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의사회는 2015년부터 지중해 중부에서 수색구조 활동을 전개해 왔다. 3년 전인 2021년 5월, 국경없는의사회는 구조선 지오배런츠(Geo Barents)호 운영을 개시하며 이미 2024년 5월 기준 11,300명이 넘는 사람들을 구조했다. 수많은 생명과 사연, 추억이 지오배런츠호에 올랐다.
안전을 찾아 모든 걸 뒤로 한 채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 유일하게 간직하고 있는 소지품은 무엇일까?
지오배런츠호에 승선한 생존자들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소지품에 얽힌 사연과 추억을 공유한다. 고국에서부터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이 작은 보물들은 인생에서 중요했던 순간을 상징하거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깊은 의미와 감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진, 목걸이, 노트 등 다양한 물건은 생존자들에게 기쁨과 의지가 되어주고 자아와도 연결돼 있다.
딜바(Dilba), 30세 / 시리아 출신
2024년 2월 ©Mohamad Cheblak/MSF
저는 남편, 아이들, 형제자매, 친한 친구들의 사진을 가지고 있어요. 심지어 제 대학교 학생증에 있던 사진도 있죠. 이중 제가 제일 아끼는 건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진이에요. 추억을 간직하려고 이 사진들을 모두 가지고 다닙니다. 시리아 전쟁이 일어나면서 모두 다른 곳으로 떠났어요. 노르웨이 혹은 네덜란드로 간 친구들도 있고, 일부는 다마스쿠스(Damascus)에 남았고, 저는 코바니(Kobanî)로 갔습니다. 저는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살던 동네와 친구들, 나고 자란 곳을 떠나야 했어요. 전쟁은 우리를 뿔뿔이 흩어지게 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을 못 본 지 수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추억은 남아있죠.”
2024년 2월 5일, 국경없는의사회는 지중해를 건너려던 딜바와 130여 명의 다른 사람들을 구조했다. 그들은 정원이 초과된 목선을 타고 있었다.
프레셔스(Precious), 27세/ 나이지리아 출신
2023년 10월 ©Annalisa Ausilio/MSF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담긴 SIM 카드를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어요. 이주 여정 중 가장 힘든 순간에도 이 카드는 잊지 않고 꼭 챙겼어요. 고국에 남은 사람들과 닿을 수 있는 유일한 연결고리니까요. 리비아에서 구금되었을 때 티셔츠 솔기에 숨겨두었는데 다행히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죠. 이 카드가 아직 제게 있어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프레셔스는 증가하는 폭력 사태와 정치적 불안정을 피해 2022년 1월 리비아를 떠났다. 그녀는 리비아에서 10개월 동안 폭력과 구금에 시달렸다. 2023년 10월 15일 한밤중, 국경없는의사회는 해상에서 프레셔스를 구조했다. 당시 프레셔스는 수용 인원이 초과된 고무보트에 타고 있었으며 유럽으로 가기 위해 네 번째 시도를 단행하던 중이었다.
아메르(Amer, 가명), 31세 /시리아 출신
2023년 12월 ©Mohamad Cheblak/MSF
인생이 고달프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소소한 물건들이 제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이 물건들을 볼 때마다 왜 제가 저 자신과 고국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친구를 위해 더 나은 미래를 찾아 이주하기로 했는지 다시금 떠올립니다. 수많은 추억과 의미가 담겨있는 물건들이죠. 망가트리지 않고 국경을 건너 이동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사막과 계곡을 건널 때도 가지고 다녔어요. 가지고 있던 옷을 버리는 건 괜찮았는데 이 물건들만큼은 그럴 수 없었죠. 이 목재 장식은 더위와 습기 때문에 좀 손상되었지만 제가 고칠 겁니다. 그리고 여자친구가 선물해 준 수첩도 있습니다. 제가 시나 문학 작품 쓰는 걸 좋아하거든요.”
아메르와 그의 남동생인 26세 칼릴(Khalil, 가명)은 2021년까지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살다가 지중해를 건너기 위해 리비아로 떠났다. 2023년 11월 30일, 국경없는의사회는 조난당한 섬유유리 보트에 타고 있던 아메르와 칼릴을 구조했다.
카디자(Khadijah), 35세 / 한때 리비아에 살았던 모로코 출신
2023년 12월 ©Mohamad Cheblak/MSF
이 가방들은 제게 정말 소중해요. 할머니가 챙겨주신 각종 전통 허브와 식물(라벤더, 셀러리, 정향, 갓류 채소)이 들어있거든요. 모로코에서는 이걸로 머리카락이나 피부를 가꾸기도 하고 일부는 소화제로 사용하기도 해요. 이거 말고는 가족, 특히 할머니와 저를 연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요. 보트에 타고 있을 때 서류를 잃어버리는 건 상관없었는데 이 가방들은 잃고 싶지 않았어요.”
리비아에서 결혼식장 웨이터로 근무했던 카디자는 폭격으로 첫 남편과 부모를 잃었다. 이외에도 다른 여러 폭력적인 사건들로 인해 카디자는 리비아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카디자와 두 번째 남편, 딸들은 2023년 7월 처음으로 지중해를 건너려 했지만 리비아 해안경비대에 가로막혀 구금센터에 수감되었다. 2023년 11월 30일, 국경없는의사회는 조난당한 섬유유리 보트를 타고 있던 카디자의 가족을 구조했다.
