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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우리의 친구
포장마차 3
신 상 웅
우리는 토의 끝에 그를 대대적으로 환영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1년 1개월 만에 김포공항착 귀국하는 그를 맞기 위해 우리는 밤 여덟 시에 공항 입국자 출구 앞까지 찾아가기로 결의했다. 우리가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 사람은 아예 그날 하루 일터를 쉬거나 배탈 핑계를 대고 조퇴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므로 그를 위한 우리의 환영계획은 대대적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합의에 이르고 나자 우리 가운데 하나가 중얼거렸다.
“녀석은 행 복하겠다.”
다른 하나가 받아 말했다.
“도열해 서 있는 우리를 보면 기분 좋겠지?”
“맞았어, 녀석은 행복해.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기나긴 여행도 해보고.”
하고 또 다른 하나가 그 말을 받았다.
“그런 비행기에선 영화도 틀어준다며?”
“그럼 영화 보고 싶음 입장권 따루 사가지고 영화관에 들어가야 되나?”
“누가 알어.”
“왕복 비행기 삯이 백만 원이나 된다면서?”
그는 우리한테 보낸 편지에 썼었다. 왕복 비행기 삯만도 우리 돈으로 백만 원씩이나 된다고. 그런데 1년 계약이 끝나서 다시 1년을 더 연장하겠다고 하면 한 달 휴가를 주고 그 백반 원씩이나 되는 왕복 비행기표를 끊어주어 본국에 다녀오게 한다고.
야, 그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하고 우리는 모두 편지를 읽으며 부러워했다. 본국에 돌아와 한 달 동안 만판으로 놀고, 친구들을 불러놓고 밤새도록 터번을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우스꽝스런 모습에 대해서도 얘기해주고, 내가 남은 일 년 더 가 있는 동안에 우리도 집을 삽시다 하고 어머니한테 마음 놓고 이야기해도 되고. 아니면, 거 증권인가 뭔가 하는 것에 투자하는 방법에 대해 의논해봐도 괜찮고……
그런데 그는 다음 사연에서 이렇게 쓰고 있었다.
나는 본국 다녀오는 것을 포기했어. 왜냐고? 포기하고 그 한 달 동안 그대로 일을 해주면 왕복 비행기표 값을 현금으로 돌려주거든. 그뿐이야, 보너스로 또 얼마를 더 얹어준다지 않겠어. 그러므로……
그러므로 본국을 다녀올 수 있는 특별휴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그는 물론 포기하고 나서 받은 그 거액의 돈을 고스란히 그의 어머니 앞으로 부쳤겠지. 아마도 그가 태어나서 만져본 가장 거액의 돈이었을 그것을 본국에 있는 그의 어머니 계좌에 넣어주도록 의뢰하며 그는 가슴 뿌듯한 행복감에 젖었을까.
우리는 그가 언젠가 술을 마시고 우리 앞에서 울어버린 것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술에 취해서 개판을 쳤다는 얘기는 아니다. 술기운이 그를 서러움에 젖도록 만들어버렸을 것이었다.
그는 그때 연초제조창의 엽연초 더미 속에서 사는 일자리를 쫓겨나 어느 공업단지 조성 공사장의 막노동자로 들어간 지 석 달짼가 되고 있었는데, 하루저녁 느닷없이 돌아와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나타냈던 것이다. 우리는 그를 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눈두덩은 시커멓게 멍이 들어 있었고 귓바퀴는 찢어져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입술을 들쳐 보이는데 입안이 온통 다 터져 시커먼 핏덩이가 엉겨 있었다. 옷을 벗기자 온몸에 성한 데가 없었다.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모를 일이었으므로 우리는 그 점부터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 엑스레이 찍어봤니?”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빨리 찍어봐야지, 시간 놓치면 병신 돼.”
하고 우리는 쥐뿔이나 아는 체 다투어 겁주는 말을 했다. 그러나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가슴팍이 그 정도로 멍들었으면 뼈가 성할 리 없단 말야.”
“일 없어 .”
“고집 부릴 일이 아니야.”
“일 없다니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니?”
