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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버리미기재~장성봉~은티재~주치봉~호리골재~구왕봉~지름티재~(은티마을)(260816. 일)(낙동산악회 20기-19구간)
□ 때 : 2026. 08. 16(일)
□ 곳 : 버리미기재~장성봉~은티재~주치봉~호리골재~구왕봉~지름티재~(은티마을)
□ 낙동산악회
□ 참여 : 모두 25명
□ 날씨 : 흐린 뒤 하루 내내 비 내림
□ 길 : 흙길+쇠 계단길+바윗길
□ 걷는 데 걸린 시간 : 2026. 08. 16(일) 02:02~11:01(9시간, 쉰 시간 포함)
□ 간추린 발자취(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02:02 버리미기재(480m-‘푯말’) 아스팔트 길에서 산으로 들어섬.
○ 03:11~03:17 장성봉(長城峰, 915.3m-‘푯돌’), 머묾.
○ 03;26~03:30 비옷 입음.
○ 03:45 막장봉 갈림길
○ 04:31~04:41 아침밥
○ 06:16 악휘봉 갈림길,
○ 07:38 은티고개[은티재, 은티재, 오봉정 고개]
○ 07:59~08:09 주치봉(周峙峯, 683m-‘푯말’), 머묾.
○ 08:17 호리골재
○ 09:21~09:26 구왕봉(879m-‘푯돌’), 머묾.
○ 09:29 밧줄 구간 시작되는 곳.
○ 10:09 지름티재
○ 10:44 「백두대간 희양산」 푯돌
○ 11:01 은티마을, 산행 마침
장성봉
삼각점 푯말
장성봉
지름티재
□ 줄거리(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2026. 8. 15(토) 23:40쯤 인제대 역을 떠난 버스는 3시간 11분쯤 달려 날이 바뀐, 8. 16(일) 01:51쯤 버리미기재(480m-‘푯말’)에 닿았다.
「버리미기재」는 “경북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칠성면 경계에 있는 고개”로 “조선시대에 문경 새재가 양반의 길이었다면 버리미기재 고개는 배고프고 지친 민초들의 고개였다”고 한다.
버리미기재란 이름은 “옛날에 기근(饑饉/飢饉)이 심할 때 ‘조그만 밭뙈기를 빌어 먹이던 곳’ 또는 ‘보리로 밥을 지어 먹이다.’라는 말에서 유래” 했다고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조선시대에 백성들이 먹고 살기 어려운 곳이 버리미기재 뿐이었을까 마는 이 일대도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곳이 아니었나 싶다.
「버리미기재」는 “국립공원공단 속리산 국립공원 사무소에서 자연 생태계 훼손과 탐방객 안전을 위해서 출입을 통제”하는 곳이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백두대간을 걷는 사람들이 규정을 위반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언제나 그렇듯 마음이 편하지 않게 걷는다.
02:02쯤 아스팔트 길에서 철조망 끝에서 산으로 올라 「장성봉 제1지점」에서부터 2지점, 3지점을 거쳐 「장성봉 제4지점」을 지난다.
중간에 밧줄이 걸린 바위 지대를 지나기도 한다. 하나 같이 밧줄이 가늘어 조금 아쉬웠다.
장성봉에 닿기 전 ‘산사랑제이’ 님이 내게 “다 와 갑니까?”하고 묻는 것을 “아직...”하고 대답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장성봉이 다 되어 갑니까?...”하는 물음이었는데, 동문서답을 한 꼴이었다.
「버리미기재」에서 1시간 9분쯤 지나 장성봉(長城, 915.3m-‘푯돌’)에 닿았다.
옛날 삼국시대에 신라, 백제, 고구려가 전투를 벌이면서, 또는 고려, 조선시대 왜구 침입을 막기 위해 대야산과 희양산 사이에 있는 이곳 장성봉 일대에 길다란 성을 쌓아, 장성봉이란 이름을 얻었을까?
6분쯤 머문 뒤 장성봉을 나섰다.(03:17)
장성봉을 나서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홍아’ 님이 “비옷 입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었다.
