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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의 사람이 되고자 하십니까?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왕상17:1~7)
Ⅰ.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야는 성경을 한번이라도 읽었거나 들었던 분들은 모두가 알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크게 드러낸 인물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에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으므로 그 땅에 기근이 있었고, 다시 간절히 기도할 때 비가 내려 가뭄을 해결했습니다.
또한 우상숭배자들과 영적인 전투를 하고자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으로 모아놓고서 대결할 때 각자의 신에게 기도하여 불을 내리는 신이 참 신으로 결판내자고 합니다. 엘리야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하늘에서 불이 내렸는데, 주변에 도랑을 만들어 물로 채웠음에도 그 물까지 다 핥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죽었던 아이까지도 살아나게 했던 대단한 선지자가 바로 엘리야였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부여 받았던 사람이 엘리야였는데, 훗날 그의 뒤를 잇는 선지자 엘리사는 그 스승 엘리야의 능력을 받고자 끝까지 쫓아다녔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엘리야가 죽지 않고 불 병거를 타고 승천할 때 엘리사는 엘리야를 향해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말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엘리야 한 사람이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와 같은 힘을 가진 자여~’ 이런 뜻입니다. 그 만큼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을 가졌던 인물이 바로 엘리야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엘리야가 특별한 사람이었기에 그런 역사가 일어났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닙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별반 차이 없음을 야고보서 5장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약5:17~18)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우리와 동일한 상태에서 사역을 했던 평범한 인물이었다는 의미입니다.
야고보 기자가 구약시대의 최고의 선지자 중 하나로 불리는 엘리야를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 것은 우리 또한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엘리야의 출신 성분
오늘 본문을 보면 엘리야를 소개할 때 ‘디셉 사람 엘리야’라고 합니다. 성경을 보면 대개 어떤 인물을 소개할 때 그 사람의 혈통이나 족보가 앞머리에 붙습니다. 자신의 족보를 따라 표기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자면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였던 요셉을 소개할 때에도 ‘다윗의 자손 요셉아~’(마1:20) 이렇게 표현합니다.
항상 누구를 소개할 때에 그 사람의 이름 앞에 가문의 이름이 나오고 지파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혈통과 가문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엘리야에 대해서는 그냥 “디셉 사람 엘리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내세울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디셉 출신의 엘리야”라고 표현해 놓은 것입니다. 즉 엘리야는 특별한 가문 출신도 아니고, 내세울만한 스펙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2. 시대적 상황
성경에서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 중에서 자주 있었던 재앙은 바로 땅에 기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하여 당시의 왕이었던 아합에게 ‘수년간 이 땅에 기근이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쉽게 오늘날로 이해하자면 IMF때와 같은 경제위기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작물이 잘 자라려면 햇빛과 비가 필요한 만큼 공급을 잘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비가 오지 않으므로 농작물이 다 말라죽으니 먹을 것이 없어 무척이나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1997년부터 2001년까지 4년 동안의 경제 위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했을 때가 경제위기를 맞이했던 시기였습니다. 열심히 전도를 해서 20여명의 성도가 교회에 나오게 되었지만, 직장에 다니던 사람은 두 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엘리야 때에도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하여 떡과 고기를 먹이시듯, 지금까지의 제 삶을 회상해보면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은혜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모는 당시 어려웠던 시절을 추억하며 이런 이야기를 종종 합니다. 교회 재정(財政)이 넉넉지 못하다보니 주일을 준비하려고 돈 만원으로 시장을 봐서 주일 식사를 준비했다는군요.
돈 만원으로 3천원어치 콩나물을 사고, 어묵을 3천원어치 사고, 이것저것 조금씩 사서 식사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제 기억에 제가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짜장과 카레였습니다. 우리 사모가 성도들 모두에게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음식이 딱 두 가지였는데, 짜장과 카레였습니다.