하고 우리는 그제야 그가 어쩌다가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나타냈지만 그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다만 이렇게 말했다.
“술 좀 마시자.”
우리는 만약에 그의 갈비뼈가 나간 게 틀림없다면 절대로 술을 먹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고 술을 마시러 갔다. 술을 먹여놓으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털어놓으리라는 기대를 걸고, 우린 주머니가 비었지만 공사장에서 돌아왔으니 술값은 아마 그가 낼 테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그는 소주를 다섯 잔이나 마시고도 입을 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궁금하여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보다 더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포장마차 주인이었다.
“어쩌다 그러셨수, 젊은이?”
그럼에도 그가 여전히 침묵을 일관하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포장마차 주인이 무안을 느끼기 전에 그를 대신해서 거짓말이라도 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한탕 뛰었대요.”
아니, 거기까지 거짓말일 리 없었다. 그가 누구와 다투었음은 의심할 여지도 없지 않은가. 우리의 능란한 거짓말은 정작 그다음 부분이었다.
“눈꼴이셔서요. 재수 없어서요.”
그러나 이번엔 포장마차 주인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눈꼴사납고 재수 없는 것에 대해선 그럴 수만 있다면 가끔씩 혼구멍을 내줘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세상에 눈꼴신 게 한두 가지냐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걸 어떻게 다 혼구멍을 내줄 수 있느냐, 앞으론 그딴 것들에 울화통을 터뜨리지 마라, 그러면 그러는 사람만 고단하다, 하는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혀조차도 차지 않았다.
우리는 서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를 힐끔 돌아본 다음 한마디 더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같이 나이 든 분이야 못 그러죠. 엄두도 못 내죠. 야합이나 하고 협잡이나 하죠. 그래서 세상엔 날이 갈수록 눈꼴신 것들 행패만 늘어나요.”
이쯤 해놓으면 무슨 반응이 있겠거니 하고 우리는 숨을 죽인 채 그를 건너다보았다. 그러나 우리의 그따위 악담은 아무런 효험도 없었다. 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떻게 보면 우리 말이 맞다는 듯 웃음이 번진 듯한 얼굴을 하고 꼼장어 구워내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인의 반응을 듣기는 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정작 엉뚱한 데서 반응이 나타났다.
“가만히 듣자 하니 아주 질이 나쁜 놈들이군.”
이건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아예 시비를 결어오는 거군 하는 생각이 펀뜩* 들어 우리는 눈꼬리*가 떨리는 긴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전력(戰力)의 대비(對比)를 알기 위해 우리는 재빨리 시비가 걸려 온 쪽을 돌아봤다. 그러나 우리와 나란히 서서 꼼장어가 굽혀 나오기를 기다리는 패거리는 고작해야 마흔 줄의 남자 둘이었다.
그들이 더 자신만만하게 나오도록 유도하기 위해선 우리가 기죽은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었으므로 우리는 아무 반응도 나타내는 일이 없이 주눅이 든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물론 술을 마시지도 않았다.
우리의 작전은 적중했다. 사태의 정황을 세밀히 관찰하고 있던 남은 한 사나이가 마침내 앞의 말에 꼬리를 달고 나섰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길거리에서 껍적대는 부랑배들이 다 있어.”
우리는 여전히 잔뜩 겁먹은 모습을 하고 말없이 서 있었다. 그제야 우리는 우리가 겨냥한 상대가 처음부터 주인이 아니라 그들이었음을 알아차렸다. 무슨 얘기냐 하면 우리는 그때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재미로 그런 참새구이집을 찾아오는 그들 같은 사람들을 곯려주는 것으로써 어쩌면 눈두덩이 팅팅 부은 그를 위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그의 왼쪽 눈은 너무 부어올라 조금도 뜨이지 않을 정도로 완강하게 감겨 있었다. 직신하게 두들겨 맞고 링을 내려온 권투선수같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잠시 후 드디어 쿡쿡 하고 잇달아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뜻밖에도 그가 먼저 우리의 어깨를 밀고 두 남자 곁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날 밤 우리가 그를 제지하지 않은 것은 여간 큰 실수가 아니었다. 아니, 우리는 처음부터 상대를 잘못 보는 실수를 범한 것이었다. 신사복을 번듯하게 차려입은 그들이 우리를 현장에서 체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들인 줄을 우린 몰랐던 것이다.
