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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창세기 37:1-11 “ 요셉의 꿈 “
요셉 그러면 꿈이 생각날 정도로 요셉은 꿈꾸는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37:19절에서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부르기를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요셉이 나중에 애굽의 총리로 등극하는 것도 왕의 장관들의 꿈을 해몽하여 주었고 그리하여 바로왕의 꿈도 해석하여 주었기에 요셉을 꿈꾸는 자로 생각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볼 때 가장 큰 오해가 무언가 하면 우리도 요셉처럼 큰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살자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큰 꿈을 가져라고 하지 않아도 태어나면서부터 모두가 커다란 꿈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모두가 자기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꿈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왕자병과 공주병이 다 있는 것입니다. 정도의 문제이지 이런 병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가 스스로 낮아지고 겸손해지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할 뿐임을 우리의 자녀를 통하여 잘 보게 되지 않습니까? 모두가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과자 하나 장난감 하나를 가지고 놀 때에 보시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데 어른이 되면 자기의 형편과 처지를 따라서 조금씩 타협하고 살 뿐이지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자신의 야망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가지라고 하지 않아도 이미 모두가 당차고 야무진 꿈들을 다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꿈을 자꾸만 더 가지라고 합니까?
그러면 요셉의 꿈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셉은 한번도 자기가 꿈을 꾸고자 한 적이 없습니다. 요셉의 꿈이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받고자 하여서 받는 것이 아니라 주셔야만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때는 아직 성경이 책으로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계시 하실 때는 친히 말씀을 하시거나 천사를 통하여 하시거나 꿈과 이상을 통하여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계시로 보여주신 것이지 개인의 어떠한 야망과 장래의 포부를 가지는 것이 전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란 사람이 원하여서 받아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1:27절에서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시란 하나님을 아는 것이지 사람의 꿈과 야망을 이루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계시라는 말자체가 가리워진 것을 열어 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요셉의 꿈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떻게 자신의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가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것이 무엇을 위함인지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창세기 37:1-2절을 보시면 야곱의 약전, 역사를 소개하면서 요셉의 이야기가 등장이 됩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의 중심은 요셉을 통하여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을 중심으로 일어난다고 하여도 요셉의 성공시대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형제들간의 갈등과 반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창세기 27:29절입니다. “봉독”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야곱을 형제들의 주가 되도록 축복을 하는데 야곱의 형제는 하나뿐입니다. 그러니 복수로 형제들의 주가 된다거나 네 어미의 아들들의 주가 된다는 것은 야곱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의 주가 된다는 것은 결국 요셉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열두 형제에게서 주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의 역할을 요셉이 하게 되는 것은 결국 야곱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요셉에게서 완성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약에서의 언약들은 언약 당사자로서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후손으로 또는 다른 희생자로 연결되어서 완성되어 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하여 이삭은 야곱을 통하여 야곱은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이 행하신 언약의 완성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완성과 이어짐이 결국은 모든 언약의 완성이신 그리스도에게로 모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에게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는 모습은 언약을 받은 자가 고난을 받고 희생당하는데 그 고난과 희생으로 오히려 희생시킨 자들을 살려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셉의 생애를 통하여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자는 어떻게 되는지를 봅시다. 요셉은 꿈을 꾸기 전에 이미 형제들의 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형들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을 아버지 야곱에게 알린 것이고 또 하나는 야곱의 편애입니다. 야곱의 편애는 요셉에게 형제들과 다른 옷을 입힌 것으로 나타납니다.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혔다는 것은 구별되는 특별한 옷으로 봅니다. 이것은 편애로 보기도 하지만 장자의 권리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니 형들이 얼마나 미워하고 시기를 하였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요셉이 꿈을 꾸었다고 하는데 그 꿈의 내용이 더욱 형들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형들이 더욱 요셉을 미워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자를 형들이 미워하는 것입니다. 요셉도 자신이 그런 꿈을 꾸게 된 것이 앞으로 자신이 높은 사람이 되리라는 그런 정도로 생각을 하였겠지요. 그러니 자랑삼아 그런 꿈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그 꿈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높은 자가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희생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직은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요셉의 생애를 알고 있지만 요셉이나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일이 어떻게 전개 될지를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다만 아버지만이 마음에 둡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요셉의 꿈은 결국 미움을 받고 고난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그렇게 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너의 후손이 타국에서 종이 되었다가 돌아오리라는 그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 자신의 개인적 야망을 요셉의 꿈에 빗대어 꿈을 가지고 이루어 내자 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서 당하는 어려움들을 보고자 합니다. 37:5절, 요셉이 꾼 꿈을 이야기 하자 그를 더욱 미워합니다. 꿈을 꾸기 전에도 두 가지 미움의 털이 박혀 있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형들의 곡식단이 내 단에게 절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들이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우리를 다스리겠는가 하면서 그 꿈과 말을 인하여 더욱 미워하는 것입니다. 37:9절입니다. 한번만 그래도 미움을 받을 텐데 또 꿈을 이야기 합니다.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야곱과 그 어미와 형제들이 다 절한다고 하니 야곱이 꾸짖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야곱이 마음에 둡니다. 이러한 꿈들로 인하여 요셉이 얼마나 미움을 받게 되는지 더 보고자 합니다. 37:18-20절입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양을 치는 형들에게 보냄을 받아서 찾아 갑니다. 물어물어 찾아 갔는데 요셉이 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서 형들이 죽여버리려고 작전을 짭니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저를 죽여버리면 그 꿈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자 하면서 죽일 작정을 합니다.
