만들었다. 도랑 연못엔 수련과 개울가에서 옮겨다 심은 수초와 논에서 옮겨온 골풀 그리고
물을 좋아하는 식물들을 여럿 심어놓았다. 도랑 연못을 따라 걸어가는 산책로엔 현장에서 버리는 판석을 가져와 깔았다.
도랑 연못엔 수십 마리의 미꾸라지와 작은 금붕어 열 마리가 산다. 자칫하면 모기들의 서식처로 변질될 수가 있어서 장구벌레들을
잡아먹으라고 시장에서 생미꾸라지를 사다 넣었다. 그중 약 40%는 죽고 나머진 잘 적응해서 제법 살이 통통 쪘다.
도랑 연못을 지나면 본채와 부속채 사이의 허드레 사잇 공간을 지난다. 사잇 공간의 초입에 사잇문을 달았다.
사잇문 위에 딱새가 둥지를 틀고 다섯 개의 알을 품고 있다. 살금살금 사잇문을 열고 나가면 오른쪽에 와편 굴뚝이다.
굴뚝을 타고 올라간 능소화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굴뚝을 지나면서 오른편엔 대추나무, 배롱나무, 백도화, 서해해당화 등이 자라고 그 아래는 국화와 여러 화초들이 함께 자릴 잡고 있다. 이들을 지나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초정이 있었던 자리에 잠시 앉아 쉴 수 있게 해 놓았다. 생각 같아선 멎들어진 파라솔을 설치하고 싶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 포기하였다. 낮엔 햇볕으로 앉아있질 못한다. 해가 지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밤중에야 그곳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멍을 때리곤 한다. 이곳을 지나면 처음 툇마루 앞 계단을 내려와 디뎠던 마당이다.
마당 정면은 모모헌의 메인 정원이다. 메인 정원엔 양쪽에 홍도화가 각각 한 그루씩 있고 가운데는 배나무가 심겨 있다.
배나무의 목적은 과실이 아닌 꽃을 보기 위함이다. 과실을 얻어볼 생각도 하긴 하였지만 지대가 높은 동네라서 그런지
제대로 익지 않아 당도도 없고 크기도 작아 기대를 안 하고 있다. 나무 아래엔 산수국과 일반 수국이 무리 지어 있다.
맨 앞줄엔 함박꽃(작약)과 노란색 모란(목단)이 해마다 화려함을 자랑한다.
이로서 집을 가운데에 두고 한 바퀴 돌아오는 산책코스가 완성되었다.
무심한 마음으로 걸어가다 보면 생각지 못한 꽃들이 밤새 피어나기도 하고 해충에 시달리어 도움을 요청하는 광경을 만나기도 한다. 말이 없는 화초와 물고기들과 교감을 하는 순간이 정말 짜릿하고 행복하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대로 때마다 철 따라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는 정원 산책길을 걷고 사색하는 시간이 내겐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물론 부지런히 관리하고 노력한 보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