“우린 당신네들처럼 야합하고 협잡하고 배신하지 않는단 말야. 당신네들이 그런 짓 안 했다면 우리 얘기에 왜 끼어들어?”
하고 달려드는 그에게 두 남자는 지체 없이 벽력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꼼짝 마! 모조리 주민등록증 내놔!”
“한 놈이라도 도망쳤다간 죽는 줄 알어!”
우리는 그들의 명령에 순순히 따랐다. 그리고 가까운 경찰서로 끌려가 인계되었다.
그는 특히 온몸이 상처투성이 된 연유에 대해 거듭 추궁당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던 그가 새벽의 경찰서 유치장에서 우리한테 그 연유를 털어놓았다.
율포공업단지 조성 공사장에 내려간 이후, 일당으로 지급되는 임금을 그는 보름께부터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었다고 했다. 큰 토건회사 다섯이 시공을 맡아 그것을 다시 수많은 군소 토건업자한테 하청을 나누어주어 진행되고 있던 그 공사는, 원래의 시공업자로부터 공사비가 내려오지 않으면 일당을 제때에 지급할 길이 없다고, 그를 막노동자로 고용한 업주는 늘상 강조했다. 그보다 먼저 온 인부들이 업주의 그런 주장을 납득하고 있었으므로 그도 그런가보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이윽고 임금 지불이 안 되기 시작했다. 내일은 내일은 한 것이 두 달이나 계속되었다. 많이 밀린 경우는 다섯 달치나 못 받아낸 사람도 있었다. 마지막 연기라고 말한 업주로부터의 약속이 세 번이나 지켜지지 않았다. 마침내 인부들은 작업이 끝난 밤에 모여 모의하기 시작했다. 업주 쪽에 최후의 날짜를 통첩하기로 결정했다.
그 최후의 날을 사흘 앞두고 뜻밖에 그의 동생이 공사장으로 그를 찾아왔다. 그땐 아직 중학생이던 그의 동생은 그와 마주치자 눈물부터 보였다.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냐?”
어머니가 복막염이라고 동생이 말했다. 진찰 결과 맹장이 터져 복막염으로 발전했다는 것인데 수술 전에 입원수속부터 밟으라고 하여 아침부터 응급실에 누워 있다는 것. 그는 지체 없이 곁에 있는 곡괭이를 울러 메고 현장사무실로 뛰어갔다. 수틀리면 찍어버릴 생각으로.
“우리한테 협박조로 통고한 날이 아직 이틀이나 남았는데 무슨 소리야.”
그는 당장 곡괭이 잡은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아직은 참았다.
“복막염은 수술만 하면 낫지만 시간을 놓치면 위험하지.”
소장은 뒷짐을 지고 천막자락 끝으로 어슬렁어슬렁 결어가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언제까지 참아야 하느냐고 자문했다.
“좋아, 사정이 그렇다니까 입원비만큼 미리 주지.”
“주는 게 아니라 내가 받을 돈이에요.”
“어렵쇼, 그렇게 나오면 못 주겠는데. 다른 사람들 알면 난리 날 거거든. 내가 왜 스스로 말썽을 만들겠어.”
“못 줘요?”
“그러니까 얌전히 굴면 줄 수도 있다 그 말씀이지. 대신 내 부탁도 한 가지 들어주는 조건으로.”
“무슨 부탁?”
“별거 아냐. 오늘 밤 노무자들 데리고 나가 술을 한턱 내. 술값은 물론 내가 내지. 일미집으로 가서 외상을 그어놔. 딴 뜻은 없고 요즘 모두들 너무 신경들이 날카로워져 있는 것 같아서 좀 누그러뜨리자는 것뿐이야.”
“못 하겠시다. 나는 지금 당장 병원에 갈 거요.”
“허허, 그러면 입원비 못 내준다니까. 내 말하지 않았어. 복막염이란 별거 아니라고.”