짜장을 만원어치 만들면 20명은 넉넉히 먹습니다. 그런데 매주 짜장만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질리던지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좀 다른 것 좀 하면 안 돼?’ 그러자 그와 비슷한 것을 만들었는데, 카레였습니다. 똑같은 재료에 춘장 대신 카레만 바꾸면 되니까 주야장천(晝夜長川) 카레만 만들었습니다. 그때 많이 먹어서인지 요즘도 카레와 짜장은 별로 먹고 싶지 않습니다.
3. 가장 악한 왕정시대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한 왕이 아합이었는데, 이스라엘 역대 왕 중 하나님 앞에 가장 완악하고, 타락했던 왕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역대 정권들을 살펴보면 그 정권들이 바뀔 때마다 그들만의 색깔 있는 모습을 느꼈습니다.
제가 학창시절 때에는 전두환 정권이었는데, 당시에는 광주민주화 운동 사건도 있었지만, 말을 함부로 하거나 잘못 찍히면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던 시대였기에 두려워 떨며 지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노무현 정권은 말끝마다 대통령 그만두고 싶다라고 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괜히 저 사람 뽑아놓았다고 걱정을 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결국 노무현 정권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금까지도 그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갖게 합니다.
이처럼 각 시대의 지도자가 바뀔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른데, 당시 아합의 시대는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족속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때였고, 당시 활동하던 선지자가 엘리야였습니다.
아합 왕이 통치하던 당시 정치, 경제, 종교적으로 얼마나 힘든 시기였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얼마나 많은 우상을 숭배했던지 3년 6개월의 기근이 있었습니다. 기근이 끝나갈 즈음에 하나님의 종 엘리야와 우상숭배자들이었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 모여 갈멜 산에서 영적 전투를 합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려주는 신이 참 신이다 라며 대결을 벌입니다. 아세라와 바알의 선지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기도를 하는지 자해까지 불사하며 제단을 쌓고 간절히 기도하지만, 불은 내리지 않습니다. 반면 엘리야가 기도해야 할 시간이 와서 기도할 때에 불이 내려 모든 것을 태웠습니다.
II.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자!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왕상18:30~31)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우리가 이 땅을 살면서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큰 역사나 은혜나 큰 영향력을 끼치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회복되어져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 산의 전투를 하기 전에 백성들을 모아서 먼저 행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무너진 제단을 다시 수축(修築)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영적으로 무뎌지고 무너진 부분들이 드러납니다. 심령 성전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가고 훼파된 성전만큼 나의 신앙도 깨진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역사를 다시 맛보려면 이 깨어진 신앙을 보수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1. 영적인 예배를 회복하자!
제단이 무너졌다는 의미는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예배가 무너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아닌 형식적인 예배, 종교적인 의식으로 드리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똑같이 예배를 드리지만, 어떤 사람은 아무런 감동이 없이 그냥 왔다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낍니다. 주중 목요 영성집회 때에도 가평에서 기도원을 운영하신 사모님이 오셔서 집회 참석 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과 함께 25년간 가평의 산속에 기도원을 차리고, 지금까지 잘 지내다 목사님께서 작년에 작고(作故)하신 후로 마음의 공허함과 갈급함을 채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집회로 인해 하나님의 임재를 다시 경험하고, 갈급했던 마음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장성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지낼 때에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심을 보게 됩니다.
가인은 자신의 제사가 받아드려지지 않자 안색이 변하고 분을 냅니다. 그런 가인에게 하나님께서는 ‘네가 분을 내며 죄를 지으려 하는 것이 무엇 때문이냐?’ 하시면서 죄를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그는 죄를 다스리지 못해 아벨을 살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실 적에 그냥 쫓아내시지 않으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가죽 옷을 입혔다는 것은 동물의 희생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예배를 아담과 하와를 통하여 드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녀인 두 아들에게도 가르쳤습니다. 아벨은 생명력 있는 예배를 드린 반면, 가인은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피는 생명인데 아벨은 피의 제사, 즉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린 반면 가인은 피의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똑같이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의 예배는 받으시고, 어떤 사람의 예배는 받지 않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지 안 받으시는지 알 수 있는 증거는 삶의 예배, 곧 삶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면 알게 됩니다.