“그럽시다...”
곧 비옷을 꺼내 입었다.
장성봉을 나서 28분쯤 뒤(비옷 입은 시간까지 포함) 막장봉 갈림길에 닿았다.(03:45)
갈림길은 왼쪽 막장봉 가는 길은 열려 있고, 앞쪽 대간 길에는 나무 울타리를 막아 출입을 막고 있다.
비도 내리고, 늦어 막장봉에는 가지 않았다.
19기 때 갔다 온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나무 울타리를 왼쪽으로 넘어 막장봉 갈림길을 나서 46분쯤 걷다가 ‘무쏘꿈’ 님 제안에 따라 도도록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아침밥을 먹었다.
아침밥을 먹고 길을 나서(04:41) 1시간 35분쯤 뒤 악휘봉 갈림길에 닿았다.(06:16)
비 내리고, 늦었다는 핑계로 악휘봉에 가지 않았다.
백두대간을 걸으면서 언제나 악휘봉에 들렀는데, 이번에는 가지 않아 찜찜한 기분이었다.
이 갈림길에는 앞쪽에 작은 바위가 있고, 이 바위를 넘어 악휘봉으로 갈 수 있고, 대간 길은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악휘봉 갈림길에서 은티고개로 가는 길은 한없이 내리막이 이어진다. 물론 중간에 조금 오르내림이 있지만...
은티고개로 내려서는 길을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등성(이)을 버리고 왼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혹시 내가 대간 길을 벗어나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번에 비로소 든 생각이 아니라 언제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악휘봉 갈림길을 나서(06:16) 1시간 22분쯤 뒤 은티고개에 닿았다.(07:38)
은티고개는 해발 530m라고 된 어느 기록이 있다.
은티고개는 ‘은티재’, ‘은치재’, ‘오봉정 고개’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은티고개는 악휘봉에서 2.1km, 구왕봉까지 2.4km, 왼쪽으로 내려서면 은티 마을까지 2.4km 거리다.
한 번도 은티고개에서 은티마을로 내려선 적은 없지만, 지도에서 봐 왔던 고개라, 길을 묻는 사람에게 자신 있게 ‘은티마을’로 갈 수 있다고 안내했다.
은티고개와 지름티재 일대에는 「산림 유전자원 보호구역」 푯말이 있다.
“희귀 식물인 고란초, 솔나리, 천마 따위가 자생하는 곳”이라 한다.《푯말에서 따옴》
은티고개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21분쯤 올라 주치봉(683m-‘푯말’)에 닿았다.(07:59)
주치봉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와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목리 사이“에 있는 봉우리다.《푯말에서 따옴》
10분쯤 머물다 주치봉을 나서(08:09) 내리막을 18분쯤 뒤 호리골재에 닿았다.(08:17)
호리골재는 악휘봉에서 3.0km, 구왕봉까지는 1.6km, 은티마을까지 3.8km 거리다.
호리골재에서 1시간 4분쯤 오르막을 오른 뒤 구왕봉(879m-‘푯돌’)에 닿았다.(09:21)
5분쯤 머문 뒤 구왕봉을 나서(09:26) 3분쯤 뒤 밧줄 구간이 시작되는 바위 지대를 지난다.
구왕봉에서 청포도 님이 내게 지름티재까지 거리, 지름티재에서 은티마을 거리를 물었다.
“지름티재 1.1km, 지름티재에서 은티마을 2.2km쯤 될 것”이라 대답했는데, 길 푯말에는 구왕봉에서 지름티재까지 0.5km, 지름티재에서 희양산까지 1.5km, 은티마을까지 3.0km 라고 적혀 있었다.
바위 지대 일대는 가파른 내리막에 푸석돌[마사토] 길로 평소에도 미끄러운데, 이번에는 비가지 내려 더욱 미끄러웠다.