“어쨌든 못 하겠소.”
“내 말을 의심하는 모양인데 별다른 뜻이 없다니까. 내 솔직히 말하지. 실은 도자 성능이 떨어져 요즘 작업능률이 영 안 오른단 말씀야. 저걸 수리공장에 넣어 손을 봐야겠는데 노무자들이 의심할까봐 실어 내갈 수가 있어야지.”
“난 못 한다니까.”
“잘 생각해봐. 시간 놓치면 어머닌 위험하다고. 별거 아닌 부탁인데 잘 생각해보라구.”
불도저의 성능이 못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잘 생각해봤다. 그러곤 말했다.
“좋시다. 대신 내 밀린 돈을 다 주슈.”
“간조* 다 해줄 돈이 있다면야 벌써 아까 줬지 왜 여러 말하고 있겠어. 위급한 환자 눕혀놓고. 있는 대로 다 긁어모아보지. 한 육만 원 쯤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는 결국 십만 원을 받아 들고 현장사무실을 뛰어나왔다. 누구 보는 앞에서 돈 구경시키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소장이 몇 번씩 주의를 주었다. 그는 동생을 데리고 급히 공사장을 빠져나가며 말했다.
“너 먼저 올라가면 곧 뒤따라갈게.”
“언제?”
“곧. 복막염 정도는 걱정할 것 없다는데, 수술만 하면 금방 낫는다는데.”
“누가 그래?”
“알아봤어. 그렇지만 당장 수술하도록 해야 한다.”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나온 동생은 머뭇거림이 없이 곧 버스에 올라주었다. 그는 꼭 뭔가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차창 아래로 다가서서 물었다.
“너 학교 공납금은 어떻게 됐니?”
“못 냈지 뭐.”
“그럼 어떻게 되니?”
“그만두래. ……그만둘 거야.”
“무슨 소리냐?”
“벌써 며칠째 학교 가지 않은걸.”
“안 돼. 그 돈 입원비 내고 남은 걸로 등록금 갖다 내.”
“수술빈 어떡허고?”
“그런 건 네가 걱정 안 해도 돼.”
동생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구차하게도 이틀 뒤면 그동안 밀린 임금을 모두 받아내게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다음 날 새벽, 시체실에 누운 어머니 꿈을 꾸고 있는 그를 누군가 두드려 깨웠다. 그리고 눈을 뜨기 바쁘게 지체 없이 멱살을 잡혀 천막 밖으로 끌려 나갔다. 끌려 나가면서도 그는 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꿈일 뿐 현실이 아니었다는 데에 그는 감사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그를 끌고 현장사무실로 갔다. 기름이 다 닳아 가물가물 꺼져가고 있는 석유램프 하나가 천막 기둥에 걸려 있었다. 그것뿐 천막 안은 휑하니 비어 있었다. 석유램프는 위장용임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다시 밖으로 끌려 나왔다. 그제야 누군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자, 봐! 두 눈으로 똑똑히 봐!”
그는 가리키는 곳을 보는 대신 둘러선 인부들의 얼굴을 쳐다봤다.
“보란 말야, 공사 장비들이 남아 있는 게 있나!”
그는 파헤쳐진 넓은 벌판을 내다봤다. 멀리 바다 쪽으로부터 뿌옇게 먼동이 트고 있었다.
“배신자!”
“죽여 버려!”
그는 헉 하고 배를 싸안으며 꼬꾸라졌다. 그리고 발굽들 아래 짓밟혔다. 그가 몸을 일으켰을 때는 주변에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다. 다만 동녘 하늘이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하늘과 맞닿은 바다도 붉게 물들어 온통 칙 칙 한 붉은빛뿐이었다.
우리는 그제야 그가 왜 포장마착집에서 발작처럼 우리를 밀어붙이고 나섰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말했다.
“나는 배신자야.”
“하지만 넌 그들이 걷어들고 도망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잖어. 그런 계획이란 것까진 몰랐던 거 아냐.”
“난 알았어. 낌새를 알아챌 수 있었어.”
“지금 생각하니 그럴 뿐이지.”
“아냐. 아니란 말이야.”
