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끝에 바람은 쓸쓸하지만 그대 등을 미는 바람은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다. 풀잎 가벼워진다. 바람도 가벼워진다. 지난날 힘으로 지탱했던 몸도 가을잎 끝에서 핏줄을 세워본다. 지난 여름날에 불편한 것들은 어디로 가고 소중한 가을의 무게만 남아있다. 가을의 무게 앞에 있는 사람들이 그립다.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사람이 보고 싶다. 이제 땅으로 향하는 가을은 따뜻한 대지가 그리운 것이다. 생명의 대지는 오늘 하루 장단을 맞춘 어깨춤이다. 오후 황톳길에서 만나 사람들은 가을의 짧은 여행을 하고 있다. 계절과 만남은 선한 만남이다. 마음의 방향 따라 그 만남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곡식이 익어가는 곳에서 악이 없다. 하나의 낱알은 가볍다. 그러나 서로 보태면 엄청난 무게다. 가을의 열매 중에 제일 작은 것은 좁쌀이다. 그러나 서로 안고 있으면 그 무게는 땅을 향하고 있다. 계절은 하늘로 향하는 것보다 땅을 향하는 것이 우리들 마음을 겸허하게 만든다. 생성과 소멸은 항상 깨어 있으라 한다. 해질녘 텃밭으로 향한다. 이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된다. 흙을 가까이하는 것은 살아있는 기운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가을의 무게는 땅을 향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의 안정이 된다. 봄이면 씨앗이 움이 트고 생명이 자라게 한다. 조는 오곡 중에 하나다. 작은 씨앗이 모여 밥 한 그릇을 채우고 남는다. 우리 인간이 만들 수 없다. 곰곰이 생각하면 우리 일상에서 놀라운 것들이 많다. 맑은 공기와 쌀밥 한 그릇 그리고 콩과 좁쌀로 지은 오곡밥이다. 가을의 무게가 아름다운 것은 인정이다. 풍성한 가을은 서로 나누라고 한다. 비록 물질을 나누지만 마음과 마음은 부드러운 비단처럼 빽빽하게 짠다. 가을의 무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소중할 때가 많다. 가을의 무게는 풍성하게 다가오지만 보이지 않는 데에 더 무게가 나간다. 가을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얼굴이 환하다. 마음을 비우기 때문일까. 마음의 무게는 눈이 맑아진다. 또한 아름다운 소리를 듣는 귀가 생긴다. 생성과 소멸은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겸허한 언어를 모아둔 조를 보면서 그 많은 언어가 있는데 말이 없다. 침묵도 표현의 방법 중에 하나다. 빈 공간에서 명상은 자기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다. 자기 속에서 정제된 언어는 사람이 사는 도의 길이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은 오히려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11월이 깊어질수록 네 내면의 향기를 맡고 싶다. 가을 무게를 침묵의 언어로 쌓아둔 그리움은 한없이 그리워진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이 그리워진다. 겸허한 가을의 무게는 자기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