밧줄이 아주 튼튼하지는 않았고, 지름티재에 가까운 밧줄 하나는 낡아 곧 끊어질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구왕봉을 나서(09:26) 53분쯤 뒤 지름티재에 닿았다.(10:09)
백두대간 길 여러 번 걸을 때마다 지름티재에서 은티마을로 바로 내려가지 않고, 언제나 희양산으로 오르는 가파른 바위+밧줄 구간을 올라 희양산으로 갔다가 되돌아 나와 시루봉 쪽으로 가다가 성터 끝 지점에서 은티마을로 내려서곤 했다.
이번에는 비도 내렸고, 시간도 늦어 희양산으로 가지 않아 아쉬웠다.
일반 산행으로 희양산을 네댓 번 올랐고, 대간 길에 10번 이상 희양산에 올랐으나 내가 희양산을 사랑하는 마음도 아직도 식지 않고 있다.
지름티재는 구왕봉에서 0.5km, 희양산까지 1.5km 거리다.
지름티재에서 왼쪽 은티마을로 내려섰다.
지름티재에서 은티마을로 바로 내려선 것은 백두대간 길 여러 번 만에 처음, 난생 처음이었다.
일반 산행으로 희양산으로 오를 때는 은티마을 위에 있는, 「백두대간 희양산」 푯돌이 서 있는 곳에서 호리골재 쪽으로 올랐고, 호리골재에서 「백두대간 희양산」 푯돌이 서 있는 곳으로는 내려오지 않았다.
지름티재에서 35분쯤 뒤 「백두대간 희양산」 푯돌이 서 있는 곳에 닿았고, 여기서 17분쯤 뒤 은티마을에 닿아(11:01) 산행을 마쳤다.
복숭아를 내놓은 청포도 님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점심 값을 내놓은 김정호 회장 님과 주선한 청보리 총무님, 목욕비를 찬조한 왕서방 최수영 님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얼굴을 나타낸 권재구 대장 님 발 부상 회복을 손뼉치고, 환영하는 바이다.
대원 모두 수고했다.
◎ 이 구간에 있었던 나무(더 많은 종류가 있었을 것이나, 내가 아는 것만 기록함)
○ 가래나뭇과 갈래: 가래나무, 굴피나무[구종나무]
○ 녹나뭇과 갈래 : 비목나무, 새앙나무[아구사리, 생강나무, 단향매(檀香梅)]
○ 단풍나뭇과 갈래 : 단풍나무
○ 때죽나뭇과 갈래 : 쪽동백[쪽동백나무, 정나무, 옥령화(玉鈴花]
○ 물푸레나뭇과 갈래 : 물푸레나무, 쇠물푸레나무[쇠물푸레]
○ 범의귓과 갈래 : 산수국
○ 소나뭇과 갈래 : 소나무, 잣나무
○ 옻나뭇과 갈래 : 개옻나무
○ 인동과 갈래 : 병꽃나무(?)
○ 자작나뭇과 갈래 : 사스래나무,
○ 장미과 갈래 : 산딸기나무[산딸기], 팥배나무[감당 01(甘棠), 왕잎팥배, 왕팥배나무]
○ 진달랫과 갈래 : 산앵두[산앵두나무, 꽹나무, 당채, 산이스랏나무, 이스랏나무, 천금동], 진달래[진달래꽃, 진달래나무, 두견, 두견화, 산척촉], 참꽃나무겨우살이[꼬리진달래], 철쭉[철쭉나무, 척촉(躑躅), 산객(山客)]
○ 참나뭇과 갈래 : 굴참나무, 신갈나무
○ 층층나뭇과 갈래 : 층층나무
○ 콩과 갈래 : 싸리(나무)
◎ 이 구간에 있었던 덩굴성 식물
○ 노박덩굴과 갈래 : 미역줄나무[미역순나무]
◎ 이 구간에 있었던 식물
○ 볏과 갈래 : 조릿대
◎ 이 구간에 있었던 풀
○ 국화과 갈래 : 단풍취, 분취(?), 서덜취(?), 우산나물
○ 백합과 갈래 : 둥굴레, 원추리,
○ 볏과 갈래 : 기름새
○ 산형과 갈래 : 기름나물(?)