그는 우리의 위로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견딜 수 없는 말은 바로 이 말이야. 사람들 중 하나가 말했어. 나 같은 늙은 놈도 야합을 물리쳤는데 새파랗게 젊은 놈이 놈들과 짜고 그딴 짓을 해 하고.”
그는 순식간에 눈시울을 붉혔다. 곧이어 후두둑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는 번들거리는 그의 얼굴을 건너다보며 그가 만약 술만 마시지 않았대도 포장마차집에서 그런 실수를 저지르진 않았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 주변에 갑부 하나가 탄생 했군.”
우리가 그의 편지를 읽으며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몰랐다. 배신자의 아픔에 떨던 그를 갑부로 불러줄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도 얼마나 큰 행복인가.
“역시 외국에 나가 일하는 건 국내서보다 정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얘기지?”
“그나마 다른 나라 노동자들이 받는 대우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게 받는다는데도 말이야.”
“왜 봉재공장이나 철공소에서 함마* 두드리는 일자리는 없지?”
“진작 미장이*나 목수일이라도 배워두는 건데.”
“걔가 집장수를 따라다니며 뺑끼칠 기술을 배운 건 역시 선견지명이 있었어.”
“어쨌든 걔가 갑부가 돼버렸다는 것만큼 기분 좋은 건 없지 뭐냐.”
그러나 그는 떠나기 전 우리와 마지막 만났을 때 분명히 말하지 않았던가. 그가 떠나는 건 결코 돈에 대한 복수심 때문은 아니라고.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뒤켠에서 그를 갑부라고 부르는 건 어쩌면 그에 대한 모욕이 되는 것인지 몰랐다. 적어도 그는 자신이 그렇게 불리는 것을 기분 좋아할 리 없으니까.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가 가 있는 곳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땅인가에 곧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었던 것이다.
타는 듯한 열기 속의 사막, 그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기름탱크의 벽에 달라붙은 페인트 롤러를 굴려나가다 보면 느닷없이 비 오듯 하던 땀이 말라버리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었다. 더 배어날 땀도 남지 않은 채 장작개비처럼 꾸들꾸들 말라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 버릇처럼 불덩이같이 달궈진 탱크의 철판에 등을 붙이고 지상을 내려다보게 된다고 그는 쓰고 있었다.
까맣게 내려다보이는 지상의 모래밭이 마치 파도가 출령이는 바다처럼 보이지. 착각이 아니야. 현기증 탓이야.
그럴 때 생각나는 것이 무엇인지 알어? 거짓말이 아냐. 죽음이야. 허리를 묶은 밧줄을 풀고 슬쩍 탱크를 차면 한 장의 종이처럼 간단히 땅으로 날아 떨어질 수 있을 거란 생각. 몸의 물키란 남김없이 증발해버렸으므로 뼈가 부러지고 살이 터져도 피가 흐르지 않을 거 아니겠어.
나는 그런 충동을 하루에 적어도 네 번은 받고 있어. 어떤 고통도 어떤 인내도 잊은 행복한 나의 시체를. 그때의 나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겠지?
그런 그가 다음 편지에서 1년 연장 고용계약서에 서병 했음을 거침없이 말하고 있었다. 딱 1년만 더 머문 다음 돌아가겠다고 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결단을 내린 그에게 장엄한 어떤 느낌마저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여전히 빈털터리로 남아 있는 우리가 갑부가 되어가고 있는 그를·…… 지상의 온도만도 섭씨 40도라면 공중에 떠 있는 그를 휘감는 열기는 도대체 몇 도나 되는 것일까?
그의 느닷없는 귀국에 대한 우리의 환영계획은 그러므로. 너무나 당연했다. 1년을 연장해서 머물기로 한 겨우 한 달 만에 그는 난데없이 계약을 파기하고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마침내 끝없이 현기증에 시달리는 고통을 청산하고 충동적인 유혹을 떨쳐버리고 돌아오는 그가 아닌가. 결정을 내린 순간 그는 소리쳤을 것이다. 야, 이 더러운 자본아 하고. 돈의 부피가 커지면 자본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불러주니까. 아니 그가 어쨌는지 누가 알랴.
