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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의 마음을 ‘밭’이라고 부릅니다. 마치 농부가 밭에 좋은 씨를 뿌려 결실하듯 사람 마음의 밭도 어떤 씨를 뿌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20세기 문학계의 기인이라고 부른 제임스앨런이 쓴 “생각하는 그대로”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좋은 생각과 행동은 결코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없고, 나쁜 생각과 나쁜 행동은 결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다. 그 사람의 생각이 결과를 결정한다 ”고 했습니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일 하루를 계획대로 살아가겠지만 우리 마음 밭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생각의 씨앗들이 날아와 떨어집니다. 기쁨의 씨앗, 소망의 씨앗, 사랑의 씨앗을 갖지만 어느 순간 불평의 씨앗, 절망의 씨앗, 미움의 씨앗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어떤 청년이 냉동창고에 갇혀서 숨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동료들이 청년을 발견했을 때, 벽에는 ‘점점 추워진다. 숨 쉬기가 힘들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냉동창고는 가동 하지 않은 상태로, 영상 19도 정도의 기온이었습니다. 그런데 냉동창고에 갇혀있는 청년은 자신이 냉동창고에 갇혀있기에 얼마 안 있으면 영하의 온도에 얼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 입니다. 결국 청년은 생각대로 추위를 느끼고 숨 쉬는 것도 힘들어하다가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내 마음의 밭을 다스리고 있습니까? 좋은 생각의 마음인가요? 아니면 악한 생각의 마음인가요?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허락하신 복이 있습니다. 창 1: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을 관리하는 청지기로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최초인간 아담은 정원사이면서 농사짓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농사를 짓지만 땀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은 죄로 말미암아 땅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고 만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를 짓기 전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땅이 옥토 밭이었습니다.
그러나 죄로 저주받은 인간이나 땅은 우리가 수고하지 않으면 언제나 땅이 묵은 땅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남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신앙이 그렇습니다. 마치 농사 짓는 농사꾼과 다름이 없습니다. 농사꾼이 농사도 잘해야 하듯이 우리의 마음의 밭도 하나님앞에서 잘 다스려 져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이스라엘 백성의 삶을 볼 수 있고 우리 자신도 마음의 창문을 들여다 보게 됩니다.
본문 호10:1-2 다시 읽습니다.........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1절 서두에 “이스라엘”이라고 했는데 이스라엘은 우리나라 강원도 정도뿐이 되지 않는 나라인데 좁은땅이 솔로몬왕 때 둘로 나누워졌습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누워진것입니다. 여기서 말한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을 말합니다. 이 나라는 솔로몬왕때 공사장감독이있던 여로보암이 반란을 일으켜 세운 나라로 처음부터 하나님과 멀어져 있었습니다.
처음 뿌리가 좋지않은데 그후에 나라가 좋아지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까지도 인정하시는지 이 나라도 하나님 자기 백성이기에 사랑하십니다. 시대마다 선지자를 보내 따끔한 꾸중을 하십니다. 북이스라엘도 잘 살 때가 있었는데 여로보암 2세 때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열매 맺은 무성한 포도나무로 경제적으로 부요함을 누렸습니다. 그렇다면 백성들이 겸손히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알고 더욱 감사해야하지만 풍요가 오히려 영적으로는 최악의 빈곤이었습니다.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주상의 자리에 제단을 쌓고 우상 섬기는 일들을 밥 먹듯이 한 것입니다. 여기 주상이란 5절 벧아웬의 송아지를 말하는데 '하나님의 집'으로 불리었던 “벧엘”이 황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자리로 바뀌어 '우상의 집' 이라는 “벧아웬”으로 불리워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사역한 호세아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꼬라지를 보면서 “두 마음을 품었다”고 따끔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쪽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다른 한쪽으로는 주상을 만들어서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필요할 때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즐길 때는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저들의 마음이 하나님과 우상으로 조각난 것입니다. 참으로 슬픈 영적 비극 입니다.
가족들마다 식사메뉴가 다 맞을 수는 없습니다. 특히 중화요리가 그렇습니다. 가끔 가족들이 다모이면 중화요리 메뉴대로 주문을 하는데 나는 짜장면 다른 식구들은 간짜장 짬뽕 잡채밥 군만두 시키는데 저는 국물 생각이 나서 짬뽕을 주문해 내 앞에 왔는데 바로 옆에 구수한 짜짱면이 놓아지면 어찌나 맛있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짬뽕도 먹고 싶고 짜장면도 먹고 싶다 속으로 생각하다가 아들아! 나누먹자하고 나누어 먹은 적이 있습니다. 음식을 비롯한 이 세상의 많은 것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둘 다 먹을 수 있고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절대 둘 다 가질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우상입니다. 왜 둘 다 가질 수 없는가 하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하거나 우상을 선택하느냐 둘 중 하나입니다. 혹은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세상을 사랑하는 것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중간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저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아닙니다. 3절을 보면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요 하리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 무서운 걸 모르고 살다가 왕이 없어졌는데, 이제 왕이 있어도 무슨 소용이겠느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세상 여운이 남아 있는거예요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이 풍요로울수록 점점 하나님과 관계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PC 혹은 작은pc 폰 이젠 일상화입니다. 모르면 바보입니다. 그런데 이것 하나만 놓고 무슨 작업을 할 때 키보드 마우스를 손으로 움직이다 약간만 옮겨 놓으면 수많은 프로그램 신 지식이 쏟아져 나와 다양한 세상 유혹들이 눈으로 손으로 크릭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AIAI 말들을 하는데 인공지능이 인간을 편리하게 해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어 버리는 도구들이 수없이 등장하는데 사람들은 좋아서 어쩔줄을 모릅니다. 시대의 흐름이 갈수록 좋아지는 것 사실이지만 사람이 편안하고 안주할 때 얼마나 하나님을 갈망하며 찾겠느냐입니다.
