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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하면 떠오르는 날이 있죠! 바로 현충일 그리고 6.25 전쟁 입니다.
1950년부터 3년이란 긴 세월 동안 스러져 간 수많은 군인과 민족의 아픔 때문인지
6월이 되면 마음이 더욱 더 아픈 것 같아요.
비록 분단되었지만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무수한 국군 장병과 애국선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6월 6일 현충일은 의미 깊은 날 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하츠우먼과 현충일의 유래와 의미, 한 번 알아볼까요?
6월 6일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연들과 장병들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추모하는 날로
2016년 올해 61회째를 맞는다고 합니다.
// 6월 6일, 현충일의 유래 //
현충일의 유래는 1950년에 발생한 6.25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수많은 장병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목숨을 잃었는데요,
이를 추모하기 위해서 1951년, 합동 추모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미지출처 : 국가기록원 - 노래로 배우는 한국현대사>
1956년 4월 19일, 대통령령 제1145호 (국방부령 27호)를 근거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6월 6일 현충일로 제정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현충기념일 이라는 이름으로 지정되었다가, 1975년 12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면서 공식적으로 현충일 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이후, 매년 6월 6일에는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과 장병들의
호국정신을 추모하는 추념행사도 열어오고 있습니다^^
[출처] 현충일의 의미와 유래를 알아보자!|작성자 하츠우먼
죽마고우처럼 자주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년 전에 온 라인을 통해 만났던 전우들이 오늘 처음 나온 전우들과 함께 전방 나들이에 나섰다. 두 대의 승용차로 나눠 출발했다.축석고개를 넘어 부인터를 뒤로하고 내촌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몇마디 나누다 보니 서파사거리다. 제대 후 처음 오는 전우들도 있으리라. 그러나 서울 근교에 모두 사는 전우들이라 한 두번은 이곳을 지났쳤을 것 같았다.
준비한 간식을 입에 물고 우리 만나면 군대얘기 아니겠는가! 액설리터에에 힘을 줬다. 탄탄대로다. 마치 통일을 향해 저 북으로 달려가는, 접수하러 가는 역전의 용사들 처럼 말이다 우측엔 8전차, 좌측엔 ASP을 순식간에 지났다. 우측2시방향엔 운악산 정상이다. 70년대 초 ASP공사때 현등산 등성이에 그 큰돌을 깨고 실어다가 축대를 쌓았다. 물론 필자도 ASP공사때 출동했다 왼쪽에 국군일동병원도 멀찌감치 보인다.
이어지는 차령산백 저 멀리 뒤로한 주금산에서 부터 시작해 볼까! 주금산.운악산.낮은 수원산도 끼워 주자. 운악산.길매봉.청계봉.저 멀리 뒤엔 명지산이겠지.삐쭉솟은 것이 귀목봉인가! 도성고개 아래 원평사격장도 펑퍼짐하게 보인다. 국망봉.신로령.견치봉.도마치봉.백운산과 광덕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왼편엔 관음산.사향산 아래 5군단 사령부. 통신소도 보였다. 다시 정면을 향하니 이동시내와 갈비촌도 눈에 들어왔다.
지금도 저 아래에서는 이동갈비와 막걸리가 판을 치겠지. 벌써 고속화 도로끝이다. 이동막걸리공장 앞에서 막걸리 두 통을 샀다.이곳부터는 백운계곡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휴가가 끝났는데도 텐트족이 몇가족은 되는가 보다. 오뚜기 유격장이 앞에 보였다. 저 골짜기에서도 오뚜기들도 맹호처럼 오리걸음,쪼구려 뛰기,반복구호 등 힘껏 외치고 있겠지! 자동변속기가 수시로 올랐다 내렸다 한다. 좌.우는 그야말로 구절양장이다.
저 아래 좀 봐! 저 아래가 마치 설악산 한계령에서 내려다 보는 장쾌한 능선이다. 저 모습을 파노라마라고 한다. 주 능선은 남으로 남으로 북한산 도봉산을 마치 만나기라도 하듯 달리고 있다. 광덕고개 정상이다. 10분간 휴식. 6.25당시 이 꼬불꼬불한 고개를 그 먼지 뒤집어 쓰고 오르내렸던 우리들에 선배 전우들과 어른들이다.일명 캬라멜 고개라고도 불린다. 아마 미군들이 캬라맬을 씹으며 올랐던 고개라고 들었다.
또 출발이다. 일단 매월대로 향했다.이 광덕고개를 넘으면 강원도 땅이다.화천군 사내면 광덕리다. 고개정상에서 부터가 광덕계곡이다.왼쪽 11시방향은 상해봉과 광덕산이다.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약900미터)한 겨울엔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등산객들이 조난을 당해 가끔 조난도 당하는 산이다. 자연은 아름답고 우리에겐 산소를 공급해 주지만 인간의 자만과 교만으로 인해 벌을 주기도 한다.
