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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집단순교지(18) - 경북 안동교회 조춘백 성도
안동시에 있는 안동교회는(통합측) 1909년에 설립된 교회로, 일제강점기 때는 독립운동에 앞장섰고 한국전쟁 때는 공산당으로부터 복음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으며, 교파와 교단을 초월하여 안동지역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교회였다. 120년 역사 가운데 단 한 번도 분열이 없이 21개 교회를 분립하거나 설립하였다. 안동 제일감리교회를 개척할 때는 감리교회 목사 급여를 후원하고 건축 헌금을 보냈다.
당시 김광현 목사는 조상국 집사에게 안동교회를 떠나 감리교회를 섬기도록 당부하였다고 한다. 1974년 감리교회 예배당이 소실되었을 때 건축 헌금을 모아 지원하였다. 1953년 성결교회 설립을 위해 지원하였고, 그때 파송한 교인 중에는 후에 성결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김성영 목사가 있다. 또한 구세군 교회가 안동에 정착하는 데 도왔으며 심지어 가톨릭 성당을 세울 때도 협력하였다고 하니, 안동교회는 안동의 ‘어머니 교회’로 호칭 되며, 현재 장년만 2000여 명이 출석한다.
현재의 안동교회
안동교회가 한때는 김광현 상(上) 원로목사와 김기수 원로목사 그리고 현재의 김승학 담임목사 3대가 한동네에 살면서, 한 교회를 섬기는 아름다운 교회로 아마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일 것이다. 이렇게 좋은 교회가 되기까지는 고인이 되신 선대 목사들의 믿음과 결단이 있었다.
특별히 김광현 상 원로목사는 젊은 시절부터 “다같이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들이 감리교면 어떻고, 침례교면 어때서 그렇게 싸움을 하는가?” 탄식하며, “통합이니 합동이니 하는 것은 다 부질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관심은 무슨 교단, 무슨 교파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 뜻대로 살며, 하나님 말씀을 전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김광현, 김기수, 김승학 목사
조춘백 청년은 16세인 1909년 안동교회에 출석하며 부모와 온 가족을 구원시켰다. 동생인 조차금 권사는 생전에 “오빠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전도하고 다녔어요. 심지어 일본 사람에게도 전도를 하다가 발길에 차이곤 했죠. 한두 번이 아니었다니까요.” 증언했다.
또한 조춘백 청년은 한학을 공부하면서 국운이 기울어져 가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을 품고 있던 차에 1919년 3월 1일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의 영향을 받아 안동교회에서 김병우 장로, 김익현 장로, 이인홍 장로 등이 장날에 만세 시위 벌일 계획을 알게 되자 이에 적극 동참하게 되었다.
조춘백 신도는 자신이 상속받은 대지 204평의 매매대금을 권점필에게 건네주며 3‧1운동 거사 자금으로 충당해 달라 부탁했다고 한다. 마침내 3월 18일 장터에 300여 명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면서 시위에 나섰다. 5일 뒤에는 시위 군중이 3,000여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횃불을 밝히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조춘백 신도는 체포되어 안동경찰서에서 잔혹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 사경에 이른 그는 간신히 풀려났으나 회복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주독립 정신을 고취하다가 고문 후유증인, 장독이 재발함으로써 1924년 2월 23일 31세에 고문의 후유증으로 순교하였다. 2016년 6월 안동교회 석조 예배당과 100주년기념관 사이에 있는 잔디마당에서 ‘순교자 조춘백 기념비’ 제막식을 거행했다.
2016.6.16.가족들이 기념비 제막식을 마치고
조춘백 신도의 외아들인 조재묵 전도사는 안동의 도곡교회 등 7교회에서 목회하다가 2007년 하나님의 품에 안겼고, 조재묵 전도사의 후손 4남 2녀들 조광선 목사(반석교회), 조현익 집사(고촌교회), 조옥순 권사(동도교회), 조현선 목사(도곡교회), 조옥금 집사(수원중앙), 조현철 집사(숭덕교회)가 조부의 순교자 길을 걷고 있다. 안동교회는 바울과 바나바 같은 인물들이 많이 나와 한국교회의 횃불이 되고, 선교 지향적인 한국교회 모델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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