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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 중국의 서남부,서부,남부지역을 가보면 이른바 소수 민족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이들은
主 민족인 漢族과 분명한 차별 대우를 받으면서 수십만에서 천만명 이상(장족 540만명,彛족 800만명)
의 구성원들로 이루워져 있다.좡족은 1600만명,묘족도 900만명이나 된다.나라를 형성할 인구의 규모
나 이들의 대부분은 산악과 협곡지대와 고원지대에 흩어져 산다.지리 지형적으로 나라를 만들기 어렵
다.자연,기후환경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살벌하다.교통과 통신은 말할수 없이 불편하고 교육도 원할
하지 않다.지금도 산악지대 鄕村에서 소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가려면 산골길 수백리 거리의 읍내
(현내)로 나가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다.이 지역들은 송전선과 전화선을 설치할수 없어 태양 집열판을
설치해 전기를 만들어 쓰게 하면서 중국의 오지는 태양광 설치가 보편화 되었다.이런 役事의 진행도
중국의 서남과 서북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 됐으며 최근 일이다.시작은 대체로 북경올림픽 전
후로 보면된다.
2, 현 중국의 오지 지역의 큰 문제는 인터넷도 안되고,섭생문제,위생문제가 불량하며 문맹 문제가 발
생하나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이러한 소수 민족들의 문맹자들과 저학력자들이 중국어와
한자가 상용되는 중국의 도시로 나와 살수있는 길은 없다.여기에 '戶口제도' 역시 향촌민의 도시 이동
을 억제한다.이에 중국정부는 중국인이란 동질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텐센트와 알리바바가 쏘아 올린
상업 위성을 통해 핸드폰을 쓰게 했다.이어 큐알코드를 만들어 위챗 페이와 알리 페리로 폰 결재를 하
게 만들었다.따라서 현재의 중국에서는 전자화폐의 상용화로 도둑이 실업자로 전락했다는 소문도 있
다.중국의 서남부지역을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고산준령과 협곡,고원지대란 지리,지형으로 전기를
보내는 송전선과 유선전화를 연결할 전봇대를 설치하기가 어렵다.즉 비용이 상업위성(중국의 위성발
사지역은 사천성 彛족 자치주 冕寧縣<면녕현>에 있다)을 쏘아 올리는 비용보다 더 든다고 한다.이 지
역의 산과 강,협곡들을 보면 한국의 산들은 평야지대에 해당하고,강은 발 씻는 또랑물에 불과하다.
3, 中國 국민 70% 이상이 전자화폐를 사용하게 되면서 종이 화폐를 덜쓰게 했고,소수민족들의 중화
민족 동화에 한몫을 한 것이다.도시로 이동해 노동을 하는 농민공들 중에는 소수민족 출신들이 많다.
소수민족이 사는 시골로 갈수록 중국인의 중화사상이 무디고 희박하여 공산정부와 사회주의를 선동
하는 문구들이 넘쳐나지만,중국 경제가 수축기에 접어들자 정부 차원의 관심도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현중국의 소수 민족들은 55개 이상을 차지하지만 실제는 많이 통폐합 된 숫자다.이들의 평균수명(藏족
경우)은 아프리카인들 보다는 길지만,대체로 50~60세 정도다.특히 채소가 부족하여 비타민 섭취가 부
족하고,고지대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버터나 육류중심 식생활로 혈관에 기름기가 누적되어 산소 결핍
과 함께 오는 고산증(해발 3000m ~4000m)으로 인한 질병도 많다.또한 같은 縣이나 州에는 서로 다른
소수민족들이 어울려 살지만,같은 민족(티벳족=장족의 예)이라도 지역에 따라 문자는 같으나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완전 소통이 안되는 경우가 흔하다.젊은이들은 오히려 완전한 소통을 위해 중국어를 사용
한다.
