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을 나오는 순간, 그렇게 찝찝할 수가 없었다. 다신 보고 싶지 않은 영화다. 잘 못 만들었거나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다. 너무나 사실적이며, 외면하고 싶던 진실의 다른 얼굴을 코앞까지 들이민 탓이다. 너무 잔인한 그 사람, 봉준호 감독.
<살인의 추억><괴물>의 연이은 히트로 욕심이 나기도 하련만, 그는 자신의 영화에 자신만의 철학을 꾹꾹 눌러 담아 <마더>를 만들어냈다. 바보 아들이 살인 누명을 쓰고, 엄마는 그런 아들을 구명해내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다는 것이 애초에 알려진 줄거리였다.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은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들의 구속 앞에 절규하고 아무도 결백을 믿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죽을 힘을 다해 마침내 범인을 찾아내고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딱히 누가 시킨 것도 말한 것도 아니지만 그 순간 우리가 흔히 그려낼 수 있는 도식이다.
봉준호 감독은 그런 감독의 기대와 예상을 여지없이 부셔버리고 철저하게 파괴한다. 영화 초반부는 관객의 기대에 부흥하는 척한다. 바보 도준은 엄마의 속을 썩이는 아들이다. 질 낮은 진구와 친구로 지내며 잦은 사고를 일으킨다. 어느 날 귀갓길에 한 소녀를 우연히 쫓아가고, 다음날 그녀가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용의자로 주목받게 된다.
늘 그렇듯 작품은 풍자와 해학이 함께 한다. 어린 여학생의 시신이 옥상에 내걸린 상황에서 형사들은 “우리 살인사건이 얼마만이지?”라고 떠올리며, 엄마가 없는 돈을 끌어들여 구한 최고의 변호사는 코배기도 구경하기 어렵다가 나중에서야 4년형으로 합의를 보자는 말(그것도 룸싸롱에서 여자를 끼고)을 한다.
형사들은 대충 사건을 종결시키려 하고, 주변 사람들은 도준을 범인으로 확정한다. 아울러 영화는 퍼즐을 맞추는 재미도 선사한다. 사건에 대한 단서를 화면 이곳저곳에 풀어놓고, 결정적인 단서를 중간 중간에 하나씩 터트린다. 덕분에 ‘지적유희’도 쏠쏠하다.
그러나 막상 결말부에 다다르면 우린 뜻밖의 ‘진실’에 당황한다. 그렇다. 놀라움보다 당혹스러움이 더 크다. “이 일을 어떡하지. 어떡하지?” 아마 엄마의 그 당시 속마음은 그러했을 것이다. 고민은 오래가지 못하고 그녀는 무자비한 행동을 벌인다.
기실 처음부터 그녀의 눈빛엔 ‘야수성’이 보였다. 영화 시작, 김혜자는 풀밭에 나와 알 수 없는 춤을 춘다. 관객이 모두들 의아하게 여길 무렵, 화면은 작두로 약재를 써는 김혜자의 얼굴을 비춘다. 도준은 길가에서 강아지와 위험하게 놀고 있으며,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것처럼 김혜자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들을 지켜본다.
끔찍한 작두의 써는 소리에 그녀의 손가락이 행여 잘리지나 않을지 관객은 마음을 졸이게 된다. 지나가던 차에 부딪쳐 아들이 넘어지고, 그 때문에 놀란 김혜자는 기어코 작두에 손을 베게 된다.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아픈 줄 모르고 김혜자는 아들의 안위부터 살핀다. 그런 엄마의 행동에 짜증내며 도준은 진구와 함께 자신을 치고 달아낸 뺑소니 차를 쫓는다.
영화에서 엄마의 모습은 그런 식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어머니상’은 이곳에서 다른 각도에서 조명된다. 바보임에도 아들을 끔찍하게 위하는 엄마. 야매로 침을 놓고 효능을 부풀린 약재를 팔며 생계를 이어온 엄마. 그녀의 모습은 지난 시절 우리 어머니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낸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포근하고 따스한 모습이 아니다. 자신은 피를 흘리면서도 아들만을 걱정하는 동물적 야수성을 간직한 모습으로 재조명 된다.
아들의 무죄석방을 위해서는 희생자 가족의 장례식장에 얼굴을 내비치는 과감성을 보이고, 비오는 날 아침 우의를 입고 형사의 집 앞에서 잠복해서 기다리는 모습은 지독하다 못해 두려울 정도다.
<마더>는 김혜자의 원맨쇼 영화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얼굴을 잡아낸다. <전원일기>에서 넉넉한 시골 엄마의 모습을 그려낸 김혜자는 여기서 다층적-다면적 감정을 지닌 얼굴로 연기한다. 그녀의 얼굴은 단순히 슬픔, 기쁨, 놀라움, 분도 등 한 가지로 고정되지 않는다. 삶에 대한 한과 분노와 망연자실함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엄마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연기는 또 어떠한가? 오직 자식만을 생각하는 지극한 마음이 사실적으로 전달된다. 영화를 보다보면 때때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벌이지만 김혜자의 연기가 너무 훌륭한 탓에 그런 점을 느낄 새도 없었다.