삶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며 예수의 피가 나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신 것을 믿고, 또한 나의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닌 예수임을 인정하며 늘 그 분의 인도함을 따라 살려는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예배를 기쁘시게 받으시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식하여 늘 말씀과 기도로서 세상을 이기려고 몸부림치며 살아가려 합니다.
반면에 가인과 같은 사람들의 예배 특징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형식적이고 종교적인 예배만 신경 쓰며, 말씀과 동떨어진 삶을 추구합니다. 또한 세상과 혼합하여 죄악 가운데 세속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똑같은 예배를 드려도 이처럼 차이가 납니다.
기왕에 예배드리는 것 신령과 진정의 예배,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의 연륜이 오래 되었다고, 직분이 높다고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아픔과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고, 동행해 주시기 때문에 예배의 성공 자가 되어 집니다.
2.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라
또한 우리는 성령을 소멸케 해서는 안 되고, 성령을 근심하게 해서도 안 되며, 성령을 훼방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예배 때마다 사도신경을 외우는데, 외울 때마다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며~, 성령을 믿사오며~’ 이렇게 삼위 일체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이 오시면 그리스도의 영이 내 심령 안에 거하십니다. 그 영을 인정해 드리고, 좇아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 이집트에서 나와서 홍해를 건넌 후 40년간 광야에서 지낼 때 그들의 입은 옷과 신발이 낡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았음에도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셔서 굶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중동지역은 일교차가 심해서 낮에는 사람이 다니기 힘들 정도로 무덥고, 밤에는 굉장히 추운데,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더위를 막아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추위를 막아주셨습니다. 이것이 성령이 하시는 사역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곳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인도했기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택하시고 부르셨기에 예배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엘리야와 함께하시므로 필요를 따라 하늘에서 불을 내리신 것처럼,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도 능력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었으면서도 성령을 소멸하여 힘을 잃었던 인물이 나오는데 그 이름은 삼손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으로서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나실인에게는 3가지 금지조항이 있었는데, 먼저는 포도나무 소산을 먹거나 독주를 마셔서는 안 되었고, 두 번째는 머리에 삭도를 되어서는 안 되었으며, 세 번째 부정한 것을 만져서는 안 되었습니다.(민6:1~8)
성령께서는 삼손이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 때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셨습니다. 당나귀 턱뼈로 블레셋 군사 3천과 싸워 이길 때나, 다른 능력을 행하기 전에 성경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삿14:19)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삿15:14)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갑자기 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 여인인 들릴라에게 빠져서 하나님과 멀어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나실인의 3가지 금지 조건은 영적인 힘의 근원과 같은 것인데 그것을 저버립니다. 포도나무 소산과 독주를 먹지 말라는 것은 세상에 빠져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 즉 기도의 끈을 놓치면 안 된다는 뜻이며,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는 것은 세속적인 죄를 짓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아름다운 여인 들릴라에 빠져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망각하고, 영의 사람에서 육적인 사람으로 바뀌고 맙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면 스스로가 하나님의 영적 능력이 떠날 수 있음을 그도 알고 있었습니다.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삿16:17)
들릴라가 당신의 힘은 어디서 나오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마르지 아니한 새 활줄 일곱으로 나를 결박하면 힘이 없어진다 하고(삿16:7), 그 다음에는 쓰지 아니한 새 밧줄들로 나를 결박하면 힘이 없어진다 하고(삿16:11), 나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 짜면 힘이 없어진다(삿16:13) 합니다. 그러나 끈질긴 들릴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졌습니다. 그에게 영적 능력이 소멸되어졌습니다. 영적 능력이 소멸되었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으로의 전락함을 의미합니다. 결국 그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고 영접하므로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빠져 죄악 가운데 살면 성령이 근심하고 떠나갑니다.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왜 그리스도인들이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할까요?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살지 못하고, 세상 유혹에 빠져 영의 사람이 아닌 육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종교인으로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너 교회 다녔어?’ ‘너 집사였다며?’ 세상 사람들과 조금도 구별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성령을 소멸하고, 근심을 시키면 결국 성령은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맙니다. 소금은 소금이되 맛을 잃은 소금입니다. 나무에 붙어있지 않고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처럼 무늬만 나무이지 생명은 찾아볼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아무 능력도 없게 됩니다. 기도를 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이 동행한다는 증거나 체험이 없습니다. 능력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을 하지 못합니다.