○ 양치식물 고사릿과 갈래 : 고사리
○ 현삼과 갈래 : 며느리밥풀
◎ 이 구간에 있었던 덩굴풀
○ 뽕나뭇과 갈래 : 환삼덩굴[들초, 한삼, 한삼덩굴]
□ 그밖에
◎ 흘러가는 생각을 잠깐 붙들고...
1. 매듭
‘매듭’ 이라는 말에는 네 가지 뜻이 있다.
“어떤 일이 순조롭지 못하거나 막힌 부분”을 뜻하는 매듭이 있으면 곤란하다.
그런 매듭을 만나면 지혜롭게 빨리 탈출하는 것이 좋다.
“일의 순서에 따른 결말”을 뜻하는 매듭은 빨리 결정짓고 앞으로 나아가면 일이 잘 풀릴 수 있다.
“옷에 장식용으로 다는” 매듭은 입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바위 지대에 매달아 놓은 밧줄에는 매듭이 필수적이다.
매듭이 있어야 그 매듭을 움켜쥐고 바위를 오르거나 내려갈 때 안전하게 오르고 내릴 수 있다.
구왕봉에서 지름티재로 내려오는 내리막 바윗길에 대여섯 군데 밧줄이 걸려 있다.
수직에 가까운 바위에 걸린 밧줄에 매듭이 있었으나 조금 더 촘촘하게 매듭을 만들어 놓았으면 오르내리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2. 죽어 넘어진 나무
몇 군데 나무가 죽어 넘어져 있었다.
길을 떡하니 가로막고 누운 나무를 넘어서기 위해서 끙끙거렸다.
나무가 길을 막고 있으면 즐거운 기분이 들지 않는다.
길을 걷는 사람이 어찌 나무를 탓할 것인가?
나무가 길을 막으면 둘러가든지, 둘러갈 수 없으면 나무를 타고 넘어야 한다.
길을 막는 나무를 보면 우리 삶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어려움이나 난관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슬기롭게 헤쳐야 일을 이룰 수 있고, 난관을 잘 헤쳐 나가야 성공에 이를 수 있는 법이다.
3. 궂은 날씨에 등산
기상청에서는 지난 주 중반부터 광복절 연휴 기간에 비가 내린단 예보를 했다.
오랜 가뭄 끝에 15~17일 사이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를 들었을 때 길고도 긴 가뭄 끝에 하필 내가 산에 가는 날 비가 내린단 말인가?
제발 기상청 예보가 빗나가기를 빌었다.
그러다 극심한 가뭄에 타들어 가는 남부지방을 돌아보면 내가 너무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논밭이 타들어 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먹을 물도 없어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고, 전국 소방대원들이 가뭄이 심한 밀양 등지에 물을 실어 공급하고, 나중에는 군인들도 일부 동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나를 나무랐다.
사람과 작물이 죽고 사는 마당에 한가롭게 등산가는 날 비가 내리지 않기를 바라다니...
비 내리기를 빌어야 마땅하다.
자연이 연출하는 자연 조건을 어떻게 거스를 것이며 불평을 늘어놓는단 말인가?
그저 자연에 순응해야 하고, 자연이 주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리는 비가 원망스럽지 않았다.
4. 타성
사람은 익숙하고 오래 지속되는 일에는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버릇이 있거나 오랫동안 변화나 새로움을 꾀하지 않아 나태하게 굳어진 습성이 몸에 배게 되기 쉽다.
전에는 비가 조금 올 것 같아도 등산 신불에 비닐을 덮씌우고, 왁스를 발라 빗물이나 물기가 신발 속으로 스며들지 않게 준비를 철저히 했다.
비 오는 날 입던 비옷 바지 대신에 조금 값싼 비옷 바지를 입었다.
비옷 바지 길이가 길어 등산 신불을 감쌀 것으로 짐작하고, 비닐 덮개 씌우기나 왁스 칠을 하지 않았다.
이런 준비 부족으로 신발 안에 빗물이 조금 스며들었다.
