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 는 스릴러풍 멜로영화다.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 에서 제목을 따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릇된 욕망, 사랑의 파국을 그리고 있다. 시작하자마자 “모든 유혹은 재밌다. 항상 장난같이 시작한다. 왜 피하겠는가?” 라는 멘트가 흘러나온다. 이건 설정 자체가 유혹과 욕망에서 비롯됐음을 공공연히 선언한 셈이다. 그리고 결과는? 유혹에 넘어간 남자는 결국 욕심에 따른 대가를 치른다. 아주 처절하게….
영화는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치정에 얽힌 살인사건과 주인공 남자의 잘못됐지만 이미 중독된 사랑. 강력계 형사반장 기훈(한석규)에게는 두 명의 여자가 있다. 순종적인 아내 수현(엄지원)과 열정적인 정부, 가희(이은주). 아내의 임신 소식에 가희와의 관계를 정리하려 하지만, 끈을 놓지 못한다. 어정쩡한 관계가 유지되는 가운데 수현은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
기훈에게 살인사건이 떨어진다. 용의자는 피해자의 부인(성현아).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기훈은 부인 주변에서 맴돌지만 뚜렷한 증거를 잡지 못한다. 더구나 “형사님은 같이 사는 사람이 끔찍한 적 없으세요?” 라며 은근히 유혹한다. 과연 그녀가 범인일까? 아니면 제3의 사람일까? 점점 미궁으로 빠져드는 사건에 기훈은 지쳐만 간다.
두 개의 치정극은 병렬처럼 별개로 진행된다. 그러다가 하나로 합쳐지는데 그 합일점이 유혹의 달콤함과 파국이다. 유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들은 항상 거기에 있다. 표면 바로 아래에 묻힌 채. 기훈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속에 갇힌 부랑아처럼 점차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 지를 분간하지 못한다. 그는 사랑은 했지만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를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갈 듯 말 듯 그 중간점에서 헤매기만 한다.
등장인물들을 연결시키는 고리는 ‘사랑’ 이다. 그게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이던, 아니면 집착에서 피어나는 불륜이던 사랑했으니 다른 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다. 결국 사랑이 ‘주홍글씨’ 의 원죄다. 친구의 남편과 바람이 난 가희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침입자가 되는 걸 두려워 않는다. 불륜의 대가로 ‘A(adultery’자를 새기고 일생을 살아가야 하는 가혹한 벌을 받은 헤스터 프린의 삶을 선택한다. 영화는 이런 여자와 남자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대가를 치르도록 강요한다. 사회적 지탄이나, 가정의 파괴가 아닌 두 사람으로 하여금 파국으로 가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가혹하다. 주려고 하는 메시지도 확실하다. “유혹과 욕망은 여전히 금단의 열매다. 달콤하지만 그 열매는 쓰다” 일탈과 금기에 대한 처벌이 혹독한 것은 사랑했으니 용서되는 게 아니라 사랑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종일관 우울하다 못해 처절한 이유도 후자의 영향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랑했으니 괜찮은 건가?” 라는 질문에 쉽게 답을 하지 못하는 것도 실은 우리가 그 사랑을 욕심내고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가장 도드라지게 빛을 발하는 부분은 후반부 트렁크 신. 한석규, 이은주의 열연과 유혹의 핏빛 파국을 형상화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10월 29일 개봉.
<미디어칸 장원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