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새와 신천옹’
현직 판돈령 부사 이공(李公)이 거처하는 집 서편에 작은 정자를 지었다. 정자 앞에 못을 파고 담을 뚫어 샘물을 끌어다 대었다. 담 남쪽에 한발 남짓한 석벽이 있고, 그 석벽 틈에 늙은 소나무가 있었다. 밑둥치가 서리어 있고 가지가 누워 있어 뜰 가득히 그늘로 덮였다.
공은 나날이 빈객과 정자가를 거닐고 가야금, 바둑으로 소일하며 얽메임 없이 자적하였다. 그 한가롭고 편하며, 그윽하고 맑은 생활이 거의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르렀고, 이해와 득실에서 초탈한 듯한 생활이었다. 그리고 정자 이름도 담연정(澹然亭)이라 하고, 나에게 기문을 부탁했다.
웅덩이, 도랑, 소 늪 사이에서 물고기를 잡아먹는 새가 있으니 그 이름을 도요새라고 부른다. 해감을 쪼고 마름 속에 몸을 숨기고 오로지 물고기만 찾는다. 깃털과 발, 입부리에는 더러운 것을 뒤집어쓰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허둥지둥 마치 잃은 것을 찾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종일토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다.
청장(靑莊)이란 새가 있다. 맑고 시원한 연못에 서서 편한 자세로 날개를 접고 장소를 옮기지 않는다. 그 모습은 게으른 듯 낯빛은 잊은 듯하다. 고요하게 있을 때는 노랫소리를 듣는 것 같고, 꼼짝하지 않을 때는 수문장같지만 물고기가 앞에 오기만 하면 구부려서 쪼아댄다. 그러므로 청장새는 편하게 있으면서도 항상 배가 부르고, 도요새는 수고롭지만 항상 주린다. 옛사람은 이 새들을 세상의 부귀와 명리를 구하는 사람에 비유하고 청장새를 신천옹(信天翁)이라고도 불렀다.
아하! 세상 모든 일에 고요한 명운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없을 터인데 어찌 다만 한 날짐승이 물고기를 기다리는 것에서만 증거를 삼을 것이랴!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은 곧 넘어질 담벼락 밑에서 천명(天命)을 기다리며 멍청하게 하늘만 처다보고 곡식이 쏟아져 내리기를 바란다. 조급한 사람은 오늘 선행을 하나 행하고는 좋은 운명을 하늘에 요구하며, 내일 선행을 하나 하고는 물질적 보답이 있기를 기약한다. 그런즉 하늘도 그 수고롭고 시끄러움을 견디지 못할 참이다. 선행을 하는 사람 역시 낙심해서 물러 앉아 그만 둘 것이다.
하늘은 본래 깊고 아득하여 조짐이 없고, 자연에 맡겨 두어도 사사사철이 이들을 받들어 차례를 잃지 않고 만물을 받아서 분수를 어기지 않을 뿐이다. 하늘이 어찌 일찍이 신의를 세우는 데서 뜻을 가지고 좀스럽게 사물을 쫓아 비교하고 따지겠는가?
세상에서는 완전한 복을 누리는 사람을 논할 적에 반드시 이공을 먼저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된 데에는 그 나름의 도리가 있었음을자못 알지 못한다. 공의 관직은 곧 왕실 천척의 사무를 관정하는 종정(宗正)이다. 누대에 걸쳐 맏아들로 이어오며 세상에 태어나던 당초부터 부귀한 몸이었다. 그의 처세는 욕심 없는 마음으로 경쟁 없는 지위에 있다. 그 직위가 품계가 높았으나 남들이 시기하거나 미워하지 않았고, 임금의 은총이 날로 융숭해도 남들과 다름이 없었다. 오직 고요함과 조심함으로 자신의 몸가짐을 가지며 잡생각을 버리고 인간의 기본 감정을 잊은 듯 이 정자를 떠나지 않았다. 범부들이 악착같이 영리를 추구해도 하나도 얻지 못하는 것을 이공은 수고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었다.
정자를 담연정이라 이름한 것은 이공이 스스로 부른 것일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 또한 이것으로 유추해분다면 그러하지 않겠는가?
- 澹然亭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