그러자 장남 르우벤이 그렇게 하지 말자고 합니다. 형제의 피를 직접 흘리지 말고 물없는 구덩이에 넣어 버리자고 합니다. 르우벤이 이렇게 하는 것은 나중에 몰래 와서 살려내어 자기 아버지에게 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르우벤은 이미 자기 아버지에게 크나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 서모 빌하를 범하였기에 이런 기회에 요셉을 구하여 자기의 지위를 확보하고자 함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요셉의 꿈이 하나님의 뜻인지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입니다.
형들이 르우벤의 말을 듣고서 그렇게 하기로 하였습니다. 물없는 웅덩이에 넣어 버렸습니다. 그리고서 자기들은 음식을 먹습니다. 생매장을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아마 울고불고 형님들 왜 그러느냐고 살려 달라고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음식을 먹을 정도였으니 사람의 악함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러한 사람들의 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는 것입니까?
26절입니다. 유다가 그때 마침 지나가는 상인들을 보고서 우리가 요셉을 죽이고 피를 은닉한 들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그러니 팔아 버리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구덩이에서 끌어 올려 상인에게 팔아 버립니다. 은 20개는 그 당시의 노예의 몸값입니다. 그렇게 팔아 버리고 나자 르우벤이 어디를 갔다가 돌아옵니다. 보니 요셉이 없는 것입니다. 이미 팔려 가버린 것입니다. 이제는 자기들의 아버지에게 알리바이를 만듭니다. 옷을 찢고 염소의 피를 발라서 자기 아버지에게 가져다주면서 이것이 아버지의 아들의 옷이 아닌지 보십시오. 알아보지요. 알아보고서는 통곡을 합니다.
여기서 요셉을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형제들의 손에 의하여 팔리는 것입니다. 은 20은 당시의 노예 몸값인데 예수님도 형제라는 유대인들, 그중에 제자의 손에 의하여 은 30에 팔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요셉이 형들을 살려 냅니다. 그것을 통하여 형들은 요셉을 죽인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들을 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인 자들을 용서하여 달라고 간구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를 찌르고 상하게 하고 죽였지만 그는 살아 나셔서 우리를 살려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미리 당한 고난을 통하여 애굽에서 자기의 가족들이 거할 처소를 미리 마련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성도들의 처소를 예비하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모형론적으로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요셉에 이렇게 되는 것을 요셉 자신이 나중에 무어라고 하는지 보고자 합니다. 창세기 50:18-21절입니다. “봉독” 형들이 엎드려 빕니다. 그러자 요셉의 하는 말이 이러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겠습니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라고 합니다. 자신이 죽을 뻔 하다가 노예로 팔려 갈 때에 형들을 얼마나 원망을 하였겠습니까? 노예로 팔려서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 모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요셉이 알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형제들의 주가 되는 것은 희생하는 자가 주가 되는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섬기는 자가 주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섬김을 받는 것이 주인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자기들의 꿈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 꿈이란 그저 높은 것입니다. 월급이 올라가야 하고 승진하여야 하고 학생의 성적이 올라가야 하고 이것만이 꿈입니다. 요셉도 처음에 곡식단이 자기에게 절하고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할 때에는 자기가 높은 사람이 되는 것만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 총리가 되고 그의 부모 형제들이 요셉에게 나아와 절하게 되었습니다만 그러나 그렇게 절받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의 주가 되는 것은 섬김에 있는 것입니다. 제가 당신들과 당신의 자녀들을 기르겠습니다. 이것이 주의 역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주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은 자기들이 섬김을 받고자 하나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섬기는 자가 높은 자라는 것입니다. 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누가 더 크냐고 서로 서로 시기와 경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섬기는 자가 자기를 낮추는 자가 높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꿈을 이야기 하면서 우리도 이 세상에서 야망을 가지고 우리의 꿈을 이루어 내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든지 높든 낮든 부자이든 가난하든 실패와 성공, 이런 것이 메여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거룩한 나라요 주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섬기는 자로 부름을 받았고 또한 형제를 섬기는 자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형제들의 주가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2:1-11절입니다. “봉독”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남도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높으신 분이십니까? 그러나 그가 자기를 비워 종으로 오셨고 죽기까지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모든 무릎이 그 앞에 꿇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주가 되는 것은 종으로 팔리고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를 높여서 다른 이들이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요셉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람이라면 이 마음을 품고 사는 것입니다. 마음을 낮추시고 남을 섬기는 자리로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때가 되면 주님께서 높이실 것입니다. 헛된 세상의 자리에 연연하지 마시고 교회에서도 서로 섬기는 자로 세워 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자의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자만이 말씀을 받을 것입니다.