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산 해벽 트레킹
해안절벽의 숨겨진 秘景 장관
황금산은 충남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 해안에 접해 있는 산이다.
황금산은 해발 156m로 아주 작고 나지막한 산이지만 코끼리바위로 대표되는 해안절벽은 보는 이의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들 정도로 절경이다. 해송과 야생화, 다람쥐가 있는 완만한 숲길과 때묻지 않은 바다도 황금산의 자랑이다.
황금산은 옛날부터 이 산에는 금(金)이 있었다고 하여 '황금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하며, 금을 파내던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정상에 오르면 대산 임해공단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멀리 서해바다가 훤하게 펼쳐진다. 이 산의 이름은 원래 '항금산(亢金山)'으로서 옛날어른들은 '항금산'이라 불렀고 산 근처를 「항금」이라 총칭하기도 했다.
아침 7시 서울 사당역 14번 출구에서 출발, 10시경에 산행 들머리인 독곳해안에 도착했다. 독곳해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마치 시골 밭길같다. 이런 곳에 등산로가 있는가 하고 의아할 정도이다. 우측으로 황금산이 보인다. 산이라기 보다는 동네 뒷동산같이 조그맣고 아담한 모습이다. 좌측 해안에는 물빠진 갯벌에 고기잡이 배 몇 척이 누워 있다.
황금산은 군사작전지역에 위치해 있어 오랫동안 민간인출입이 통제돼 오다가 20여 년 전에야 등산로가 개방됐다고 하며, 근년들어 웅장하고 아름다운 해안절벽 경관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황금산 산행의 하일라이트는 절벽해안길인데 해안길을 가려면 반드시 물때를 확인해야 한다. 썰물 때 만 코키리바위를 비롯, 해안절경코스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우리 일행은 먼저 황금산 정상을 오른 후 굴금삼거리갈림길-굴금해안-암벽구간-코키리바위-굴금삼거리갈림길-주차장 코스로 돌기로 했다.
주차장 들머리를 출발한지 약 30분 만에 드디어 정상 도착. 정상에는 돌탑과 함께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황금산 높이는 해발 156m. 높이만 보면 동네 야산 정도인데도 해안둘레길은 예상 외로 웅장한 경관을 지니고 있어 놀라울 뿐이다.
정상 돌탑 뒤에는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 '황금산사당'이 위치해 있다. 사당 안에는 산신령과 임경업(林慶業)장군의 초상화를 모셔 놓고 선업이나 어업을 하는 사람들이 고사를 지내기도 하고 가물 때는 기우제(祈雨祭)를 지낸 터가 남아있다.
사당 바로 앞에 서면 시야가 열리면서 서해 가로림만 입구 바다풍경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황금산 정상에서 400m쯤 내려가면 굴금삼거리를 만난다. 좌측은 코키리바위 방향, 우측은 해식동굴 방향이다. 먼저 우측 굴금해안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정표에는 '굴금(窟金)'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굴금해안의 명물은 해식동굴이어서 편의상 ‘금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삼거리에서 270m 내려가면 굴금해안. 해안 절벽 아래 큰 동굴이 보이고 좌측 암벽 끝에는 창문 모양의 뚫린 굴도 보인다.
해식동굴 '굴금'으로 가는 길은 완전 바위투성이다. 마치 칼로 잘라놓은 듯 매끈하게 다듬어진 암벽 아래 패인 이 동굴은 억겁의 시간 파도와 바다바람 등 자연의 조화로 만들어진 예술품이다. 조심조심 동굴 앞에 이르러보니 아뿔싸 아직 바닷물이 덜 빠져 동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되돌아나와 해변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동굴이 열렸어요”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일행을 이끌고 있는 산행대장의 반가운 외침이다. 굴금해안을 떠나려는 절묘한 시각에 해식동굴진입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급히 동굴 쪽으로 발길을 돌려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본다. 이곳 동굴은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조망이 특히 절경이다.
해식동굴 옆 암벽 끝에는 '해식창문'이라고 이름붙여진 바위문도 있다. 코키리바위 쪽으로 넘어가는 암벽 능선에서 망원렌즈로 당겨보면 해식창문을 더욱 웅장하게 담을 수 있다.