사단은 우리가 힘없는 종교인으로 살게끔 유혹합니다. 약해졌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에 속해서 살아가도록 우리를 미혹하며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도록 합니다. 성경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과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심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하나님의 영을 인정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사모하시고, 나태한 신앙으로 살고 있다면 말씀을 통하여 ‘그래 맞아. 이대로 살면 나도 세상 사람들처럼 약해질 텐데~’ 하는 경각심을 갖고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III. 기도의 제단을 쌓자!
세 번째로 우리는 기도의 제단을 무너뜨려서는 절대 안 됩니다. 디모데전서 2장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딤전2:1)
디모데 서신은 목회 서신으로 불립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 있어 영적 아들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 역시도 바울처럼 목회를 해 나가야 하는 사명을 받았기에 바울은 자신의 간증을 토대로 디모데에게 여러 가지 권면을 합니다. 그 중에 제일 먼저 권면하는 것이 위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려면 이런 기도들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하는 것입니다. 바울 역시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이 기도를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기도를 더욱 구체적으로 세분화시켜 권면을 했습니다.
1. 기도의 종류
※ 간구╺ 간구는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기도에 대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간구입니다. 어떤 이들은 반드시 이 문제는 해결 받아야겠다며 철야기도, 금식기도, 작정기도 등을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러분들도 이 문제는 반드시 응답 받아야겠다 하시면 금식기도, 작정 기도, 철야기도를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기도╺ 우리가 늘상 금식 기도하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그래서 일상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일상적인 기도는 주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신 주기도문의 형식을 따라 기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기도가 됩니다.
교회 카페에 가시면 주기도문에 대해 강해를 동영상이나 글로 쓴 것이 있기 때문에 필요하신 분들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방언은 내 영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유익합니다.
※ 도고╺ 도고는 중보기도를 말합니다. 중재의 기도가 도고의 기도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는 남을 위해서도 기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다보니 ‘아~ 저 사람도 예수를 믿었으면 좋겠는데...’, ‘저 사람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텐데...’, ‘우리 집안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관여해 주셔야 할텐데...’ 하며 남을 위한 기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애통하는 자에게 주님은 위로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예수를 믿기 전에 어머니께서는 불치병으로 고생을 하셨지만, 예수를 믿고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죄인 줄 몰랐던 것들이 영안이 트이면서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한 모습들, 즉 집안의 우상문제, 가난의 저주, 세상에 취해 살아가는 남편 등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부르짖으며 기도하셨습니다.
제가 어릴 적 우리 집은 다락방이 있는 한옥에서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다락방으로 올라가셔서 기도를 하곤 하셨는데, 그냥 올라가시는 것이 아니라 목욕용 수건(bath towel)을 가지고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날마다 눈물을 흘리시며 기도하시는데, 작은 수건으로는 감당이 안 되다보니 항시 목욕용 수건을 들고 3년간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아버지께선 술을 끊으시고 목회자가 되셨고, 집안의 우상을 깨뜨리시고 제사장의 집안으로 인도하셨으며, 가난했던 환경이 하나님의 은혜로 영육(靈肉)간의 넘치는 축복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 감사기도╺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항시 감사의 기도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를 하면 할수록 기도의 문이 더욱 넓어지고 믿음의 폭도 넓어집니다. 감사는 하면 할수록 감사의 조건이 더욱 많아집니다.