그가 김포공항착 귀국하는 날이 드디어 하루 앞으로 다가선 날 우리는 약속대로 다시 모였다. 환영 계획 의 재확인을 위해서. 우리는 술을 마시러 갔다. 아무도 우스갯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만 제가끔 그와 마주치는 순간에 뭐라고 첫마디를 던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궁리를 짜고 있었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라고 해야 할까. 아니 얼마나 뜨거웠니라고 물어야 할까. 포기하고 돌아온 건 참 잘한 결정이라고만 위로하고 말아야 할까……
포장마차에는 막걸리는 번거로우므로 팔지 않았다. 그리고 소주는 여전히 우리에게 너무 독했다.
그러나 우리는 마셨다. 말없이 자꾸 마셨다.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배지를 단 여섯 명의 여대생들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으므로 남자들인 우리가 소주를 거북해할 수는 없었다. 그녀들이 열 올리고 있는 대화에 방해가 되므로 우린 떠들 수도 없었다. 그런 곳에 신분을 위장하고 잠입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로서 그녀들의 얘기를 간섭하거나 끼어드는 실수는 두 번 다시 저지를 수 없었다. 우리는 다만 말없이 술을 마시는 일밖엔 할 짓이 없었다.
“얘, 눈이 끝없이 펑펑 쏟아지는 거 있지. 그럴 때면 그 눈을 빨간 피로 물들이며 죽고 싶은 거 있지.”
우리는 여대생들의 그런 얘기를 가물가물 귓가로 들으며 돈짝만한 세상을 안주로 집어 먹으며 끝없이 소주잔을 목구멍으로 들어부었다. 세상에 행복을 느끼는 것도 참 여러 질이구나 하는 생각이 안 든 건 아니지만 그건 잠시뿐이었다. 눈이 행복한 살인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은 정 말 잠시뿐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딸꾹질이 나기 시작하여 정신을 차리고 건너다보자 돈짝만 해 뵈던 것은 세상이 아니었다. 재차 어금니를 사려물고* 건너다보아도 눈앞에' 일렁이는 돈짝 크기의 상대는 고작해야 털모자를 눌러쓴 포장마차 주인일 뿐이었다. 그리고 술기운에 떨고 있는 것은 우리뿐이었다. 영양이 좋은 여대생들은 여전히 조금도 취해 있지 않았다.
“너 참 어떻게 됐니?”
“응, 재정보증서 붙여갖구 초청하는 거 있지, 그거 보내주겠대. 자기 약속했어.”
“그럼 벌써 떠났니?”
“다음 달에 떠나. 여권이랑 비자랑 다 나왔어, 얘.”
“그럼 언제 환송회 한번 하자, 얘. 그냥 있을 수 있니. 이제 영영 못 만날지두 모르는데.”
“박사학위 따기 전엔 돌아오지 않는대. 어떨 때 가만 생각하면 막막해지는 거 있지, 나 요즘 그런 심정이다 너.”
“어머, 왜니? 노처녀로 늙으면 어쩌나 해서니?”
“그런 소리 마, 얘. 건너가면 육 개월 안으로 초청장 보내준다니까 그러니 앤. 너, 나 유학시험 떨어졌다구 그러는 거니? 너 모르는구나. 유학시험, 그거 별 볼일 없는 거야. 재정보증서두 못 얻는 별 볼 일 없는 인간들한테나 필요한 거야. 내가 막막해지는 건…….”
“가면 아무래두 고생이다, 그거니?”
“우리가 어디 중동에 땅 파러 가는 거니, 고생이게? 뉴욕에 자기 누나가 살구 있다구. 자가용이 몇 대씩이나 된대.”
그도 아마 재정보증서 갖고 미국 유학 가는 저런 여자와 같은 비행기 타고 갔겠지. 아니, 미국은 그쪽으로 가지 않으므로 그와 같은 비행기로 유학 떠난 사람은 파리로 여자 목도리 연구하러 가는 남자였겠지.
“아저씨, 꼼장어 두 마리 더 구워주세요. 그거 정력에 좋다면서요?”
