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적인 사랑의 춤, 룸바 - 다양한 아프리카 댄스리듬의 총체
라틴댄스 가운데 가장 템포가 느리고 동작이 유연한 춤인 룸바 “탱고가 정열의 춤이라면 룸바는 사랑의 춤이다”라는 정의에 걸맞게 부드럽고 관능적인 룸바댄스는 로맨틱한 구애의 분위기를 다른 어떤 춤보다도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춤뿐만 아니라 음악 역시 한없이 감미로운 리듬과 멜로디로 듣는 이를 감싸 안는다.
그러나 우리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아메리카 룸바’나 ‘쿠바 룸바’는 상당히 미국화 또는 유럽화되고 상업화 된 것이다. 이름만 쿠바룸바 일 뿐 실제로 쿠바의 아바나 사람들에게는 퍽 낯설게 보인다. 진짜 본 고장의 룸바와는 무척 다른 춤인 셈이다.
쿠바의 항구도시 아바나에서 룸바라는 춤과 음악이 태어난 1880년 무렵은 노예제도가 막 폐지된 시기이다. 이때부터 법적으로 노예매매와 소유가 금지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쿠바의 흑인들에게 현실적으로 나아진 것은 없었다. 당장 일터도 살 집도 없어진 그들은 큰 도시를 끼고 있는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몰려갔고 그곳에서 빈민가를 형성해 살면서 같은 흑인들끼리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며 밑바닥 삶의 고통을 달랬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이 구 할 수 있는 것은 일상 용구들뿐이어서 눈에 보이는 대로 작은 나무막대, 숟가락, 낡은 옷장 서럽, 생선 담은 나무궤짝 등을 가져다가 악기로 썼다. 이를 토대로 발전한 것이 봉고, 콩가, 마라카스, 클라베스 같은 타악기들로 이들은 룸바 음악에 이국정취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음악적인 면에서 룸바는 아프리카의 전통을 뚜렷이 드러낸다. 정확하게 말하면 콜룸비아, 얌부, 구아구안코 같은 다양한 아프리카 댄스리듬의 총체가 바로 룸바라고 말할 수 있다. 콜룸비아는 몸놀림이 체조선수처럼 유연하고 기교적으로 보이는 흑인 남성들의 솔로 댄스. 얌부는 느린 리듬의 커플댄스로 원래는 부족안에서 나이가 들어 빠른 리듬을 따라 갈 수 없는 노인들을 위한 리듬이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둔하고 지친 듯한 노인들의 동작을 장난스럽게 흉내 내면서 그들까지도 차츰 얌부 리듬에 맞춰 춤을 추게 됐다.
구아구안코는 이 세 가지 중에서 쿠바의 룸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춤으로 느릿하고 힘이 빠진 듯한 얌부와는 달리 대단히 에로틱하고 에너지기 느껴지는 커플댄스, 남성이 여성을 유혹하고 정복하는 과정을 춤으로 표현하는, 일종의 ‘성적인 팬터마임’ 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은 가까워지기와 멀어지기, 끌어당기기와 밀어내기를 번갈아 연기한다. 남성은 여성에게 신체적으로 결합하려는 시도를 충동적으로 계속 표현하고 여성은 어깨, 엉덩이, 발을 움직이며 자신의 음부를 수건이나 손으로 방어하는 동작을 보여주는데, 춤이 끝날 때는 물론 남성이 승리를 거두고 여성은 패배를 인정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민중의 고단한 삶을 하소연하듯 풀어놓는 룸바의 텍스트는 쿠바 사회사의 일부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브라질 삼바, 아르헨티나 탱고의 텍스트나 오늘날의 랩과 비교할 만하다. 본래의 룸바는 타악기와 코러스만으로 연주되는 민속적 성격이 강한 음악이지만 1930년대에 미국과 유럽으로 전해져 1940년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오늘날 우리가 흔히 듣는것과 같은 감미로운 음악으로 그 성격이 변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호세 페르난데스의 ‘구안타나메나’는 룸바의 세계적인 고전이 됐다. 1990년대에 들어서자 인터내셔널 스타일의 룸바가 새로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13회 연속으로 라틴아메리카 댄스 세계 챔피언이 된 영국 커플 도니 번즈와 게이노어 페어웨더가 보여준 환상의 룸바는 전세계를 열광 시켰다.
** 춤에 빠져들다. 이용숙 - 번역가이며 음악 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