주중에 두 사람의 대화 속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A: “하나님께서는 눈도 두 개, 귀도 두 개, 콧구멍도 두 개를 만드셨는데, 왜 입만큼은 한 개를 만드셨을까?”
B: “그것도 몰라? 나는 우리 집사람 보면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A: “왜?”
B: “끊임없이 말을 하는데, 밥 먹는 순간에도 한 입으로 밥을 먹고, 다른 입으로 계속 말한다면 내가 먹는 밥이 제대로 소화를 시킬 수 있겠어? 그래서 나는 우리 집사람을 볼 때 하나님께서 입을 한 개로 만들어주신 것이 진짜 감사하다.”
이 대화를 들을 때 웃기면서도 맞는 말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우리 사모가 더욱더 많은 시간을 기도할 수 있도록 밀어줍니다. '당신은 설거지 안 해도 돼. 내가 도와줄게!' 영적인 사람이 기도의 양을 채우지 못하면 그 입으로 쓸데없는 말로서 남을 힘들게 합니다.
통계를 봐도 남자는 하루에 일만 마디의 말을 하지만, 여자는 두 배 가까이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기도하면 감사의 조건이 드러납니다.
2. 회개하는 삶이 축복의 열쇠!
나의 신앙의 무너진 부분이 있으면 반드시 고백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세상에 취해 살아가면 시기와 질투, 원망과 불평 등을 쏟아내며 죄를 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원인이 되어 스트레스 받고, 울화병이 생기고, 불면증이나 우울증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또한 습관적으로 정욕적인 삶, 욕심에 이끌리는 삶을 살면서 죄를 이기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01:09)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자백하고 주님을 더욱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이길 수 있는 힘과 무너졌던 부분을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나의 죄를 주님 앞에 내려놓을 때 주님은 치료하시고, 응답하시며, 우리의 삶을 능력의 삶으로 인도해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배만 바라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동안 우리가 6권의 책을 쓸 수 있었던 배경 역시도 우리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셨고, 그 체험들이 쌓여서 된 것입니다. 사단은 오늘도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사회생활 하느라 힘들고 지쳐 있잖아. 힘든데 뭐 하러 헌신하려 해! 그냥 예배 시간에 영화 보듯 적당히 예배 참석하면 그만이지!'라며 육의 사람으로 만들려 합니다. 예배는 예배시간에 참석해서 말씀 듣고 헌금하는 의식이 아닙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나의 문제가 해결되어지는 것을 맛보며,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이 그들만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으로 만나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누구나 죄를 이기려고 주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일들이 있습니다. 교인 중에서도 술로 인해 오랜 시간 고통 받으시는 분이 있어서 예배 후에 기도를 해 드렸더니, 나중에 와서 이렇게 간증을 합니다.
“목사님 나는 술을 끊어보려고 부단히 노력을 해봤지만, 생각처럼 잘 안됐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기도해 주시면서 지금까지 술을 먹지 않고, 술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일입니다. 사단은 들릴라를 통하여 삼손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사람이 일반인이 되어버린 것처럼, 우리를 영의 사람이 아닌 육신의 사람이 되게끔 유혹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속으면 안 됩니다. 죄가 있다면 요한 일서 1장 9절 말씀을 붙잡고 자복하시기 바랍니다.
작은 죄라도 허용하지 마십시오. 사단이 속삭이는 작은 죄라도 허용하기 시작한다면 영에 속한 사람에서 육에 속한 사람으로 무너져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기 원하시는 분들은 자신이 지은 죄가 있다면 반드시 주님 앞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내가 지금 주님 앞에 나의 죄를 자복하오니 보혈의 능력으로 나의 죄를 깨끗케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어서 다시 주님의 임재 속에 거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주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고백하며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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