굴금해안 다음 코스는 코키리바위 해안이다. 코키리바위 쪽으로 가는 방법은 우리가 지나온 굴금삼거리로 되돌아가 삼거리에서 코키리바위로 내려가는 방법과, 굴금해안에서 좌측 암벽능선을 넘어 바로 코키리바위로 직진하는 방법이 있다. 전자는 안전한 산행이기는 하나 경관이 거의 없는 지루한 숲길코스인 반면 후자는 깎아지른 수직절벽을 암벽등반하듯 넘어야 하므로 위험할 수가 있지만 경관이 웅장하고 아름다워 산악회원들의 경우 선호하는 코스이다. 우리일행은 후자코스를 택하기로 했다.
굴금해안 좌측능선 쪽으로 로프가 보인다. 로프를 잡고 올라 바위능선으로 접근한다.
암벽 정상능선은 바위가 날카롭고 좁아 고도감이 만만치않다. 아래는 깎아지른 절벽과 바다. 추락하면 큰일 난다.
절벽을 넘어가야 하는 데 도대체 길이 보이지않는다. 이곳이 황금산 해벽트레킹 코스 중 가장 어려운 루트이다. 함께 온 일행중 일부는 위험해서 도저히 넘어갈 수 없다고 되돌아간다.
필자의 경우 13년 전에도 이 루트로 넘어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주저없이 일행들과 함께 한다. 바다쪽 바위낭떠러지로 살금 살금 내려간다. 수직절벽이긴 하지만 바위 모서리가 날카로워 손잡을 데가 많다. 이 루트는 바위에 특별한 길표시를 해놓은 게 없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늘 새길이다. 스스로 찾아 넘어야 하는 길이다. 필자 역시 13년 전에 넘어본 루트이지만 길이 거의 기억나지않는다. 어쨌든 바위를 별로 타보지않은 초보자들의 경우에는 누군가 안내자가 길잡이를 해주는 게 안전산행을 위해 꼭 필요할 루트이다.
황금산 해안은 굴금 동굴, 코키리바위를 비롯하여 계속 기암괴석의 해벽이 이어진다. 등산로 입구에서 처음 황금산을 바라봤을 때는 조그만 동네야산 같아서 솔직히 실망감도 있었는데 막상 해안암벽길에 들어서면 전혀 딴판이다. 황금산의 외모가 여성스럽고 아담한 모습이라면 그 속내는 남성미가 가득한 야성(野性)의 트레킹코스이다.
수직 암벽루트를 넘으면 우측 바닷가에 우뚝 솟은 바위봉우리가 보인다. 10여 년 까지만 해도 바위봉우리 정상에는 소나무 몇 그루가 서 있었고 절벽 위로 로프가 매달려 있었는데 지금은 소나무가 사라져서 보이지않는다. 암벽에 동판 하나가 붙어 있다. 2010.11.21 '해맑은 산악회'에서 김용찬이란 분을 추모하여 붙인 동판이다. "산이 좋아 함께 오른 산에 혼을 심으니 꽃이 되어 다시 태어나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곳 바위봉우리를 오르다 사고로 숨진 것 같다.
해안선은 깎아지른 바위절벽길이다. 바위 곳곳에 움푹 패인 동굴 모양의 굴들도 보인다. 지나서 바라보니 소나무 암봉 정상은 뾰족한 것이 아니라 조그만 능선 모양을 갖추고 있다.
모래해변을 걷는 맛도 좋지만 몽돌해안의 정취도 모래사장 못지않다. 물 빠진 바위와 돌에는 굴 흔적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살아있는 굴을 따먹을 수도 있다. 만조 때가 되면 이 해변은 물에 잠긴다. 바다 위 멀리 하얀 바위섬도 보이고 바로 눈 앞에는 피라밋 모양의 거대한 삼각암봉도 나타난다.
암벽등반가들은 이 삼각암봉에서 소위 '티롤리안 브리지(Tyrolean Bridge)'라는 암벽등반 묘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티롤리안 브리지는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로프를 연결시킨 후 로프를 타고 계곡이나 바다 위 등을 이동하는 기술이다. 로프에 매달린 모습이 통닭구이와 닮았다 해서 농담으로 일명 '통닭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측에 거대한 바위문이 눈에 들어온다. 이 바위문이 황금산의 대표적 경관인 '코키리바위'이다. 산 끝이 코키리 코 모양으로 바다로 뻗어 있고 코 아래는 해안선을 따라 문처럼 뚫려 있다. 마치 코키리가 바다에 코를 박고 물을 마시는 형상이다. 해남 두륜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구름다리'와 흡사하다. 두륜산 구름다리를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이라고도 부른다면 황금산 해안의 코키리바위는 바다세계로 통하는 '용왕문'이라 불러도 될 것 같다. 울릉도, 독도, 백령도, 흑산도, 승봉도, 굴업도, 소청도 등에도 크기는 다르지만 이와 유사한 코키리바위들이 있다.
