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이야기(1)/靑石 전성훈
연말을 맞으면서 떠나는 해외여행, 일 때문에 온 가족이 함께하지 못해 섭섭한 마음이 든다. 지난여름부터 계획한 여행이다. 예전에는 한 번도 연말연시에 해외여행을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겨울방학에 맞추어 아내가 손녀에게 주는 큼직한 선물을 마련한 것이다. 성탄절 전날 방콕으로 가는 길, 아들이 태워주는 자동차에서 짐을 꺼내어 인천공항 1터미널로 들어서니 상당히 사람이 많다. 여권 이야기에 어깨에 둘러메는 가방을 찾아보니 보이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자동차에서 내릴 때 겨울 외투를 벗어서 뒷자리에 겹쳐놓는 바람에 그 밑에 있던 검정 가방을 잊어버린 것 같다. 급히 아들에게 연락하니, 5분 정도 지나서 아들이 다시 터미널로 되돌아와서 다행이다. 시작부터 한바탕 소동을 벌였기에 여행 끝날 때까지 늘 신경을 쓰라는 암시인가 보다. 짐을 부치고 노약자 전용 입구를 통하여 간단히 출국 심사를 마치고 출국 대기실로 들어가 이곳저곳 어슬렁거리며 비행기 출발을 기다린다.
예정시간보다 조금 늦게 출발한 아시아나 비행기는 태국 현지시각으로 밤 11시 반경에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다. 5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비행시간이 무척 지루하게 느껴져서 견디기 어려웠다. 평소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놓치는 바람에 영화를 보거나 잠을 청해봐도 어찌하지 못하였다. 함께 간 손녀는 실컷 수다를 떨더니 곤하게 곯아떨어져서 다행이었다. 노약자와 어린이를 동반한 일행은 별도의 줄로 안내하여 입국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공무원 모습에 고마움을 느꼈다. 수화물로 부친 짐을 찾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 일행이 인천공항에서 출국 절차를 일찍 마친 관계로 비행기 수화물 칸에서 나오는 순서가 거꾸로였던 것 같았다. 공항 로비에서 종이에 이름을 써서 손에 들고 있는 차량 안내인을 만났다. 혼잡하기 그지없는 입국장 도로에는 많은 관광버스와 승용차 그리고 밴이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참 기다리니 우리가 탈 자동차가 도착하였다. 자동차 트렁크에 짐을 싣고서 약 40분 정도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려 방콕 시내 어느 골목에 있는 The Cotton Hotel에 도착하였다. 배정받은 방은 더블 배드 2개에 화장실과 욕실은 하나였다. 샤워하려고 뜨거운 물을 틀어보니 미지근하여 몇 분을 기다려도 마찬가지였다. 한밤에 서늘한 기운을 느끼며 머리를 감을 수 없어서 샤워는 포기하고 세수하고 발을 씻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역시 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고 미지근하였다. 나중에 카운터에 문의하니 이곳 호텔에서는 뜨거운 물은 미지근하게 유지한다면서 대단히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첫째 날(12/25), 2시간 시차에도 불구하고 생체시계의 영향으로 새벽 5시경(한국 오전 7시)에 눈이 떠졌다. 같은 방에서 식구가 모두 잠을 자고 있어 불을 켤 수 없어 잠을 청해보는데, 핸드폰에서 카톡카톡 하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엎치락덮치락 하면서 두 시간이나 비몽사몽 간에 헤맸다. 비행기 안에서 다리를 쭉 펴지 못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평소 디스크 증세로 좋지 않은 왼쪽 다리가 많이 저리고 오른쪽 다리도 불편하였다. 양쪽 발가락도 저리는 증세가 있지만 견딜만하여 그러려니 하면서 방콕에서의 첫날 시내 구경을 준비하였다.
방콕 첫 나들이 목적지는 태국 왕실 사원이다. 지하철을 탈 때 오백원짜리 동전 크기의 원형 플라스틱 칩으로 체크인하고 지하철에서 내려 출구로 나올 때는 동그란 구멍에 집어넣는다. 지하철 역사에서 들리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어딘지 모르게 생경하게 들린다. 남방불교, 소승불교의 나라에서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듣는 캐럴은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것이다. 지하철 벽면에 붙어 있는 우선석(노약자석) 표시에는 우리나라와 같은데 그 외에도 스님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표시가 돋보인다. 대다수 국민이 불교 신자인 나라이기에 스님을 공경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왕실 사원에는 외국 유명한 인사들이 방문하여 찍은 사진이 보인다. 가장 극적인 모습은 엄청난 크기의 와불(臥佛)이다. 신발과 모자를 벗고 들어가 옆으로 누워계신 부처님 모습을 보면서 사진을 찍는 게 거쳐야 하는 인증코스이다.