봉준호는 <마더>를 통해 우리가 알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의 어머니는 우리의 최후의 희망이다. 내가 실직하거나 혹은 사고를 당해 무력해진 상황이 되었을 때, 기댈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
때문에 우리의 어머니는 항상 억척스러워도 정 많고 속 깊고 푸근하고 따스하고 정 많은 그런 분이여만 한다. <마더>의 엄마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남편을 일찍 보내고 바보 아들과 여태까지 살아왔다. 너무 힘들어 도준이 다섯 살 때 자살을 기도했을 정도였다. 지금은 작지만 약재상도 하고 야매로 침을 놓으며 생활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그런 억척스러움 탓일까?
아들이 범인으로 몰리고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자, 스스로 수사에 나선다. 남자라면 무서워서 가지도 못할 곳에 혼자서 척척 가며, 위기 순간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지를 발휘해 벗어난다. 써놓고 보니 요새 말로 ‘슈퍼맘’이 되어버렸는데, ‘내 아이를 위해 못할 것이 없다’란 엄마의 마음은 그녀를 한 마리의 야수로 탈바꿈 시킨다. 아니, 자살을 실패한 후 생을 살아온 내내 그녀는 한 마리의 야수였다.
겉모습은 어리숙하고 힘이 없어 보이지만, 동네 깡패에게 돈이나 뜯기는 불쌍한 노인으로 보이지만. 그녀는 불량배에게 잡힌 여학생을 구하기 위해 고깃집 남자의 주의를 끌고, 결정적 단서를 잡기 위해 진구를 이용해 불량배의 자백을 받아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결말, 뜻밖의 결과에 봉착한 그녀가 보여주는 행보는 그래서 이해가 간다. 여태까지 그녀가 보여준 모든 행동을 종합했을 때 충분히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마더>는 대사 하나하나와 장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것은 관객에 따라 읽어내는 텍스트가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은 희생자 친구와 ‘핸드폰 개조’를 미끼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여기선 뜬금없이 생리대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여고생(아마도)은 배가 아프다며 생리대가 있냐고 물어본다. 김혜자는 없다면서 ‘생리를 안 한지 오래되었다’라고 답한다. 여고생은 앞 마트에서 사다줄 것을 부탁한다. 누가 봐도 김혜자를 따돌리기 위한 장면이지만, 엄마는 속아준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빨리 그녀를 찾아내는 장면이 설명되지 않는다.
왜 갑자기 생리대 이야기가 나왔을까? 우리가 흔히 ‘여자’ 혹은 ‘여성’을 말할 때는 생식적인 부분을(가정하고) 말한다. 폐경기에 들어선 엄마는 사회상으로 봤을 때는 ‘여성성 사망’ 상태다. 꼭 그렇게 멀리 가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의 아줌마는 어떠한가? 마치 아이와 어른 사이에 청소년 이란 끼인 세대를 만들어낸 것처럼, 우린 여성과 남성 사이에 아줌마란 제 3의 성을 창조해냈다.
이들은 수다스럽고 억척스러우며 뽀글머리를 하고 자식과 남편밖에 모르는 ‘짐승’이다. TV에선 곧잘 이런 아줌마의 모습을 희화화해서 웃음거리로 삼고, 매스컴에선 자주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아줌마는 IMF사태로 실직한 남편을 대신해 일자리를 잡아 돈을 벌어오고, 자식을 키워야했다. 그들은 돈을 구하기 위해 땅을 사서 복부인이 되고, 자식의 성적을 높이기 위해 치맛바람을 일으켜야 했다.
우리 사회는 ‘아줌마’를 비웃으면서도 한편으론, 열부니 효녀니 해서 그런 그들의 다른 면에서 칭찬하며 바람직한 어머니상을 만드는 데 매진했다.
그것이 사회적 안전망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보루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오래된 보루는 결국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성장’만을 외치며 부의 재분배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가족은 이미 해체되기 직전이다.
<마더>에선 그런 신경쇠약직전의 엄마가 잘 표현되어 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엄마. 그러나 보상은 커녕, 자신의 마음에 짐마저 얹은 그녀. 마지막 장면에 스스로에게 침을 놓고 춤추는 장면은 그래서 슬프다.
영화 내내 “아픈 거 슬픈 거 기억하기 싫은 거 잊게 해주는 침”을 노래 부른 이유가 결말부에 모두 설명된다.
바보 도준이 중간 중간 천재성을 발휘하고, 엄마가 벌이는 용감무쌍한 행동에 대해 의문을 갖지 말라! 이 영화는 꽉 짜여진 스릴러가 아니다. 물론 스릴러의 얼개를 갖고 있고, 시나리오적 완성도도 뛰어나다. 그러나 <마더>가 보여주고 싶어 한 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어머니상에 대한 것이라 믿는다.
봉준호는 <마더>로 또 한번 걸작을 우리 앞에 내보였다. 그러나 우리가 원치 않는 진실을, 아니 우리가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의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에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영화가 (나에겐) 되어버렸다.
높은 완성도가 너무 끔찍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첫댓글 어익후... 영화평 잘 봤습니다.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
아고고...
그 영화의 옥의 티는 죽은 여학생의 신발이죠 경찰이 왔을 땐 사체엔 오른쪽에 신발이 신겨져 있었는데 계단으로 질질 끌려갈 땐 맨발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