준비하지 않고, 신발 안이 뽀송뽀송하기를 바랐으니 될 일이 아니었다.
철저한 준비와 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5. 고정 관념
백두대간을 걸을 때 장성봉에서 구왕봉으로 가는 길.
언제나 악휘봉과 선바위를 둘러보았다.
버리미기재에서 지름티재까지 걸을 때 지름티재에서 바로 은티마을로 내려서지 않고, 수직 바위+밧줄 구간을 올라 희양산으로 간 다음 되돌아서 시루봉 쪽으로 가다가 성터가 끝나는 지점 쯤에서 은티마을로 내려서는 길을 걸었다.
대간 길에서 거의 10번 이상을 그랬을 것이다.
대간 길을 으레 그렇게 걸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이 굳어졌다.
거의 고정관념이 되다시피 했다.
이번에는 비가 내렸고, 내가 꾸물대다가 다른 대원들보다 늦어 악휘봉과 희양산 가는 것을 접었다.
대개 고정관념은 좋지 않은 어감이 있다.
꼭 나쁜 뜻은 아니더라도 고정관념은 한 번쯤 되돌아 볼 필요도 있다.
대간 길 고정관념을 떨친 걸음이었다.
오른쪽 발이 조금 불편해서 욕심과 고정관념을 벗어던졌다.
그렇기는 해도 고정관념을 떨쳐버린 이번 길이 아쉬웠다.
※ 다른 사진은 아래 제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blog.naver.com/angol-jong

첫댓글 섬세한 산행기를 읽으니
함께 걸은 느낌입니다.
여러번 지나간 대간길이
싫증이 나기도 할텐데 변함없는 대간길 사랑은
무엇 때문일까요?😀
비오는 밤. 미쓰러운 길. 장시간 걸으시느라 수고많았습니다.
악휘봉 갈림길과 주치봉 지나 구왕산 가는 길. 2년 전 승승장구 님이 맛있는 사과와 다디달고, 차디찬 잼을 주어 맛있게 먹었던 바위를 지나면서 승승장구 님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같이 갔더라면 그 바위에 올라 2년 전 추억 이야기도 하고 그 때 고마웠던 베풂에 대해서 다시 감사 인사라도 전했을 것입니다.
늘 베푸는 님! 품 넓은 마음씨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발 느린 내게 좋은 이야기를 건네니 힘이 나면서도 한편 부끄럽기도 합니다.
호탕한 승승장구 님 빈 자리가 컸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길,행님.!
수고하셨어요. 비가 억수로 내림에도 불구하고, 대원들 사진 찍어 주시고, 기록도 빠뜨리지 않고.!
대단해요. 행님.
고정관념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는 법칙이 있지요. 행님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또, 속리에서 만나요.
비 온다는 핑계로 사진도 많이 찍지 못하고, 기록도 충분히 하지 못했습니다.
모자를 쓰고 머리 전등까지 끼고 나무를 많이 부딪혔습니다.
나무는 내 머러나 얼굴보다 훨씬 힘이 세 얼얼하기도 했습니다.
수고했고, 고맙습니다.
우중산행 고생하셨습니다
산행내내 비가 쏟아 졌지만
무탈하니 모든대원분들 수고하셨지요
한길님 희양산사랑은 여러번 글을 접해서 잘 알고 있어 이번구간도 즐겁게 걸으셨으리라 짐작 됩니다 꼭 희양산 가지 않으셔도 그 언저리까지 왔으니까요
잠시 쉬는 시간에 건네준 쥬스 한모금은 참으로 맛나고 감사했어요
조근조근 적으신글에 사랑이 듬뿍 느껴 집니다
이번구간도 수고하셨습니다 ~^
비 내리는 날 대간 길을 걷는 것은 가벼운 걸음은 아니지만, 묵묵히 걷습니다.
자연이 주는 인내심 시험일 수도 있고, 나약해지는 나를 채찍질하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여러 번 머리로 나무를 들이받고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습니다.
완벽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어설픔은 떨치기 어려운 단점인가 봅니다.
