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고전을 규범으로 삼다: 노예 이미지

미켈란젤로의 <반항하는 노예>, 1513-16, 대리석, 높이 215cm. 율리우스 2세 무덤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 1513-16, 대리석, 높이 229cm. 율리우스 2세 무덤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의 뒷면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의 부분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의 부분
율리우스가 사망하고 후계자 레오 10세가 율리우스의 무덤에 관해 미켈란젤로와 다시 협상하는 가운데 <모세> 외에도 두 점의 <노예>를 더 제작하게 했습니다. <반항하는 노예>와 <죽어가는 노예>는 1513~16년에 제작된 것으로 현재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1542년까지만 해도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들을 현재 성 베드로 성당 내의 율리우스 무덤에 있는 <라헬>과 <레아>의 자리에 위치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들을 프랑스 리용에 망명 중인 피렌체인 로베르 스트로치에게 선물로 주었고, 스트로치는 그것을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에게 바쳤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두 노예를 동시에 제작했는데, 상반되는 한 쌍으로 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항하는 노예와 죽어가는 노예란 제목은 현대에 와서 붙여진 것이고, 조각 자체로만 보면 한 쌍으로 잘 어울립니다. <반항하는 노예>는 두터운 목, 그리고 상반신과 어깨에서 화산 같은 에너지를 느끼게 합니다. <죽어가는 노예>의 경우 꿈속을 헤매는 듯한 불안정한 자세는 대리석 받침대가 아니면 뒤로 나자빠질 것만 같습니다. 뒤틀린 근육에 의해 튀어나온 갈비뼈는 무의식 상태에서는 볼 수 없는 요소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서서 뒤로 약간 기우는 모습을 대리석 중앙 수직으로 중심을 잡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조각상에 반한 키프로스의 왕이자 조각가 피그말리온처럼 노예를 에로틱한 모습으로 묘사했습니다. 자기만족에 빠진 노예의 모습은 남성이면서 여성적인 양성애자처럼 보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작품에서 여성을 남성적인 모습으로 묘사하곤 했는데, 여기서는 반대로 남성을 여성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반항하는 노예>의 경우 그가 자신이 원하는 대리석이 없어 결함이 있는 돌에 조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얼굴을 가로질러 목과 등 뒤로 돌에 금이 있습니다. 그는 결함을 피해가는 방법으로 제작했지만, 오른팔을 묘사해야 할 부분에서는 돌이 충분하지 못함을 알 수 있습니다.
<죽어가는 노예>는 제목과는 달리 죽어가는 모습이 아니라 반쯤 잠이 든 모습입니다. <반항하는 노예>와 마찬가지로 이 노예의 팔에는 쇠고리가 있지만 풀린 상태입니다. 바사리는 미켈란젤로가 노예를 제작한 의미가 교황에 의해 모든 교회들이 로마의 사도적 교회에 복종함이라고 적은 반면, 콘디비는 좀 더 미켈란젤로의 마음을 헤아린 것처럼 보입니다. 콘디비는 원래 구도에 따르면 <죽어가는 노예>의 대리석 받침대는 원숭이로 자연을 모방하는 회화, <반항하는 노예>는 율리우스의 죽음으로 시작된 문화의 예속화를 의미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다윗>과 두 점의 노예 조각에서 그가 고대 그리스 조각품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대에 대한 관심이 15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시작된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훨씬 이전부터 그에 대한 관심은 점차 커지고 있었습니다. 14세기 중반 피렌체의 유명한 시인인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는 고대의 문헌을 새롭게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보통 사람들도 고대에 대한 동경과 고대 문물에 대한 존경으로 값비싼 골동품을 구입하고 싶어 했습니다. 고대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신분계급을 표시하는 메달을 가짜로 만들어 고대 유물이라고 파는 상인이 생길 정도였고, 작은 고대 조각품과 유적지에서 발견된 유물을 수집하려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작가미상의 <벨베데레의 토르소>, 기원전 50년경, 대리석, 높이 224cm.

<라오콘>, 그리스의 청동조각을 로마인이 대리석으로 모사한 것입니다. 기원전 150년경, 높이 242cm.
라오콘은 트로이의 오아자이자 제사장으로, 그리스군 목마의 비밀을 트로인에게 알려준 죄로 신으로부터 벌을 받고 두 아들과 함께 큰 뱀에 감겨 죽었다는 전설의 인물입니다. 그리스군의 목마를 라오콘이 제단에 공물로 바치려 하는 순간 아폴로가 보낸 두 마리의 큰 뱀이 라오콘과 두 아이를 습격했습니다. 아버지와 자4은아들은 이미 뱀에 물려 숨이 끊어질 지경이고, 큰아들은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뱀의 공격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라오콘의 머리>, 벽기둥에 드로잉
고대 조각품들이 발굴되고 알려지면서부터 고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히 커질 수밖에 없었고, 미켈란젤로 또한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현재 바티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벨베데레의 아폴로>가 이 시기에 발굴되었고 얼마 후 1506년 1월 <라오콘>이 에스퀼리누스의 티투스 우물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라오콘>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의 줄리아노와 로렌초의 무덤을 장식할 때 <라오콘>의 트로이 제사장의 얼굴을 상기하면서 벽에 그 얼굴을 드로잉했습니다. 그는 벽에 많은 드로잉을 남겼고, 이는 그가 작품을 제작할 때 고전의 요소를 규범으로 삼았음을 알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