하미드(Hamid), 27세 / 파키스탄 출신
2023년 11월 ©Mohamad Cheblak/MSF
제가 가지고 다니는 반지와 목걸이는 형제 2명에게 받은 선물입니다. 이 반지와 목걸이를 가지고 있으면 어디에 있든 가족과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이것들을 착용하고 있을 땐 마치 제 형제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죠.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아요. 리비아에 있을 때는 반지와 목걸이 둘 다 착용하지 않았어요. 빼앗길 걸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지오배런츠호에 승선하자마자 가장 먼저 이 반지와 목걸이를 착용했어요. 여기라면 빼앗길 염려가 없으니까요.”
하미드는 파키스탄 펀자브(Punjab) 지역 출신이다. 그는 2022년 고국인 파키스탄을 떠나 두바이를 시작으로 이집트와 리비아로 이동했다. 그는 바다를 건너기 전 리비아에 머물 때 주유소에서 근무했다. 2023년 11월 17일, 국경없는의사회는 조난당한 목선을 타고 있던 하미드와 다른 50명의 사람들을 구조했다.
마드리드(Madrid), 28세 / 시리아 출신
2024년 2월 ©Mohamad Cheblak/MSF
남편인 모아타즈(Moataz)와 저는 아주 오래전에 만났어요. 연애 초창기에 남편은 이 시계를 선물해 줬죠. 훗날 우린 결혼식을 올렸고 그때부터 이 시계를 쭉 차고 있어요. 리비아로 갔을 때도 이 시계를 가져갔죠. 잃어버리거나 도난당할까 걱정되긴 했지만요. 이 시계는 남편의 사랑이 담긴 거라 제게 너무 소중했거든요. 리비아 구금센터에 있을 때 피부에 알레르기가 생겼지만 그래도 계속 차고 있었어요. 잠을 자거나 씻을 때도 항상 차고 있어요. 이 시계는 저와 남편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소중한 물건이니까요."
2024년 2월 5일, 마드리드는 남편, 아들, 남편의 모친과 함께 리비아 해안에서 항해에 적합하지 않은 목선을 타고 유럽에 닿기 위한 항해를 단행했다. 약 15시간 후, 국경없는의사회는 이 네 사람과 다른 130명의 사람들을 지중해 한가운데서 구조했다.
모하메드(Mohammad), 33세 / 시리아 출신
2024년 2월 ©Mohamad Cheblak/MSF
이 모자는 제게 의미가 커요. 전통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모자죠. 2년 전 시리아를 떠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어머니가 선물해 주시면서 잘 간직하라고 하셨죠. 제 모든 이주 여정에서 이 모자는 동반자와도 같았어요. 구금센터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제가 리비아에 구금되어 있었을 때 저는 이 모자로 눈을 가리고 잠을 자곤 했어요. 그러면 구금센터가 사람들로 붐비던 모습과 사람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을 보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이 모자를 잃어버리면 그 어떤 모자도 이 모자를 대체할 수 없을 거예요.”
2024년 2월 5일,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지중해 중부에서 정원이 초과된 목선에 타고 있던 134명을 구조했다. 모하메드도 그중 한 명이었다.
제야드(Zeyad), 24세 / 이집트 출신
2024년 5월 ©Stefan Pejovic/MSF
저한테 전갈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사자나 독수리처럼 독특하죠. 저한테 이 반지를 준 사람 역시 제겐 독특하고 특별한 사람입니다. 이 반지는 저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었어요. 제가 절망에 빠져 모든 문이 닫혀 있는 것 같았을 때 행운까진 아니더라도 희망과 용기를 주었죠. 이 반지는 절대 빼지 않을 거예요. 결혼을 하더라도 결혼반지를 다른 손가락에 끼고 이 반지는 계속 끼고 있을 겁니다.”
2024년 5월 1일, 국경없는의사회는 조난당한 리비아 해안발 목선에 타고 있던 제야드를 구조했다. 2년 전 이집트를 떠난 그에겐 이번이 지중해 중부를 건너려는 두 번째 시도였다.
아타(Ataa), 25세 / 시리아 출신
2024년 7월 ©Stefan Pejovic/MSF
저는 형제자매가 많긴 하지만, 그중 저랑 제일 친한 여동생의 사진을 가지고 다닙니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은 고작 20일밖에 되지 않아요. 여동생은 현재 12살이죠. 떨어져 지낸 지 벌써 수년이 흘렀네요. 여동생은 아직 시리아에 있습니다.”
2024년 7월 10일, 국경없는의사회는 아타와 86명의 다른 사람들을 구조했다. 그들은 수용 인원 초과 고무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려 시도하던 중 조난당했다.
아샨(Ahshan), 38세 / 방글라데시 출신
2024년 7월 ©Stefan Pejovic/MSF
저는 고향을 떠나기 직전 아내가 준 200타카(방글라데시 화폐 단위, 원화로 약 2천 원)짜리 지폐를 가지고 다닙니다. 이 지폐를 가지고 있으면 아내가 떠올라서 행복해져요.”
2024년 7월 19일, 국경없는의사회는 지중해를 건너려다 조난당한 아샨을 구조했다. 그는 130명의 사람들과 함께 정원이 초과된 목선을 타고 있었다.
첫댓글 인생이 고달프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소소하게 희망을 주던 작은 물건들이 큰 보물이자 행복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