음료수 제조 면허도 없이 집에서 무허가(?)로 급하게 만든 포도 주스였기에 맛이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렇게나 쏟아낸 넋두리가 길고 산만해서 보는 이를 성가시게 하지 않았을까 걱정입니다.
수고했고, 고맙습니다.
✍️✨️
비가 내리는 내내 젖은 옷과 미끄러운 바윗길 때문에 힘든 산행이었지만, 후기글을 읽으니 그 모든 고생이 배움과 추억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늘 깊은 울림과 배움을 주는 멋진 후기 감사드립니다.
다음 대간길에서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꾸벅!!)
얕은 생각을 어지럽게 늘어놓아 보는 이가 지리하고, 때로 지치게 하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자연 조건이 우리에게 내리는 현상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그 틈새에 설익은 생각을 살짝 끼워 넣어 보기도 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칭찬은 힘을 솟게 하지만 때로는 부끄러움이 앞설 때가 많습니다.
빠른 발걸음에 대원들을 위해 여러 번 베풂에 감사합니다.
수고했고, 고압습니다.
"자연이 연출하는 자연 조건을 어떻게 거스를 것이며 불평을 늘어놓는단 말인가?
그저 자연에 순응해야 하고,자연이 주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리는 비가 원망스럽지 않았다."
자연에 순응하신다는 말씀이 참 되세김질할만한 말씀입니다
순응한다는 말 속에는 운명을 사랑한다는 의미와 중첩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운명을 사랑하라는 영원회귀의 구절은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초인같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등산화가 철벅거리는 산행, 참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자연을 순응하고 운명을 사랑해야 하는데 ~~ㅋㅋ
고맙습니다.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순하기도 하고, 매운 조건은 하늘의 뜻대로 진행될 것이라 믿습니다.
나약한 인간이 감히 자연을 거스를 생각일랑 하지 말고 슬기롭게 대처해야 함을 느끼는 대간 길이고, 산행 길입니다.
같은 조건이지만 해석은 각자 자기 몫이라 생각합니다.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고, 많은 깨달음을 얼을 수 있다면, 그것은 큰 보람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수고했고, 고맙습니다.
쉽지 않은 백두대간 우중길
즐감하고 수고많이하셨습니다
좋은 자료 고맙습니다.
디지털 세상에서 인공지능 시대로 나아가는데, 나는 늘 아날로그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어쩌면 그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수고했고, 고맙습니다.
미진행 희양산에 대한 미련은 대부분 회원들 마음도 같은 마음이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산길걸음 내내 남부지방 폭우와 달리 중부지방 비는 그나마 적당히 맞을만한 비여서 넘나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심한 가뭄끝에 맞는 비는 참으로 꿀맛 같았는걸요. "감사합니다"3창을 하며 걸었더랬습니다.날이 밝아지고 촉촉히 내린 비로인해 나뭇잎들 또한 한없이 반짝반짝거리며
마치 '너무너무 행복해~~'
라고 행복한 아우성들을
치는듯한 느낌을 받아서
제마음도 넘나넘나 행복해졌더랬습니다.
하산길 밧줄구간 아찔하게 위험구간들이었지만 울 대간님들 모두 무탈하게 완료하셔서 참~~다행스럽고
즐거운 대간길 또 한구간 완료하게 되었습니다.쉽지않은길 많은 사진들 아낌없이 멋지게 찍어주시고 언제나 든든한
대선배님 멋진 한길선배님이십니다.
언제나 화이팅입니다~~^^
악조간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승화시키는 청보리 님의 너른 심성과 수양을 봅니다.
늘 밝고 대원들을 위한 한정 없는 베풂과 희생에 손뼉치고, 고마운 인사를 전합니다.
비 온다는 핑계로 사진도 최소한, 기록도 최소한으로 줄인 내 게으름이 부끄럽습니다.
수고했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길 큰형님!
풍부한 대간정보와
그밖의 형님의 오랜 경험과 소중한 정보들 늘 귀감이 되고, 많은 배움의 소중한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철저한 준비와 고정관념에 대한 견해는 아직도 해결 못한, 일상에서 자주 부디치는 중요한 난제 인듯합니다.