갈수록 세상은 하나님과 세상을 선택함에 있어서 두 마음에서 머뭇머뭇 세상으로 기우러져 있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택함 받은 하나님 자녀들도 삶의 자리, 삶의 현실이 하나님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앎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쪽 발은 하나님 한쪽 발은 우상같은 세상을 밟고 있는 두 마음에서 머뭇 머뭇거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갈멜산의 영적싸움의 현실이 엣날 엘리야 때가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 지금 당면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호세아선지자는 10장 2절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나님께서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물질적인 풍요가 정신적 타락을 일으켰습니다. 보이는 세계의 풍족함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결국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탄식 소리가 들려옵니다. 호세아 10:13....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자신의 길과 자신의 용사의 많음을 의뢰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없고 하나님위에 자신을 내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내 건강, 내 재산, 내 능력, 내 권력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은 안중에 없습니다. 오직 네가 얼마나 잘난 인간인지, 얼마나 힘 있는 존재인지를 과시하고 싶어 합니다.
이처럼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제 멋대로 인생을 사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성경은 딱딱하게 굳어버린 묵은 땅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절.....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하나님은 “너희의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묵은 땅은 어떤 땅입니까? 아무리 씨앗을 뿌려도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황량한 땅입니다. 과거에는 풍성한 소출로 사람을 기쁘게 했던 땅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방치되어 잡초가 무성하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가득한 땅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영적으로 어떤 상태일까요?.........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내영혼 깊은곳에 기쁨의 샘물이 솟아나오고 있습니까? 지금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내 영혼에 기쁨이 없으면 내 영혼의 상태를 들여다 봐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 영혼을 지금 방치해 놓은 것은 아닌지!...... 영적인 즐거움을 잃어버린 채로 무덤덤하게 살고 있지는 않는지!...... 내 신앙이 잘못된 습관으로 고착화되고 있지는 않는지! 말씀 앞에 내 마음의 잣대를 놓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마13장 우리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 씨뿌리는 비유로 네 가지 지적하셨습니다. 심겨진 씨가 잘 자라나는 옥토를 제외하면 세 가지 종류의 땅이 있었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덤불 밭입니다.
■ 길가 뿌려진 씨는...... 이미 세상에 밟혀져 뿌리를 내릴 수없습니다. 버려진 자식입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돌 밭에 떨어진 씨가 있어요..... 씨는 좋은데 흙이 얕아 돌덩어리에 치여 곧 말라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치 내 모습이 밭에 있는 작은 돌덩어리입니다. 순수한 떡잎이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나의 작은 고집과 교만이 내 마음에 박혀 순전한 싹이 말라버렸습니다. ■ 가시떨기위에 떨어진 씨도 있지요.....씨가 좋아 잘자라 싹이 돋아 이곳저곳 연한 가지가 뻣어나가는데 어느순간 가시에 찔려 상처입고 고개 숙여 있는 여한 가지를 텃밭 가꿀 때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바로 내 자신을 본 것 같았습니다. 강단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전하면서도 강단에서 내려와 세상에 부딪치는 일이 있으면 근방 넘어지기도 하고 시험 들고 걱정과 염려가 저에게도 있어요 이런 장애물 같은 묵은 잡초들이 무성하게 있는 것이 우리 신앙의 현주소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 제자들이 씨뿌리는 비유를 얼마나 몰랐으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책망하실까요?
마13: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호세아 선지자는 “너희는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했습니다. 즉 갈아서 뒤엎으라는 것입니다. 잡초를 뽑아내고, 크고 작은 돌멩이들을 걷어 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 일이 가능할까요?...... 늦출 수 없고 지금 하나님을 찾고 진정 믿음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12절....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지금이 여호와를 찾을 때라는 것입니다. 두마음을 품었던 자리 두마음을 품었던 생각에서 머뭇머뭇거리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찾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결정하고 지금 행동해야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앞에 나왔으면 묵은 땅을 뒤집어 엎어 부드러운 옥토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거두어야 하겠습니까?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고 했습니다. 공의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뜻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면 무엇을 열매로 거둔다고 겁니까? 바로 인애 입니다. 끊임없는 사랑을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쓴 뿌리들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습니다. 미움의 쓴 뿌리, 분노의 쓴 뿌리, 교만의 쓴 뿌리, 열등감의 쓴 뿌리 등이 있습니다. 이 쓴 뿌리들을 과감하게 갈아업고 성령의 불로 태워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새봄 잠자던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다가옵니다...... 묵은 내 마음을 신앙의 새봄으로 갈아 업고 내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장하여 다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심령의 봄을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