10분정도 내려가니 철원가는 삼거리다.나도 처음가 보는 곳이지만 매월대로 향했다. 김시습이 세조의 왕위친탈에 항거하여 전국을 유랑하던 중 잠시 머물던곳이라고 입간판이 알리고 있다 복계산에 원류이며 크고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매월폭포도 있단다. 그곳에서 잠시 자연의 위대함을 보며 간식과 막걸리로 낭만의 시간을 좀 가져보기로 했다. 시간을 우리가 멈출수는 없다.
자 또 출발하자구.자등리 사거리를 신호받고 좌회전 했다. 백골부대 최전방 검문소다. 검문소 헌병이 거수로 경례하기에 답하고 철원경계선을 지나니 오른쪽 11시방향에 무학봉인가! 각흘봉 두 정상이 버티고 있다. 3공화국 군사정부 초기 장준하 선생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하여 많은 논쟁이 있었던 각흘봉이다. 도평리다. 폭포갈비를 지나면 여우고개가 시작된다. 이 고개도 수많은 보병들이 행군하며 훈련했던 길이다.
지금은 다 포장이 되어 먼지 하나 날리니 않지만 내가 어렸을 적엔 이곳 승진훈련장 근처(약사)에 사는 아이들이 이동까지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이 녀석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승진훈련장 입구다. 일전에 몇몇전우들과 함께 입구에서 사진도 몇장 담았다. 고갯마루에서 국망봉을 배경삼아 기념사진 몇장 찍자고 했다. 이곳 여우고개 정상에서 바라보는 가을에 국망봉 능선은 온통 그야말로 불타는 국망봉이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배꼽시계가 울리기 시작했다.정오다. 아직도 점심먹으려면 더 가야되는데......일단 예약한 식당에 전화를 했다. 아마 1시 10분경 도착 할 것 같다고..또 출발.삼부연폭포로 향했다.5분정도 내려오니 산정호수 입구다. 한화콘도를 지나 신철원입구다. 먼저 왔던 전우도 있지만 와 보지 못한 전우가 있어서 또 들리기로 했다. 그제나 저제나 떨어지는 폭포수 소리는 우리의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터널속에 들어가니 짧은 터널안도 시원했다. 용화 낙시터를 한 바퀴 돌고 승일교로 향했다.
강포리,승일교 하면 포병이나 공병출신 전우들은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군대생활때 작전하고 훈련하던 곳이기에 말이다. 옛 승일교는 관광용이고 신 승일교로 차량이 통행한다. 조금지나니 문혜리 포병훈련장 입구 간판이 보였다. 그냥 지나치자구! 선배님 배고파요 빨리 가서 점심먹자구 조른다. 이 친구들아 한 시간도 못참냐! 맹호 맞아..홓ㅎㅎㅎㅎㅎㅎㅎ
드디어 식당도착. 바로 길 건너가 고석정 국민관광지다. 미리 예약해 놓은 두부전골과 함께 맛있게 식사를 했다. 공기밥도 더 주문했다. 원래 이 식당은 오래 전 솥뚜껑에다 모 두부를 놓고 소금뿌려 손수 뒤집어 가며 먹는 순두부 메뉴인데 일정관계로 전골로 먹기로 했다.초창기 이곳에 들렸을때에는 허름하게 오십 대 부부가 했었는데, 건강이 안좋았는지 일정금액을 받고 넘겼는지 알순 없지만 지금 주인이 영업목적으로 수리도 하고 깔끔하게 정리해서 영업중이다. 그런데 당시에 정취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그냥 영업하는 식당으러 변했다.
커피 한 잔으로 잠시 얘기를 나누며 바로 출발했다. 번지점프하는 다리를 지나 직탕폭포로 향했다 .사방이 검은 현무암으로 돼 있는 이곳 직탕폭포는 한탄강 상류다. 저 아래 순담계곡에서는 레프팅을 즐기고 있었다 .동송시내를 좌로 지나자 마자 도피안寺다. 그냥 지나치자. 월하리를 뒤로하니 바로 많이 보아온 6.25전에 북한이 사용하던 노동당사다.
지붕도 없어 많이 낡았고 당시에 총탄자국에 떨어져 나간 시멘트자욱과 구멍이 당시 치열했던 총격을 연상했다. 주차장과 판매점도 새로 들어서서 말끔하게 보였다. 최전방부대(6사단.청성부대)철책 검문소를 뒤로한 채 좌회전을 하니 드 넓은 철원평야가 펼쳐졌다. 좌우엔 경계철조망,지뢰지대다. 이제 열쇠부대(5사단)관할이다.
운전중에도 북으로11시 방향에 백마고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모두 내려 전적비를 향해 올라갔다. 검은 대리석에 새겨진 수많은 백마용사들에 영혼들과 당시에 그 치열했던 전투상황에 사진을 보며 그대들,선배 전우들에 희생됐기에 이제 우리들은 자유와 평화속에서 삶을 누리고 있다.