4, 이는 현재의 중국 서남부(사천,운남,귀주,청해,티벳)지역에서 실제로 있는 일이다.이러한 현 중국사
례를 보면,15세기 세종(이도)이 통일국가를 정착시키기 위해 '訓民正音(한자의 바른 발음 체계를 정리
한 것)' 을 왜? 만들었는지를 이해할수 있는 것이다.특히 소수 민족중 苗族들은 '사천성,운남성,귀주성,
호남성' 지역 등지에 넓게 흩어져 살고 있으나 언어적 소통은 힘들다.묘족은 베트남에도 사는데 몽족으
로 불린다.이들은 먼거리를 이동했고 대륙의 남부 산악지대 전체에 흩어져 살고 있다.나시족이나 이족
들도 상형문자에 가까운 문자를 쓰기는 하나 단순한 표현들이라 다양한 산업사회의 물건들과 사건들을
표현 하기엔 제한된다.이러한 소수민족들의 主산업들은 유목과 농업이며,농업의 경우도 산비탈의 개간
지 협소한 곳에서 한다.
개혁 개방 이후 관광사업이 어느 정도 정착되는가 했으나 최근 米中의 대립과 동시에 반간첩법이 시행
됨으로서 관광산업도 위축되고 있다.동시에 都農간의 소통은 더 어려워 졌다.반도에서도 교통과 통신이
불편했던 20세기초 쯤 지금의 함경도 지역사람들이 경남이나 전남지역 사람들과 언어로 소통이 되었을
것이란 생각은 접는 것이 좋다.일제가 점령한 후 강점기 시대에 반도를 조선의 8도로 나누고 다시 南北
으로 분열시킨 이유는,강자들의 식민지 정책중 하나로 '분할통치와 이이제이' 일환이다.일본만해도 북
해도와 오끼나와,난세이 제도,센카쿠 열도등은 고유일본의 역사,언어,문화와는 인연이 없다.
5, 그럼 민족이란 무엇인가?그 정의는 '너무 애매하고 가변적(정치적 영향)' 이다.이유는 인류를 정의하고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多민족국가 미국이라고 하면 대개 백인,흑인,황색인이 사는 나라라고
규정하는 등 인종의 특징을 내세우나 그건 어디까지나 미국식일 뿐이다.피부나 눈의 색갈로의 구분도 인
류가 지구의 각지역에서 자연환경에 적응한 결과이기에 이런 민족구분도 설득되기 힘들다.현실적으로 민
족을 구분하는 기준으로는 인종보다는 '언어' 다.언어는 문화의 한 요소로 이것을 집단이나 개인의 정체성
과 연결해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여기에 신체적 특징,종교,전통 문화와 관습,등은 비교적 객관성
이 있는 기준이지만,민족을 고려할때는 '우리(대체로 씨부족 현태)' 라는 주관적 기준도 중요하다.또 국민
국가(nation)와 한정된 풍토와 환경속에서 같은 집단에 속한다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밴 집단(ethnos=종족)
을 구분하기도 아주 애매모호하다.
6, 역사적으로 볼때 '민족이란 개념은 아시아에서는 식민지 정부의 민족 분열의 통치 정책(분할 통치)에
이용 되었고,더하여 도를 넘어 식민지 지배에 이용' 되었을 뿐이다.즉 강제된 민족이란 뜻이다.이때 민족
이란 말들이 무수히 생겨났으니 민족의 생성 역사는 아주짧다.서양도 민족문제를 정리하고 통일의 나라
를 만든 역사는 짧다.독일의 경우도 19세기 후반에 와서야 300여개가 넘는 분열 민족국가를 힘쎈자들이
연합해 무력으로 통일해 국민국가(통일독일)를 만든 것이다.이 모두는 유럽의 각지역 귀족들 장원(영주)
문장과 성씨에서 드러 난다.현재의 독일도 연방국가다.일본도 명치유신 이후에 280여개 정도의 대명(무
사 지주 집단)들의 부족국가였다.