하는 여대생들의 얘기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포장마차의 휘장*을 들치고 나왔다. 나오다가 우리는 모두가 눈길에 미끄러져 자빠졌다. 그러나 눈 위에 꽈당 자빠져 뇌진탕으로 죽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은 조금도 나지 않았다. 우리는 다만 끝까지 듣지 못한 여대생의 얘기가 궁금할 뿐이었다. 그녀가 막막해지는 건 무엇일까. 조국의 장래일까, 민족의 앞날일까. 떨어지는 정 력 때문일까, 아니 날로 그게 충천해서는 아닐까.
우리는 꼬리를 무는 의문을 풀지 못한 채 다음날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눈길 조심해, 자칫하면 간다구 하는 당부를 주고받으며.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뻐개지는 것 같은 머리통을 싸안고 최후로 모였다. 우선 꽃집으로 갔다. 꽃다발 하나를 주문했다.
“어떤 꽃다발을요?”
“아주 근사한 걸로.”
우리가 멋진 꽃다발을 주문한 것을 묵집 주인은 매우 고마워하면서 펄럭이는 리본까지 달아주었다. 그를 환영하는 깃발로는 아주 그럴싸한 크기였다. 우리는 꽃집 주인을 더욱 즐겁게 해주기 위해 대금을 치르기 전에 한마디 더 했다.
“김포공항으로 가져갈 겁니다.”
우리의 이 말에는 그가 만들어준 꽃다발이 다분히 국제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아 그러세요.”
하고 꽃집 주인은 과연 감탄하는 목소릴 냈다. 그러고는 그도 축하의 뜻을 보태고 싶었던지 이렇게 말했다.
“그럼 이백 원을 빼드리죠.”
준비를 끝냈으므로 우리는 곧 꽃다발을 앞세우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유치하게 피켓 같은 걸 만들 계획은 애초부터 우린 갖고 있지 않았다. 그때 우리가 좀 거북살스럽게 느낀 것이 있었다면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그가 도착할 시간이 아직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두통이었다. 두통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정도였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나빠져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구도 진통제를 사 먹으면 어떠냐는 제의는 하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하기도 전에 겨울 짧은 해는 벌써 밤으로 바뀌어 있었으나 그가 탄 비행기가 도착할 밤 여덟 시까진 아직도 두 시간 가까이나 남아 있었다.
“그래도 이 꽃다발을 들고 도중에서 시간을 보낼 덴 없잖겠어.”
“그럼. 막 바로 온 건 잘한 거야.”
우리가 꽃다발을 들고 뭇 사람들 틈에 끼여 두 시간을 기다린다면 풋풋한 꽃의 향기를 다 앗기고 말 우려가 있었으므로 우리는 당장 공항청사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공항 광장 끝으로 가서 눈밭에 둘러섰다. 다행히 날씨가 그렇게 춥지 않았다. 아니 그가 타는 듯한 열기 속을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그 정도 추위를 견디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두통에도 좋은 처방인지 몰랐다.
한 시간 이상을 눈을 밟고 서성거린 다음 우리는 딸기코를 훌쩍거리며 주차장을 가로질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선 다음에야 우리는 그 안이 그렇게 좁은 공간이 아닌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므로 그가 입국수속을 끝내고 마침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문이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속으로 그를 비난했다. 그가 떠날 때 우리로 하여금 그를 배웅하도록만 했던들 우린 지금 조금도 기웃거리지 않고 익숙하게 찾아갈 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 그는 단호히 말했었다. 만약에 그가 떠나는 공항에 우리가 나타난다면 그걸로 우리의 우정은 끝나는 것이라고. 어째서 그러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희가 만약 공항에 나온다면 그건 나를 비웃으러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가 그때 그토록 신랄할 것까진 없었다. 어쨌든 다행히 우린 입국자들이 들어서는 문을 찾는 데 그렇게 오래 방황하진 않았다. ‘안내’라고 써 붙인 곳에 가서 물어보면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만큼 우리도 때로는 용의주도한 편 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입국자 출구 앞으로 다가갔을 때 우리는 거기 우리가 아는 한 분이 이미 도착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발견하는 순간 가슴이 더없이 벅차오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그런 지경이었으니 그녀는 얼마나 격정에 떨고 있었으랴. 바로 그의 어머니였으니까.