예이 정일아. 너는 이 호령하는 북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두렵지도 않느냐! 굶어 죽어 가는 주민들에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지야 않겠지 알면서 모르는 척 제 배만 살찌우고...... 아이구 답답하고 짖눌리는가슴을 어떻게 진정시키나..... 백마고지는 현재 우리측 비무장지대 안에 있으며 우리가 서 있는곳이 한 1Km 후방구역이다. 평화의 鐘(종)이 있는 팔각정에서는 백마고지가 잘 보였다.
전우들아! 또 출발하자. 이제는 열쇠전망대다. 40분정도 가면 도착할 것 같다. 4시 전까지 출입관리하는 최 전방초소에 도착해야 한다. 이제는 서울로 올라가는 방향이다. 가는 중에 경원선 최북단 끊어진 대광리역에서 사진 한 컷 해야겠다. 어렵지 않게 시간 맞춰 도착했다. 나와 일행의 신분증을 제시하고 전망대로 향했다 .10분 정도 올라가야 되나 보다. 나는 이곳이 두번째다.
5사단(열쇠부대)는 내가 성장했던 이동에 주둔 했었다. 쌍안경으로 잠시 비무장지대를 보았다.저기 나는 저 새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자유함이다. 일전에 왔을때엔 바로 코앞에 노루도 보였었는데.......휴전선 155마일의 긴 철책은 언제나 거두어 질런지! 지금 생각으로는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또 출발하자구. 이제 마지막으로 갈 곳은 경순왕릉이다.신라에 마지막 왕 경순왕. 처음 이곳에 왔을때 신라 왕릉이 왜 이곳에 있을까? 경수순왕릉은 사적제244호다 .56대인 경순왕은 후삼국시대에 나라가 분열되어 국가기능이 마비되는 상태에서 민심도 신흥국가인 고려로 기울어지자 왕능 무고한 백성들이 더 이상 괘롭힘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태자와 신하들에 반대에도 불구하고 왕건에게 평화적으로 나라를 평화적으로 넘겨주고 물러났다고 네이버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또한 신라 유민들이 경주에 장례를 모시고자 하였으나 왕릉의 거리는 조정에서 100리 밖으로 나갈수 없다하여 이곳 장단 성거산에 모셨다고 했다. 왕릉이 이곳이 있는 줄도 몰랐다가 지난 70년대 초 이곳 전방에 주둔하는 비룡부대 어느 소대장에 의해 순찰중에 발견되었으며 그 후로 부터 지금까지 잘 관리되고 있었다. 왕릉은 규모가 작았으며 입장료도 없고 한적하게 관람할 수가 있었다. 서쪽에 해는 그래도 하늘에 떠 있었다. 서울 가는 길에 설마리 영국군참전비를 잠간 보고 저녁은 삼겹살로 해야겠다.
위에 글은 6년 전 필자가 전우회 임원을 하면서 전우들과 함께 하루동안 전방지역 안보관광을 인솔하면서 느꼈던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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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호국보훈의 달" 현충일 비롯해 3일 잘 보내셨는지요?
많은 분들이 관심을 주셔서 군대/청춘 방이 심심하지 않아 감사합니다,
저는 어디 먼곳은 다녀오지 았았고,
현충일인 어제 인천에 유일한 계양산에 좋은글 임원 여러분과 잠시 다녀 왔습니다.
장상에 올라 잠시 있으니 10시. 선열들에 대한 숭고한 정신을 알리는 싸이렌이 울리더군요
정상에서 잘 보이는 인천 앞바다를 향해 잠시 영령들을 향해 감사의 묵념을 했습니다.
어쩌면 다른 어느 해보다도 감정이 다른던데요.
교회 주관으로 세계태권도대회(국일관)가 있었구요.
본연의 일자리로 돌아와 일상을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맹호
어제가현충일이엿네요 요즈음젊은이들은 현충일에대해서너무모르는것같더군요 그냥빨간날짜이니노는날로만생각하는것같네요
뉴스을보니그런장면들이나오더군요 학교에서도 형충일에대한교육을잘시켜야할것같네요
그렇습니다. 그것도 연휴로요
오늘자 모 일간지를 보니
그 많은 아파트 베란다에
단 한 가구의 태극기만 달려 있었습니다. 맹호!
전우들과의 여행은 얼마나 할말들이 많을까요 ??
선 후배를 떠나 끈끈한 정으로 ,,
사제복으로 갈아입어도 상 하 계급은 어쩔수 없더이다
역쉬 계급은 계급이라..ㅎㅎ
현충일의 유래도 잘 읽고갑니다 .^^
힐링톡님 하세요
피우는 그 시기에
겁고 밤 새는 줄 모르지요.
댓글이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렇습니다. 동시대에 같이 근무했던 아닐지라도
부대마크 하나를 통해 동질감을 같습니다.
특히 여성들이 한창
남자들은 언하던 원치 않던 국가에 부름을 받아 현역복무를 하지요.
함께 뒹굴며는 전우애 속에 힘든 복무를 하면서
피끓었던 젏음을 회상합니다.
이야기에 소재가 하나이기에 선.후임 관계없이
마냥
늘 관심 주심에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