아침 겸 이른 점심으로 오전 11시에 문을 여는 태국 음식 전문점(North East)을 찾아갔더니 길거리에 사람들이 기다랗게 줄을 서 있다. 줄을 선 사람들 대부분 관광차 온 우리나라 젊은이다. 그야말로 ‘오픈런’이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오픈런’을 해외에서 하다니 묘한 생각이 든다. 자동차와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매연으로 탁한 공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순서를 기다린다. 이 또한 여행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에 고가도로를 달리는 지상철(지하철의 반대)을 타려고 승차권을 샀더니 일회용 플라스틱 카드이다. 지하철과 지상철은 서로 연계가 되지 않기에 별도로 표를 사야 한다. 지상철을 더는 타지 않아서 다른 승차권이 있는지는 모른다. 저녁에 나 자신에게 해주는 최상의 선물로, 거의 8년 만에 전신 오일마사지를 받는다. 온몸이 굳어있음을 느낀 즐거운 체험이다. 평소 매일 아침에 유연성 체조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어깨와 목, 허리를 안마해주는 여성의 손길에 따라 속으로 으아 하고 신음이 나온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동남아시아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마사지이다. 점심을 과식한 탓에, 저녁을 먹지 않고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과 마른안주를 사다가 숙소에서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둘째 날(12/26), 수상가옥을 방문하는 날, 모터가 달린 소형 거룻배를 타고 좁은 수로를 지나면서 수상가옥 시장을 구경한다. 다양한 열대과일과 각종 먹거리를 보면서 바나나 튀김, 코코넛 아이스크림 등 몇 가지 주전부리를 한다. 유료화장실을 찾으니, 출입구가 마치 감옥 문을 통과하듯이 비좁은 철문으로 한 사람이 간신히 들락거릴 수 있다. 그저 나오니 웃음뿐이다. 수상가옥 시장에서 들리는 말소리는 현지인, 중국인, 한국인 그리고 서양인 목소리이다. 가는 곳마다 우리나라 사람이 많다. 해외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인지 아니면 일부 계층만의 놀이인지 모르겠다. 수상가옥 시장을 벗어나 협궤열차 시장을 찾아간다. 협궤열차를 타는 곳에도 시장이 열린다.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구경하는데 이곳에도 사람들이 붐빈다. 낮 기온이 29도여서 그다지 덥지 않아 다행이다. 언제인가 TV에서 보았던 장소가 바로 여기이다. 열차가 지나갈 때는 시장이 철시되고 열차가 지나가면 다시 열린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 다양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길이 막히는 방콕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요리조리 차선변경 하는 운전기사는 정말 대단한 솜씨이다. 오후 1시경 맥도날드 가게 앞에서 하차하여 백화점 실내음식점에서 식사한다. 후춧가루를 뿌린 고기덮밥인데 상당히 맛있다. 이틀간 묵었던 호텔을 나와 밴을 타고 방콕 시내를 흐르는 짜오프라야 강변에 있는 오성급 샹그릴라 호텔로 이동한다. 방 청소가 끝나지 않아서 호텔 로비 의자에 앉아서 글을 쓴다. 손녀는 그 틈을 참지 못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향한다. 바로 옆에 붙은 방 2개로 가운데 문을 터놓고 왕래하면서 이틀간 묵는다. 흙탕물이 넘실거리는 강에는 유람선을 비롯하여 수상 버스와 많은 배가 지나간다. 창밖의 멋진 경치를 보더니 손녀는 손뼉을 치면서 좋아한다. 저녁에 전신 마시지를 받으며, 이 순간만큼은 뭉쳐진 근육이 풀어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빈다. 야시장을 찾아가서 저녁을 먹으며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선택한다. 꼬치구이 돼지고기와 소시지를 간식으로 먹고, 감자탕처럼 돼지고기를 푹 삶아 낸 특유의 향신내가 듬뿍 나는 국물을 떠먹으면서 맥주 한 잔 곁들이다. (2024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