그래도, 이번기회에 우중산행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살짝 버리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금수강산 어느 산인들 아름답지 않은 산이 있겠습니까마는 중견산으로는
유독 마음이 끌리는 산이 몇곳있는데, 민주지산, 문경새재의 부봉 3봉, 그리고 희양산이였는데, 앞의 두곳은 몇번가본 경험이있고 희양산은 경험이 없어 저도 많이 아쉬웠습니다.
날씨만 좋았다면 직진 했을듯 한데요.
추후 희양산 산행의 기쁨이 배가 될듯 합니다.
하산후 은티마을 유래푯돌 내용이 길어 읽다 말았네요. 유도사 형님께
산행기에 올리실 거지요? 라고 물어니
그것은 한길 형님의 고유 영역이라 침범하면 예의가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사려깊은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ᆢ
큰형님께서도 내용을 올리시지 않으셔서 독학을 해야겠네요. ㅎㅎ
언제나 유익한 정보, 소중한 경험 공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비 내리는 날 대간 길 걷는 것이 쉬원 일이 아닐 터이고, 회피하고 싶은 나약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지나고 나면 뿌듯하고 벅차지만, 타고 넘으면 그 또한 나를 위한 밑거름인 것을 느끼려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산이 많지만, 희양산은 멀리서 보이는 희끗한 화강암 바위가 나를 사로잡았고, 민주지산은 눈이 귀한 남녘에 살면서 접하기 어려운 설경에 매료되어 많이 다녔습니다.
'은티마을 유래'는 내용이 길기도 하고, 다른 이야기가 많아 미처 올리지 못했습니다.
보잘것없는 내 블로그에 '유래' 전문을 올려 놓았으니 참고하기 바랍니다.
수고했고, 고맙습니다.
블로그 글은 복사 안 될 수 있으니 필요하면 문자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수고했고, 고맙습니다.
은티 마을 유래비
은티 부락은 연풍면 소재지에서 남북으로 약 4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東은 경북 자은과 접하고 있고 연풍면 최담단에 자리 잡고 있는 부락으로서 형성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연풍면지 등 여러 문헌에 의하면 조선 초기 연풍현 당시 현내면 연지동에 속해 있었으며 1812년 작성된 동절목(洞節目)에는 연지동 의인촌리(義仁村里)로 기록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후 왜인들이 의인(義人)은 한국의 민족 정신이 함유되었다고 하여 은티(銀峙)로 개칭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주치동 주(?)진村 응(?)岩鳥(?)峰中里를 병합 주치와 진촌의 이름을 따서 주전리라 하였으며 8.15 광복 후 행정구역 세분화에 따라 주진리를 3개 마을로 나눠 그 중 우리 마을을 은티라 칭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은티는 여궁혈(女宮穴)에 자리하고 있어 오구에 남근(男根)을 상정하는 물체를 세워서야 마을이 번창하고 주민들이 아들을 많이 낳을 수 있다고 하여 동구 송림 안에 남근석(男根石)을 세워 놓고 매년 음력 정월 초이튿날을 정제일로(?) 마을의 평안과 동민(?) 가족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 소지(燒紙)를 올리면 제(祭)가 끝나면 한자리에 모여 음복하고 제물을 나워 먹는 동고사를 지내고 있다.
서기 1996년 6월 20일
은티마을 동민 일동 세움
아이고, 감사합니다.
제가 괜시리, 큰형님 성가시게 한것 같습니다. 유도사 형님과 나눈 이런 저런 얘기가 재미있어 언급했었는데요.
감사합니다.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산행기에 미리 다 넣어 둔것인데, 기사가 넘쳐 카페에는 줄이고, 대신 블로그에 실었던 것이라 새삼스럽게 입력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은티마을'이 백두대간 길이 아니고, 다만 접속 구간인 점도 고려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백두대간 길을 걸으면서 산등성(이) 동서나 남북 지방 주민들 삶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