코키리바위를 통과하는 문은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겨서 지나갈 수 없다. 밀물 때는 코키리바위를 거치지않고 좌측 계단을 넘어 반대쪽 해안으로 이동할 수 있다. 오늘은 물이 덜 빠져 코키리바위를 바로 통과하지못하고 계단으로 넘어갔다.
코키리바위를 지나 뒤돌아본다. 바다와 몽돌해변이 바라보이는 거대한 창. 자연의 위대함과 신비스러움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코키리 코를 만들고 있는 암벽은 진한 황금색이다. 예전에 이곳에서 황금이 나왔고 황금산이라는 이름도 그 때문에 유래됐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나기도 한다.
이번에는 다음일정이 있어 코키리바위를 끝으로 황금산 해벽트레킹을 마무리했지만 물때가 맞고 시간여유가 있을 경우에는 코스를 코키리바위에서 출발하여 수직암벽-굴금 동굴을 본 후 황금산의 가장 끝코너인 끝골까지 진행하는 것도 좋다. 필자의 경우 13년 전에 이 루트를 따라가 봤는데 굴금 동굴과는 또 다른 기이하고 웅장한 동굴들을 몇 개 더 만날 수 있었다.
굴금 동굴에서 우측으로 보면 가파른 절벽에 로프가 깔려있는 것이 보인다. 이 비탈이 끝골까지 다음해안으로 넘어가는 루트이다. 이 로프절벽은 흙길이라 미끄러지기 쉽기 때문에 역시 조심해서 올라야 한다. 절벽을 오르면 황금산 중앙능선으로 이어지며, 다음 해안길을 가기 위해서는 다시 가파른 절벽을 넘어가야 한다. 넘어가는 루트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로프를 타면 어렵지는 않다.
다시 몽돌해안의 연속이다. 끝골 방향 해안길 역시 암벽길이다. 몽돌해안에서는 보이지않는데 암벽모퉁이로 접근하면 다시 기막힌 조망의 동굴이 나온다. 주민들은 이 동굴을 움집굴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움집굴해변에서는 다시 비스듬이 갈라진 틈이 있는 거대한 암벽이 기다린다. 갈라진 암벽 틈이 웅장할 뿐 아니라, 사선(斜線) 모양의 바위 틈으로 보이는 바다조망 역시 장관이다.
주상절리의 바위들, 제주도 해안의 주상절리나 광주 무등산 정상의 주상절리 입석바위 등도 아름답지만 이곳 황금산 해벽의 주상절리는 갈라진 암벽 틈으로 사람들이 지나갈 수 있어서 특히 감동적이다. 이 바위 틈을 지나 또 다시 몽돌해안으로 나간다.
필자는 당시 황금산 마지막 해안인 끝골을 한 모퉁이 남겨놓고 해벽트레킹을 마무리했다. 물이 들어오기 시작해 더 이상 해안길로 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코키리바위 지나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던 바다위 하얀 바위섬이 가깝게 보인다. 망원렌즈의 줌을 당겨본다. 바위섬 색깔이 하얀 색이라서 일반적으로 '백도'라고 부르는 데, 갈매기들의 서식처이기도 해서 '갈매기똥섬'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 듯 하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황금산 주능선으로 올라갔다. 주능선을 걷는 맛도 참 좋다. 소나무숲길 등 능선길이 아늑하다. 주능선에 올라 10여 분 가면 헬기장에 이른다. 헬기장 좌측으로는 대산항과 대산석유화학단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헬기장에서 다시 10분 정도 가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던 공터가 나타나고 3분 정도 더 가면 안부사거리에 도착한다.
요즘 전문산악회에서는 자주 가는 편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않은 비경(秘景) 황금산. 서산시청과 대산읍 등 관계관청에서 해안절벽 위험구간 안전시설 등을 좀 더 보완한다면 충남은 물론 우리나라의 대표적 해변트레킹 코스로 크게 각광받는 명산이 될 것 같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