일본의 통일도 판적봉환을 이룬 이후(1869년)서서히 발동을 건다.그 후도 오랫동안 자리를 잡지 못했던
열도 통일이 있었다.서양의 적극적 협력을 받은 유신 세력들에 의한 실질적 열도통일은 국가의 중심으로
황제인 천황이란 상징을 만들어 놓고,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일으켜 내부의 총화를 이끌어 냈다.이때 부
터 군국주의 일본의 상징을 만들어 갔다.이런 노력의 일본인들의 힘이 아닌 러시아 세력의 태평양으로의
진출을 막으려는 자본주의의 총아인 영국과 미국의 헌신적인 지원과 봉사가 있었다.반도 역시 조선총독
부가 세워지기 전에는 통일된 민족명은 없었으며 朝鮮族의 한반도가 아니였다.단지 조선(동방,동국)의
일부였을 뿐이다.
7, 영어의 단어중 'nation' 이 '민족과 국가' 모두 뜻하게 된것은 역사의 흔적이지 자연 발생적인 것은 아니
다.유럽에서 종교개혁으로 교회가 정신적 구심점으로의 권위를 상실하자 17세기부터 유럽은 나라 별로
각자의 이해 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각개 약진의 시대를 맞았다.이후의 유럽은 크고작은 전쟁이 끝없이 이
어졌다.이러한 유럽의 대분열기는 17세기초 독일에서 발생한 개신교와 카토릭 간의 30년 전쟁(1618~16
48)에서 부터 20세기 중반의 2차 대전까지 300년동안 지속되는데,대체로 이기간을 민족주의 시대로 간주
된다.그중에서도 민족주의가 가장 배타적이고 호전적 양태로 나타나는 시기는 19세기로 보면된다.그 이
전은 유럽에서 국민국가들이 하나둘 탄생하는 초기였다.이후에는 성숙한 국민국가들이 선발제국주의와
후발제국주의로 나뉘어 전쟁을 벌렸다.이현상(식민지 독점과 분할 전쟁)이 확장된 것이 바로 1차세계대
전이다.그후 벌어진 2차대전은 시장의 독점과 장악을 위해서다.결국은 돈이다고 돈에 의한 권력이다.
그 사이에 해당하는 19세기는 민족국가의 특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시기였다.19세기 유럽의 국가
들은 정치,외교적으로 강하게 대립했고 경제적으로 치열한 무역경쟁을 벌렸으며,군사적 정면대 결도 마
다 하지 않았다.즉 폭력적이고 힘쎈 놈이 이기는 강력한 폭력시대(깡패)였다.당시는 이미 지구촌 모두가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분열된 상태로 세계의 패권을 놓고 그들끼리 전쟁을 벌리고 있었다.17세기
초의 독일에서 종교와 맞물려 벌어진 민족주의 30년 전쟁(종교전쟁)에서 조차 죽은자는 헤아릴수 없었으
며,나라내의 도시(촌락포함)들 중 2/3가 초토화 되었다고 역사는 전한다.이 전쟁으로 전국에 전염병도 창
궐했다고 한다.
8, 20세기에 접어들어 유럽 열강들의 힘겨루기가 끝나자 민족주의는 식민지와 종속국의 이념으로 차용되
었다.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갓 해방된 신생국들은 일제히 민족주의 노선을 채택했으며,강대국들도 스스
로 표방한 민족주의에 노골적으로 반대하지 못했다.하지만 신생국들이 내세운 민족주의는 유럽의 역사에
등장하는 민족주의와 달랐다.유럽에 등장한 민족주의는 중세적 봉건질서에서 벗어나 근대적 국민국가 수
립을 지향 했으나,일찍부터 영토 국가와 1민족 1국가의 관념이 존재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였다.이들 신생국들은 식민지와 종속국 상태에 있을때 이미 외세에 반대하고 민족해방
을 이뤄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이처럼 역사적 배경과 목적이 달랐기 때문에 신생국의 민족주의는
독재정권이 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모택동,김일성,이승만,박정희)으로 자주 이용 되었다.독재자들은 '민
족=국가' 란 등식을 날조해 역사적으로 이미 폐기된 '군국주의적 민족주의' 를 종교의 교리처럼 만들었다.