우리는 격양된 목소리로, 그러나 나지막한 합창으로 그녀를 불렀다.
“어머니!”
그녀가 흠칫 놀란 몸짓으로 우리를 돌아봤다. 그러고는 격정을 억누르지 못해 급기야 우리 앞에 눈물을 뚝 떨어뜨렸다. 우리는 그녀로 하여금 그만 소리 내어 어른의 울음을 울어버리게 할 우려가 있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반가우세요라는 말은 더구나 할 수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눈물방울이 아스라이 걸린 그녀의 눈은 무언의 말을 하고 있었으니까. 녀석이 드디어 돌아오고 있단 말이야 하고.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이렇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오신 지 오래 되셨나요?”
“아니…… 조금 전에.”
“거의 도착할 시간이 되었군요.”
“응―.”
그녀는 대답하고 나서야 시간이 임박했다는 데 새삼 실감이 가는지 놀란 눈을 하고 우리를 돌아봤다. 눈가에는 아직도 위태로운 눈물 방울이 괴어 있었는데 그 눈물방울은 우리가 미처 손수건을 꺼내기도 전에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신수가 편 탓인지 복막염 수술 이후의 오랜 병색을 완전히 회복하고 있던 그녀였는데 아들의 귀환이 다시 살을 내리게 한 것 일까. 그녀는 드러나게 수척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그가 탄 비행기의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들렸을 때, 우리는 숨이 막히는 긴장을 느꼈다. 우리는 몸을 후루룩 떨며 다시 그녀를 환기시켰다.
“비행기가 도착했답니다, 어머니“
그러자 그녀도 방송을 알아들었음인지 아무 대꾸도 않고 줄기차게 입국자가 들어서는 문 쪽만 쏘아보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그새 격정을 진정시켰는지 몰랐다. 우리는 그가 만약 우리와 함께 포장마차에 가서 한잔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생각하며 그의 어머니의 희끗희끗한 뒷머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적어도 20분은 시간이 지체된 듯했다. 가방을 들고 가벼운 웃음을 띤 사나이 하나가 문 앞에 나타났다. 머리에는 매우 비싸 보이고, 그래서 좋아 뵈는지도 모를 멋진 중절모가 얹혀 있었다. 그러나 그 사나이는 그가 아니었다. 귀국하는 사람도, 이 땅을 찾아오는 여행자도 줄줄이 이어져 나오고 있었으나 그는 좀체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그제야 그가 귀환한다는 것이 낭설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당초의 계약조건대로 지금도 모래밭에서 페인트칠을 하고 있으며, 그가 돌아오는 것은 적어도 열한 달 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재빨리 그의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그러나 우리가 그녀를 부른 것은 그가 일 년 뒤에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우리가 조급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에 그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동생이 거기 입국자 출구 앞에 불쑥 그 모습을 나타냈던 것이다. 우리는 뻣뻣하게 몸이 굳어오는 것을 느꼈다. 발을 떼어놓으려 하면 그대로 쓰러지고 말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현지까지 가서 그를 안내하여 오고 있는 그의 남동생은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주춤하고 걸음을 멈춰 섰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물기로 번들거렸다. 그러나 그는 역시 남자였으므로 오래 지체하지 않고 곧 문 앞을 떠나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제야 우리가 공항건물 밖에서 그토록 오래 떨고 있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를 차마 만날 수 없어서였던 것을 알아차렸다. 그에게 줄 꽃다발을 뭇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우리는 그녀의 둘째아들, 아직도 까까머리 고등학생인 그 둘째아들이 가슴에 안고 다가서는 하얀 사각의 곽 위에다 검은 리본이 드리워진 우리의 꽃다발을 얹었다.
그러나 한줌의 재를 위한 꽃다발로는 그건 너무나 흐드러진 풍요(豊饒)였다. 너무나……
『문학사상』 68호(1978. 5); 『신상웅전집』 4권 (동서문화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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