이어 이를 근거로 사회적 비판세력을 민족주의(국가주의)란 명분을 내세워 탄압했다.
9, 특히 한국의 현대사에서 "우리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 났다" 리고 하는 국민교육헌
장이나 "조국과 민족의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 이란 국기에 대한 맹세에서의 민족주
의가 얼마나 왜곡되어 사용되고 있는지를 알수가 있다.특히나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 란 교육헌장 구절은 국가주의와 집체(集體:여럿이 모여 하나를 이루는 집단주의)주의의 백미다.한편으로
독재를 반대하는 세력들도 민족주의를 슬로건으로 채택하는 특이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박정희의 유신독
재가 끝나고 전두환의 군사 독재가 지배하던 1980년대에 진보세력의 일각에서는 한국이 정치적으로 식민지
가 아닐뿐, '경제와 군사적' 으로는 아직도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되지 못했다는 관점에서 민족주의 노선을
택했다.그런데 이들은 냉전시기 임에도 어떠한 민족명이 없이 막연한 민족주의를 수호했다.韓族도 조선족
도 아닌 막연한 관념상의 민족주의 만 영혼없이 뇌가렸다.
10, 박정희 시대가 조장한 것이 우파 민족주의 였다면,1980년대의 경우는 좌파 민족주의에 해당 한다고 볼
수있다.사실 좌파와 민족주의(우월성과 배타성)는 모순된 개념이다.한국에서 좌파와 우파가 동시에 민족주
의를 이데올로기로 표명한 이유가 있다.21세기 에는 역사의 종말과 함께 민족주의가 현격히 약화 됐지만,
20세기말 당시는 민족주의가 대중의 지지와 표를 얻는데 중요한 무기가 되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인터넷(첨
단 매체등)에 의한 SNS 세상이 열리자 '정보와 가치관' 이국경(국가)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쉽게 공유되고
보편화 된 오늘날에는 민족주의가 용도를 잃고 있다.따라서 지금도 과도한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세력에 있
다면 '정치적 의도' 를 생각해 봐야 한다.민족의 정의는 애매모호하고 민족주의 역사는 아주 짧다.20세기초
동양을 오갔다는 외국의 선교사들의 기록을 보면 민족이나 국가의식 보다는 씨부족으로 이어진 가문들의
왕래와 친목이 모두 였다고 말한다.한국에서 민족주의(씨부족 시대)를 외치던 독재시대의 大田에서는 족
보 장사가 아주 잘됐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단적인 예로, 독일 북부지역에 가면 작센, 니더작센, 작센 안할트 지역이 있고, 그 토착민들이 3~5세기에 브리튼 섬으로 건너가서 색슨족이 됐으니 영국사람들이랑 독일사람들은 같은 민족일까. 여진족이랑 몽고족은 같은 민족일까. 후금이 신라 왕족의 갈래라면 청나라 사람도 우리민족일까. 하나하나 짚어보면 끝도 없을듯 합니다.
정답이 없으니 더 어려운 문제지만 역사를 파헤치는 지향점이 있는 사람들끼리는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는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오래 전부터 생각해본 문제였는데 일목요연한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정치적 의도' 말고도 월드컵 축구도 있습니다!)
자본가들에 의해 움직이는 월드컵 축구도 영향이 있지요.독일,베네룩스3국,프랑스 서북부인 들의 혈통은 구분 할수없을 정도로 같아요.또 중국 서,남부 지역인 소수민족 市나 縣내의 鄕村들을 보면 그안에 또다른 여러소수 민족들이 촌락을 이루면서 살고 있어요.민족이라 것도 별거 아니고 역사도 짧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